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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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스페인어: Ciudad de México, 영어: Mexico City, 나와틀어: Altepetl Mexihco, 문화어: 메히꼬시)는 멕시코의 수도이다. 멕시코연방구라고도 부른다. 멕시코시티는 멕시코고원 위에 위치해 있다. 멕시코시티의 인구는 약 920만 명이고 멕시코의 수도로 유일한 연방 직할구이다. 멕시코주와 이달고주에 걸쳐 연결된 시가지는 인구가 2천만 명이 넘는 광역 도시권을 이루고 있다. 멕시코시티의 광역 도시권에는 정치, 경제, 행정, 교육 기능 등이 집중되어 있다.[1]
목차
개요[편집]
멕시코시티는 멕시코 중앙 고원에 위치해 있으며, 평균 해발 고도는 2,240m이다. 세계적으로도 잘 정비된 축의 대도시로서, 면적 1,495km²에 2020년 기준 인구 약 920만으로 북미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고 도시권으로 넓히면 7,954km²에 약 2,300만 명으로 뉴욕 도시권과 맞먹는 대도시권이다. 서반구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정착지 중 하나이며,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대도시 지역 중 하나이다. 14세기 중엽에 세워진 아스테카 왕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이 있던 곳으로, 1521~1821년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에스파냐 식민 도시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였다. 1821년 멕시코의 독립 이후에도 멕시코 연방 공화국의 수도이자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도시이다. 멕시코 합중국에서 가장 번영한 지역이며 1968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수도권(METRO) 인구가 많은 도시다. 32개의 행정 구역으로 구성되어 있는 메트로폴리탄 도시이다. 아메리카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기도 하고,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멕시코시티는 20세기 멕시코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 과정에서 국가의 발전 축으로 성장하였다. 20세기 말 멕시코의 모라토리엄 선언과 경제 위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에서 산업 중심지로서의 비중은 감소하였으나, 금융 중심지로서 부상하고 있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본사가 멕시코시티에 입지해 있으며, 거대한 글로벌 경제 체제와 멕시코의 자본을 지휘 및 통제하고 있다. 경제 발전 과정에 뒤따른 인구의 급속한 증가, 도시 환경의 악화, 수자원의 부족, 빈부 격차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멕시코시티는 멕시코의 중앙고원(mesa)에 위치하여 평균 해발 고도가 2,240m에 이르며, 전형적인 고산 기후가 나타난다. 멕시코 중남부에는 고원의 거대한 분지(Valle de México)가 있으며, 북위 19°에서 멕시코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화산대가 지나가 도시 주변에 높은 화산들이 솟아 있다. 시가지 남부에는 용암이 굳어서 생긴 지형도 나타난다. 북으로는 해발 고도 3,000m의 파추카(Pachuca) 산이, 북동쪽으로는 시에라마드레 오리엔탈(Sierra Madre Oriental) 산맥의 일부인 치추쿠아틀라(Chichucuatla) 및 테포찬(Tepotzan) 산이, 동쪽과 남동쪽으로는 멕시코 중부 화산대의 일부인 포포카테페틀(Popocatepetl)과 이스탁시우아틀(Iztaccihuatl) 화산이 둘러싸고 있는데, 각각 5,000m를 넘는 높은 산이다.
또한 남쪽에 해발 고도 3,952m의 치치나우친(Chchinauchin) 산, 서쪽으로는 몬테바호(Monte Bajo) 산과 몬테알토(Monte Alto) 산 등이 둘러싸고 있다. 멕시코시티는 이러한 산들 사이의 비교적 낮은 지대에 입지해 있다. 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멕시코시티가 입지한 분지에서 잘 빠져나가지 못하여, 텍스코코(Texcoco) 호를 비롯한 호수가 발달하였고, 홍수에 취약하다. 멕시코시티 시가지의 상당 부분이 수백 년 전 호수였던 곳을 간척하여 건설한 것이기 때문에 지반 또한 취약하다.
멕시코시티는 북회귀선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고지대에 위치하여 연중 기후가 온화한 편이다. 평균 기온이 연간 12~16℃로, 월별 기온의 변화가 적은 편이다. 연강수량은 810㎜ 정도이며, 6~9월에는 한 달에 100㎜ 이상의 비가 내린다.
