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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민족 부흥 (Rilindja Kombëtare)의 움직임은 1870년대부터 시작되어 1912년 알바니아의 독립 선포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프리즈렌 동맹]] (알바니아 국가의 권리 수호를 위한 동맹) (Lidhja e Prizrenit)은 1878년 6월 코소보 빌라예트의 프리즈렌이라는 구시가에서 결성되었다. 설립 초반 오스만 관리들은 동맹이 무슬림 영주들과 오스만 제국 행정부에 연관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인지하여 지지하였다. 오스만 관리들은 이슬람의 연대를 지지, 보호하였으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을 포함하는 여러 이슬람 영향권 지역들의 수호를 촉구하였다. 이것이 동맹을 '진정한 무슬림의 위원회' (Komiteti i Myslimanëve të Vërtetë)라고 이름붙인 이유였다. 프리즈렌 동맹은 일명 카라르나메라는 법령을 발표하였는데, 법령 내에는 북부 알바니아, [[에페이로스]] 그리고 [[보스니아]]의 국민들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 보전'을 수호하기 위해 [[불가리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 그리고 [[몬테네그로 왕국]]에 대항하기 위한 어떠한 수단도 동원하겠다는 선언을 포함하고 있다. 이 법령은 1878년 6월 18일 47명의 무슬림 대표들이 조인한 것이다. 300명 정도의 대표들이 당시 회의에 참여하였으며, 이 중에는 보스니아 지역과 프리즈렌 군에서 중앙 정부의 대표로 참여한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 알바니아의 민족 부흥 (Rilindja Kombëtare)의 움직임은 1870년대부터 시작되어 1912년 알바니아의 독립 선포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프리즈렌 동맹]] (알바니아 국가의 권리 수호를 위한 동맹) (Lidhja e Prizrenit)은 1878년 6월 코소보 빌라예트의 프리즈렌이라는 구시가에서 결성되었다. 설립 초반 오스만 관리들은 동맹이 무슬림 영주들과 오스만 제국 행정부에 연관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인지하여 지지하였다. 오스만 관리들은 이슬람의 연대를 지지, 보호하였으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을 포함하는 여러 이슬람 영향권 지역들의 수호를 촉구하였다. 이것이 동맹을 '진정한 무슬림의 위원회' (Komiteti i Myslimanëve të Vërtetë)라고 이름붙인 이유였다. 프리즈렌 동맹은 일명 카라르나메라는 법령을 발표하였는데, 법령 내에는 북부 알바니아, [[에페이로스]] 그리고 [[보스니아]]의 국민들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 보전'을 수호하기 위해 [[불가리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 그리고 [[몬테네그로 왕국]]에 대항하기 위한 어떠한 수단도 동원하겠다는 선언을 포함하고 있다. 이 법령은 1878년 6월 18일 47명의 무슬림 대표들이 조인한 것이다. 300명 정도의 대표들이 당시 회의에 참여하였으며, 이 중에는 보스니아 지역과 프리즈렌 군에서 중앙 정부의 대표로 참여한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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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 프라셔리의 새로운 지도 아래, 프리즈렌 동맹은 알바니아 지역의 자치와 코소보, 스쿠타리, 마나스티르 그리고 야니아의 네 곳의 주를 알바니아 주 하나로의 통합을 요구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오스만 제국은 프리즈렌 동맹의 지지를 철회하였다. 프리즈렌 동맹은 베를린 회의에 의해 몬테네그로에 할당되었던 플라브, 구시네 등의 지역이 합병되려는 시도를 군대를 동원하여 막아내었다. 프리즈렌 동맹의 군대는 노브시스에서 몬테네그로 군대와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하였으나, 강대국의 압력에 따라, 프리즈렌 동맹은 플라브, 구시네에서 군대를 철수시켰으며, 이후 술탄이 보내온 오스만 군대에 의해 패배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발칸 전쟁에서 패배한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그리고 그리스 군대들이 알바니아를 향해 진군하면서 1912년 11월 28일, [[이스마일 체말리]]가 블로러 남부에서 알바니아의 독립을 선포하였다. | 압둘 프라셔리의 새로운 지도 아래, 프리즈렌 동맹은 알바니아 지역의 자치와 코소보, 스쿠타리, 마나스티르 그리고 야니아의 네 곳의 주를 알바니아 주 하나로의 통합을 요구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오스만 제국은 프리즈렌 동맹의 지지를 철회하였다. 