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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바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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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바섬
브라바섬 위치

브라바섬(영어: Brava Island, 포르투갈어: Brava)은 카보베르데 소타벤투 제도에 위치한 으로 길이는 10.5km, 넓이는 9.3km, 면적은 62.51km², 인구는 약 6천 명이다.[1]

개요[편집]

브라바섬은 북대서양의 카보베르데공화국에 속한 화산섬이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브라바시에 속하며 섬에서 가장 큰 도시는 노바신트라(Nova Sintra)이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은 몬트폰타이냐스산(Monte Fontainhas)으로서 높이는 976m이다. 1462년 포르투갈인이 처음 발견하였으며, 1573년 최초의 정착촌이 발견되었다. 노예무역이 성행하기도 하였으며, 브라바의 정착은 1680년 화산이 폭발하여 섬을 화산재로 덮은 후 근처의 더 큰 섬인 포구섬에서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증가했다. 17~18세기에는 해적의 출몰이 잦았으며, 이는 유럽북아메리카의 선박들 사이에 고래잡이가 성행하던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주민들은 고래잡이 어선을 타고 북아메리카로 이주하기 시작하였으며, 대부분 보스턴이나 매사추세츠, 프로비던스, 로드아일랜드와 뉴베드퍼드 등지에 정착하였다. 화산활동은 주로 세 갈래의 선상에서 이루어지는데, 모두 섬의 가장 높은 지점에서 교차하고 있다. 지형이 생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여전히 지진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화산폭발이 일어날 잠재적 가능성이 있다. 5개의 마을은 모두 산 정상의 북쪽에 있다. 중심가는 노바 신트라 마을이며, 푸르나(Furna) 마을에는 상업용 항만이 있다. 과거에는 고래잡이를 주업으로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농업이 중심을 이룬다. 이밖에 어업과 관개 사업도 이루어진다. 높은 산악 지대의 영향으로 인해 다양한 기후를 띠고 있는데 해안 지대는 온화한 열대성 기후, 내륙 지대는 균형잡힌 기후를 띤다. 6월부터 11월까지는 따뜻한 우기이고 12월부터 5월까지는 춥고 선선한 건기이다. 해안 지대의 평균 기온은 약 23 ~ 25°C이고 산악 지대의 평균 기온은 약 17 ~ 20°C이다.[2]

지리 및 기후[편집]

브라바섬의 길이는 10.5km(북쪽에서 남쪽으로)이고 폭은 9.3km이며 면적은 62.51km²이다. 사실상 섬 전체가 성층화산이다. 섬에서의 화산활동은 주로 섬에서 가장 높은 부분을 이루는 지상의 꼭대기에서 모두 교차하는 세 개의 선을 따라 위치해 있다. 브라바는 기록된 역사적 폭발은 없지만, 젊은 화산 형태학과 지진 떼가 여전히 발생한다는 사실은 미래의 폭발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것의 마지막 폭발은 홀로세 시대였다. 섬 면적의 13%가 숲이다. 브라바 북부는 몇 개의 무인도가 있으며 가장 큰 섬은 일레우 데 시마(Ilhéu de Cima)와 일레우 그란데( Ilhéu Grande)이다. 몬테 폰테냐스(Monte Fontainhas)는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지점으로 976m 고도에 이른다.

브라바섬은 산악 지대가 높기 때문에 기후가 매우 다양하다. 브라바섬은 해안을 따라 적당한 건조 기후(Köppen-Geiger 기후 분류 시스템에 따른 BWh)를 보이고 내륙은 일년내내 매우 균형 잡힌 기온을 보이는 반건조 온대 열대 기후 BSh를 보인다. 해안의 연평균 기온은 약 23–25°C이며, 산간 지역에서는 약 17–20°C까지 감소한다. 6월에 시작해서 11월에 끝나는 따뜻한 우기와 12월에 시작해서 5월에 끝나는 더 추운 건기로 놀랄 만큼 선선한 날씨가 있을 수 있다.[3]

역사[편집]

브라바섬은 1462년 포르투갈 탐험가 디오고 아폰소(Diogo Afonso)에 의해 발견되었다. 포르투갈인이 도착하기 전에 카보베르데 섬에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1620년경 브라바의 인구는 마데이라와 아조레스에서 온 정착민들의 도착으로 시작되었다. 브라바의 정착은 1680년 화산이 폭발하여 섬을 화산재로 덮은 후 근처의 더 큰 섬인 포구섬에서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증가하였다. 빈번한 해적 공격으로 인해 인구는 섬 내부를 향해 몰려들었고, 노바 신트라 마을은 1700년경에 세워졌다.

1720년경, 섬유염료로 거래된 로셀라 틴텍토리아(Roccella tinctoria) 균이 섬에서 발견되었다. 18세기 말부터 북아메리카에서 온 포경선은 아조레스와 카보베르데 제도 주변에서 고래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브라바의 항구를 사용하여 물자와 식수를 비축했다. 그들은 브라바에서 온 사람들을 선원으로 고용했고, 브라바에서 온 이들 중 몇 명은 매사추세츠 포경항 뉴베드포드 주변에 정착했다.[4]

소타벤투제도[편집]

