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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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주립대학교 박사학위를 취득한 오명은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약 2년간 재직한 뒤 1980년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관계에 입문해 1년 뒤 4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채신부 차관에 발탁되어 장관까지 역임하게 된다. 무려 8년여 동안 체신부 차관, 장관을 역임하며 정보화시대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전자교환기'(TDX), '4메가 D램 반도체', '수퍼미니 컴퓨터 개발'을 과감히 추진해 대한민국 정보통신산업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평가받았다. 이로 인해 그에게는 한국통신의 대부, 한국의 [[IT]] 그랜드 디자이너라는 닉네임이 따른다.
 
뉴욕주립대학교 박사학위를 취득한 오명은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약 2년간 재직한 뒤 1980년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관계에 입문해 1년 뒤 4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채신부 차관에 발탁되어 장관까지 역임하게 된다. 무려 8년여 동안 체신부 차관, 장관을 역임하며 정보화시대의 중요성을 깨닫고 '전전자교환기'(TDX), '4메가 D램 반도체', '수퍼미니 컴퓨터 개발'을 과감히 추진해 대한민국 정보통신산업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평가받았다. 이로 인해 그에게는 한국통신의 대부, 한국의 [[IT]] 그랜드 디자이너라는 닉네임이 따른다.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큰 비전을 가지고 조직을 이끌어 나가되 충분한 대화를 통해 부하들과 목표를 공유하고 부하들에게 과감히 권한을 위임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의 리더십은 아랫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주고, 그들의 능력과 경험을 믿고 일을 과감히 맡기되, 그 자신은 전체 흐름을 조율하면서 부하들의 일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또한 성공에 대한 모든 공을 부하들에게 돌리고 그 자신은 늘 겸손했다. 오명은 명분이나 체면보다는 논리와 효율에 따라 움직이는 과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자세를 가지면서도 한번 결정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단호함을 보였다. 그는 늘 '윗사람 눈치 보기보다는 아랫사람 존경을 받으라'고 가르쳤다. 그 자신이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공직자로서의 자세가 부하직원들로부터 존경받고, 오랜 기간 공직에 머물면서 많은 일을 성공시킨 근원이 되었다.<ref name="김운하">김운하 해외편집위원, 〈[http://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6031 (특별한 만남)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 《재외동포신문》, 2018-01-2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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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큰 비전을 가지고 조직을 이끌어 나가되 충분한 대화를 통해 부하들과 목표를 공유하고 부하들에게 과감히 권한을 위임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의 리더십은 아랫사람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주고, 그들의 능력과 경험을 믿고 일을 과감히 맡기되, 그 자신은 전체 흐름을 조율하면서 부하들의 일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방식이다. 또한 성공에 대한 모든 공을 부하들에게 돌리고 그 자신은 늘 겸손했다. 오명은 명분이나 체면보다는 논리와 효율에 따라 움직이는 과학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온화하고 부드러운 자세를 가지면서도 한 번 결정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단호함을 보였다. 그는 늘 '윗사람 눈치보기보다는 아랫사람 존경을 받으라'고 가르쳤다. 그 자신이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공직자로서의 자세가 부하직원들로부터 존경받고, 오랜 기간 공직에 머물면서 많은 일을 성공시킨 근원이 되었다.<ref name="김운하">김운하 해외편집위원, 〈[http://www.dongpo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36031 (특별한 만남)오명 전 과학기술부 장관]〉, 《재외동포신문》, 2018-01-23</ref>
  
또한 전국의 통신요금을 통일한 요금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도시와 농·어촌 구별 없이 같은 수준의 통신 시설을 공급했으며 통신요금을 통일시켰다. 이후 1993년 대전 엑스포의 정부 대표 겸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노태우 정부 체제에서도 체신부 장관, 김영삼 정부의 교통부장관과 건설교통부장관을 역임하였다. 그가 정부 대표 겸 조직위원장이었던 93 대전엑스포에는 108개국, 33개 국제기구, 1,400만 명의 관람객이 참여하는 대성공을 거둬 그는 2007년 국제박람회기구(BIE)의 황금 메달을 받았다. 교통부 장관을 역임하던 시절 인천국제공항 건설, 고속도로 전용차로제 도입 등 교통 부문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였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부 장관과 초대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을 맡으면서 20년간 장관을 직업으로 삼았으며 4명의 대통령과 함께한 진귀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8453&cid=59013&categoryId=59013 오명]〉, 《네이버캐스트》</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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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전국의 통신요금을 통일한 요금제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도시와 농·어촌 구별없이 같은 수준의 통신시설을 공급했으며 통신요금을 통일시켰다. 이후 1993년 대전 엑스포의 정부대표 겸 조직위원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노태우 정부 체제에서도 체신부 장관, 김영삼 정부의 교통부장관과 건설교통부장관을 역임하였다. 그가 정부대표 겸 조직위원장이었던 93 대전엑스포에는 108개국, 33개 국제기구, 1,400만 명의 관람객이 참여하는 대성공을 거둬 그는 2007년 국제박람회기구(BIE)의 황금 메달을 받았다. 교통부 장관을 역임하던 시절 인천국제공항 건설, 고속도로 전용차로제 도입 등 교통부문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였다. 또한,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부 장관과 초대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을 맡으면서 20년간 장관을 직업으로 삼았으며 4명의 대통령과 함께한 진귀한 기록도 가지고 있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8453&cid=59013&categoryId=59013 오명]〉, 《네이버캐스트》</ref>
  
 
그는 초대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바이오산업 육성과 우주기술 개발에 앞장섰다. 우주개발진흥법을 제정하고 한국 최초 우주인을 탄생시켰다. 그는 우주기술 협력을 위해 직접 러시아를 방문하고 협정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오명은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러시아]], [[중국]]과 함께 ITER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는 방사능이 수반하지 않는 행융합발전소 건설사업으로, 지구상에 작은 태양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해당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인류의 에너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었다.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의 선진 6개국의 하나로 참여한 것은 과학한국의 장래를 빛낼 쾌거였다. 오명은 자신이 모시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을 때,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내정되었으나 모시던 상사를 비난할 수 없다는 이유로 후보 자리를 물러났다.<ref name="김운하"></ref>
 
그는 초대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바이오산업 육성과 우주기술 개발에 앞장섰다. 우주개발진흥법을 제정하고 한국 최초 우주인을 탄생시켰다. 그는 우주기술 협력을 위해 직접 러시아를 방문하고 협정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오명은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 [[러시아]], [[중국]]과 함께 ITER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는 방사능이 수반하지 않는 행융합발전소 건설사업으로, 지구상에 작은 태양을 만드는 사업이었다. 해당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인류의 에너지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는 것이었다. 이 역사적인 프로젝트의 선진 6개국의 하나로 참여한 것은 과학한국의 장래를 빛낼 쾌거였다. 오명은 자신이 모시던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구속되었을 때,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내정되었으나 모시던 상사를 비난할 수 없다는 이유로 후보 자리를 물러났다.<ref name="김운하"></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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