프리즈렌 동맹은 베를린 회의에 의해 몬테네그로에 할당되었던 플라브, 구시네 등의 지역이 합병되려는 시도를 군대를 동원하여 막아내었다. 프리즈렌 동맹의 군대는 노브시스에서 몬테네그로 군대와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하였으나, 강대국의 압력에 따라, 프리즈렌 동맹은 플라브, 구시네에서 군대를 철수시켰으며, 이후 술탄이 보내온 오스만 군대에 의해 패배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발칸 전쟁에서 패배한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그리고 그리스 군대들이 알바니아를 향해 진군하면서 1912년 11월 28일, [[이스마일 체말리]]가 블로러 남부에서 알바니아의 독립을 선포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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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ko.wikipedia.org/wiki/%EC%95%8C%EB%B0%94%EB%8B%88%EC%95%84 알바니아]〉, 《위키백과》 | * 〈[https://ko.wikipedia.org/wiki/%EC%95%8C%EB%B0%94%EB%8B%88%EC%95%84 알바니아]〉, 《위키백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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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3일 (화) 23:48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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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공화국(알바니아어: Republika e Shqipërisë, 영어: Republic of Albania), 줄여서 알바니아(알바니아어: Shqipërisë, 영어: Albania)는 동남유럽 지역에 위치한 국가이다.
알바니아는 발칸반도에 위치하여, 북서쪽으로는 몬테네그로, 북동쪽으로는 코소보, 동쪽으로는마케도니아 공화국,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그리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알바니아는 북쪽으로는 지중해, 서쪽으로는 아드리아해, 그리고 남서쪽으로는 이오니아해와 해안선을 맞대고 있다.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와 오트란토 해협을 두고 72km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알바니아는 민주주의 성격의 개발도상국으로, 세계 평균의 기준에서 중상 단계 정도의 소득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 서비스 부문이 알바니아 경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산업과 농업 부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알바니아의 공산주의 체제의 해체 이후, 시장경제 차원의 경제 개혁이 알바니아 안에서 이루어지며 해외 투자의 문을 개방하였는데, 특히 에너지와 교통 인프라 부문에 많은 부분을 개방해놓았다. 알바니아는 높은 HDI 지수를 보유하고 있으며 보편적인 의료 시스템과 무료 초중등교육을 알바니아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알바니아는 UN, NATO, WTO, 세계은행, 유럽 의회, OSCE, OIC의 회원국이다. 알바니아는 에너지 공동체, 흑해 경제 협력 기구 그리고 지중해 연합의 창립국 중 하나이기도 한다.
목차
개요[편집]
- 수도: 티라나
- 면적: 28,748 km²
- 인구: 9,749,625 명 (2021년)
- 공용어: 알바니아어
- 정치체제: 공화제, 단일제, 내각제
- 대통령: 일리르 메타
역사[편집]
고대[편집]
고대 알바니아 지역에는 일리리아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영역은 아드리아 해 동부 지역과 아우레스 강 어구까지 이르렀고, 이 지역 전체는 일리리아라고 불렸다. 당시 남부 지역에는 그리스 카오니아인들이 포이니케를 수도로 두고 연안 지역에 기원전 7세기부터 아폴로니아, 에피담노스 그리고 아만티아 등의 다양한 정착지를 개척해나가고 있었다.
알바니아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부족 중 하나인 아르디에이 왕국은 피예브라투스 2세의 아들 그론때에 가장 많은 땅을 차지하고 기원전 230년 그론의 사망 이후, 그의 아내 테타가 왕국을 물려받아 다스렸으며 남쪽으로 이오니아 해까지 진출하였다. 기원전 229년, 로마는 일리리아의 로마 선박들에 대한 약탈을 이유로 전쟁을 포고하고 기원전 227년 일리리아의 패배로 종전되었다. 기원전 181년에 겐티우스가 테타를 계승한 후, 기원전 168년에 로마와 충돌하면서 제3차 일리리아 전쟁을 시작하였다. 전쟁은 기원전 167년 로마의 승리로 끝났고 그 시점부터 일리리아의 독립도 막을 내렸다. 전쟁 패배 이후, 로마는 일리리아를 세개의 행정구역으로 분할하였다.
