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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차르 황금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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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리차르 황금사원(Amritsar golden temple, ਹਰਿਮੰਦਰ ਸਾਹਿਬ )
암리차르 황금사원(Amritsar golden temple, ਹਰਿਮੰਦਰ ਸਾਹਿਬ )
암리차르 황금사원(Amritsar golden temple, ਹਰਿਮੰਦਰ ਸਾਹਿਬ )
반죽을 구워낸 짜파티와 커리, 수프로 구성된 식사
황금사원 내 무료 숙소 내부의 모습
황금사원 바닥

암리차르 황금사원(Amritsar golden temple, ਹਰਿਮੰਦਰ ਸਾਹਿਬ )은 인도 서북부 펀자브 주 암리차르시에 위치한, 400 kg에 달하는 순금으로 덮힌 시크교 최대 성지이다. 여기에서 '암리차르'란 시크교의 성수인 '암리트'가 고인 못이라는 뜻이다.

시크교의 창시자가 평생을 걸식을 하며 살아왔고 시크교의 교리인 '평등'을 행하는 의미에서 종교나 국적 등의 조건을 전혀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든 공짜로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한다. 때문에 관광객에겐 문화유산 건축물이면서 무료 식당이자 무료 숙박시설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엄청나게 긴 줄과 그걸 다 충당하고도 남을 정도의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교리 자체가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이여서 이러고도 돈이 남는다.

상세[편집]

사실 황금사원은 이 성지의 부속시설일 뿐인데, 임팩트 때문에 황금사원 건물이 가장 유명하다. 정식명칭은 하리 만디르(Hari Mandir). 영어로 황금사원(Golden Temple)이라고 해도 통용된다. 하리만다르는 제4대 구루 람 다스(1534-81) 때 짓기 시작해서 제5대 구루(Guru, 시크교의 영적 지도자) 아르준(Arjun) 때 완공되었는데, 공사 전에 상징적인 의미에서 이슬람교 성직자인 미안 미르(Mian Mir)를 초청해서 하리 만다르의 기초 돌을 놓게 했다고 한다. 또한 둘러싼 지반보다 낮게 지어서 들어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계단을 내려가도록 하여 들어오는 사람들이 최대한 마음가짐을 낮추도록 했다. 게다가 하나의 문만 내는 힌두 사원과 달리 사방에 입구를 만들었다. 이 4개의 입구는 힌두교 카스트 제도의 4계급을 뜻하는 것이고, 계급에 상관없이 원하는 사람은 모두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황금사원은 인공호수 암리트 사로바르(Amrit Sarovar) 중앙에 있고 지붕은 순금, 나머지 부분은 금도금이다. 내부는 촬영 금지인데 시크교도들이 터번을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머리카락을 가려야 들어갈 수 있어서 모자라도 써야 된다. 내부에는 경전 구루 그란트 사히브(Guru Granth Sahib)가 모셔져 있다.

무료식사는 구루 카 랑가르(Guru Ka Langar, Free Kitchen이라고 영어로도 써있다)이라는 곳으로 들어가면 24시간 자원봉사자들이 운영하는 식사를 할 수 있다. 이것은 15세기 경 초대 구루 나나크(Nanak) 때 확립된 전통으로 모든 인간을 진리 앞에 평등하다고 보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힌두교 카스트 제도에 따르면, 카스트제도에 속하지 않은 사람의 그림자에만 닿아도 그것을 불결하다고 여겼는데, 구루가 나서서 밥을 함께 먹는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 차별에 반대하고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여긴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는 군주조차도 예외가 아니어서 악바르 대제가 이 사원을 방문해서 식사할 때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자리에 앉아서 똑같은 음식을 먹었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현재도 종교나 성별, 국적에 관계없이 원한다면 암리차르에 머무는 동안 하루 세 끼를 여기서 매일 계속 해결할 수도 있다. 탁자나 의자는 없으며 커다란 강당에 돗자리가 한 줄로 길게 깔려 있다. 입구에서 나눠주는 식판을 들고 여기에 앉으면 봉사자들이 차례로 짜파티, 달(콩 스프) 등을 나눠주며 원한다면 더 먹을 수도 있다. 아침, 점심, 저녁의 매뉴가 매번 바뀌고 맛이 인도 요리치고는 강한 향신료 따위를 잘 안 쓰는 편이기에 한국인들도 부담 없이 식사를 할 수 있다. 맛집이라고까지 하긴 뭐하지만 바깥의 돈 내고 파는 음식에 비해 질적으로 떨어지진 않는다. 사실 무료 식사는 여기가 아닌 다른 시크교 사원에서도 같은 이름의 무료 식당이 딸려있다. 여기가 제일 유명하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아서 이용하기 쉬운 것.

