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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야는 [[이베리아반도]]가 아닌 [[북아프리카]] 본토에 위치해 [[모로코]]와 육상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이다. 과거에는 행정 구역상으로도 아예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주에 딸려 있었지만 본국에서 격리된 특수한 환경상 1995년에 자치권이 부여되었다. 2012년 기준 가톨릭 46%, 이슬람 44%의 종교 분포를 보였다. 면적은 12.3,㎢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86,384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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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야는 [[이베리아반도]]가 아닌 [[북아프리카]] 본토에 위치해 [[모로코]]와 육상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이다. 과거에는 행정 구역상으로도 아예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주]]에 딸려 있었지만 본국에서 격리된 특수한 환경상 1995년에 자치권이 부여되었다. 2012년 기준 가톨릭 46%, 이슬람 44%의 종교 분포를 보였다. 면적은 12.3,㎢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86,384명이다.
  
 
멜리야 [[시내]]에는 화려하면서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많은데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아르누보 형식의 건축물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카탈루냐 아르누보(Catalan Art Nouveau)라 불리는 건축의 연장선으로 당시 스페인령 모로코의 광산 등의 식민지 경영으로 자본을 축적한 부르지아지들의 많은 투자를 받았다.<ref>〈[https://namu.wiki/w/%EB%A9%9C%EB%A6%AC%EC%95%BC  멜리야]〉, 《나무위키》</ref>
 
멜리야 [[시내]]에는 화려하면서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많은데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아르누보 형식의 건축물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카탈루냐 아르누보(Catalan Art Nouveau)라 불리는 건축의 연장선으로 당시 스페인령 모로코의 광산 등의 식민지 경영으로 자본을 축적한 부르지아지들의 많은 투자를 받았다.<ref>〈[https://namu.wiki/w/%EB%A9%9C%EB%A6%AC%EC%95%BC  멜리야]〉, 《나무위키》</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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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30일 (일) 02:54 기준 최신판

멜리야
메리야 위치
멜리야 조감도

멜리야(스페인어: Melilla, 아랍어: مليلية, 베르베르어: ⵎⵔ, ⵍⵉⵞ)는 아프리카 모로코 북부에 위치한 스페인의 고립 영토이자 자치시이다. [1]

개요[편집]

멜리야는 이베리아반도가 아닌 북아프리카 본토에 위치해 모로코와 육상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도시이다. 과거에는 행정 구역상으로도 아예 스페인안달루시아주에 딸려 있었지만 본국에서 격리된 특수한 환경상 1995년에 자치권이 부여되었다. 2012년 기준 가톨릭 46%, 이슬람 44%의 종교 분포를 보였다. 면적은 12.3,㎢ 인구는 2018년 기준으로 86,384명이다.

멜리야 시내에는 화려하면서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많은데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 유행하던 아르누보 형식의 건축물로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카탈루냐 아르누보(Catalan Art Nouveau)라 불리는 건축의 연장선으로 당시 스페인령 모로코의 광산 등의 식민지 경영으로 자본을 축적한 부르지아지들의 많은 투자를 받았다.[2]

자연환경[편집]

지브롤터, 스페인과 아주 가까우며, 북쪽에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도 소수 있고, 북부 해안에는 스페인 영토인 세우타와 멜리야, 플라사스 데 소베라니아가 있다. 동남쪽으로는 알제리와 접해 있고, 모리타니, 포르투갈과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편이다.

지중해대서양을 끼고 있어서 여느 북아프리카 지역과 마찬가지로 지중해성 기후로 인해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 습하다. 하지만 북아프리카치고는 강수량이 높고, 여기에 아틀라스산맥이 국토를 지나간다. 덕분에 이런 곳도 있다. 이프란이라는 도시인데, 해발 1,665m로 고도가 높아서 1월 아침에 영하로 자주 내려가고, 1935년 아프리카에서 관측된 가장 낮은 기온인 -23.9°C[10]를 기록한 적도 있다.

야생동물로는 단봉낙타, 바바리양, 바바리원숭이, 붉은사슴, 가젤, 아닥스, 긴칼뿔오릭스, 붉은볼따오기, 매, 멧돼지, 수달, 카라칼, 페넥여우, 붉은여우 등이 서식하며 지금은 멸종했지만 한때는 바바리사자와 아틀라스곰도 서식했다.[3]

역사[편집]

멜리야는 페니키아, 고대 그리스, 로마 제국,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492년 그라나다를 수복함으로써 781년간의 스페인 내 무어인의 지배를 종식시킨 스페인은 여세를 몰아 1497년에 무어인으로부터 멜리야를 빼앗아 점령하였고, 현재까지 500년 넘게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고 있다.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최초 거점 중 한 곳이었고, 철거 전까지는 프랑코의 동상이 남아 있는 마지막 장소였다.

모로코스페인이 영국에 지브롤터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는 논리를 차용해 멜리야와 세우타의 반환을 요구하여 왔는데, 스페인은 이에 대해 멜리야는 모로코의 알라위 왕조(1631년 ~ 현재)가 성립하기 130여 년 전부터 500년 이상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스페인의 영토라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경제[편집]

주요 산업은 수산업, 무역업이며, 스페인 본토 및 유럽 국가들과의 교역이 주요 수입원이 된다. 멜리야는 스페인 본토 뿐만 아니라 모로코와도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멜리야에서 소비되는 대부분 채소와 과일은 모로코 등에서 수입한 것이다. 또, 매일 3만6천여 명의 모로코인들이 직장, 무역 등 경제활동을 목적으로 멜리야를 오간다.

