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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제국 ====
 
==== 로마 제국 ====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는 폼페이우스, 루쿨루스 등의 장군들이 폰토스 왕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로마 공화정의 동방 속주가 되었다. 로마 시대에는 외침이 적고 부유했고, 일찍부터 고급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따라서 로마 제국에 편입된 이후에도 번영을 누렸다. 특히 고대부터 유명했던 그리스계 도시 에페소스, 밀레토스, 페르가몬 등은 계속해서 번영을 누렸는데, 로마 제정의 대표적인 통치술로 알려진 황제 우상숭배 정책을 맨 처음 아우구스투스에게 건의해 이를 관례화시킨 지방도 위의 에페소스, 페르가몬, 밀레토스 등 아나톨리아 서부에 위치한 아시아 속주였다. 워낙 부유하고 문화 수준이 높았던 지방인데다, 예로부터 지중해 연안과 흑해 일대에는 그리스계 이주민들이 많고, 고대 여러 민족들의 융합 속에 번영을 누렸다. 따라서 원수정(프린키파투스)이 안정화되고, 속주 출신의 부유한 권력가들이 원로원 의석을 차지할 때부터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로마 중앙정계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결과, 그리스계 로마 원로원 귀족 디오 카시우스와 같은 서기 2세기 세습 원로원 귀족들을 배출하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 혈통의 아나톨리아 주민들이 아닌, 아나톨리아 출신들도 마찬가지인 터라 아나톨리아 태생으로 오늘날 터키 남부에 위치한 시리아 속주 태생 인재들도 끊임없이 로마 주류층에 편입됐다. 특히 네로, 도미티아누스,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 당시, 아나톨리아가 고향인 로마인들은 이들 세 황제의 총애를 받아 제국의 요직을 꿰찼고, 2세기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하드리아누스 시대 이후부터는 아프리카 속주(오늘날의 북아프리카 튀니지), 그리스, 시리아 속주와 함께 로마 원로원 내에서 부와 권력을 모두 쥔 권세가들과 기사계급 태생의 원로원 신참자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따라서 서기 3세기에는 아나톨리아의 옛 프리기아에서 발흥한 고르디아누스 가문과 같은 신흥귀족들을 비롯하여, 2세기 말 ~ 3세기를 지배한 황제, 근위대장, 고위 행정가들은 거진 아나톨리아 출신들과 연을 맺은 이들이거나 아예 아나톨리아 출신들로 이 일대에 근거지를 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서기 3세기 이후 고트족들이 흑해를 넘어 아나톨리아를 약탈하고 로마 제국 동부에서 새로이 흥기한 사산 왕조가 아나톨리아 동부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는 폼페이우스, 루쿨루스 등의 장군들이 폰토스 왕국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로마 공화정의 동방 속주가 되었다. 로마 시대에는 외침이 적고 부유했고, 일찍부터 고급 문화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따라서 로마 제국에 편입된 이후에도 번영을 누렸다. 특히 고대부터 유명했던 그리스계 도시 에페소스, 밀레토스, 페르가몬 등은 계속해서 번영을 누렸는데, 로마 제정의 대표적인 통치술로 알려진 황제 우상숭배 정책을 맨 처음 아우구스투스에게 건의해 이를 관례화시킨 지방도 위의 에페소스, 페르가몬, 밀레토스 등 아나톨리아 서부에 위치한 아시아 속주였다. 워낙 부유하고 문화 수준이 높았던 지방인데다, 예로부터 지중해 연안과 흑해 일대에는 그리스계 이주민들이 많고, 고대 여러 민족들의 융합 속에 번영을 누렸다. 따라서 원수정(프린키파투스)이 안정화되고, 속주 출신의 부유한 권력가들이 원로원 의석을 차지할 때부터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로마 중앙정계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결과, 그리스계 로마 원로원 귀족 디오 카시우스와 같은 서기 2세기 세습 원로원 귀족들을 배출하게 되는데, 이는 그리스 혈통의 아나톨리아 주민들이 아닌, 아나톨리아 출신들도 마찬가지인 터라 아나톨리아 태생으로 오늘날 터키 남부에 위치한 시리아 속주 태생 인재들도 끊임없이 로마 주류층에 편입됐다. 특히 네로, 도미티아누스,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절 당시, 아나톨리아가 고향인 로마인들은 이들 세 황제의 총애를 받아 제국의 요직을 꿰찼고, 2세기 네르바-안토니누스 왕조의 하드리아누스 시대 이후부터는 아프리카 속주(오늘날의 북아프리카 튀니지), 그리스, 시리아 속주와 함께 로마 원로원 내에서 부와 권력을 모두 쥔 권세가들과 기사계급 태생의 원로원 신참자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따라서 서기 3세기에는 아나톨리아의 옛 프리기아에서 발흥한 고르디아누스 가문과 같은 신흥귀족들을 비롯하여, 2세기 말 ~ 3세기를 지배한 황제, 근위대장, 고위 행정가들은 거진 아나톨리아 출신들과 연을 맺은 이들이거나 아예 아나톨리아 출신들로 이 일대에 근거지를 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서기 3세기 이후 고트족들이 흑해를 넘어 아나톨리아를 약탈하고 로마 제국 동부에서 새로이 흥기한 사산 왕조가 아나톨리아 동부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 중세 ===
 
