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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지제동 태미산성은 성 안쪽에 생겨난 마을이라는 뜻으로 태미산 정상부는 사방을 선명하게 조망할 수 있는 요지이며 산 밑으로는 하천이 흘러 왜적을 방비하는데 유리한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성은 태미산 동쪽 정상부를 따라 축성되다가 마을이 있는 서남쪽으로 완만하게 내려앉은 형태이다. 성벽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동남쪽에 성벽으로 추정되는 참호가 있을 뿐이다. 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두 가지 사실로 추론할 수 있다. 하나는 태미산 동쪽에 영신현의 치소(治所)가 있었기 때문에 고려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았을 가능성이고, 나머지 하나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당이 1,500명의 승병을 이끌고 이 지역에 머무르면서 왜군과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울성 마을과 성두 마을에 성을 쌓았다는 설(說)을 근거로 삼고 있다.<ref>〈[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943231 평택 지제동 태미산성]〉, 《두피디아》</ref> | 평택 지제동 태미산성은 성 안쪽에 생겨난 마을이라는 뜻으로 태미산 정상부는 사방을 선명하게 조망할 수 있는 요지이며 산 밑으로는 하천이 흘러 왜적을 방비하는데 유리한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산성은 태미산 동쪽 정상부를 따라 축성되다가 마을이 있는 서남쪽으로 완만하게 내려앉은 형태이다. 성벽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동남쪽에 성벽으로 추정되는 참호가 있을 뿐이다. 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두 가지 사실로 추론할 수 있다. 하나는 태미산 동쪽에 영신현의 치소(治所)가 있었기 때문에 고려말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쌓았을 가능성이고, 나머지 하나는 임진왜란 당시 사명당이 1,500명의 승병을 이끌고 이 지역에 머무르면서 왜군과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울성 마을과 성두 마을에 성을 쌓았다는 설(說)을 근거로 삼고 있다.<ref>〈[https://www.doopedia.co.kr/doopedia/master/master.do?_method=view&MAS_IDX=101013000943231 평택 지제동 태미산성]〉, 《두피디아》</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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