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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수공업'''(家內手工業)은 가정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이다. 가내공업(家內工業)이라고도 한다. 가내수공업은 서양에서 18세기에서 19세기에 많이 이루어졌으며 주로 농촌에 사는 사람이 부업으로 했다.<ref>〈[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B%82%B4%EC%88%98%EA%B3%B5%EC%97%85 가내수공업]〉, 《위키백과》</ref><ref>〈[https://namu.wiki/w/%EA%B0%80%EB%82%B4%EC%88%98%EA%B3%B5%EC%97%85 가내수공업]〉, 《나무위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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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3일 (월) 13:45 기준 최신판

가내수공업

가내수공업(家內手工業)은 가정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공업이다. 가내공업(家內工業)이라고도 한다. 가내수공업은 서양에서 18세기에서 19세기에 많이 이루어졌으며 주로 농촌에 사는 사람이 부업으로 했다.[1][2]

개요[편집]

가내수공업은 집 안에서 손이나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작은 규모의 공업이다. 가내수공업은 생활에 필요한 제품을 공장이 아닌 집 안에서 만들어 사용하는 형태이다. 수공업의 형태는 천연 동굴이나 움집에 살던 선사 시대부터 인간과는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인간이 지구상에 존재하면서부터 나타난 공업 형태라고 해도 무방하다. 자본주의와 산업화가 일어나기 이전까지 우리 조상들은 오랫동안 농사를 주업으로 삼았다. 당시 농업사회는 서민 대부분이 농사에 매달려야만 근근이 먹고 살 수 있었다. 당시 가장 중요했던 사회 단위는 가정과 마을이었으며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 역시 스스로 자급자족하였다. 가내수공업은 기계공업이 탄생하기 이전까지 오랫동안 지속되었으며 내직적 수공업, 부업적 수공업, 전업적 수공업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가내수공업은 주문자로부터 직접 또는 간접으로 원료를 공급받고 기계나 도구를 대여받아 가공임(加工賃)을 받기 위하여 노동하는 것으로 저임금과 나쁜 근로조건이 일반적이다. 가내수공업은 직접생산자가 자신의 집을 작업장으로 사용하는 공업생산의 형태를 말한다. 우리나라 공업의 시작은 조선시대에 가내수공업 형태로 발달하였던 전통 공업에서 찾을 수 있다. 전통 공업은 보통 물건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에서 발달하였기 때문에 각 지역의 고유한 자연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생산 규모가 작고 손이나 간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만든 수공품 생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오늘날에는 주로 특산물의 형태로 남아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강화의 화문석, 안성의 유기, 담양의 죽세공품, 안동의 삼베, 한산의 모시, 전주의 한지, 통영의 나전칠기 등이 있다.[3][4]

역사[편집]

가내수공업은 역사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형태를 거쳐 현재의 근대적 가내공업으로 이행되어 왔다. 첫째는 자연경제(현물경제) 하에서의 가내공업으로 원료 생산에서 제품 가공까지가 특정한 가족노동에 의하여 수행되며 그 제품은 원시적인 농촌 공동체나 하나의 봉건 영토 안에서 자급자족으로 소비되는 형태이다. 둘째는 자급적인 농촌공동체가 스스로 소유하고 있던 수공업에서 생겨난 도시 길드(guild)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초기에는 특정한 소비자의 주문, 요구에 따른 고객생산을 하고 있었으나 원격지 무역의 발전에 따라 차차로 예상생산으로 바뀌어 생산물을 시장에 내놓아 판매하게 되었다. 더욱이 길드 제도의 이완(弛緩)과 상품경제의 농촌 침투에 따라 자급적인 농촌 내부에 일체화되어 있던 가내공업이 특히 직물공업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자립화하여 매뉴팩처로 발전하고 초기 산업자본을 형성하는 것이 나타났다. 이러한 가내공업이 상업자본의 지배하에 놓여서 원료나 도구를 대여받아 스스로는 가공임만 받게 된 것이 하청제 가내공업이다. 최종적으로 그들은 사실상의 임금노동자로 전락하였으며 가혹한 근로조건 밑에서 시달리는 일이 많아졌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하여 기계공업이 일반화됨으로써 박약한 기술적 기반밖에 가진 것이 없는 가내공업은 이미 자립, 분산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었으며 제조공업의 외주부로 포섭되어 근대적 가내공업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었다. 이 근대적 가내공업은 유럽, 미국에서도 저임금과 나쁜 근로조건 때문에 여러 가지 노동입법에 의하여 보호되고 있다. 한국의 가내공업도 대규모적인 제조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그 대부분이 소멸하였으나 하청 가내공업 내지 실질적인 임가공 노동자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 있으며 수공예 분야에는 아직도 일부 독자적인 형태의 가내공업이 남아 있다.[5]

현대 가내수공업[편집]