중세[편집]
7세기부터 슬라브족들이 알바니아 지역 곳곳에 이주해오기 시작하였다. 9세기에는 불가리아 제1제국의 침략을 받았다. 13세기에 비잔티움 제국과 불가리아 제2제국의 국력이 약해지자, 세르비아 대공국이 알바니아의 일부를 침략 하였다.
아르바논 공국 혹은 알바논은 1190년 당시 크루여의 아르콘이였던 프로곤이 세운 중세 사상 첫 알바니아인의 독립국가였다. 프로곤 일가의 마지막 후손이였던 드미트리의 사망 이후, 알바논 공국은 그리스인 그레고리 카모나스, 크루여 공작, 골렘이 다스렸다. 그후 1255년에 해체되었다.
1271년, 카를로 1세가 알바니아 지역을 정복하고 이듬해 1272년 2월, 그는 알바니아 왕국의 국왕으로 추임되었다. 왕국은 두러스부터 부트린트 해안까지 이르는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 알바니아 왕국의 탄생 이후, 가톨릭 중심의 정치 구조가 세워지며 이를 기반으로 발칸 지역 내에 가톨릭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당시 정치적 개혁은 북부 알바니아를 다스리고 있었던 카를로 1세의 사촌 옐레나 안주이스카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녀가 당시 북부 알바니아와 세르비아를 다스리고 있던 동안 해당 지역에 30개 이상의 가톨릭 교회와 예배당이 세워졌다. 1331년부터 1335년까지, 세르비아 제국이 알바니아를 지배하였다. 세르비아 제국이 분열 이후, 여러 알바니아 공국들이 분리되었고, 이들 중 발샤, 토피아, 카스트리오티, 무자카 그리고 아리아니티 공국이 비교적 강력하였다. 14세기 초반에는 오스만 제국이 알바니아 지역의 대부분을 정복하였다.
오스만 제국 시기[편집]
오스만 제국의 수립 초기, 당시 동남유럽 지역은 작은 공국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오스만 군대들은 1415년에 남부 알바니아에 주둔지를 만들고 1431년에는 알바니아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443년 알바니아의 국민영웅인 스칸데르베그 주도의 장기 반란이 일어났다. 이 반란은 1479년까지 지속되며, 당시 술탄 무라트 2세와 메흐메트 2세가 이끌던 주요 오스만 군대들을 물리쳐냈다. 스칸데르베그는 알바니아 지역의 군주들을 통합하고, 대부분의 지역에 중앙 권력 체계를 도입하여 알바니아의 군주되었다. 그는 또한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범유럽 연합을 구성하려 시도하기도 하였다. 터키인들은 이탈리아와 서유럽 지역을 정복하기 위해 알바니아 지역을 발판으로 삼을 필요가 있었고, 이에 따라 여러번 재정복 시도를 하였으나, 스칸데르베그에게 저지되었다. 당시 그와 오스만 제국과의 싸움은 유럽 지역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이는 나폴리, 베네치아, 라구사 그리고 교황으로부터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한편 오스만 제국이 알바니아에 진출하며, 이슬람교가 제3의 종교로 알바니아에 유입되었다. 이 시기동안 대규모의 알바니아인들이 기독교 유럽 국가들로 이주하였으며, 특히 이탈리아로의 이주가 다량으로 이루어졌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알바니아인들은 보스니아인과 더불어 오스만 제국 내에서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었으며, 오스만 제국의 발칸 지역에 대한 정책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무슬림 알바니아인들은 제국 내에서 대재상을 포함한 여러 고위 행정직을 맡을 수 있었다. 당시 무슬림 알바니아인 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오스만 제국-페르시아 전쟁을 지휘한 쾨프륄루 메흐메드 파샤 장군, 제4차 오스트리아-튀르크 전쟁 당시 오스만 군대를 이끌었던 쾨프륄자드 파질 아흐메드 파샤 장군, 그리고 당시 이집트 총독이였던 무함마드 알리 파샤 등이 있다.
