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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안할트주(독일어: Land Sachsen-Anhalt)는 독일 중동부에 위치한 연방주이다.[1]
개요[편집]
작센안할트주의 면적은 20,451.58km²이며 인구는 2,186,643명(2022년 12월)이다. 주도는 마그데부르크이다. 북서쪽으로는 니더작센주, 북동쪽으로는 브란덴부르크주, 남동쪽으로는 작센주, 남서쪽으로는 튀링겐주와 접한다. 남서부의 산지에는 브로켄 현상으로 유명한 브로켄산이 있다.
작센안할트주는 1947년 소련 군정 하에서 프로이센의 작센 지방과 안할트 지방을 합쳐 형성되었다. 1952년에 동독의 주 제도 폐지와 함께 사라졌으나, 1990년 독일의 재통일로 주 경계만 약간 바뀐 채 부활하였다.
슈텐달을 중심으로 하는 이 주의 북쪽 지역은 알트마르크(Altmark)라고 하며, 이후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의 뿌리가 된다. 이곳이 고향인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말을 빌리자면 프로이센의 요람이다.
엘베강(江)이 남북으로 흘러 비옥한 평야를 형성하여, 밀·사탕무 등의 산지를 이루었다.
남서단의 하르츠산맥에 있는 브로켄산은 브로켄의 요괴로 유명하며, 민간전설도 풍부하게 남아 있다. 마그데부르크·할레·데사우 등의 상공업도시가 있다. 종교개혁의 발상지인 비텐베르크가 이 지방에 있으며, 주민은 루터파(派) 신교도가 많다. [2][3]
역사[편집]
신성 로마 제국 시기 내 다른 독일 지역과 마찬가지로 안할트 일대는 아스카니아 가문의 분할상속 때문에 안할트데사우, 안할트쾨텐, 안할트베른부르크 등으로 복잡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이 지역은 모두 공국으로 승격되었으나 1860년대 중반 쾨텐과 베른부르크 공국의 후계구도가 끊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이 일대는 안할트데사우 공국으로 통합되어 안할트 공국이 되었다. 이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거치면서 안할트 공국은 프로이센 왕국에게 포섭되어 독일 제국 내의 공국 중 하나에 속했다. 제1차 세계 대전 패배 이후 안할트 공국에서도 공화정이 선포되고, 안할트는 자유주(Freie Staat)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행정구역 중 하나로 편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패배 이후 이 지역은 미군의 점령 하에 놓여졌으나, 양측의 합의에 따라 미군은 소련군에게 이 지역의 통제권을 넘겼다.
이후 소련군이 프로이센-작센과 안할트 지역을 합치면서 작센-안할트라는 지역이 탄생했다. 프로이센-작센은 원래 작센 선제후국이었다가, 베틴 가문 장자 계열 에른스트 계열의 요한 프리드리히 1세가 1547년 슈말칼덴 전쟁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가 이끄는 가톨릭 동맹에 합류한 방계 알브레히트 계열의 모리츠에게 패하고 선제후 직위를 박탈당하면서 알브레히트 계열이 대부분 영토와 선제후 직위를 차지했다.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의해 작센 왕국으로 승격되었으나, 나폴레옹에 잘못 줄을 선 대가로 1815년 프로이센에 할양된 작센 왕국의 60%가 이 지역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1952년 동독 정부에 의해 작센-안할트는 할레와 마그데부르크 지역구로 해체되었다가, 1990년 독일 재통일 이후에 다시 부활했다.
경제[편집]
비옥한 토지를 가지고 있던 탓에 전통적으로 공업보다는 농업에 의존하는 지역이었다. 거기에 공산정권을 거치면서 경제시설이 완전히 낙후되었고, 여기에 통일 이후 각종 부작용까지 겹치면서 2000년대 초반에는 실업률이 20%를 넘기면서 독일 전체에서도 최악의 경제 상황을 보여 주는 곳이었다. 하지만 연방정부 차원에서 투자 유치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 이 지역의 공업화를 추진한 것이 천천히나마 성공해서 현재는 시장경제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상황이다.
구 서독에 바로 마주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거니와 하르츠 지방 같은 경우는 아예 니더작센 지역과 정서적 문화적으로 엮여있는 곳이다 보니 문화, 인구 교류가 매우 적극적이었다. 통일 직후와 비교해서 GDP 규모가 2.5배로 성장했고, 실업률도 2010년 초반에 10% 초반으로 낮아졌으며, 공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90년대 초반 10% 대에서 현재는 30% 이상으로 증가한 상황. 공업은 화학 공업과 더불어 풍부한 농산물을 바탕으로 하는 식료품 가공 산업이 주축이다. 특히 할레에 거점을 두고 있는 할로렌 초콜릿(Halloren Schokoladen)은 유럽에서도 유명한 브랜드다.
인구[편집]
동독 시기까지만 하더라도 거의 300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거주 중이었으나, 통일 이후로 주민들이 서독으로 우루루 이주함에 따라 감소했다. 1990년 이후 5년마다 인구조사를 실행했는데, 매 5년마다 15만 명 정도가 감소했다. 그러다가 2010년대 중반부터 완만히 증가하는 추세가 되었다. 인구수는 218만 명 정도. 고령화가 심한 지역에 속한다.
다른 구 동독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제 현실 탓에 주 인구 중 외국인 비율은 약 7.5% 정도로 비교적 낮은 편이며,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가 이 일대에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 정권을 거치면서 종교 세력은 그 힘을 크게 잃었다. 인구의 80% 가량이 무종교다.