멜리야 공항에서는 마드리드, 말라가, 알메리아 노선 여객기가 매일 운항하며, 이 공항과 멜리야 항의 페리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이 모로코와 유럽을 오간다.

구역[편집]

멜리야는 8개의 구획을 두고 있다.

  • 바리오 데 메디나 시도니아(Barrio de Medina Sidonia)
  • 바리오 델 헤네랄 라레아(Barrio del General Larrea)
  • 바리오 델 아타케 세코(Barrio del Ataque Seco)
  • 바리오 데 로스 에로에스 데 에스파냐(Barrio de los Héroes de España)
  • 바리오 델 헤네랄 고메스 호르다나(Barrio del General Gómez Jordana)
  • 바리오 델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Barrio del Príncipe de Asturias)
  • 바리오 델 카르멘(Barrio del Carmen)
  • 바리오 델 폴리고노 레지델시알 데 라 파스(Barrio del Polígono Residencial de La Paz)

멜리야 분쟁[편집]

멜리야는 고대 페니키아인이 건설한 북아프리카 모로코 북동부의 항구도시로 그리스와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았으며, 1497년 스페인에 점령당하였다. 1912년 모로코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보호령으로 분할되었으며, 1919~1926년의 리프전쟁을 통하여 스페인은 모로코 북부를 차지하였다. 스페인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보호령이었던 북아프리카의 영토 대부분을 되돌려주었으나, 이 지역과 세우타, 카나리아 제도에 대한 소유권은 포기하지 않았다. 1956년 3월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모로코는 멜리야와 세우타를 스페인이 영유하는 것은 식민시대의 유산이라는 논리로 주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에 대하여 스페인은 이들 지역은 모로코가 국가를 형성하기 이전부터 스페인의 영토였다는 점을 내세워 반박하고 있다.

멜리야는 세우타와 마찬가지로 자유항으로서 1995년 3월 자치법규가 통과되어 자치시(自治市)가 되기 전까지는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지방 말라가 주에 속하였다. 불법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20여 ㎞에 이르는 국경선에 6m 높이의 이중 철책이 둘러져 있으며, 매일 수만 명의 모로코인이 국경을 넘나들며 경제활동을 한다. 2002년 7월 모로코 군인들이 불법 이민과 테러리즘을 감시한다는 명분으로 세우타 부근의 페레힐 섬(Perejil Island)을 기습적으로 점령하자 스페인이 특수부대원을 동원하여 탈환한 일이 발생하였는데, 이 사태도 근본적으로는 세우타 및 멜리야의 영유권 분쟁과 관련이 있다. 2007년 11월에는 정치적 분쟁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스페인 지도자들이 방문을 삼가온 관례를 깨고 후안 카를로스 국왕 부부가 세우타와 멜리야를 공식 방문하였고, 모로코가 이에 반발하며 갈등을 빚기도 하였다.

현재 모로코가 세우타와 함께 이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나 스페인은 모로코라는 국가가 성립하기 전부터 우리 땅이었다면서 무시로 일관한다. 좀 더 나중에 먹은 스페인령 모로코는 20세기 들어 탈식민지가 대세가 되자 비교적 순순히 돌려줬지만 여기는 나머지 모로코 지역과 역사적 맥락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현지에 거주하는 스페인인 시민들 대부분도 모로코가 종교, 문화적으로 로마 카톨릭교 국가인 스페인과 다른 이슬람 국가에다 경제적으로 스페인보다 더 떨어진다는 근거를 내세우며 모로코로의 귀속을 반대, 스페인령 잔류를 주장하고 있다.

영토로 유지하지만 과거에 비해 크게 중요성이 떨어진 데다 경제마저 쇠락해 그다지 전망이 밝지는 않다. 사실 유럽이 북아프리카 지역을 식민 지배하던 시기가 끝났고, 적대적인 모로코에 둘러싸였으니 도시 확장 등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 물론 가까운 데 나도르라는 도시가 있기는 하지만 대도시는 아닌 데다가 주민들의 상당수도 모로코에서 흘러든 주민들이 차지하여 모로코의 도시들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식량이나 필수품도 모로코에 의존하고 마음만 먹으면 말려 죽일 수 있다. 다만 모로코 측도 영유권 주장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스페인으로 통하는 길목이라 경제적으로 활용한다.

현재는 유럽 난민 사태의 영향으로 난민들이 유럽으로의 밀입국 또는 망명하는 주요 루트로 활용해 스페인으로서는 골치다. 가끔 스페인에서 모로코에 책임이 있다고 따지는데 막상 밀입국자들은 모로코에서도 골치덩어리이기 때문에 스페인의 태도를 비웃는다. 유럽으로 가지 못하자 모로코에 남아 기회를 노리다 보니 빈민가를 이루기도 하고 온갖 범죄에 노출(모로코 갱조직이나 유럽 갱조직이 연루되어 밀입국을 알선하기도 한다.)되거나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2022년 6월 멜리야 경찰은 멜리야 국경을 통해 모로코에서 스페인으로 밀입국하려던 37명의 이민자를 사살하여 스페인 사회 내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집권 스페인 사회노동당 정부와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해당 사건에 대해 합법적 대응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4]

정치[편집]

시의회 의원은 폐쇄 명부 비례대표제(D'Hondt 방식, 5% 봉쇄조항)을 통해 선출되며, 시장은 시장 후보자가 절대 다수의 위원으로 투표하지 않으면 총회에서 가장 많이 득표 한 정당의 후보가 자동으로 직책에 임명된다. 동점표가 나올 경우 지명자를 지명한다.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멜리야〉, 《위키백과》
  2. 멜리야〉, 《나무위키》
  3. 모로코〉, 《나무위키》
  4. 멜리야 분쟁〉,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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