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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평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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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평야

나주평야(羅州平野)는 영산강 중류 일대의 충적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평야이다.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 나주시·무안군·영암군·함평군·목포시 일대이다. 전남평야라고도 부른다. 이름처럼 나주시가 평야의 중심에 있다.[1]

개요[편집]

  • 나주평야는 영산강 중류의 충적지를 중심으로 형성된 평야로, 나주시를 비롯하여 무안·영암·함평·담양·장성·광산·영광 지역과 광주와 목포를 포함하는 일대에 펼쳐져 있다. 면적은 1,610 km2이다. 전라남도 서남의 거의 대부분을 포함하여 전남평야라고도 부른다. 인근의 호남평야와 함께 대한민국 유수의 곡창 지대 중 하나이다.[2]
  • 나주평야는 전남 나주시를 중심으로 하여 광주 광산구와 함평군 학교면(鶴橋面) 일대에 걸치는 평야이다. 엄밀하게는 나주 일대의 나주평야, 광주 송정동 일대의 서석(瑞石)평야, 학교 일대의 학교평야로 구분되며, 영산강(榮山江) 유역의 광대한 전남평야 중 가장 지형이 저평하여 그 핵심부를 이룬다. 기후는 서쪽과 남쪽에 바다를 끼고 있어 해양성기후의 특성을 나타내며 연강수량은 1,000~1,200mm 내외이다. 쌀 ·보리 중심의 주곡농업 외에 원예농업이 활발하여 나주시의 배 ·복숭아 ·포도 등 과일 재배는 전통적으로 유명하다. 나주 ·송정동의 채소류의 근교 ·원교 농업도 성하며, 학교에서는 양파 ·마늘 ·딸기 ·배추 등의 생산이 많다. 나주시의 죽제품(竹製品)은 전국적으로 알려진 특산물이다. [3]
  • 나주평야는 전라남도 나주시의 영산강 중류에 형성된 평야이다. 나주는 예로부터 삼백지방(三白地方)이라 하여 쌀·면화·누에고치의 생산이 유명하였고, 보리·고구마·마늘·양파·채소 등이 재배되었다. 나주의 벼농사는 백제시대에 시작되었고, 나주평야는 연간 5만 톤 이상의 쌀을 생산하는 전라남도 제일의 곡창지대이다. 그리고 영산강 연안의 구릉지에서는 배를 비롯하여 복숭아·포도·감·사과 등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또한 지석천과 극락강(極樂江) 연안은 원예농업의 중심지로서 오이·쑥갓·상추·고추 등의 주요 산지이다. 이들 농산물은 서울로 출하된다. 영산포는 역사적으로 영산강 유역과 해안지방의 세곡(稅穀)을 모아 경창(京倉)으로 보내던 영산창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1512년(중종 7)에 영산창에서 수납하던 세곡이 영광의 법성창으로 이관된 후에도 이곳에는 강창(江倉)이 존속하였다. 영산포는 1897년 목포가 개항되면서 목포와의 사이에 수출입화물을 실어 나르는 선박의 내왕이 빈번해지면서 하항(河港)으로 급성장하기 시작하였다. 호남선 철도가 개통된 후에는 수운과 육운을 연결하는 화물의 적환지(積換地) 내지 식민지 수탈의 창구로서 기능이 강화되어 1920년대 중반에는 나주와 비슷할 정도로 도시의 발달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도로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 뱃길의 중요성이 줄어들면서 영산포는 쇠퇴하였고, 오늘날에는 일제강점기의 건물만이 과거의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4]

나주평야의 중심 나주시[편집]

  • 나주평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나주시는 1981년 나주와 영산포 두 읍이 합쳐져 시로 승격되었고, 1995년 나주군과 통합하였다. 전주와 함께 호남지방의 큰 고을이었던 나주는 전라남도의 행정·경제·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하였다. 그러나 1896년 13도제(道制)가 실시되고, 광주에 관찰부가 들어섬으로써 나주는 오랫동안 누리던 지위를 광주에 내주고 쇠퇴하게 되었다. 침체 상태에 있던 나주는 1962년 충주에 이어 대규모 비료공장이 건설되면서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 나주시는 동경 126°30′~ 126°54′, 북위 34°58′~ 35°04′에 위치하고 있다. 전남평야의 중심지로서 예로부터 벼농사의 중심지이며 과수농업과 원예농업도 활발하다. 동쪽으로 화순군, 서쪽으로 무안군과 함평군, 남쪽으로 영암군, 북쪽으로 광주 광산구와 접한다. 나주지역을 중심으로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국도 1호선의 도로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철도·항공 등의 접근성도 매우 편리한 지역으로 10여 개의 시·군과 교통이 원활한 곳이다. 전체적 지형은 북서부와 동남부에 산지가 위치하고 그 사이에 영산강을 중심으로 넓은 범람원평야가 전개된다. 노령산맥의 한 지맥인 금성산지가 시의 북서부에서 길게 뻗어 도심지의 배후에 다다르고, 남동단에는 영산강 수계의 나주호가 위치한다. 지석천·극락강·만봉천 등의 지류를 합류한 영산강이 강의 좌안에 넓은 범람원을 형성하고 있다.
  • 나주시는 2차 산업이 발전하지 않았고 녹지 및 산림이 전체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각종 과수단지가 산재해 있어 시계 수십km 이상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을 보유하고 있다. 대체로 온난하지만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기후를 보인다. 연평균기온 13.2℃, 1월 평균기온 -0.5℃, 8월 평균기온 26.9℃이다. 북서 쪽에 위치한 금성산(錦城山:452m) 때문에 겨울 기온이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호남내륙권의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한서의 차이가 심하고 지역 내의 기온차가 최고 35.4℃, 최저 -9.9℃로서 비교적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이 지역 기후의 특색이다. 강수량도 비교적 많은 편이어서 연강수량이 1,407mm에 달한다. 봄철 환절기에는 강한 돌풍현상이 발생하여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전남평야 지대를 제외한 구릉지대에는 포플러·소나무·관목류·참나무·오리나무 등이 자란다.

