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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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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청

산청군(山淸郡)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중서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합천군의령군, 서쪽은 함양군, 남쪽은 진주시하동군, 북쪽은 거창군과 접하고 있다. [1]

개요[편집]

산청군 동경 127°41′∼128°07′, 북위 35°13′∼35°34′에 위치한다. 면적은 794.83㎢이고, 인구는 2023년 6월을 기준하여 34,114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0개 면, 285개 행정리(119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옥산리에 있다. 군을 상징하는 꽃은 목화, 나무는 대나무, 새는 꾀꼬리이다.

전국에서 군청 소재지의 인구가 3번째로 적은 군이다. 군청 소재지인 산청읍의 인구는 2023년 4월 주민등록인구 기준 6,762명. 참고로 2위는 전라남도 신안군(압해읍 5,968명) 1위는 경상북도 청송군(청송읍 5,074명)이다. 주된 산업으로는 농업(쌀, 딸기, 곶감), 약초 등이 있다.[2][3]

자연환경[편집]

산청군 동서 38.8㎞, 남북 40.3㎞로서 주위는 대부분이 준엄한 산령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지세는 지리산 천왕봉을 깃점으로 한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하동군·함양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합천군과는 백운산의 지맥인 황매산이 양군의 분수령을 이룬 분지이다.

북부에 갈전산(葛田山, 764m)·바랑산(797m)이 거창군과, 그리고 동부의 황매산(黃梅山, 1,108m)·전암산(傳岩山, 696)이 합천군과 경계를 이루며, 서남쪽의 천왕봉(天王峰, 1,915m)·제석봉(除石峰,1,806m)·촛대봉(燭臺峰, 1,704m)이 함양군과, 남쪽의 삼신봉(三神峰, 1,284m)·주산(主山, 831m )·우방산(牛芳山, 570m)이 하동군과 경계를 이룬다.

그리고 내부에도 송의산(松義山, 538m)·왕산(王山, 923m)·정수산(淨水山, m)·웅석봉(熊石峰, 1,099m)·둔철산(屯鐵山, 812m)·감투봉(768m)·구곡산(九谷山, 961m) 등의 산들이 도처에 산재하고 있다.

하천은 경호강(鏡湖江)이 군의 중앙을, 양천(梁川)과 황매산에서 발원하는 단계천(丹溪川)이 군의 동부를, 덕천강이 서부를 각각 남류하면서 남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들 하천유역인 단성·시천·생비량·차황·산청 등지는 지세가 비교적 평탄하고 관개가 편리하며 토양이 비옥하여 농경에 적합하나, 산곡의 침식으로 형성된 개석평야인 까닭에 규모가 대단히 작다.

기후는 온대 기후구에 속하나 내륙 고산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여 대륙성기후를 나타내며 연평균기온은 13.8℃, 1월 평균기온 1.8℃, 8월 평균기온 26.3℃ 내외이며 고원 산악지역에서는 특히 기온의 변화가 심하다. 습도는 66%이고 연 강수량은 1,775.9㎜이다(2007년 기준).

지질은 군의 동부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계 낙동층으로 편마암과 화강암을 기반으로 혈암·사암·역암 등이 분포되어 있고, 서남부의 지리산 일대의 경우, 주로 화강편마암이 현저하나 일부 지역에 화강암층이 분포하고 있다. 토양은 갈색 산림토가 지배적이나 표층은 갈색, 하층은 황갈색을 띤다. 그리고 하천 유역의 평지부는 층적토로 되어 있다.

식생은 온대 중부산림대와 온대 남부 산림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데 소나무·전나무·잣나무 등의 침엽수와 참나무·박달나무·단풍나무 등의 활엽수 등이 자라고 있다.[4]

역사[편집]

단성면 강루리와 군내 각처에서 선돌·고인돌 등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고 있음을 볼 때, 청동기시대에는 이미 이 지방의 전 지역에 사람들이 널리 퍼져 살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최근에 강루리에서 빗살무늬토기의 포함층이 확인된 사실을 비추어 볼 때, 일찍이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사람들이 남강을 따라 이곳에 올라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국시대에는 생초면 어서리와 신안면 중촌리 고분군의 규모와 부장품의 내용으로 보아 5, 6세기경 가야계열의 부족국가가 이 지방에 분립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신라통일 후 이 지방은 지품천현(知品川縣)이라 불렸고 단계지방은 적촌현(赤村縣)이라 불렸다. 단성지방은 궐지군(闕支郡)인데, 757년(경덕왕 16)에 궐성군(闕城郡)으로, 지품천현이 산음현(山陰縣)으로, 적촌현이 단읍현(丹邑縣)으로 개칭되어 산음·단읍 2현이 궐성군 소속의 영현으로 되었다.

