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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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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네강
도네강 유역지도

도네강(일본어: 利根川, とねがわ 도네가와)은 일본 중 하나이다. 오미나카미산에서 발원하여, 간토 지방을 북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가로질러 태평양으로 흐른다. 도네강 수계의 본류로, 일본 정부의 하천법에 따라 1965년부터 1급 하천으로 관리받고 있다. 반도타로(坂東太郎)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반도타로는 도네강이 "간토 지방의 하천 중 장남 격이요, 일본에서 가장 길고 큰 강"임을 의미한다. 도쿄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수도권의 거주민들을 위한 용수원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도네강의 강수량이 수도권 지역의 취수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1]

개요[편집]

도네강은 일본 혼슈 중앙부의 산맥에서 발원하여 간토 평야를 남동류해서 태평양으로 흐르는 강이다. 길이 322km. 유역면적 1만 6840㎢이다. 상류부에서 가타시나강(片品川), 아가쓰마강(吾妻川), 중류부에서 와타라세강(渡良瀨川), 기누강(鬼怒川), 고카이강(小貝川) 등 주요 지류 25개를 합치고 하류부에서는 가스미가우라호(霞浦)를 비롯한 여러 호소군과 연결된다. 17세기 중엽에 종래의 유로(현재 도쿄만으로 흘러드는 도네강의 분류 고도네강)를 수해방지, 에도(江戶)방어 등의 목적으로 현재의 유로로 돌린 뒤 오히려 홍수가 격화하여 대규모 치수사업으로 수자원을 이용하게 되었다. 도네강의 물은 대부분이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있었으나, 수도권의 팽창에 따라 상수도, 공업용수, 전력의 수요가 많아져, 여러 다목적댐이 건설되었다. 수원지에 가까운 상류부와 하류부의 호소지대는 각각 국립, 국정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2]

지리[편집]

군마현 도네군 미나카미정에 자리하고 있는 미쿠니산맥의 오미나카미산(표고 1,840m)에서 발원한다. 남쪽으로 흐르다 다카사키시역을 거쳐 가라스강과 합류하면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도쿄만으로 흐르는 에도강과 갈라진 뒤, 지바현과 이바라키현의 지리적 경계선을 이루며 동쪽으로 흐르다, 지바현 조시시 근처의 가시마나다에서 태평양과 합류한다. 총연장은 332km로, 시나노강에 이어 일본 내 2위, 유역면적은 약 16,840km²로 일본 내 1위이다. 간토 지방의 1개 도와 5개 현(가나가와현 제외)을 지나가며, 가라스강의 일부 지류가 나가노현 사쿠시에서 발원한다.

도네강의 상류와 중류, 하류는 보통 아래와 같이 구분된다.

  • 상류: 오미나카미산의 발원지에서 군마현 이세사키시 얏타섬 (八斗島)까지.
  • 중류: 얏타섬에서 지바현 노다시의 에도 강 분기점까지.
  • 하류: 에도강 분기점에서 조시 시의 하구까지.

도네강이 오미나카미산에서 발원한다는 사실은 1954년 군마현 산악연맹의 "오쿠토네 수원 조사 등산대"에 소속되어 있던 30명이 밝혀냈다. 이들은 발원지를 찾아 강을 직접 거슬러 올라갔다. 발원지에 관련된 최초의 사료는 무로마치 시대에 쓰인, 미나모토노 요시쓰네의 일대기인 《의경기》로, 《의경기》에는 도네강의 발원지가 지금의 미나카미정 후지와라 부근이라고 적혀있다. 오미나카미산의 이름은 에도 시대 초반인 1640년대에 그려진 막부 공인 지도인 《쇼호구니에즈》에 처음으로 나왔다. 그러나 도네강의 정확한 발원지는 1835년에 그려진 《에도메이소즈카이》나 1858년에 그려진 《도네가와즈시》 등에서 서로 발원지를 다르게 표시하는 등, 오랫동안 밝혀내지 못해왔다. 메이지 시대 이후에는 강에 대한 조사가 본격화되어, 1894년과 1926년에 두 번의 조사를 한 후, 1954년 지금의 위치로 발원지를 확정했다. 이 밖에, 군마현 당국이 1975년에 전문가들을 모아 도네강 유역의 종합학술조사를 시행하기도 했다.