15세기 동안, 오스만 제국은 알바니아에 강력한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었고, 알바니아의 행정구역은 4개의 군(郡)으로 나뉘었다. 지역 정부는 스페인에서 박해를 피해 이주해온 유대인 정착지를 마련하며 무역을 촉진시켰켰다. 당시 블로러는 부르사, 콘스탄티노폴리스, 그리고 여러 유럽 지역에서 벨벳, 면제품, 모헤어(앙고라 염소의 털. 그 털로 짠 천), 양탄자, 향신료, 그리고 가죽 등의 물품을 항구를 통해 들여오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의 데브쉬르메 제도의 영향으로 알바니아인들은 오스만 제국 내 이라크, 이집트, 알제리, 그리고 마그레브 지역 안팎에서 주요 군직과 행정직을 도맡고 있었다. 14세기 오스만 제국의 진입으로 알바니아 지역의 이슬람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초기 오스만 제국의 동남유럽 진출 당시의 지역 영주들은 이슬람교를 꼭 믿어야만 했던 것은 아니였으며, 오히려 종종 반오스만 성향을 띠기도 하였는데, 이 중 대표적인 인물이 스칸데르베그였다. 알바니아인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컸던 사회적 변화는 바로 점진적인 이슬람화였으나, 본격적으로 널리 퍼지게 된 것은 17세기부터였다. 알바니아는 1912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루멜리아 주의 일부로 남아있었으며, 이후 알바니아의 독립이 점차 이루어졌다.
알바니아 민족 계몽기[편집]
알바니아의 민족 부흥 (Rilindja Kombëtare)의 움직임은 1870년대부터 시작되어 1912년 알바니아의 독립 선포 직전까지 지속되었다. 프리즈렌 동맹 (알바니아 국가의 권리 수호를 위한 동맹) (Lidhja e Prizrenit)은 1878년 6월 코소보 빌라예트의 프리즈렌이라는 구시가에서 결성되었다. 설립 초반 오스만 관리들은 동맹이 무슬림 영주들과 오스만 제국 행정부에 연관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인지하여 지지하였다. 오스만 관리들은 이슬람의 연대를 지지, 보호하였으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역을 포함하는 여러 이슬람 영향권 지역들의 수호를 촉구하였다. 이것이 동맹을 '진정한 무슬림의 위원회' (Komiteti i Myslimanëve të Vërtetë)라고 이름붙인 이유였다. 프리즈렌 동맹은 일명 카라르나메라는 법령을 발표하였는데, 법령 내에는 북부 알바니아, 에페이로스 그리고 보스니아의 국민들은 오스만 제국의 '영토 보전'을 수호하기 위해 불가리아 왕국, 세르비아 왕국 그리고 몬테네그로 왕국에 대항하기 위한 어떠한 수단도 동원하겠다는 선언을 포함하고 있다. 이 법령은 1878년 6월 18일 47명의 무슬림 대표들이 조인한 것이다. 300명 정도의 대표들이 당시 회의에 참여하였으며, 이 중에는 보스니아 지역과 프리즈렌 군에서 중앙 정부의 대표로 참여한 이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압둘 프라셔리의 새로운 지도 아래, 프리즈렌 동맹은 알바니아 지역의 자치와 코소보, 스쿠타리, 마나스티르 그리고 야니아의 네 곳의 주를 알바니아 주 하나로의 통합을 요구하기 시작하였고, 당시 오스만 제국은 프리즈렌 동맹의 지지를 철회하였다. 프리즈렌 동맹은 베를린 회의에 의해 몬테네그로에 할당되었던 플라브, 구시네 등의 지역이 합병되려는 시도를 군대를 동원하여 막아내었다. 프리즈렌 동맹의 군대는 노브시스에서 몬테네그로 군대와의 전투에서 여러 차례 승리하였으나, 강대국의 압력에 따라, 프리즈렌 동맹은 플라브, 구시네에서 군대를 철수시켰으며, 이후 술탄이 보내온 오스만 군대에 의해 패배하였다. 오스만 제국은 발칸 전쟁에서 패배한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그리고 그리스 군대들이 알바니아를 향해 진군하면서 1912년 11월 28일, 이스마일 체말리가 블로러 남부에서 알바니아의 독립을 선포하였다.
독립[편집]
1912년 11월 28일 남부 블로러에서 열린 알바니아 만민 회의에서 블로러 의회가 결성되고 알바니아를 독립 국가로 선포하였다. 1912년 12월 4일 열린 의회의 두번째 회의에서 임시 정부를 설립하고 이스마엘 체말리가 이끄는 10명의 지도자들로 구성되었으며 1914년 1월 22일, 그의 사임까지 지속되었다. 또한 의회는 18명을 뽑아 상원 (Pleqësi)을 구성하게 하여 정부의 자문 역할을 하게 하였다.