한국의 평야[편집]

  • 한국의 평야(平野)는 주로 한반도의 서부와 남부 해안, 큰 강의 하류 지역에 넓게 형성되어 있다. 교통기관이 발달하고, 평야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오던 중 상공업이 성행하여 도시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평야 지대의 농촌은 일반적으로 북쪽의 낮은 산을 등지고 논과 강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북쪽의 산은 겨울철의 거센 바람을 막아주며, 남향의 산기슭은 햇볕을 잘 받아 따뜻하게 해준다. 그리고 강물이나 시냇물은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하다.
  • 평야 지역의 농촌에서는 물을 대기 쉬우면 논으로 이용하며, 홍수 때 물에 잠기던 곳을 둑으로 막고 수문을 만들기도 한다. 또한 바닷물을 막아 물을 빼내고 논으로 만드는가 하면 경사진 곳은 층층이 논두렁을 쌓아 논밭으로 개간하기도 하며,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마련하기도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는 만경강 유역의 호남평야와 낙동강 유역의 김해평야로서 갈수록 현대화가 추진, 발전되고 있다. 또한 물이 많지 않은 곳에는 밭을 일구어 보리, 감자, 옥수수 등 작물과 배추, 무 등 채소를 재배한다.[5]
  • 한국의 평야는 대부분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평야의 핵심부는 대개 하천의 토사가 쌓여 이루어진 범람원이고, 평야에서 '들'이라고 불리는 곳은 거의 전부 이러한 범람원이다. 평야 주변의 구릉지, 즉 야산도 기복이 아주 작으면 평야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곳은 여러 면에서 범람원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하천의 범람에 의한 침수의 위험이 없을 뿐 아니라 대개 기반암의 풍화토인 적색토로 덮여 있고, 밭ㆍ과수원ㆍ목장ㆍ임야 등으로 이용된다.

나주평야의 자연환경[편집]

  • 영산강이 관류하는 나주지방은 담양에서 광주를 거쳐 남서 방향으로 뻗어내린 백악기 불국사통(佛國寺統)의 화강암대가 중앙부를 지난다. 영산강은 나주 부근에서 지석천과 소규모 지류들을 합하여 흐르며 나주평야는 이들 하천 연변의 충적지와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충적지 주변의 구릉지는 대개 해발고도가 50m 이하이다. 영산강 하류에서는 구릉지가 영산강변에 다가서 있어 충적지의 발달이 미약하다.
  • 나주평야의 핵심을 이루는 충적지의 토양은 토성이 미사 식양질 내지 식질로 배수가 불량하다. 표층은 회색 내지 암회색을 띠고, 올리브색 또는 갈색 계통의 철반문(鐵斑紋)이 나타난다. 기층은 회색 또는 농암회색을 띠고, 반문(斑紋)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암반까지의 깊이는 5m 이상이다. 토양의 비옥도는 비교적 높고, 토양 반응은 약산성 내지 초약산성이지만 표토는 강산성 내지 약산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산강은 하상이 높은 감조하천(感潮河川)이기 때문에 나주평야는 거의 매년 범람과 침수의 피해를 입었다. 또한 영산강 유역에는 관개시설이 적어 가뭄의 피해도 극심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시작된 영산강지구 농업종합개발의 일환으로 하구에 둑을 축조하고, 중류와 상류에는 관개용 댐을 건설하여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줄이게 되었다.
  • 영산강지구 농업종합개발 1단계 사업은 1972∼1979년간에 영산강 중류와 상류 지역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주요 실적은 장성댐·담양댐·광주댐·나주댐 등의 관개용 댐을 건설하는 한편 약 1,500㎞의 관개수로를 설치하고, 약 2,700ha의 야산과 완경사지에 논을 조성한 것이었다. 2단계 사업은 영산강 하류지역을 대상으로 하구둑을 건설하고, 간척지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 사업이었다. 영산강은 조석의 영향을 많이 받던 하천으로 하구를 중심으로 갯벌이 넓게 분포하였다. 1981년 영산강 하구둑의 건설로 조성된 영산호는 동양 최대의 인공 담수호라고 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영산호에서 확보된 농업용수로 조성할 수 있게 된 간척지의 면적은 약 5,500ha에 이르렀다. 3단계 사업은 영암반도와 화원반도 사이의 해수면을 대상으로 추진되었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나주평야〉, 《나무위키》
  2. 나주평야〉, 《위키백과》
  3. 나주평야(羅州平野)〉, 《두산백과》
  4. 나주평야(羅州平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한국의 평야〉, 《위키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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