도네강의 출발점은 오미나카미산 북동쪽 사면, 표고 1,800m 부근에 있는 삼각형의 골짜기 끝이다. 원류부는 험준한 계곡인데, 크고 작은 못들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오쿠토네호로 모이게 된다. 야기사와 댐, 스다가이 댐, 후지와라 댐을 통과하면서 남서쪽으로 유로를 틀어, 미나카미 온천 부근에서 협곡을 형성하며 남쪽으로 흐른다. 미나카미정 쓰키요노에서 아카다니 천과, 누마타시에서 가타시나강과 합류하는데, 가타시나강과의 합류 지점에서 하안 단구를 형성한다. 누마타시에서 시부카와시 경계에 걸쳐서는 아야토 계곡을 형성하며 구불구불하게 흐르다, 시부카와시의 시내에서 아가쓰마강과 합류하여 마에바시시, 다카사키시를 통과한다. 다카사키시에서는 가라스강과 합류해, 이세사키시의 얏타섬에 이른다.

얏타섬 부근부터 강의 폭은 넓어진다. 군마현 사와군 다마무라정 부근에서 약 500m 수준으로,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 지역에서는 약 900m 규모로 넓어지는 것이다. 도네 보(利根大堰)에서는 무사시 수로가 갈라져, 도네강물을 아라카와강과 연결한다. 도네 보를 지나 와타라세강과 합류하여, 이바라키현 사시마군 고카정 가운데를 흘러 이후 남동쪽으로 흐르는데, 이 구간을 따라 이바라키현과 지바현의 경계선이 정해졌다. 노다시에서는 에도강과, 지바현 가시와시에서는 도네 운하와 갈라지며, 이바라키현 모리야시에서는 기누강, 도리데시와 기타소마군 도네정의 경계점에서는 고카이강과 합류한다. 가토리시와 도네강 하구언을 지나, 히타치토네강, 구로베강과도 합류한다. 두 강과의 합류 지점을 지나면서 강의 폭은 최대 1km까지 넓어지게 된다. 가미스시와 조시시의 지리적 경계를 이룸을 끝으로,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도네강 하류 지역에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면적을 보유한 가스미가우라호를 비롯하여, 기타우라, 인바 늪, 우시쿠 늪, 데가호 등 여러 개의 자연 습지가 만들어져 있다.

유역[편집]

도네강의 유역면적은 총 1만 6,840km²이다. 이는 시코쿠 지방의 면적의 약 80% 정도와 맞먹는다. 이 유역면적에 속하는 지역을 흐르며, 도네강에 합류하거나 분기하는 모든 하천들을 도네강 수계로 묶는다. 도네강 수계에 속하면서 마지막에 도네강에 합류하는 지류들의 수는 815개로, 요도강 수계의 964개, 시나노강 수계의 880개에 이어 일본 내에서 3위에 해당한다. 유역에 속한 행정 구역은 도쿄도를 비롯하여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군마현, 사이타마현, 지바현, 나가노현의 1도 6현 221시구정촌으로, 일본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약 1,200만 명이 도네강 유역에 살고 있다.

지리와 지질[편집]

도네강 유역의 상류부는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화산 지형이 대부분이며, 중류부와 하류부의 대부분은 충적 평야이다. 도네강 최상류부의 오쿠토네 주변은 신생대 고제3기에 형성된 화강암 지형이다. 그 밖의 산지들은 신제3기에 형성된 퇴적암 지형으로, 간토 산지, 야미조 산지, 아시오 산지는 고생대에서 중생대 사이에 걸쳐 형성된 각암, 사암, 점판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라스강 유역, 특히 간나 강 일대는 일명 "산바가와 변성대"라 불리는데, 간나 강의 산바 골짜기나 지류인 산바 강에서는 "산바세키"라 불리는, 녹색에 가까운 결정 편암 (변성암의 하나)이 다수 발견된다. 군마 현, 도치기 현 일대를 흐르는 지류들의 상류부에는 여러 개의 화산이 있는데, 화산들의 분출 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 쇄설물층이나, 용암이 풍화한 화강암, 안산암, 응회암 등이 발견된다.

중류부와 하류부의 구릉지대와 홍적대지는 제4기에 형성되었는데, 과거 도쿄만에서 흘러와 퇴적된 모래와 진흙으로 형성된 시모우사 지층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지층 위에는 간토 롬층이 덮여 있다. 충적 저지대는 신생대 전기인 갱신새 말기부터 완신세에 걸쳐 형성된 두터운 충적층이 주를 이르며, 지금의 도쿄 만 연안부 등에서는 최대 60m에서 80m 사이까지 두꺼워진다. 한편, 제4기에 간토 산지 등 간토 평야를 에워싼 주변 산지의 융기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상대적으로 평야 중앙부가 침강하는 조분지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충적 저지대에서는 상류에서 흘러온 토사가 충적층에 퇴적되었다. 그 후 침강한 평야 중앙부가 다시 융기하면서 그 곳으로 토사가 쌓여, 지금의 대지와 저지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렇게 형성된 산지나 대지가 지금의 도네강과 도네강 수계의 분수계를 이루고 있다. 군마 현과 니가타현의 경계를 이루는 미쿠니산맥과 군마현, 도치기현, 후쿠시마현의 경계를 이루는 다이샤쿠산맥, 그리고 이바라키현에서 도치기현에 걸쳐 있는 야미조 산지의 남쪽 사면과, 군마현, 나가노현, 사이타마현의 경계를 이루는 간토 산지의 동쪽 사면에 내리는 비가 도네강으로 흐르는 것이다.