신라인들은 지리산을 오악의 하나로 숭앙하였으며, 신라말 선종(禪宗)이 성행하면서 단속사(斷俗寺)·삼장사(三壯寺) 등 대소 사원들이 이 지방 산중에 건립되어 불교의 큰 중심지를 이루었다.

고려초 궐성군은 한때 강성현(江城縣)으로 강등되었다가 뒤에 강성군으로 되었으며, 단읍현은 단계현(丹溪縣)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산음·단계 2현은 합주(陜州 : 지금의 陜川)에, 강성군은 진주목(晉州牧)에 소속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단계는 강성군의 영현으로 복귀하고 산음·강성에 감무(監務)가 두어졌다.

1363년(공민왕 12) 강성 사람 문익점(文益漸)이 원나라에서 면화종자를 가져와 장인 정천익(鄭天益)과 협력하여 단성면 사월리에서 재배와 방직에 성공하여 국민 생활과 국가경제에 크게 공헌하였다. 근년에 후손들이 이곳 면화시배지에 사적비를 세우고 유물관을 지어 면업가공발전사를 소장, 전시하고 있다.

1399년(정종 1) 거제도의 명진현(溟珍縣)이 왜구를 피하여 강성현으로 옮겨오면서 두 현이 합쳐져 진성현(珍城縣)으로 개칭되었다. 1413년(태종 13) 산음현의 합주 소속이 해제되면서 현이 지금의 산청읍으로 옮겨지고 현감이 두어졌다. 1432년(세종 14) 명진현이 거제도로 수복되면서 강성현과 단계현이 합쳐져 단성현(丹城縣)으로 개칭되었고 현감이 두어졌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세종 때 산음현의 호구수는 257호 1,138인이었고 진성현은 234호 872인이었으며, 단계현은 139호 496인이었다.

1555년(명종 10) 조식(曺植)은 단성현감으로 제수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지리산 아래 덕산동에 들어가 산천재를 세우고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에 전념하였다. 그의 학행은 이황(李滉)과 더불어 당세의 사표로 추앙되었으며 뒤에 영남일대를 크게 교화하였다.

임진왜란 때 조종도(趙宗道)·이로(李魯) 등은 의병을 규합하여 진주성의 외곽에서 유격전을 전개했으나 진주성 함락 후 이 지방은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다. 그리하여 왜란 직후 1599년(선조 32) 단성현이 폐지되고 그 일부가 산음현으로 편입되었다가 1613년(광해군 5) 복구되었다. 1767년(영조 43) 산음현이 산청현으로 개칭되었다. 1771년(영조 47) 산청현의 호구수는 2,114호 8,989인이었으며 단성현의 호구수는 2,526호 9,994인이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으로 산청현과 단성현이 군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행정구역 정비에 따라 진주군의 삼장(三壯)·시천(矢川) 등 6개 면이 산청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단성군이 산청군으로 통합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말의 거유 곽종석(郭鍾錫)은 거창에 은거하다가 문인 김황(金榥)과 더불어 전국의 유림을 규합하여 만국평화회의에 한국독립청원서를 내는 등 유림의 구국운동을 주도하였다.

1948년 여순반란사건과 1950년 6·25전쟁 때 지리산으로 도피한 공비로 인해 군민의 희생과 상처가 매우 컸다. 1962년 6월 5일 단성면 서부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3년 7월 1일 신등면 상법리·철수리가 차황면에 편입되었다. 1975년 1월 1일 금서면서하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9년 5월 1일 산청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하동군 옥종면 중대리가 시천면에 편입되었고, 1988년 산청읍 옥동과 한동이 옥산리와 산청리로 각각 개칭되었으며, 1994년 단성면서부출장소 관할의 길리가 단성면 관할로 되었다. 1999년 단성면의 서부출장소, 금서면의 서하출장소를 폐지하였다.