역사[편집]
식민지 이전[편집]
멕시코시티의 기원은 멕시카(Mexica) 제국의 왕도인 테노치티틀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멕시코의 건국 전설에 의하면, 톨테카 족(Tolteca)을 계승한 고대 메소아메리카 세계의 마지막 왕국 세력인 아스테카 족은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북아메리카의 사막에서 애리조나, 치와와를 거쳐 중앙 지역에 이르렀다. 그들의 이동은 용맹스런 전쟁의 신인 우이칠로포치틀리(Huitzilopochtli, 마법사 벌새라는 의미)와 신관인 테노치(Tenoch)의 신탁에 따른 것이었다. 아즈텍 족은 1325년 호수의 소택지(沼澤地)와 섬들 위에 테노치티틀란을 세웠다.
현재 멕시코시티의 중심지인 콰우테모크(Cuauhtémoc) 지구에 해당된다. 아즈텍 인들은 이 도시에 ‘달의 배꼽’이라는 뜻의 메히코(Méjico)라는 접두사를 덧붙였으며, 현재 멕시코 국명의 유래가 되었다. 이후 1521년 에스파냐 인들에게 정복당하기 이전까지 테노치티틀란은 목테수마(Moctezuma) 왕이 다스리는 아스테카 왕국의 수도였다.
식민지 시기[편집]
1519년 쿠바에 주둔하던 에스파냐 관리인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órtes)가 침략할 당시 테노치티틀란의 인구는 30만 명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도시였다. 코르테스는 당시 테노치티틀란에 대해서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크고 화려한 도시라는 기록을 남겼다. 1521년에 코르테스 군대는 테노치티틀란을 점령하였고, 테노치티틀란을 아메리카 대륙에 최초로 세운 부왕령인 누에바에스파냐(Nueva España)의 수도로 삼았다. 1524년 새로운 수도의 이름을 ‘멕시코 테노치티틀란’이라 하였고, 1585년에 시우다드데멕시코(Ciudad de México), 즉 멕시코시티라 하였다. 이후 1821년 독립 이전까지 멕시코시티는 에스파냐 아메리카 식민지의 정치, 경제, 행정의 중심지로서 기능하였다.
에스파냐 인들은 아스테카 왕국의 수도 위에 격자형 가로망과 중앙 광장을 가진 에스파냐식 도시를 다시 세웠다. 식민 기간 동안에 멕시코시티는 경제적으로도 번영하였는데, 이는 멕시코시티와 인접한 사카테카스(Zacatecas) 지역에서 거대한 은광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멕시코시티는 태평양 연안의 항구 도시인 아카풀코(Acapulco)와 멕시코만의 항구 도시인 베라크루스(Veracruz)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다. 에스파냐는 식민 기간 동안 필리핀 마닐라로부터 아카풀코, 멕시코시티, 베라크루스, 쿠바의 아바나를 잇는 무역로를 통해 교역하였다. 식민 기간 동안 부유했던 멕시코시티는 거대한 교회와 공공건물을 다수 건설하였으며, 도시의 엘리트 계층은 궁전처럼 화려한 주택을 지었다. 19세기 초 독일의 지리학자인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는 이때 멕시코시티의 모습을 보고 ‘궁전의 도시’라고 하였다.
독립 이후[편집]
1824년에 멕시코 연합국의 수도로서 특수한 지위를 지니는 연방 연방 직할구(distrito federal)로 지정되었으며, 멕시코주의 주도는 톨루카로 이전되었다. 멕시코의 근대화 시기라고 할 수 있는 포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iaz) 대통령의 재임 기간(1876~1880, 1884~1911) 동안 멕시코시티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디아스 대통령은 멕시코시티를 유럽의 도시와 어깨를 겨루는 도시로 만들고자 하였으며, 파리의 도시 계획을 모방하여 멕시코시티를 변모시켰다. 도시 외곽에 다수의 산업 지구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1910년 멕시코시티에서 일어난 마데로(Francisco I. Madero)의 혁명으로 디아스 시기가 종료되었으며, 멕시코시티는 1919년까지 멕시코 혁명 전쟁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멕시코시티는 지속적으로 주요한 도시이기는 하였지만 현재와 같은 인구 및 경제, 정치, 사회의 중심지로서 성장한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혁명이 끝난 이후에도 인구는 비약적으로 성장하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사회 여러 분야에서 멕시코의 으뜸 도시로서 확고히 자리 잡았다. 1940년대 이후 멕시코의 산업화와 경제 발전 과정에서 멕시코시티는 국가 발전의 핵으로 성장하였다.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 전략 기간 동안 멕시코시티는 멕시코 대부분의 지역에 영향을 미치고, 수많은 기능을 흡인하여 그 중심성을 강화시킴으로써 수도 이상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1950년에 세워진 라틴 아메리카 타워(Mirador Torre Latino)는 멕시코의 경제적 성장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개최된 올림픽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초로 개최된 올림픽이었으며, 1969년에는 멕시코시티에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급작스런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사회적 갈등도 심화되어 민주화와 경제 성장의 균등한 분배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집회가 확산되었다. 