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스포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bwogur1024 (토론 | 기여) (→한국 전자 스포츠의 역사) |
dbwogur1024 (토론 | 기여) (→한국 전자 스포츠의 역사) |
||
7번째 줄: | 7번째 줄: | ||
한국의 e스포츠는 한국 e스포츠협회가 창립되고 난 후, 더욱 대중적인 스포츠로서 자리를 잡았다. 피파 온라인, 위닝일레븐, 철권, 워크래프트, 던전앤파이터, 리그오브레전드 같은 게임들이 e스포츠 공인 종목으로 선정되면서 프로게이머 층은 다양해졌고,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페이커도 등장하게 되었다. | 한국의 e스포츠는 한국 e스포츠협회가 창립되고 난 후, 더욱 대중적인 스포츠로서 자리를 잡았다. 피파 온라인, 위닝일레븐, 철권, 워크래프트, 던전앤파이터, 리그오브레전드 같은 게임들이 e스포츠 공인 종목으로 선정되면서 프로게이머 층은 다양해졌고,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페이커도 등장하게 되었다. | ||
+ | |||
+ | 하지만 한국에서만 게임 대회가 확산된 것은 아니다. 2000년부터 월드 사이버 게임, 일렉트로닉 스포츠 월드컵과 같은 중요한 세계적인 행사들이 생겨남으로써 전체 토너먼트의 수가 빠르게 증가했다. 2002년 e스포츠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가 된 ‘메이저 리그 게이밍’ 이 시작되었고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금이 제시가 되었다. | ||
+ | 이후 몇 년간 토너먼트의 수와 산업의 규모가 성장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당시 라이브 스트리밍 기술이 존재는 했지만 큰 비용이 들었고 방송 품질이 좋지 않을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메이저 리그 게이밍의 공동 설립자 겸 CEO인 선댄스 디지오바니(Sundance DiGiovanni)는 과거를 회상하며 “토너먼트의 초창기였던 1990년대에는 토너먼트를 VHS 테이프에 녹화하곤 했는데 이 작업은 때로는 며칠이 걸리는 프로세스였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
== 특징 == | == 특징 == |
2020년 1월 23일 (목) 11:32 판
일렉트로닉 스포츠(electronic sports) 또는 e스포츠(esports)라고도 부른다. 혹은 사이버 스포츠(cyber sports)라고도 부른다. 주최하는 단체나 업계에 따라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전자 스포츠는 컴퓨터 통신이나 인터넷 따위를 통하여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을 지칭하는 말이다. 유사 스포츠의 한 종류이기도 하다. 전자 스포츠 산업은 매년 폭발적으로 성장하여, 현재 전자 스포츠 팀은 10년 전 토너먼트 경기에서 승리한 모든 우승자들의 상금 총액보다 11배 이상의 상금을 거머쥐는 경우도 있다.
개요
한국 전자 스포츠의 역사
오늘날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인프라가 구축되기 시작한 시점은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된 1998년경부터였다. 국내 전자 스포츠의 시작점은 스타크래프트이며, 2010년대 이전까지는 한국 전자 스포츠 역사는 스타크래프트의 역사와 같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미국 회사 블리자드가 만든 스타크래프트는 1998년 한국에 정식 출시 되었다. 그 당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는 등장과 동시에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현재까지 판매된 공식 스타크래프트 게임 타이틀이 300만개가 넘어가고, 불법 카피된 것까지 합하면 1000만개가 넘어간다는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스타크래프트는 젊은 층의 문화도 바꾸었다. 젊은 층의 주된 여가공간이 당구장이나 오락실에서 피시방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하여 그 시기 PC방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도 했다. [1]
한국의 e스포츠는 한국 e스포츠협회가 창립되고 난 후, 더욱 대중적인 스포츠로서 자리를 잡았다. 피파 온라인, 위닝일레븐, 철권, 워크래프트, 던전앤파이터, 리그오브레전드 같은 게임들이 e스포츠 공인 종목으로 선정되면서 프로게이머 층은 다양해졌고,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페이커도 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게임 대회가 확산된 것은 아니다. 2000년부터 월드 사이버 게임, 일렉트로닉 스포츠 월드컵과 같은 중요한 세계적인 행사들이 생겨남으로써 전체 토너먼트의 수가 빠르게 증가했다. 2002년 e스포츠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가 된 ‘메이저 리그 게이밍’ 이 시작되었고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금이 제시가 되었다. 이후 몇 년간 토너먼트의 수와 산업의 규모가 성장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었다. 당시 라이브 스트리밍 기술이 존재는 했지만 큰 비용이 들었고 방송 품질이 좋지 않을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메이저 리그 게이밍의 공동 설립자 겸 CEO인 선댄스 디지오바니(Sundance DiGiovanni)는 과거를 회상하며 “토너먼트의 초창기였던 1990년대에는 토너먼트를 VHS 테이프에 녹화하곤 했는데 이 작업은 때로는 며칠이 걸리는 프로세스였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징
활용
전망
각주
- ↑ 모규엽 기자, 〈[e스포츠는 스포츠다 ② e스포츠의 역사]〉, 《국민일보》, 2014-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