산업[편집]

남강 유역의 농경지를 중심으로 쌀·맥류·콩·삼베·한지·죽기 등을 생산하고, 목축으로 산양 사육과 양봉을 하고 있으며, 제재·제지를 비롯한 임산물 가공과 인삼·피마자·약초(당귀·향귀·천궁)·홉 등의 특용작물 재배가 성하다. 목축이 가능한 지역은 지리산 산록이며 한우를 방목하여 천왕이한우를 생산하고 있다. 산청군은 농가의 비중이 높지만 경지 면적이 좁아 농업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2차산업은 업체의 규모가 영세하며 더구나 상수원 보호구역은 입지 조건이 까다롭다. 1,2,3차 산업이 모두 취약하지만 친환경 청정지역이라는 장점을 내세워 친환경 농업으로 돌파구를 찾아가고 있다. 특히 예전부터 한약재로 유명한 곳이라는 장점을 내세워 전통한방휴양관광지가 조성되었으며 첨단 산업으로 분류되는 한방 바이오 업체 유치, 한방 산업과 관련된 건강, 의료, 휴양, 관광지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교통[편집]

철도는 아직 없지만 나중에 남부 내륙철도가 생비량면을 지나갈 예정이다. 남해~초산·시천~경주 간 국도가 동서남북으로 관통하고, 산청~서하 간 지방도로가 산청읍 옥산리에서 금서면 화계리까지, 서포~단성 간 지방도로가 단성면 당산리에서 단성면 칠정리까지 이어졌고, 단계~신원 간 지방도로는 신안면 문대리에서 차황면 장박리까지 통하고 있다. 각 면 소재지에는 군도가 통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도로 포장률은 55.8%로 경상남도 평균 62.9%보다 낮다.

관광[편집]

국립공원인 지리산과 그 동쪽 산기슭에 자리잡은 이 군은 수려한 산천과 곳곳의 명승고적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중산리 등산로는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에 오르는 최단 등산로이다. 중산리에서 덕천강을 따라 깊은 계곡과 급류, 기암괴석으로 장관을 이루는 용추(龍湫)를 지나 칼을 세워 놓은 듯 하늘 높이 솟은 칼바위와 첩첩의 기암과 기이한 모양의 고송으로 유명한 문창대를 차례로 거치면 곧 신라의 고찰인 법계사(法溪寺)에 도착한다. 이어 멀리 남해를 내려다보며 천왕봉에 오르는데 그 경치는 절승이다.

그 밖에 산청에서 지리산으로 오르는 길은 금서면 평촌리에서 서쪽으로 4㎞에 있는 대원사(大原寺)에서 오르는 것도 있다.

지리산 이외에 군내에는 신동면 율현리에서 산길을 도보로 30여 분 오르면 651년(진덕여왕 5)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율곡사(栗谷寺)가 있고 오층석탑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신등면 단계리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인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신안면 신안리 북동마을에 노산정사가 있고, 노산정사에서 700m 오른 제공산 중턱에 문익점묘가 있다. 신안면 하정리 원마을에서 산청읍으로 약 2㎞를 가면 경호강이 흐르고 그 오른쪽에 적벽산(赤壁山)이 있는데, 이 곳은 한여름 피서와 낚시·캠핑에 적합하다.

단성면 사월리 배양마을에 면화시배지가 있으며, 묵곡리의 묵곡 강변 유원지는 여름철 피서와 가을철 단풍완산에 좋은 곳이다. 유원지는 북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엄혜산을 기점으로 솔숲과 대숲이 1㎞에 걸쳐 강가에 울창하게 뻗어 있고 남강 상류인 경호 강변의 산청읍에는 장선탄이라는 절경지가 있다.

그 밖의 유적지로는 단성면 운리의 단속사지, 시천면 원리의 산천재, 삼장면 대포리의 내원사, 삼장면 평촌리의 삼장사지, 유평리의 대원사, 금서면 화계리의 전구형왕릉, 생초면 어서리의 토봉산 동남 기슭에 있는 고분군(古墳群) 등이 있다.

남명기념관은 남명의 학덕을 추모하고 선생이 추구한 경의사상(敬義思想)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2005년 개관한 전시관이다. 생초면 어서리에 있는 생초국제조각공원은 가야시대 고분군 2기와 현대 조각품 2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편집]

민속놀이로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마근담 줄다리기가 전해 오는데, 현재 11개 읍면에서 맥을 이어오고 있다. 경호강을 경계로 동군·서군으로 나뉘어 며칠 동안 줄다리기를 하였다. 여기에서 승자는 세금감량을 받았고 줄다리기한 줄을 썰어 소에게 먹이고 퇴비로 썼으며, 패자는 그해 조세를 부담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잠시 쉬었다가 축소된 내용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조선 시대 실천유학의 대가인 남명 조식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8월 열리는 남명선비 문화축제는 서사극 공연, 의병출정식, 선비문화체험 등 다양한 행사로 구성된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산청군〉, 《위키백과》
  2. 산청군〉, 《네이버 지식백과》
  3. 산청군〉, 《나무위키》
  4. 산청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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