미쿠니산맥은 태평양동해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으며, 미쿠니산맥을 경계로 남쪽 사면은 도네강 본류를 비롯한 크고 작은 못의 발원지를 이루고 있다. 반면 북쪽 사면은 우오노강·나카쓰강 등, 시나노강의 수계를 이루고 있다. 다이샤쿠산맥에 속한 난타이산, 닛코시라네산, 오제고원 등지는 남쪽 사면과 동쪽 사면에 내린 비가 각각 기누강, 가타시나강으로 흘러 도네강과 합류하지만, 북서쪽 사면에는 오제 늪을 수원으로 하는 다다미강이 흐르며, 다다미강은 아가노강과 합류한다. 야미조 산괴, 도리코 산괴, 게이조쿠 산괴, 쓰쿠바 산괴를 포함하는 야미조 산지와, 야미조 산괴에서 이어지는 우쓰노미야시 부근의 대지, 이바라키현 중남부에 펼쳐진 조소 대지도 남북 사면으로 나뉘는데, 남쪽 사면으로는 기누강, 고카이강 등이 흘러 도네강과 합류하지만, 북쪽 사면으로는 도키가와강, 아라카와강, 히누마강 등 나카강의 지류들이 태평양으로 흐른다.

기후[편집]

도네강 유역의 기후는 대체적으로 온난하고 습윤한데, 이는 도네강이 흐르는 간토 평야가 북태평양 기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류 지역, 중류 지역, 하류 지역이 모두 항상 온난하고 습윤한 기후를 보이지는 않으며, 계절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강수량은 연평균 1,300mm로, 일본 전국의 연평균 강수량 1,700mm보다는 밑돌고 있다. 상류부는 미쿠니산맥을 비롯한 고산 지대에 자리하고 있어,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리고 기온이 매우 낮아진다. 상류부 지역은 간토 지방에서 비교적 많은 눈이 내리는 다설지에 속해 있어, 1955년부터 2002년까지의 연간 누적 적설량을 오미나카미산 발원지가 16m, 야기사와 상류부가 10 ~ 14m, 미나카미정 부근과 가타시나강 상류부가 2 ~ 10m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쌓인 눈은 봄철이 되면 녹아, 도네강을 따라 흐르면서 수도권 지역에서 용수로 쓰이게 된다. 중류부는 여름철에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기온이 비교적 높아지며, 맑은 날씨가 잦아진다.

역사[편집]

도네강은 자주 범람하여 유역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으며, 홍수 때마다 유로가 복잡하게 뒤엉키는 하천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간토 지방의 중요한 강으로 유역에 있는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에 많은 혜택을 주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일본의 위정자들로부터 도네강과 그 지류를 치수와 이수의 차원에서 다스리고자 하였다.

중세 이전[편집]

도네강 유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로 추정된다. 군마현의 이와주쿠 유적 등에서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하안 단구나 대지 (臺地) 말단부에 살면서, 사냥을 통해 식량을 구하며 생활했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조몬 시대에는 조몬 해진으로 지금의 사이타마현 구키시 구리하시에서 태평양 하구까지의 도네강 일대가 모두 바다가 되었으며, 그 주변의 바닷가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이는 패총의 분포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데, 조몬 시대 전기에는 북쪽으로 아카기산 남쪽과 서쪽 기슭이나,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모토아라카와강 유역에 주로 패총이 분포했었다. 그러나 후기에 들어 바닷물이 점차 빠지면서 하류로 사람의 생활 범위가 넓어져, 지금의 지바현 지바시, 이치카와시, 마쓰도시 등지에서 조몬 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패총들이 발견되고 있다. 야요이 시대에 들어서는 농경 문화가 간토 지방으로 전래되어, 도네강 유역에서도 사람들이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3세기 후반의 고훈 시대 즈음에는 지금의 도치기현과 군마현에 해당하는 게노 지방(毛野地方)을 중심으로 장구형 무덤이 발달하였는데, 사이타마현의 사이타마 고분군이 대표적이다.