1913년 7월 29일 런던 회의에서 알바니아의 독립이 인정되고 1913년 10월 15일 국제 통제 위원회가 설립되어 알바니아의 정치제도가 자리잡기 전까지 알바니아의 국가행정을 담당하였다. 국제 통제 위원회는 블로러에 본부를 두었다. 국제 헌병대가 알바니아 공국의 첫 법집행기관으로 설립되었다. 11월에는 첫 헌병대원들이 알바니아에 도착하였다. 알바니아의 군주였던 빌헬름 비디 (Princ Vilhelm Vidi)가 공국의 첫 군주로 선택되었다.
1914년 2월, 지로카스터르에 거주하던 그리스인들은 알바니아와 통합을 거부하여 북이피로스 자치 공화국의 설립을 선포하였으나 1921년에 남부 지역들은 알바니아 공국에 통합되었다. 새로운 알바니아 정부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알바니아 농민들이 당시 알바니아와 이슬람의 구원자라 자칭하던 에사드 파샤 톱타니와 이슬람 성직자들을 중심으로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1914년 8월에 비디 정부 군대와 싸움에서 승리하고 이로 부터 비디 정부는 몰락하기 시작하였으며 군주 비디는 1914년 9월 3일에 알바니아를 떠났다.
공화국과 왕정 시기[편집]
잠깐 존재하였던 알바니아 공국 (1914-1925)는 알바니아 공화국 (1925-1928)로 대체되었다. 1925년 4명의 섭정체제가 끝나고 조구 1세가 새롭게 설립된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티라나가 알바니아의 영구적인 수도로 공식 인준되었다. 조구는 권위주의적이며 보수적인 정권을 이끌었고, 그 목적은 국가 안정과 질서 확립에 있었다. 조구는 강제적으로 이탈리아에 협력하는 정책을 채택해야 하였다. 1925년 1월 20일 알바니아와 이탈리아 양국간 교역 거래에서 독점권을 얻는 조약이 맺어졌다.
1928년 알바니아 공화국은 군주제로 다시 대체되었다. 조구는 국가 전체에 대한 자신의 직권을 확대하기 위해 도로 건설에 많은 집중을 쏟았다. 당시 16세를 넘은 모든 알바니아 남성은 국가에 매년 10시간의 노동 시간을 바쳐야 할 의무가 부여되었다. 국왕이 된 조구는 보수적인 성향을 유지하였으나, 여러 개혁을 실행하기도 하였다. 그 일례로, 사회의 현대화를 위해 자신의 이름에 출신 지역의 이름이 들어가는 전통을 폐지하였다. 또한 조구는 국제 기구에 토지를 기부하여 학교와 병원을 짓게 하였다. 당시 군대는 이탈리아 장교들에 의해 훈련되었다. 조구는 균형을 위해 이탈리아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국가 헌병대에 영국 사무관들을 계속 유지하였다. 알바니아 왕정은 당시 파시스트 이탈리아 정부의 지지를 받고 있었으며 두 국가는 1939년 이탈리아의 급작스런 알바니아 침공 직전까지 가까운 외교관계를 유지하였다. 알바니아는 이탈리아 왕국에 점령되었으며 이후 제2차 세계대전에는 나치 독일에 점령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편집]
이탈리아에 의해 군사적 점령 상태가 된 이후, 알바니아 왕국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보호국이자 속령이었다. 1941년 11월, 소규모의 알바니아 공산주의자 모임 구성원들은 티라나에서 130명을 모아 알바니아 공산주의 정당을 창당, 엔베르 호자를 지도자로 하고 11명으로 구성된 중앙 위원회까지 설립하였다. 공산당은 초기에 약간의 대중성을 겸비하여, 청년 위원회에서 새로운 당원을 받기도 하였었다.
