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편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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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전 세계의 피라미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 특히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고대로부터 매우 유명해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기도 하는데, 연대 자체는 이미 사라진 7대 불가사의의 6개 건축물보다 2천 년가량 더 오래됐다. 현대를 기준으로 대략 4000년에서 4700년 전의 유물이다. 현대인인 우리가 보기에 [[콜로세움]]이 2천 년 전의 고대유적이 듯, 고대 로마인들이 보기에도 이집트 피라미드는 2천 년 전의 고대 유적이었다. 쉽게 말해서 고대 로마 시대의 인물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7세 입장에서는 피라미드를 짓던 시기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부르즈 할리파]]를 건설한 시기가 더 가깝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전 세계의 피라미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 특히 [[기자]]의 대피라미드는 고대로부터 매우 유명해서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기도 하는데, 연대 자체는 이미 사라진 7대 불가사의의 6개 건축물보다 2천 년가량 더 오래됐다. 현대를 기준으로 대략 4000년에서 4700년 전의 유물이다. 현대인인 우리가 보기에 [[콜로세움]]이 2천 년 전의 고대유적이 듯, 고대 로마인들이 보기에도 이집트 피라미드는 2천 년 전의 고대 유적이었다. 쉽게 말해서 고대 로마 시대의 인물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7세 입장에서는 피라미드를 짓던 시기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부르즈 할리파]]를 건설한 시기가 더 가깝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후세계에서 되살아난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은 [[파라오]]가 살 사후세계의 왕궁을 짓는다는 개념에서 만들었다. 즉, 기본적으로는 [[무덤]]으로 설계된 것이다. 지금은 거의 피라미드만 남았지만 건설 당시에는 근처에 신전과 제사를 지내는 공간, 피라미드를 둘러싼 긴 벽 등 부대시설이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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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후세계에서 되살아난다고 믿었기 때문에 죽은 [[파라오]]가 살 사후세계의 왕궁을 짓는다는 개념에서 만들었다. 즉, 기본적으로는 [[무덤]]으로 설계된 것이다. 지금은 거의 피라미드만 남았지만 건설 당시에는 근처에 신전과 제사를 수천 년 동안 보존된 이유는 건축물에 치명적인 강수와 식물이 적은 환경 덕분이다. 그래서 미국의 후버 댐에 이어서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가장 오래 보존될 건축물로 손꼽힌다. 게다가 구조물 크기나 각 부재의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풍화를 상당히 오랫동안 견딜 수 있었다. 벽돌로 지은 초기 피라미드는 거대한 돌로 지어진 피라미드보다 보존 상태가 안 좋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엄청나게 크고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모습이며,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사각돌의 크기부터가 장난 아닌 데다가 건축물의 수평 등이 매우 정밀해 찬탄을 자아내게 한다. 인상이 매우 압도적이라 동시대 이집트인은 물론이고, 주변 국가와 후대의 문명, 특히 유럽에 큰 영향을 남겼다. 특히 이집트 최대의 피라미드라 불리는 [[쿠푸]]의 대피라미드는 2.5톤 무게 사각돌 300만 개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피라미드가 기원전 2560년에 146 m 높이를 달성한 이후로 인류는 무려 3871년 동안 이보다 높은 구조물을 짓지 못했다. 기원후 1311년에 이르러서야 높이 160 m인 영국 '링컨 대성당'의 첨탑을 지음으로써 이 수치를 넘어섰다.
 
 
 
이 거대한 피라미드들이 수천 년 동안 보존된 이유는 건축물에 치명적인 강수와 식물이 적은 환경 덕분이다. 그래서 미국의 후버 댐에 이어서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가장 오래 보존될 건축물로 손꼽힌다. 게다가 구조물 크기나 각 부재의 크기가 엄청나게 커서 풍화를 상당히 오랫동안 견딜 수 있었다. 벽돌로 지은 초기 피라미드는 거대한 돌로 지어진 피라미드보다 보존 상태가 안 좋다.
 
  
 
사실 맨 처음 지어질 때에는 저렇게 우둘투둘하지 않았으며 매끈하게 다듬은 흰색 [[석회석]]을 외장으로 사용하여 번쩍였다는데, 세월이 지나며 약한 외장은 떨어져 나가고, 후대 사람들이 돌을 떼어내서 다른 곳에 쓰는 바람에 저렇게 거친 표면이 되었다. 심지어 피라미드가 지어진 고왕국 당시에도 후대 왕들이 선대 왕들의 피라미드에서 석재를 약탈해 자신의 피라미드를 짓는 일이 있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옛 석조물에서 새 석조물의 자재를 마련하는 일이 빈번했다. 가령, 기념물을 많이 건설했기로 유명한 람세스 2세의 경우 명백히 피라미드에서 석회석을 채취해 사용했다. 심지어 신왕국 말기 즈음 되면 민간인들조차도 (재력이 되면 석회석을, 그렇지 못한 이들은 벽돌을 가져가며) 피라미드를 채석장처럼 사용했다. 또한 카이로를 세우는 와중에도 바로 옆에 있는 기자 3대 피라미드에서 그때까지 남았던 외장재 대부분을 벗겨내어 카이로 공공건물의 자재로 전용하였다.
 
사실 맨 처음 지어질 때에는 저렇게 우둘투둘하지 않았으며 매끈하게 다듬은 흰색 [[석회석]]을 외장으로 사용하여 번쩍였다는데, 세월이 지나며 약한 외장은 떨어져 나가고, 후대 사람들이 돌을 떼어내서 다른 곳에 쓰는 바람에 저렇게 거친 표면이 되었다. 심지어 피라미드가 지어진 고왕국 당시에도 후대 왕들이 선대 왕들의 피라미드에서 석재를 약탈해 자신의 피라미드를 짓는 일이 있었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옛 석조물에서 새 석조물의 자재를 마련하는 일이 빈번했다. 가령, 기념물을 많이 건설했기로 유명한 람세스 2세의 경우 명백히 피라미드에서 석회석을 채취해 사용했다. 심지어 신왕국 말기 즈음 되면 민간인들조차도 (재력이 되면 석회석을, 그렇지 못한 이들은 벽돌을 가져가며) 피라미드를 채석장처럼 사용했다. 또한 카이로를 세우는 와중에도 바로 옆에 있는 기자 3대 피라미드에서 그때까지 남았던 외장재 대부분을 벗겨내어 카이로 공공건물의 자재로 전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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