에도 시대 이전의 도네강은 태평양으로 나가는 지점이 지금처럼 조시시가 아니었다. 에도 시대 이전에는 사이타마현 교다시 부근에서 남동쪽으로 유로를 틀었으며, 지금의 오오토시후루토네강의 유로를 따라 아라카와강, 이루마강과 합류하여 에도만(지금의 도쿄만)으로 흘렀다. 이 가운데 교다시 부근에서는 "아이노카와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 당시 오이가와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와타라세강은 독립적인 하천으로, 지금의 에도강의 유로를 따라 도네강과 나란히 흘러 에도만으로 유출했으며, 기누강도 마찬가지로 독립된 하천으로 고카이강과 합류하여 가토리해로 유출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도네강의 본류가 정해진 것은 1457년으로, 오타 도칸이 지금의 사이타마현 가스카베시에서 구사카시를 거쳐 에도만으로 흐르는 하천을 도네강의 본류로 정했다. 또 상류는 지금의 위치보다 더 동쪽에 있었던 히로세강의 유로를 따라, 지금의 이세사키시 부근에서 가라스가와강과 합류했었으나, 1543년에 일어난 홍수로 지금의 유로를 따라 흐르게 되었다. 이처럼 번잡한 유로를 이루고 있었던 도네강은 홍수로 유로가 자주 바뀌었으며, 유역은 수없이 범람 피해를 입었다. 기록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홍수로는 나라 시대인 758년에 기누강에서 있었던 홍수로, 2천여 경(頃)의 토지가 황폐화되었다고 한다.

한편, 도네강 유역에서 처음으로 치수 사업이 실시된 때는 768년으로, 기누강의 유로를 바꾸는 공사였다. 한편 최초의 이수 사업은 645년 다이카 개신 후 시행된 반전수수법으로 조리제(條里制)가 도네강 유역에서 실시된 것으로, 지금의 군마현 다카사키시와 오타시, 이바라키현 남부, 사이타마현 북부에서 그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다. 가마쿠라 시대 (12세기 ~ 14세기)의 가마쿠라 막부는 도네강 개발에 적극적이었는데, 첫 쇼군이었던 미나모토 요리토모는 1194년 도네강 최초의 제방을 무사시국 지역에 세웠다. 이어 1199년 4월에는 지토(地頭)들에게 도네강에서 농업 용수를 개발하여 지역을 개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뒤로도 막부는 도네강을 계속 개발하였다. 1207년 3월에는 막부가 호조 도키마사에게 도네강 일대를 포함한 무사시국의 개발을 명령하기도 했다. 막부는 둑 건설을 중심으로 한 치수 사업도 꾸준히 진행했는데, 싯켄 호조 마사토키가 1232년에 지금의 사이타마현 구마가야시 자리에 가키누마 둑을, 싯켄 호조 도키요리가 1253년에 지금의 이바라키현 사시마군 고카정 부근에 둑을 건설했다. 《슈가이쇼》(拾芥抄; 습개초)에서는 이와 같은 하천 개발을 통해, 가마쿠라 시대의 경지는 헤이안 시대보다 약 16,000 정보가 늘은 66,710 정보로 늘어나게 되었다고 밝혔다.

무로마치 시대(14세기 ~ 16세기)의 도네강 유역은 가마쿠라 공방의 지배에 놓였으나, 오닌의 난이 일어난 뒤로 정세가 불안정해지면서 자주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막부가 주도한 치수·이수 사업은 전무했으며, 센고쿠 시대의 도네강 유역은 이즈국을 근거로 세력을 넓히고 있던 고 호조씨의 지배에 놓였다. 4대 당주인 호조 우지마사는 1576년 곤겐도강에 길이 약 900m의 곤겐도둑을 건설했다.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어 센고쿠 다이묘들을 공격하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고 호조씨를 치기 위해 오다와라 정벌을 일으켰다. 이 무렵, 이시다 미쓰나리가 무사시국의 오시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1590년 6월에 장마로 물이 들어찬 도네강과 아라카와강을 둑으로 막은 뒤 오시성을 향해 물길을 보내 성을 무너뜨려 항복을 받아낸다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지형 문제로 성을 침수시키지는 못했으며, 오히려 제방이 무너지면서 도요토미군에서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오시성은 7월 16일, 고 호조씨의 본거지인 오다와라성이 함락당한 후에야 항복했다. 이 때 미쓰나리가 축조한 제방을 "이시다 둑"이라 부르는데, 자연 제방들을 묶어서 전장 약 28km의 둑을 1주일 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 둑은 군사적 목적으로 건설된 것이었기 때문에, 도네강의 치수와는 관계가 없었다.