1943년 이탈리아의 항복 이후, 나치 독일이 알바니아를 점령하였다. 당시 이탈리아에 적대적이였던 민족주의 단체 발리 콤페타르는 티라나에 "중립" 정부를 출범, 독일군과 함께 공산주의 성향의 국가해방운동 단체를 배척하였다. 알바니아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황폐화된 국가들 중 하나였다. 공산 게릴라군은 1944년 1월까지 남부 알바니아의 대부분을 통제하였으나 독일군의 공격으로 철수 하였다. 국가해방전선은 펄멧 회의에서 국가 해방 반-파시스트 위원회를 구성하여 알바니아의 행정 및 입법기관으로 역할하도록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알바니아에서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 간에 서로 갈등이 일어 났으나 1944년 늦여름에 공산 게릴라군이 남부 알바니아에서 발리 콤페타르 군대를 몰아내었다. 11월이 끝나기 전, 독일 군대는 티라나에서 철수하였고, 공산 게릴라군이 바로 티라나를 공격하여 점령하였다. 게릴라군은 1944년 11월 29일을 기점으로 알바니아 전체 지역을 독일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고 10월 베라트에서 임시정부를 구성, 엔베르 호자를 총리로 임명하며 알바니아를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공산 정부[편집]
나치 독일의 지배에서 해방된 이후, 알바니아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곧바로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이 세워졌고, 엔베르 호자와 알바니아 노동당이 국가를 이끌었다. 왕정은 빠르게 해체되고 인민공화국이 세워지며 알바니아의 사회주의 건설이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1947년, 알바니아의 첫 철도가 완성되고, 곧바로 몇개월 후 두번째 철도 노선이 완공되었다. 새로운 토지 개혁법이 제정되어 토지의 소유권을 실제 땅을 경작했던 농민들과 노동자에게 할당하였다. 농업은 노동자 협동조합의 형태로 운영되었고, 농업 생산량도 상당히 증가하여, 당시 알바니아는 농업적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당시 이 시기 동안, 알바니아는 산업화의 과정을 겪고 급격한 경제성장을 보였고, 국가 전체에서 전례 없는 교육과 의료 보급에서 진전을 보였다. 1949년, 종교 단체에 대한 법령이 발표되어 모든 종교활동은 중앙정부에 의해 제재를 받게 되었으며 1976년 헌법에는 "국가는 어떠한 종교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기술되어 있으며, "인민의 과학적인 물질 세계관 확립을 위해 무신론을 적극 지지한다."라고 하였다.
공산주의 붕괴 이후[편집]
1989년부터 시위가 일어나면서, 1990년에는 공산 정부가 자체적으로 개혁을 도입하더니, 1992년에는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이 해체, 그리고 현재의 알바니아가 세워졌다. 공산주의자들은 1991년 총선에서 계속하여 지지를 받으며 국회 내 다수석을 확보하였다. 1992년 3월, 새롭게 펼쳐진 자유화 정책이 경제 붕괴와 사회 불안정 상태로 이어지자, 당시 새롭게 창당된 알바니아 민주당이 권력을 잡았다. 이후 여러 해 동안, 알바니아 내에 축적된 대부분의 부는 당시 정부가 지지하고 있었던 피라미드 형태의 폰지 사기에 투자되었다. 이 제도는 당시 알바니아 인구의 1/6에서 크게는 1/3까지 확대되었다. 은행 계획은 1996년 말에 붕괴하기 시작하여, 많은 투자자들이 투자금 환수를 위해 평화시위를 전개하게 하였다. 시위는 1997년 2월 정부군이 발포로 대응하며 폭력적으로 변질되었다. 당시 국가 위기로 알렉산더 멕시 총리와 살리 베리샤 대통령이 사임하였다. 1997년 4월, 이탈리아가 이끄는 UN 평화유지군이 알바니아에 진입하고 서유럽 연합 국가들이 주도하여 알바니아 정부와 함께 사법제도와 알바니아 경찰을 재정비하였다. 1997년 총선거에서 알바니아 사회당이 승리하고 알바니아는 다시 정치적으로 안정 되기 시작하였다.
지리[편집]
알바니아는 동남유럽에 위치하여 있으며, 북서로 몬테네그로, 북동으로 코소보, 동으로 마케도니아 공화국, 남으로 그리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 알바니아의 해안선은 476 km에 달하며 아드리아 해와 이오니아 해까지 맞닿아 있다. 알바니아 서부의 저지대 지역은 아드리아 해와 맞닿아 있다. 알바니아 국토의 70%는 산악 지대로 울퉁불퉁한 지대가 많으며 외부에서 접근이 불가한 곳도 종종 있다. 알바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디버르 주에 위치한 해발 2,764 미터의 코라브 산이다. 코라브 산은 알바니아, 코소보 그리고 마케도니아 국경의 삼각지대에 놓여져 있다. 알바니아의 해안 지역의 기후는 대부분 지중해성 기후의 분포를 띄며 겨울에는 가볍고 습하고 여름에는 따뜻하고, 해가 밝으며 건조한 기후 분포를 보이고 있다. 내륙 지역은 고도에 따라 다른 분포를 보이는데, 1,500 미터이상의 고지대는 매우 춥고 겨울에는 눈이 자주 내리며 이때 쌓은 눈은 추운 기후로 봄까지 지속될 수 있다. 알바니아의 수도는 티라나이며, 이외의 주요 도시로는 두러스, 코르처, 엘바산, 슈코더르, 지로카스터르, 블로러 그리고 쿠커스 등이 있다.