소타벤투제도(포르투갈어: Sotavento)는 카보베르데 남쪽에 위치한 군도이다. 소타벤투는 "바람이 부는 방향"을 뜻한다. 이들 섬은 4개 섬으로 나뉘는데 브라바섬(Brava), 포구섬(Fogo), 산티아구섬(Santiago)은 바위가 많고 화산 활동이 활발하며 농업이 발달했다. 카보베르데에서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주민들이 이 곳에 처음 거주한 이래부터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네 번째이자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이우섬(Maio)은 평지가 많고 사막 기후를 띠고 있으며 소금 생산을 중심으로 한 경제가 발달했다. 이 지역의 소금 생산량은 바를라벤투 제도에 있는 살섬과 보아비스타섬의 소금 생산량보다 많은 편이다. 그 밖에 그란드섬(Grande), 시마섬(Cima), 세쿠스섬(Secos), 산타마리아섬(Santa Maria)과 같은 작은 섬들이 있다. 소타벤토 제도의 총면적은 1,803km²이다.[5]

카보베르데[편집]

카보베르데(포르투갈어: Cabo Verde, 영어: Cape Verde)는 아프리카 대륙 서안의 베르데곶(串)에서 서쪽으로 약 500km 떨어져 있는 국가이다. 정식 국명은 카보베르데공화국(포르투갈어: República de Cabo Verde, 영어: Republic of Cape Verde)이다. 상티아구섬(Santiago)·산투안탕섬(Santo Antao Island) 등 15개의 크고 작은 으로 이루어지는데, 바를라벤투제도(Barlaventos)와 소타벤투제도(Sotaventos)로 불리는 두 군도(群島)로 나누어진다. 그 중 5개 섬은 무인도이다. 몇 개의 섬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화산활동과 침식에 의하여 생성된 섬으로 암석산지이고, 포구섬의 피코화산은 해발고도 2,829m로 최고봉을 이룬다. 대부분의 섬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모래바람이 불어와 기후가 고온건조하며, 5∼10월의 여름철 우기(雨期)를 제외하면 비가 적다. 겨울에는 무역풍이 장기간 분다. 연평균강수량은 해안에서 200mm 내외, 산지에서 1,000mm 정도이다. 한발에 기인하는 물 부족상태가 잦으며, 10개의 섬 중에서 4개 섬만 농업이 가능하다. 연평균기온은 24℃인데다가 화산재가 표층(表層)을 덮고 있기 때문에 토양이 비옥하지 않아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 북대서양에 있는 카보베르데는 제도로 구성된 섬나라이다.

15세기에 포르투갈이 발견하기 전까지 무인도였다. 1456년 포르투갈인(人) 항해사에 의하여 발견된 카보베르데는 1495년까지 포르투갈 국왕의 개인 소유지였고, 그 후 식민지화되었다. 당시 노예무역의 중간기지이자 대서양 횡단 포경선 및 화물선 중간 기착 역할을 하였다. 1963년 포르투갈의 해외령이 된 후 주민을 대표하는 PAIGC(기니비사우 카보베르데 독립아프리카당)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중 1974년 12월 포르투갈과 PAIGC로 구성된 잠정정권이 생겼다. 기니비사우와 카보베르데는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고 독립을 달성한 주력은 모두 PAIGC였기 때문에 PAIGC는 양국 상호 대표를 두어 경제·문화·경찰 등 모든 분야에 걸쳐서 양국 활동의 조정을 도모하였다. 또 양국은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평의회를 설치하여 양국의 통합문제를 검토하였지만 인종, 종교면에서의 차이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였다. 또한 양국이 각각 국제연합(UN)에 가맹한 사정도 있어 카보베르데 측은 정세의 추이를 두고 관망하였다. 한편, 기니비사우 측에서는 카브랄 국가위원회 의장이 독립한 후 카보베르데와의 국가통합문제를 추진해 왔으나 두 나라 사이의 인종·종교 등이 서로 상이하여 통합문제는 진전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국가위원회는 1980년 11월 카보베르데와의 국가 통합을 추진하는 요지의 조항을 내건 신헌법을 채택하였다. 이 통합에 반대하는 군부(軍部)는 쿠데타를 일으켜 비에이라가 정권을 장악, 혁명평의회를 구성하였다. 카보베르데는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였고, 초대 대통령은 아리스티 데 페레이라가 되었다. 1981년 카보베르데는 PAIGC에서 탈퇴하고 카보베르데 독립아프리카당(PAICV)을 결성했다. 같은 해 헌법에 따라 기니비사우와 공식적으로 결별했다. 전체 주민 구성은 크레올 71%, 아프리카인 28%, 유럽인 1%이다. 사실 세계에서 100만 명이 넘는 카보베르데인 중 1/3만이 카보베르데에 살고 있으며, 50만명의 카보베르데인이 미국, 주로 뉴잉글랜드 지방에 살고 있다. 포르투갈, 네덜란드, 이탈리아, 세네갈에도 큰 규모의 카보베르데인 사회가 형성되어 있다.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지만 대부분의 카보베르데인들은 크리오울로(Crioulo)를 사용한다. 크리오울로(Crioulo)는 아프리카어와 다른 유럽의 언어와의 접촉을 통하여 변형된 고풍스러운 포르투갈어를 말한다. 카보베르데는 크레올로 문학과 음악에서 풍부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6][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브라바섬〉, 《위키백과》
  2. 브라바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3. "Brava, Cape Verde", Wikipedia
  4. 브라바, 케이프 베르데〉, 《요다위키》
  5. 소타벤투 제도〉, 《위키백과》
  6. 카보베르데〉, 《위키백과》
  7. 카보베르데〉,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아프리카 같이 보기[편집]

서아프리카 국가
서아프리카 도시
서아프리카 지리
서아프리카 문화
서아프리카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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