근대[편집]

1868년에 메이지 정부가 세워지면서, 일본의 행정 기구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하천 행정은 몇 차례의 변천을 거쳐 1874년부터 내무성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책임지게 되었는데, 도네강은 1875년 6월 16일에 설치된 내무성 토목료 (土木寮) 산하 도네강 출장소가 맡게 되었다. 이 출장소가 지금의 국토교통성 간토 지방정비국의 시초였다. 또 1896년 일본 정부는 하천법을 공포하여, 도네강을 하천법의 적용을 받는 하천으로 지정했다. 이후의 근대 도네강 개발은 내무성이 주도하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네덜란드식 치수 공법을 일본 각지의 하천에 도입하기 위해 네덜란드에서 코르넬리스 요하네스 판 도른 (Cornelis Johannes van Doorn)을 초빙하여 1872년에 도네강의 측량 조사를 맡겼는데, 이 계획은 1886년 네덜란드인 안토니 토마스 루베르터스 로웬호스트 멀더 (Anthonie Thomas Lubertus Rouwenhorst Mulder)가 세운 "도네강 개수 사업"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사업의 주요 목표는 지금의 군마현 사와군 다마무라정에서 도네강 하구에 이르는 구간을 대상으로 곳곳에 제방을 세워 수해를 예방하고, 도네 운하를 뚫어 수운의 편의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 때 처음으로 도네강의 계획 고수 유량을 쟀는데, 초당 3,750m³으로 추산되었다. 사업은 3단계로 나뉘어 시행되었는데 이 사업이 진행되던 사이 1890년 도네 운하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1910년 8월, 두 개의 태풍이 간토 지방을 관통하면서 도네강 유역에 대규모 홍수가 일어났다. 일명 "1910년 8월 대홍수"로 불린 이 수해로 769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북쪽으로는 마에바시시와 미도리시, 서쪽으로는 후지오카시, 남쪽으로는 가와고에시에 이르는, 도네강의 광범위한 배후 지역이 물에 가라앉아 한동안 간토 지방 중앙부는 하나의 호수처럼 되고 말았다. 수해 직후, 일본 정부는 도네강 개수 사업을 대규모로 개정하여 계획 고수 용량을 초당 5,570m³까지 상향했다. 사업 계획을 고치는 과정에서 와타라세 유수지를 만드는 사업 계획도 생겼는데, 이 유수지는 그 무렵 아시오 광산에서 대량의 광독이 유출된 일을 해결하기 위하여 계획된 것으로 정부는 곧 유수지 건설을 정식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 밖에 제방과 호안의 건설, 1921년에는 요코토네 갑문 건설, 1922년에는 인바 수문 건설, 1923년에는 오노강 수문 건설을 차례로 진행했다. 또한 정부는 도네강 하류에 새로운 수로를 뚫는 사업을 1889년부터 1922년까지 진행했으며, 1926년에는 도네강과 곤겐도강을 물막이로 갈라놓는 사업을 시행했다. 한편 에도강에서는 1927년 세키주쿠 수문과 세키주코 고수로를 건설하여 도네강에서 유입되는 수량을 조절하고자 하였으며, 하류부에는 1920년에 에도가와 방수로를 건설해 유량 조절 능력을 높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근대기 도네강 개수 공사는 에도강 방수로의 보수가 끝난 1930년에 마침표를 찍었다. 한편, 개수 사업을 한창 진행하던 1923년에는 간토 대지진으로 도네강 중류의 116곳의 둑들이 무너지거나 헐렸는데, 이 둑들을 복구하는 작업도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개수 사업이 끝난 뒤에도 도네강은 홍수에 시달렸다. 1935년 9월과 1938년 6월 ~ 7월, 1941년 7월에 일어난 홍수들은 모두 개수 사업을 계획할 당시에 정해놓았던 계획 고수 용량을 크게 초과한 유량을 기록했다. 특히 1938년 여름에 일어난 홍수는 도네강 하류부와 그 배후 지역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는데,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은 에도 시대 이전에 가토리해에 속해 있었던 지역이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기존의 개수 사업을 대신할 새로운 도네강 치수 사업의 책정을 검토했다. 내무성은 아라카와 방수로 건설의 총 지휘를 맡았던 내무성 내무기감 아오야마 아키라를 위원장으로 하는 "도네강 치수 전문위원회"를 설립하고, 계획 고수 용량을 초당 1만m³으로 상향했다. 이는 1910년에 상향된 고수 용량의 약 두 배에 이르는 수치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도네강 개수 사업 증보 계획"이 1938년에 열린 제73회 제국 의회에서 가결되어, 1939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 사업의 주된 계획은 와타라세 유수지를 홍수 조절이 가능한 늪지대로 바꾸는 것과, 도네가와 방수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 무렵 와타라세 유수지는 홍수가 일어났을 때 물들을 스스로 저장할 수 있었지만, 정부는 유수지 주변으로 둑을 에워싸 유수지의 홍수 시 저수 기능을 강화해 조정지로 개량하고자 하였다. 한편 다목적 방수로인 도네가와 방수로를 만드는 사업은 지금의 지바현 아비코시 후사 (지금의 동일본 여객철도 나리타 선 후사역 주변)를 기점으로 인바 늪 서쪽 끝을 거쳐 지금의 지바시 하나미가와구 게미가와와 가이힌마쿠하리 사이를 흘러 도쿄만으로 유출하는 총연장 27km의 방수로를 뚫어 도네강 하류의 수위를 2m 낮추고, 데가호와 인바 늪의 치수와 간척을 수월하게 하는 것이 목표였다. 또, 정부는 방수로를 도네 운하를 대신할 대규모 운하로 이용하고자 하였으며, 방수로를 뚫는 데 쓰고 남은 부지들을 매립지로 써 방수로 주변으로 공업 지대를 조성하고자 하였다. 이 밖에 다나카·스고 조정지를 새로운 유수지로 개발하는 사업, 도네 운하를 방수로로 바꾸는 사업, 도네강 중류부의 둑들을 보수하는 공사도 새로운 사업 계획에 들어있었다.

