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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3일 (토) 00:43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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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스노야르스크(러시아어: Красноярск)는 러시아의 시베리아연방관구에 속하는 크라스노야르스크 변경주의 중심 도시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예니세이강의 하류에 면해 있으며, 인구는 약 100만 명으로 시베리아연방관구에서 노보시비르스크, 옴스크에 이어 3번째로 큰 도시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중요한 분기점이며 모스크바로부터는 약 4,100km 떨어져 있다.[1]
개요[편집]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로부터 동쪽으로 약 4,100km 떨어져 있는 예니세이강 연변의 하항(河港)이며 시베리아 유수의 중공업 도시이다. 1628년에 요새로서 건설되었는데 크라스니야르(Красный Яр)라고 불렸다. 금광이 발견되고 나서부터는 활기를 띠기 시작하여 1822년 군청 소재지가 되고, 1896년 시베리아 철도 개통으로 급격한 인구증가를 보였다. 1934년부터는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가지는 예니세이강 양안에 걸치는데 왼쪽 기슭의 구릉에는 시(市)의 오래된 중심부와 상업지구가 펼쳐져 있고, 오른쪽 기슭의 저지대에는 1920년 이후에 형성된 신흥공업지대, 고층아파트지구가 있으며 교외에 스토르비 자연공원이 있다. 또 미술가 V.수리코프의 집은 박물관이 되어 있다. 선박, 콤바인 제작을 중심으로 합성고무, 화학섬유, 펄프, 알루미늄(전기제련), 텔레비전 수상기, 피아노 등의 제조공장이 있고 비철금속 야금, 공학, 의학, 교육, 농업 등의 연구소, 대학, 전문학교가 있다. 남쪽 35km 지점에 있는 크라스노야르스크 발전소는 예니세이강의 급류를 막아 건설한 것으로 최대출력 600만kW의 수력발전소이다. 크라스노야르스크 국립대학, 크라스노야르스크 국립 농업 대학 등의 고등교육 기관이 있다. 현재는 지하철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가장 가까운 공항은 예멜라노보 공항(Аэропорт Емельяново)으로 시내에서 북서쪽으로 37km 가량 떨어져 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는 시베리아 철도 뿐 아니라 항구도 있어 옛부터 철도와 수운을 잇는 요충지가 되었다. 1997년 11월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와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은 쿠릴 열도 분쟁을 해결하고 러시아와 일본 간의 평화 조약을 체결하는 것으로 목표를 정한다는 내용의 크라스노야르스크 합의를 주고 받았다.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최대 관광 명소는 470km²의 광활한 국립 자연보호구역 스톨비로, 최대 100m 높이의 기이한 화강암 기둥들이 절경을 이룬다. 스톨비는 암벽 등반도 유명하며 자일 없이 단독으로 등반하는 극한 스포츠를 ‘스톨비즘’이라고 부른다. 도시의 상징이자, 러시아 10 루블 지폐의 그림이 되기도 한 파라스케바 성당(Часовня Параскевы Пятницы)은 1805년에 지어졌다. 문화 시설로는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 역사 민족학 박물관(Красноярский краевой краеведческий музей)이 있다.[2]
지리 및 기후[편집]
예니세이강은 상류의 발전댐 덕분에 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여름에는 14°C를 넘지 않는다. 이 강의 섬 중에서는 타티셰프(Tatyshev)와 오디하(Otdyha)가 가장 크며 휴양지로 이용된다. 도시의 남쪽과 서쪽은 스키점프대로 유명한 니콜라예프스카야(Nikolayevskaya)산과 사화산(死火山)인 초르나야(Chornaya)산을 비롯해 평균 410m 높이의 울창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예니세이강 남쪽 제방으로는 스톨비 자연보호구역이 있고, 그레미야 그리바(Gremyachaya Griva) 산마루를 이루는 서쪽 언덕들은 소바키나(Sobakina)강까지 걸쳐 있다. 북쪽은 드로킨스카야(Drokinskaya) 언덕을 제외하고 대체로 평탄하며 서북쪽으로는 숲이 있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농지가 펼쳐져 있다. 예니세이, 마나(Mana), 바자이카(Bazaikha), 카차(Kacha)가 크라스노야르스크와 인근의 강이고, 특히 카차는 역사적 도심을 흐른다. 도시 인근은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많고 멀리 나가면 사시나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서쪽 산들은 이끼 덮인 전나무와 시베리아 소나무가 주종이고 남쪽의 숲은 대부분 소나무, 전나무, 사시나무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습한 대륙성 기후로 훨씬 남쪽에 있는 캐나다 위니펙과 매우 유사하고 덴마크 올보르(Ålborg) 등 위도가 비슷한 유럽 도시들에 비해 여름은 훨씬 따뜻하나 겨울은 훨씬 더 춥고 길다. 대륙성이 심한 시베리아 기후이기 때문에 여름은 위도가 비슷한 스칸디나비아반도 내륙 도시들보다 따뜻하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7월의 최고 기온 평균이 24.8°C, 1월 최저 기온은 평균 –19.2°C로 여름과 겨울의 기온 차이가 크다.[3]
역사[편집]