이는 결국 1968년 틀라텔롤코(Tlatelolco) 발포 사건으로 이어졌고,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다. 1985년에는 멕시코시티 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멕시코시티 중심 시가지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멕시코 전체에서 멕시코시티의 산업 중심지로서의 위상은 1982년 멕시코의 모라토리엄 선언과 1990년대 연이은 경제 위기,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의 발효 등을 겪으면서 약화되었으나, 외국 자본 및 다국적 기업의 본거지로서 금융 분야의 주요한 중심지의 위상은 강화되고 있다. 한편 경제 발전 과정에 뒤따른 인구의 급속한 증가, 도시 환경의 악화, 수자원의 부족, 계층 간 빈부 격차의 문제 등이 나타나고 있다.[3]
교통[편집]
멕시코시티는 현재는 북아메리카와 가장 가까운 라틴아메리카의 대도시이며,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를 연결하는 도시로서 지리적, 사회적, 경제적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로와 철도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건설된 것이며, 멕시코시티 공항은 좁은 공간과 낡은 시설로 인해 이전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1910년까지 멕시코의 주요 철도망이 완성되어 주요 도시, 광산 지역, 항구와 연결되었으며, 국경 도시를 거쳐 미국의 도시들과도 연결되었다. 철도망의 연장은 24,000㎞에 이르렀다. 철도망은 멕시코 주요 도시의 성장 동력을 제공하였으며, 철도망의 중심인 멕시코시티의 발전이 가장 두드러졌다. 이후 건설된 도로망 역시 멕시코시티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1928년 멕시코시티 주변 지역에 약 700㎞의 전천후 도로가 개통된 이래, 1930년 아카풀코와 멕시코시티 간, 1933년 멕시코시티와 베라크루스 간에 도로가 건설되었다. 1940년까지 약 1만 ㎞의 도로가 건설되었다.
멕시코시티는 1969년에 라틴아메리카 최초로 지하철을 개통하였다. 멕시코시티의 지하철망 시스템(Sistema de Transporte Colectivo Metro)이 있다. 멕시코시티의 지하철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멕시코시티 주민들의 가장 주요한 공공 교통수단이다. 지하철의 하루 여객 수송량은 450만 명에 이른다. 지하철은 연방 직할구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으나,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교외 지역과 도심을 연결하는 교외 라인(Tren Suburbano)이 건설되었다. 멕시코시티는 2005년부터 간선급행버스체계(Bus Rapid Transit, BRT)인 메트로버스(Metrobús)를 운영하고 있다. 택시는 과거에 폭스바겐 사의 초록색과 흰색으로 된 낡은 비틀(Beetle)이 주를 이루었다. 수십 년씩 운행된 낡은 택시들은 대기 오염의 주범으로 지적되어 2000년대 이후 붉은색과 흰색의 새로운 차량으로 교체하였다.
멕시코시티의 베니토후아레스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de la Ciudad de México Benito Juárez)은 도심에서 8㎞ 거리의 텍스코코(Texcoco) 지역에 있다. 1990년대 이후 멕시코시티 공항의 여객 및 화물, 직항 노선은 빠르게 증가하였다. 특히 멕시코시티와 미국의 댈러스 및 로스앤젤레스를 잇는 노선은 수송 여객과 화물의 증가율이 두드러졌다. 2004년에는 멕시코시티가 46개 노선으로 마이애미를 제치고 가장 많은 직항 노선이 취항하는 도시가 되었으며, 여객과 화물 수송 면에서도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멕시코와 멕시코시티의 발전으로 항공 교통에 대한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항공 부문의 사회 기반 시설과 투자가 부족한 편이다. 좁은 공간과 낡은 시설로 인해 이전에 대한 논의도 있어 왔으나, 증가하는 승객과 화물은 이웃 톨루카와 과달라하라의 공항과 분담하고 있다.[4]
관광[편집]
도심의 레포르마 대로(Paseo de la Reforma)와 폴랑코(Polanco) 일대에는 마천루가 쭉쭉 서있고 유럽의 여느 도시들처럼 분수, 동상 등등이 구석구석 잘 설치되어 있어 돌아다니기 좋다. 전체적으로 도심 지역은 라틴아메리카에 있는 유럽풍 도시다. 또한 16세기 이후의 교회나 건축물들은 꽤나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라 이쪽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즐겁게 관광할 수 있다. 멕시코 최대의 박물관인 국립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ía)이 있다.