우선 1937년, 1935년 9월 홍수로 피해를 입은 지역의 둑을 보수하는 일부터 시작했으며, 그 후 와타라세 유수지의 새로운 제방을 공사하기 시작했다. 도네 운하는 내무성이 도네 운하 주식회사로부터 운하를 사들여, 도네강과 운하가 이어지는 것을 일단 막은 뒤 방수로화 공사를 시작했다. 고카이강에서는 기존에 있던 둑을 가동 댐으로 바꾸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도네가와 방수로는 태평양 전쟁으로 예산, 자재, 인력이 모두 충분히 모이지 않아 시행하지 못했고, 사업은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일본이 항복한 1945년까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1947년 9월, 태풍 캐슬린(Kathleen)이 도네강 유역을 덮쳤다. 역사상 유례없는 폭우는 전쟁으로 이미 황폐화되어 있던 도네강 유역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특히 지금의 사이타마현 가조시, 구 오토네정 인근의 둑이 무너져 탁류가 도쿄도 가쓰시카구, 에도가와구 일대까지 흘러들게 되었다. 또 가라스가와강 유역, 와타라세강 유역은 거의 전역에서 강물이 범람하여 하나의 호수처럼 되고 말았다. 당시 일본 전국에서 죽거나 사라진 사람의 수는 1,910명인데, 이 중 도네강 유역에서만 1,100명이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일본은 전쟁으로 너무나 많은 국력을 소모했기 때문에 치수 사업을 재개할 여력이 없었으며, 전쟁 중에 너무 많은 나무들을 베어가는 바람에 물을 막아줄 숲들이 사라지면서 각지에서 홍수 피해가 계속 일어나 캐슬린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점차 늘어나기만 했다. 이에 요시다 시게루 내각의 경제안정본부는 해체된 내각성이 맡고 있던 하천행정을 이어받은 건설성에 새로운 하천 개수 사업 계획을 작성하도록 지시했다. 이 때 건설성에서 작성한 계획을 《하천 개정 개수 계획》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도네강 수계를 포함하여 일본의 주요 10수계를 대상으로 종합적인 치수 대책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 계획에 따라 1949년부터 도네강에서 "도네강 개정 개수 사업 계획"이 책정되었으며, 여기에는 댐 건설 계획도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도네강에 댐 계획이 처음으로 등장한 때는 개정 개수 사업 계획이 시행되기 전인 1926년이었다. 당시 정부는 기누강의 지류인 오지카강에 이카리댐을 건설하려 했으나, 지형 문제와 이어 터진 전쟁 때문에 도중에 공사가 멈추면서 실패했다. 하지만 1947년 태풍 캐슬린이 유역을 관통하자 정부는 도네강의 계획고수용량을 초당 17,000m³으로 상향하게 되었고, 그 중 초당 14,000m³을 제방, 와타라세, 다나카, 스고, 이나토이에 있는 네 곳의 유수지와 도네강 방수로를 통해 빼내고, 남는 초당 3,000m³의 유량은 상류의 댐들로 조절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도네강 상류 19곳의 댐 건설 후보지를 검토한 끝에, 후지와라, 누마타, 아이마타, 소노하라, 얀바, 사카하라 등 6곳에 댐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또 기누강에는 예전에 계획했던 이카리 댐에 가와마타 댐이, 와타라세 강에는 쿠사키 댐의 전신인 고도 댐이 세워지게 되었다. 마침내 1956년 이카리 댐이 완성된 것을 시작으로, 1957년 후지와라 댐이, 1959년 아이마타 댐이 완성되어 가동을 시작했다. 한편 하류에는 새로이 가스미가우라 방수로, 고카이강의 새 유로, 도네강 하구 도수제, 에도강 교토쿠 댐 등이 계획되거나 지어졌다.