알바니아에는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크고 깊은 3곳의 구조호 (構造湖)가 부분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알바니아 북서부에 위치한 슈코더르 호는 370 km2에서 최대 530 km2까지의 표면적을 지니고 있으며 호수의 1/3이 알바니아에 자리잡고 있으며 나머지는 몬테네그로에 자리잡고 있다. 알바니아에 해당되는 호수선의 길이는 57 km 이다. 알바니아 남동부에 위치한 오흐리드 호는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공동 소유하고 있다. 최대 289 미터의 깊이를 지니며 호수 내에 "살아있는 화석"과 많은 고유종 등 풍부한 생태자원이 자리잡고 있다. 오흐리드 호는 그의 자연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의 보호를 받고 있다. 이외에 부트린트 호 등의 작은 구조호가 있다. 부트린트 호는 부트린트 국립공원에 위치하여 있다. 알바니아는 13개의 섬을 보유하고 있다. 사잔 섬과 쿠네 섬을 제외한 대부분의 섬은 굉장히 작은 면적을 지니고 있다.
기후[편집]
아드리아 해와 이오니아 해에 맞닿아 있는 해안 지역, 발칸 산맥에 자리잡고 있는 고원 지대, 그리고 위치하여 있는 위도 등의 요인 등으로, 알바니아는 다양한 기후구와 기후 분포를 보이고 있다. 해안에 위치한 저지대는 대부분 지중해성 기후의 분포를 띄며, 고원 지대는 지중해 대륙성 기후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저지대와 내륙 지대 모두 남북을 나누어 다양한 날씨 분포를 보인다. 저지대 지역은 겨울에 대체로 온화하여, 평균 기온이 7 °C 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름에는 평균 기온 24 °C정도의 날씨를 볼 수 있다. 남부 저지대 지역에서는 평균 기온이 연중 내내 5 °C정도가 높아져 있다. 기온 차이는 여름에 5 °C보다 더 클 수 있으며 겨울에는 이보다 적을 수 있다. 내륙 지방의 기온은 위도보다는 고도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산악지대의 기온이 겨울에 낮은 것은 남동유럽의 날씨를 지배하는 대륙성 기단의 작용이 크다. 북풍 혹은 북동풍이 때때로 분다. 여름 평균 기온은 해안 지역이 낮으며 고지대일수록 더 낮은 분포를 보이나, 일교차가 심하다. 내륙 지방의 유역과 강기슭의 낮 온도는 굉장히 높으나, 밤에는 대체로 시원하다. 연중 강수량은 높은 편으로, 이는 지중해에서 올라오는 기류와 대륙성 기단이 합쳐진 결과이다.
주민[편집]
주민 대부분이 알바니아인이다. 알바니아는 그리스인, 마케도니아인 그리고 몬테네그로인의 세 종류의 소수 민족과, 아로마니아인과 롬인의 두 문화적 소수자집단을 인정하고 있다. 이외의 알바니아의 소수민족으로는 불가리아인, 고라인, 세르비아인, 발칸 이집트인, 보스니아인 그리고 유대인이 있다. 알바니아어는 알바니아의 공용어이다. 알바니아어는 게그와 토스크 방언의 영향을 받아 표준 언어와 문법을 구성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토스크 방언에 근본을 두고 있다. 슈쿰빈 강을 두고 각각 게그와 토스크 방언을 쓰는 지역이 나뉜다. 또한 현대 그리스어에선 찾아보기 힘든 그리스 방언을 알바니아 내의 그리스인 거주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알바니아 내 소수민족 집단이 사용하는 언어로는 아로마니아어, 세르비아어, 마케도니아어, 보스니아어, 불가리아어, 고라 방언, 롬어 등이 있다. 마케도니아어는 푸스테크 행정구역의 공용어이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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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참고자료[편집]
- 〈알바니아〉, 《위키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남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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