약 50km 거리에 아메리카 최대의 피라미드 유적지인 테오티우아칸이 있다. 멕시코시티를 찾은 관광객이 거의 대부분 들리는 근교 관광지이다. 다만 행정구역 상으로 멕시코시티가 아닌 멕시코주의 산 후안 테오티우아칸에 있으며, 어디서 출발했냐에 따라 중간에 에카테펙 데 모렐로스 혹은 텍스코코 데 모라 영토를 거쳐간다. 멕시코시티 근처 지역이며 외국은 대개 한국과 달리 행정구역 따위는 무시하고 생활권으로 한 도시로 묶으므로 멕시코 시티의 유적지로 봐도 무리는 없다.
시내 지역은 상관이 없으나, 데시에르토 델 로스 레오네스(Desierto de los Leones), 소치밀코(Xochimilco), 이스타팔라파(Iztapalapa) 일부 지역 등 약간 외곽 지역으로 나가기만 할 경우 들개들을 조심해야한다. 주인이 버린 유기견들이 여러 세대를 거쳐 성장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야생화된 개들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며, 대부분은 그냥 가만히 있지만 몇몇은 오토바이, 자전거 등 이륜차나 보행자들에게 달려들어 짖거나 물어뜯으려 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특히 이륜차 운전자의 경우, 편도 1차로에서 이러다가 들개들의 습격을 받고 중앙선을 넘다 다른 차량과 충돌하는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 국가 특성상 개를 죽이는 것에 대해 터부시하는 경우가 많고, 개빠들의 반대가 극렬한데다 주민들조차도 죽이는 것에 반대하는 경우가 많아 들개들의 관리가 되고 있지 않다.[5]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편집]
멕시코 최초의 대학은 1551년 건립된 멕시코 왕립․교황부속대학교(Real y Pontificia Universidad de México)로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Autónoma de México)의 전신이다. 근대적인 의미의 국립대학이 건립된 것은 1881년이며, 1910년 멕시코 국립대학 관련법이 선포되면서 제도화되었다. 이후 1933년, 1945년의 조직법 개정을 통해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는 공공 법인체로서, 국가의 분권 조직으로서 법적 권한을 부여받았다. 재정 및 운영에서 국가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는 국립자치대학교이다.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대학으로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의 재학생 수는 10만 명이 넘으며, 멕시코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하였다. 멕시코 정치 운동의 중심지로서, 1968년 틀라텔롤코(Tlatelolco) 사건으로 이어진 학생 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사립 학교에 비하여 저렴한 학비와 양호한 연구 환경, 높은 취업률로 라틴 아메리카 각국의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이다.
멕시코시티의 남서부의 거대한 화산암 위에 자리 잡은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의 캠퍼스는 ‘대학 도시(Ciudad Universitaria, CU)’라고도 한다. 1950년대 미겔 알레만(Miguel Alemán) 대통령의 재임 기간 중 넓이가 도심에 흩어져 있던 대학 기관들이 이곳으로 모였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교를 비롯하여 콜레히오데멕시코(Colegio de México, ColMex) 등 멕시코의 주요 대학들이 대학 도시 주변으로 입지하고 있으며, 대학 도시와 멕시코시티의 중심지를 잇는 도로(Avenida Universidad)에는 많은 연구 기관과 출판사가 있어 멕시코의 주요 연구 및 출판 지역을 이루고 있다.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José Clemente Orozco) 등 멕시코 벽화 운동의 주요 작가들이 참여하여 완성된 작품들이 대학의 본관, 중앙도서관, 이과대학, 올림픽 경기장 등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곳의 올림픽 경기장은 1968년 멕시코 올림픽이 열렸던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올림픽 경기장(Estadio Olímpico Universitario)이다. 대학 도시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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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멕시코시티〉, 《위키백과》
- 〈멕시코 시티〉, 《나무위키》
- 〈멕시코 시티〉, 《요다위키》
- 〈멕시코시티(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멕시코시티의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북아메리카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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