이 무렵 치수만큼이나 가장 중요했던 문제는 바로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식량과 전력이 너무나 모자랐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26년 도쿄 제국대학 교수였던 모노노베 나가호가 제안한 "하수 통제"(河水統制)라는 개념을 제2차 세계 대전 전부터 내무성이 도입하여 "하수 통제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니시키가와강 등의 치수 사업에 적용해왔으며, 전쟁이 끝난 뒤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를 벤치마킹한 "하천 종합 개발 사업"을 시행했다. 이 사업에는 종전의 치수 사업 뿐만 아니라, 수력 발전과 관개 시설의 설치도 들어가 있었다. 이와 같은 하천 개발이 강력하고 광범위하게 추진되던 1950년, 제3차 요시다 내각이 《국토 종합 개발법》을 제정하여 일본을 22개의 특정한 지역으로 나눈 뒤 특정 지역 종합 개발 계획을 추진했다. 도네강 수계도 대상 지역에 들어가게 되었다. 1951년 12월, 각료 회의가 《도네 특정 지역 종합 개발 계획》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 후 도네강의 하천 사업은 도네강 수계 전역에 걸쳐 치수·이수 (利水) 등 양면의 고른 발전을 목표로 하게 되었다.

도네강 수계의 하천 종합 개발은 1936년 도쿄시가 주도해 시행한 에도강 하수 통제 사업이 시초이다. 이는 에도강 수갑문(水閘門)을 이용해 새로운 용수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어 군마현이 수력 발전을 목적으로 도네강 최상류부에 댐을 건설하는 《군마현 도네강 하수 통제 계획》을 1937년부터 시행하였으며, 1940년에는 도쿄시가 《도쿄시 제3차 수도 확장 계획》의 수도 발원지로서 도네강을 이용하기 위해 군마현의 계획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 계획들은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전쟁 이후 《도네강 개정 개수 사업》이 책정되면서 치수 사업이 재개되었지만, 내각이 《도네 특정 지역 종합 개발 계획》을 입안하면서 대규모 하천 종합 개발로 그 규모가 커지게 되었다. 이 계획은 개정 개수 사업의 치수·모래막이 사업과 더불어 기존 댐들의 다목적 댐화, 다다미강의 오제가하라 댐에서 가타시나강으로 물을 유도하는 사업을 비롯한 수력 발전 계획, 인바 늪·데가호 간척, 료소 용수 개발, 국도 4호선, 국도 6호선 등의 도로망 정비를 포함한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이 계획에서 일본의 수도권 지역의 생활용수를 책임지는 야기사와 댐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20세기 중후반[편집]

《도네 특정 지역 종합 개발 계획》을 시행하던 무렵의 일본은 한국 전쟁 특수 경기로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경제 성장은 급격한 공업용수 수요의 증가를 야기했으며, 일본의 인구는 도쿄를 중심으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었다. 1957년에 도쿄도민을 위한 용수의 공급지로 다마강에 오고우치댐을 만들었지만, 급격한 수요 증가를 막기엔 턱없이 모자라 도쿄에서 올림픽이 열리던 1964년에는 도쿄도를 중심으로 대규모 갈수 사태가 일어났다. 또 농업 기술이 발전하면서 경작할 수 있는 대지는 늘어났지만, 그만큼을 충족할 수 있는 농업용수는 없었다. 결국 1958년, 도네강 하류를 중심으로 염해가 발생하여 많은 농지가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1950년대 ~ 60년대 당시 일본의 수도권에서는 물의 확보가 긴급한 과제였다.