=== 중세 ===
 
==== 동로마 제국 ====
 
==== 동로마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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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오스 1세의 치세 초기, 극도로 위태로워진 로마 제국의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일단 경제의 중심지인 아나톨리아 해안지역 수복을 우선시하고, 서유럽 세력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는 안티오키아 수복을 그 다음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콤네노스 황제들이 아나톨리아 수복에 완전히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마누일 1세 치세 말기의 미리오케팔론 전투에 이르기까지, (그 노력이 충분했는가, 즉, 군사적 요충지인 아나톨리아 내륙의 수복의 가치에 걸맞게 우선시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겠으나) 아나톨리아 수복 자체에는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음을 생각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즉, 아나톨리아의 내륙 상실 이후 제국이 탈환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못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알렉시오스 1세의 치세 초기, 극도로 위태로워진 로마 제국의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일단 경제의 중심지인 아나톨리아 해안지역 수복을 우선시하고, 서유럽 세력의 협력을 얻어낼 수 있는 안티오키아 수복을 그 다음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콤네노스 황제들이 아나톨리아 수복에 완전히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마누일 1세 치세 말기의 미리오케팔론 전투에 이르기까지, (그 노력이 충분했는가, 즉, 군사적 요충지인 아나톨리아 내륙의 수복의 가치에 걸맞게 우선시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겠으나) 아나톨리아 수복 자체에는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음을 생각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즉, 아나톨리아의 내륙 상실 이후 제국이 탈환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못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 근세 ===
 
=== 근세 ===
 
==== 오스만제국 ====
 
==== 오스만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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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과 인접한 동남부, 그리스와 에게 해를 사이에 둔 서부, 캅카스와 인접하고 우크라이나와 마주보는 흑해와 접한 북부 지역의 문화가 각기 다르다. 주로 서구 세계에 많이 알려진 지역은 고대 그리스인 활동 지역과 겹치는 서부이고 지중해성 기후라 자연 풍광도 그리스와 비슷하다. 흑해 주변 동북부 지역에는 러시아의 캅카스 정복 당시 피난 온 이주 정착민 인구[5]가 많으며 차가 재배된다. 흑해 인근지역은 습윤한 해양성 기후로 에게해 인근과 달리 자연 풍광이 조지아나 동유럽과 비슷한 편이다. 동남부 지역은 현재도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인, 동북부는 쿠르드인 인구가 많으며 문화적으로 좀 더 보수적이다. 물론 위에 나온 지도에서처럼 동남부 지역을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제외하고 보는 경우도 있다.
 
중동과 인접한 동남부, 그리스와 에게 해를 사이에 둔 서부, 캅카스와 인접하고 우크라이나와 마주보는 흑해와 접한 북부 지역의 문화가 각기 다르다. 주로 서구 세계에 많이 알려진 지역은 고대 그리스인 활동 지역과 겹치는 서부이고 지중해성 기후라 자연 풍광도 그리스와 비슷하다. 흑해 주변 동북부 지역에는 러시아의 캅카스 정복 당시 피난 온 이주 정착민 인구[5]가 많으며 차가 재배된다. 흑해 인근지역은 습윤한 해양성 기후로 에게해 인근과 달리 자연 풍광이 조지아나 동유럽과 비슷한 편이다. 동남부 지역은 현재도 아랍어를 사용하는 아랍인, 동북부는 쿠르드인 인구가 많으며 문화적으로 좀 더 보수적이다. 물론 위에 나온 지도에서처럼 동남부 지역을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제외하고 보는 경우도 있다.
  
{{:아나톨리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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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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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행정 지도|800}}
 +
{{서아시아 국가 지도|800}}
  
 
== 동영상 ==
 
== 동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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