크라스노야르스크는 1628년 8월 19일 예니세이강과 그 지류를 따라 살던 원주민들의 공격으로부터 국경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요새로 출발됐다. 러시아의 팽창으로 17세기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가 동쪽의 칸스크와 더불어 예니세이강 유역의 남쪽 경계선을 형성했다. 요새는 카카(Khakas) 방언의 현지 지명인 키질 차르(Kyzyl Char, 붉고 가파른 강둑)를 따서 크라스니 야르(Krasny Yar)로 불렀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1735년 대시베리아 우편수송도로(현재의 M53 고속도로)가 이곳까지 확장되면서 중앙 시베리아의 주요 도시로 우뚝 섰다. 1749년 크라스노야르스크 남쪽 230km 지점에서 약 700kg의 운석이 발견됐고 1772년에 발굴됐다. 크라스노야르스크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진 운석은 지금까지 운석으로 확인돼 연구 대상이 된 최초의 사례란 의미가 있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크라스니야르가 1822년 도시로 승격해 예니세스크주(Yeniseysk Governorate)의 주도가 되면서 현재 명칭으로 바뀌었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19세기에 시베리아 코사크(Cossack) 운동의 중심지였다. 여러 제조시설과 철도정비창 등이 있던 크라스노야르스크는 1895년 금이 발견되고 시베리아 횡단철도까지 연결되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혁명 후 5개년 계획 기간에 시브야즈흐마시(Sibtyazhmash, 시베리아중공업), 항구, 제지공장, 수력발전소(발전량 세계 5위, 러시아 2위) 등이 건설됐다. 1934년 크라스노야르스크주 출범과 함께 주도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우크라이나와 서부 러시아에서 크라스노야르스크와 인근 마을로 수십 개 공장이 소개돼 성장을 촉진했다. 종전 후 대규모 알루미늄공장과 금속공장 등이 들어섰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정치적 유배지였다. 1825년 12월 니콜라이 1세 즉위에 반대해 봉기했다가 실패한 데카브리스트(Decembrists, 12월 당원) 8명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이곳으로 추방됐다. 스탈린 시대인 1940~41년에는 예니세일락(Yeniseylag)과 예니세스키(ITLYeniseylag) ITL이 강제노동수용소로 유명했다.
1970년대 후반 소련은 크라스노야르스크 인근에 미사일 추적 레이더기지 건설에 착수했고 미국은 1983년부터 탄도 요격 미사일 제한(ABM) 조약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소련은 1989년 위반 사실을 시인하고 1992년 기지 해체를 공식 선언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는 동북공군기지도 있었으나 소련 해체 이후 주거지로 변했다.
소련 해체로 민영화가 이뤄지면서 알루미늄공장을 비롯한 대규모 기업들이 범죄조직과 졸부들 손에 넘어갔고 일부는 파산했으며 실업과 파업이 급증했다. 1996년 이후 역사적 건물 복원과 아스팔트 보행로의 보도블럭 교체, 분수대 광장과 휴양시설 보수, 또는 신설 등으로 도시의 외관이 개선되면서 낙후되고 생기 없는 소련 해체 직후의 모습은 일부 흔적만 남았다. 2019년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러시아에서 세 번째로 개최된 2019년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최 도시였다.[4]
교통[편집]
크라스노야르스크는 두 공항이 있다. 예밀야노보 공항은 중·장거리 국내선과 국제선을 모두 취급하는 주요 공항으로 시내 북서쪽 27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체렘샨카 공항은 단거리 비행을 처리하곤 했다. 체렘샨카는 이전에 지역 아에로플로트 크라스노야르스크 국장이 사용했던 크라스노야르스크 지역의 광범위한 지역 항공 서비스 네트워크(MVL)를 위한 주요 공항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했다. 2011년 12월 체렘샨카 공항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터미널 건물과 항공 교통 관제탑이 파괴되었다.
크라스노야르스크는 수십 년 전부터 3개 노선의 지하철을 계획했으나 2010년 이후 공사가 중단됐으며 아직도 개통 날짜가 불확실하다. 처음 건설된 지하철역 3곳은 닫힌 채로 있고 도시 곳곳에서 공사 현장이 목격된다. 크라스노야르스크-파사지르스키는 장거리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정차하는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주요 철도역이다. 옐렉트리치카(전기철도) 역과 화물역인 크라스노야르스크-동부역도 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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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크라스노야르스크〉, 《위키백과》
- ↑ 〈크라스노야르스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크라스노야르스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크라스노야르스크〉, 《요다위키》
- ↑ 〈크라스노야르스크〉, 《나무위키》
참고자료[편집]
- 〈크라스노야르스크〉, 《위키백과》
- 〈크라스노야르스크〉, 《나무위키》
- 〈크라스노야르스크〉, 《요다위키》
- 〈크라스노야르스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크라스노야르스크(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북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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