일본 국회는 1961년 수자원 발전 촉진법을 제정하였으며, 1962년에 일본 정부는 나중에 독립행정법인 수자원 기구로 전환하는 "수자원 개발 공단"을 발족시켰다. 또, 정부는 도네강과 오사카권의 요도강, 나고야권의 기소강, 후쿠오카권의 지쿠고강 등을 대상으로 수자원 광역 종합 계획을 시행했다. 우선 1967년과 1968년에 각각 야기사와 댐과 시모쿠보 댐을 건설하였고, 1969년에는 중류부에 도네 댐(利根大堰)을 건설하였다. 또한 수자원 개발 공단은 도네 도수로 (무사시 수로·아사쿠 수로)를 건설하여 도네강과 아라카와강을 연결해 도쿄도 수도국의 아사카 정수장으로 물을 보내어 도쿄도민의 물 수요를 채우고자 하였다. 한편 1971년에는 도네강 하구언을 건설해 염해의 방지와 수도권의 물 공급량 증가를 도모하는 한편, 상류부에는 1969년에 군마 용수를 건설해 아카기산, 하루나산 등지를 새로이 개간케하고자 했다. 중류부에는 미누마다이 용수와 사이타마 용수로를 정비하여 간토 중앙부의 관개 시설을 보완하였고, 보소반도 중남부에서는 인바 늪을 간척 (1968년)하고 보소 도수로를 1997년에 신설하였다. 또, 가스미가우라호에서도 1963년에 지었었던 히타치 강 수문을 이용해 호수를 댐으로 만드는 《가스미가우라 종합 개발 사업》 (1996년)을 시행했다. 한편 1976년에는 구사키 댐, 1991년에는 나라마타 댐을 완성하여 수도권의 치수 및 이수를 강화했다. 이와 같은 계획을 차차 진행하던 중, 공단은 1974년에 도네강의 개발 계획과 아라카와강의 개발 계획을 아우른 《도네강·아라카와강 수계 수자원 개발 기본 계획》을 수립했다.

도네강은 1964년에 개정한 하천법에 따라 1급 하천이 되었고, 이후 환경성이 도네강의 치수 사업을 계속 주도하게 되었다. 1965년에는 《도네강 수계 공사 실시 기본 계획》이 책정되었는데, 이 계획은 이후 도네강 치수를 위해 지켜야 할 새로운 방침이 되었다. 정부는 이 새로운 계획의 책정에 따라 도네강의 기본고수용량을 계속 상향하여, 지금의 도네강의 기본고수용량은 초당 22,000m³에 이른다. 이 사이 와타라세 유수지의 조정지화를 1997년에 완성했고, 유수지 안에 저수지를 만들어 유수지를 다목적 댐으로 이용하는 《와타라세 저수지 계획》도 1989년에 완성되었다. 또, 다나카 조절지 (1965년), 스고 조절지 (1960년)를 비롯한 여러 유수지도 제 모습을 갖추었다. 댐으로는 소노하라 댐과 가와마타 댐 (모두 1965년), 가와지 댐 (기누강, 1983년)이 새로 생겼고, 내수 범람의 방지와 새로운 용수의 확보, 데가호의 수질 개선 등을 목적으로, 도네강과 에도강을 연결하는 다목적 인공하천인 기타치바 방수로도 2000년에 완성했다. 2007년에는 나카가와강, 오오토시후루토네강 등의 물을 에도강으로 끌어내 홍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2007년에 세계 최대 규모의 지하 하천인 수도권 외곽 방수로를 완성했다.

도네강과 도네강 수계는 이처럼 끊임없는 치수, 이수 사업을 통하여, 도쿄권 뿐만 아니라 게이힌 공업 지대, 게이요 공업 지대, 가시마 임해 공업 지대 등의 수자원, 전력 자원으로 쓰이면서 일본 경제와 일본 국민의 삶의 질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도네강의 치수 안전도는 100년 ~ 200년에 한번 준설해야 하는 수준으로, 도네강 유역과 인구밀도가 비교적 비슷한 독일의 라인강 수계의 안전도가 1,250년에서 길게는 10,000년에 한번 준설해야 하는 수준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또 도네강에서 퍼올리는 초당 123m²의 이수총량 중, 25%에 해당하는 초당 33m²의 양은 도네강의 유량이 충분할 때만 취수할 시 있으며, 기후 변화에 따라 강수량이 줄어들면서 도네강 수계의 댐 8곳에서 나오는 용수 보급량은 20% 감소했다. 이와 같은 치수·이수 상의 문제를 해결코자 일본 국토교통성은 《도네강 수계 하천 정비 계획》을 책정하려 하고 있으며, 그 사전 단계로 《도네강 수계 하천 정비 기본 방침》을 정했다. 이 방침에는 제방, 호안의 정비와 기존 하천 시설의 유지, 보수 외에 얀바 댐, 유니시 댐, 난마 댐 등의 다목적 댐 건설 사업, 이나토이 조절지의 굴착과 둑 공사, 그리고 도네강 방수로의 시공을 추진하고 있다.[3]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달링강〉, 《위키백과》
  2. 도네강(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利根川〉, 《フリー百科事典》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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