잠자리는 황금사원 내에서 자유롭게 잘 수도 있지만 도난 등 안전상의 이유로 황금사원 기준, 우측에 있는 외국인 숙소 구루드와라(Gurudwara)를 이용하는 걸 추천. 구루드와라도 급이 나뉘는데 스리 구루 람 다스 니와스(Sri Guru Ram Das Niwas)는 도미토리 시설이고 비용은 무료다. 228개의 방과 18개의 도미토리로 이뤄진 거대한 규모. 다만 욕실이 공용이고, 전 세계 사람 다 모이는 호스텔급 시설이다보니 빈대가 있을 수도 있다. 옆에 다른 구루드와라로 구루 아르잔 데브 니와스(Guru Arjan Dev Niwas)도 있는데 여기는 유료에 살짝 고급 컨셉 숙소인데 에어컨 룸이 500루피(약 8천 원) 정도로 굉장히 저렴한 편이라 인기가 많다.

황금사원을 둘러싼 암리트 사로바르(Amrit Sarovar) 호수도 시크 교도들에겐 신성한 장소로 신도들은 이 물에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으며 호수의 물로 몸을 씻는다. 힌두교 신자들이 갠지스 강을 신성시하는 것과 유사하다. 다만 이 호수는 수질 자체도 시크 교에서 특별히 관리하기 때문에 갠지스 강과는 달리 깨끗한데, 좀 더러워진다 싶으면 물을 빼고 신도들이 한 데 모여 직접 대청소를 하며 2004년부터는 한 신도로부터 기증받은 일반적인 수질 정화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영상에 나오듯이 물고기도 살고 있다. 청소 용도로 넣어놓은 것도 있는데 평소에 못되게 구는 사람이 아예 없는지 물고기가 사람을 안 무서워한다.

역사[편집]

시크교의 기록에 의하면, 3번째 구루(교주) Amar Das가 성스러운 황금사원과 암리차르를 놓을 땅을 정하였으며, 이로부터 새로운 시크교의 도시를 건설하는 계획이었다. 4번째 구루인 구루 람 다스(Ram Das)가 이를 이어받아 지금의 암리차르에 연못을 짓기 시작하여 1577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5번째 구루인 구루 Arjan은 1581년 사원의 건설을 시작하여 이후 시크교도들은 자발적으로 이를 계속해서 재건하기를 반복했다. 이때 형성되기 시작한 마을은 시크교도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도시로 성장해가게 되었으며 사원 역시 시크교 최대의 성지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것이 현대의 암리차르시의 기원이 된다.

시크교의 빠른 성장은 무굴 제국의 주의를 끌게 되었고, 황제 자한기르의 명에 의해 구루 Arjan은 사로잡혔고, 이슬람교로의 개종을 거절하고 1606년 처형당했다. 순교 이후 백년간 사원은 시크교에게 적대적인 파벌의 손에 넘어가있었다가, 18세기에 구루 Gobind Singh가 Khalsa 종파의 시크교도들을 이끌고 와 이들과 싸워 황금사원을 되찾았다. 이후 황금사원은 시크교의 여러 중요 사건들의 중심이 된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침략으로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아 파손되었으나 계속 재건하였다. 1802년 시크교 지도자 란지트 싱(Ranjit Sing)이 순금으로 지붕을 씌우고 대리석으로 장식하도록 하여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

건축[편집]

하리 만디르 배치도

현재의 사원건물은 1764년 재건한 것으로 1802년에는 사원 본전 건물의 벽과 지붕을 금박으로 입히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황금사원으로 지칭되었다.