관광[편집]
작센안할트주는 크게 보아 마그데부르크와 그 주변을 이루는 평야 지대 권역과 남부 하르츠(Harz) 산악지대와 그 주변부, 할레(Halle)와 그 주변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독일과 신성 로마 제국의 성립과 초기 역사는 모두 이 지역에서 벌어진 것이므로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방문할 곳이 매우 많다.
마그데부르크는 작센안할트주의 주도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오토 대제가 968년 건설한 엘베강을 낀 대도시이다. 그래서인지 대외적으로도 오토의 도시라고 홍보하며, 시청 광장에도 오토 1세의 금상이 있다. 중세시대 도시 권리 법 중 하나인 마그데부르크 장전이 처음으로 제정되어 독일 북동부와 중부 및 동유럽 지역의 도시 건설 및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세까지 독일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였으나 30년 전쟁 때 말 그대로 초전박살이 난 후 그 전성기는 끝났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성장하며 대규모 공업 도시가 되었으나 2차 세계 대전에 말 그대로 융단폭격을 맞았고, 통일 후 현재 다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마그데부르크 대성당은 도시를 건설한 오토 대제가 마그데부르크 대주교구를 신설하며 건설을 명하여 지어진 고딕양식의 대규모 건축물로, 오토 대제의 무덤이 위치해 있다. 30년 전쟁 이후에는 루터파 개신교의 교회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역사성 때문에 마그데부르크 대성당(Magdeburger Dom)이라 부른다. 마그데부르크에 방문하는 관광객은 사실상 이 대성당을 보기 위해 온다고 보면 된다. 구시가지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복원이 불가능해 근대 및 현대 건축물로 재건되었으며, 일부 역사적 의미를 갖는 건물들만이 복원되었다. 대성당 근처에 있는 성모마리아수도회 건물은 현재 현대미술관으로 쓰이며 한번쯤은 꼭 들를만 하다. 또한 근처에는 훈데르트바서의 건물도 있다.
남부 하르츠는 북독일 평야 남쪽 끝에 위치해 있는 산악 지대로 중세 때부터 광산과 채굴의 중심지였으며, 신성로마제국의 초기 역사와도 관련이 많은 곳이다. 크베들린부르크(Quedlinburg)는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여러 궁들 중 하나가 있던 곳으로 한 때 동프랑크왕국의 수도이기도 하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한 크베들린부르크성은 오토 1세의 아버지인 독일왕 하인리히 1세가 건설한 성으로, 성과 붙어있는 예배당에는 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다. 나치가 정권을 잡기까지 쭉 그런 줄 알고 있었다가, 나치가 대대적 프로파간다를 위해 크베들린부르크 성지화를 노리고 그의 무덤 뚜껑을 열었으나, 가짜 시체가 있었다. 지금도 그의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성의 박물관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초기 역사와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성의 내부도 공개하고 있다. 예배당이 소지하고 있던 매우 오래된 테피스트리도 유명. 크베들린부르크 시내 자체도 2차 세계 대전의 폭격을 받지 않아 지금도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도시는 매우 잘 정비되어 있다.
할버슈타트(Halberstadt)는 카를 대제가 주교령을 신설한 이후 도시로 성장하여 989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토 3세 때 독립적 지위로 인정을 받은 곳이다. 할버슈타트 대성당과 대성당에 딸린 성당 보물 박물관이 유명하다. 특히 주교가 사용하던 수십 복의 화려한 제례복 등이 압권. 2차세계 대전 때 폭격으로 80%가 파괴되는 아픔을 겪고 통일 후 많은 인구가 빠져나가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노면전차를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중앙역이 시내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음에도 노면 전차로 접근성이 매우 좋다. 음악 매니아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도시인데, 존 케이지가 작곡한 〈오르간(Organ) 2 /ASLSP〉를 2001년부터 지금까지 연주 중인 오르간이 여기에 위치한 작은 교회에 있기 때문. 이 곡의 길이는 639년이니 2640년에 연주가 끝날 예정이다. 왜 하필 저 곡을 할버슈타트에서 연주하기로 했느냐 하면, 현대적 의미의 오르간이 처음으로 탄생한 곳이 1361년 할버슈타트이기 때문이다.
베르니게로데(Wernigerode)는 한국에도 유명한 관광지로, 잘 유지 관리되고 있는 시가지 및 시청과 베르니게로데 성이 매우 유명하다. 하르츠 지방엔 마녀 설화가 있어 발푸르기스의 밤 축제를 겸해서 매년 4월 말부터 5월 초에 마녀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하르츠 지방에서 마녀 설화가 유명한 건 다름 아닌 브로켄의 요괴 현상이라는 대기 광학 현상 때문이다. 안개가 자주 끼는 하르츠 고산지대에선 태양에 의해 자기 자신의 그림자가 허공의 안개에 비치는데, 이걸 괴물이나 거인으로 착각한 것. 브로켄은 하르츠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하르츠 산악 지대로 출발하는 산악 관광 열차나 관광 상품도 베르니게로데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하르츠 지방의 다른 유명한 도시인 고슬라(Goslar)도 베르니게로데에서 고작 2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 다만 이 곳은 작센-안할트 주가 아니라 니더작센 주. 고슬라도 신성로마제국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 역사적 도시이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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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서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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