오랫동안 농업 사회를 이끌어온 가내수공업은 농촌 사회가 기계혁명과 산업화로 인해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쟁 체제로 변하면서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던 대중은 임금노동자로서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이 소득으로 공산품을 구입하는 현대적인 소비자로 변신한 것이다. 물론 현대 사회의 가정에서도 가내수공업의 모습을 아직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바느질과 뜨개질이 있다. 실과 바늘 등은 오늘날 가정에도 대부분 필수적으로 구비되어 있다. 또한 현대인들도 바느질과 실을 이용해 간단한 수선 정도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 또한 지역적인 측면에서도 가내수공업이 중요하게 행해지는 경우가 있다. 가내수공업이라는 요소를 지역 고유한 특색으로 삼아 고부가가치화하거나 관광화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한국의 담양군은 가내수공업을 근간으로 하는 죽공예가 여전히 지역의 중요한 산업이다. 또한 목공예를 하는 독일의 자이펜 마을, 유리공예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무라노섬, 레이스 직물을 짜는 부라노섬 등도 주민들이 대부분 관련 공예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러한 점을 지역 이미지로 키워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아울러 수공업의 가치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수공업 작가와 전통 공예 장인이 개인 공방에서 직접 손으로 물건을 만들고 이를 판매하거나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6]

분류[편집]

  • 내직적 수공업은 부녀자, 노인, 어린이 등에 의해 이루어지는 수공예를 말한다. 대부분의 성인 남성은 농사를 지어야 했고 농사를 짓지 못하는 사람은 가정에 남아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집안 살림과 더불어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충당했다.
  • 부업적 수공업은 말 그대로 부업으로 행하는 것이다. 농업, 어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이 틈틈이 시간을 내어 공예품을 만든다. 내직적 수공업과 부업적 수공업은 의류, 도기류, 짚풀공예, 목공예 등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이었다.
  • 전업적 수공업은 전문 장인처럼 공예 그 자체를 생계수단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농업을 근본으로 삼는 사회에서는 전업적 수공업은 물론 그 비중이 미미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공예 수요는 앞에 말한 내직적 또는 부업적 수공업으로 충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장점[편집]

  •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자신이 손재주가 있다면 직접 만들어 훨씬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인건비나 유통비를 절약할 수도 있다. 대형 유통망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다.
  • 생업과 가정생활의 병행이 가능하다. 가내 수공업이 주류였던 산업혁명 이전의 시기에는 여성의 경제성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다.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농경을 제외한) 경제활동 주류는 옷감을 짜는 직조, 공예품 제작 등의 가내수공업이었다. 예를 들어 손으로 짜는 정교한 레이스 같은 경우 아이를 돌보면서도 틈틈이 짜서 시장에 내다 파는 게 가능하다. 반면 같은 레이스라도 공장에서 만드는 것이라면 이 공장의 여성 직공은 아이가 생기는 즉시 퇴사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남편이 집에서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남편이 자녀 일에 무심해지는 폐해도 막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야근이 많아서 남편 얼굴, 아빠 얼굴 보기 힘든 상황에서는 남성의 존재감이 희미해지기 쉬운데 가내수공업을 할 경우 자녀와 함께 일을 하면서 정서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점[편집]

  • 제품 품질이 고르지 못하다. 대규모 공장제 기계공업의 경우 재료만 투입하면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세심하고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지만 가내수공업은 생산 조건이나 제작자의 숙련도 등이 일정하지 못하므로 그 결과물의 품질이 제각각이 된다.
  • 제품의 절대적인 품질 자체도 공장제 기계공업의 그것에 비해 조악하다. 단순한 물건을 소량 생산하는 경우 괜찮지만 제품의 생산량이나 복잡도가 올라갈수록 일개 개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원료, 공정, 설비 등에 대한 필요가 생겨나기 때문에 공장제 기계공업의 위력에 밀릴 수밖에 없다. 또한 표준화된 공정에 의존하는 공장제 기계공업과는 달리 생산자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가내수공업의 경우 우수한 제작자가 만든 제품과 그렇지 못한 제작자가 만든 제품 간의 격차 역시 발생하게 된다.
  • 대량생산이 힘들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는 공장의 대량생산에 비해서 그 생산 단위가 지극히 떨어질 수밖에 없어 많은 양이 필요한 경우에는 부적합하다.
  • 가격이 비싸다. 가내수공업의 생산 비용이 저렴하다는 것은 대규모 공장과 같은 막대한 초기 투자 비용 및 유지 비용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인데 생산 규모가 설비비 및 유지비 등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경우에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 가능한 대규모 공장제 기계공업의 생산 비용이 훨씬 저렴해진다. 생산 비용 문제는 가내수공업의 장단점 모두에서 거론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품에서 생산비용 문제는 가내수공업의 단점이다.

각주[편집]

  1. 가내수공업〉, 《위키백과》
  2. 가내수공업〉, 《나무위키》
  3. 가내 수공업〉, 《네이버 지식백과》
  4. 교육부, 〈우리나라의 공업발달 및 특색〉, 《네이버 블로그》, 2015-09-21
  5. 가내공업〉, 《네이버 지식백과》
  6. 김강호 기자, 〈(핸드메이드 역사 이야기 1) 가정과 함께한 핸드메이드, '가내수공업'〉, 《핸드메이커》, 2019-08-26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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