본전 건물 규모는 적으나 1변이 약 160m 되는 정방형의 거대한 목욕지(沐浴池) 중앙에 떠 있는 것과 같이 서 있다. 목욕지 주위에는 폭 30m 정도의 대리석으로 포장된 보도가 돌아가며 배치되어 있으며 그 주위에 회랑(回廊)이 서 있고 서·남·북쪽 중앙에는 탑문이 있다. 동쪽 회랑 중앙에는 정교(政敎)의 중심 건물이 있다. 신도들은 목욕지 동쪽 중앙에 있는 대문을 지나 다리를 건너 폭 15m 정도의 대리석을 깐 테라스를 지나서 본전 건물에 도달한다. 금박을 입힌 본당 2층 건물 중앙에는 큰 돔이 있고 네 모서리에는 무굴 형식의 소형 정자가 서 있다. 건물 내부도 황금색으로 되어 추상적인 문양과 식물문양 장식들이 이슬람교의 모스크 내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금색이 찬란한 본당 건물과 백대리석의 모든 건물들 및 회랑이 둘러서 있는 장방형의 사원 경내는 넓은 수면과 황금빛이 함께 어우러져서 별세계와 같은 맑고 깨끗한 건축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건축양식은 무굴 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나 대형 목욕지 속에 서 있는 본전 건물은 힌두교 사원과는 다르게 사면이 개방되어 있으며 만민평등의 종교적인 이념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고 있어 매우 특이하다.

특징[편집]

3층으로 된 대리석 사원은 18세기에 지어졌으며 후기 무굴 건축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주랑, 뾰족탑, 벽감, 발코니, 난간, 뒤집힌 연꽃 모양의 중앙 돔은 모두 그 당시에 지어진 모스크와 궁전들의 전형적인 요소이다. 신전에는 단 하나의 현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네 방향 모든 곳을 향해 문과 발코니가 열려 있으며, 이는 다른 것을 받아들인다는 시크교의 중요성을 상징한다. 외부의 위쪽 두 층에는 금박이 입혀져 있다.

내부는 상감 세공을 한 대리석, 조각을 새긴 목공예품, 상아 모자이크, 부조를 새긴 금과 은, 그리고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사원은 대리석이 깔린 포장도로를 지나 도달하게 되는데, '암리타 사로바르', 즉 '신주(神酒)의 연못'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사각형 저수지 한복판에 서 있으며, 그 주변에는 사무실, 저장고, 식당, 부엌, 손님용 숙소, 감시탑 등이 있다. 북쪽 입구에는 또한 훌륭한 시계탑이 있으며 서쪽에는 시크교 최고 위원회의 본부인 돔이 달린 건물 '아칼 타크트'가 있다.

관람[편집]

황금사원 구경은 전 세계에 신도가 퍼져있는 나름대로 수천만 명이 믿는 메이저 종교의 성지급 시설인 데다 화려하기까지 하니까 구경하는 사람이 많고 줄이 긴 편이다. 입장비는 없지만 나갈 때 자기가 내고 싶은 만큼 기부금을 각자 자유롭게 낼 수 있고 강제성은 없다.

성소 내부의 보석이 박힌 단에는 시크교 경전인 아디 그란트가 새겨져 있다. 파르다크쉬나라는 폭이 넓은 보도가 사원을 둘러싸고 있어, 천천히 한 바퀴 돌면서 그 커스프 문양의 아치와 호화로운 디테일을 감상할 수 있다.

참고로 이곳에 입장하려면 몇 가지 규칙을 지켜야 한다.

  1. 두건으로 머리카락을 가릴 것
  2. 긴 바지를 입을 것
  3. 신발(양말)을 벗고 입구에 있는 흐르는 물에 발을 씻고 맨발로 들어올 것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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