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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엘코폴스카주(폴란드어: Województwo wielkopolskie)는 폴란드 중서부에 위치한 주이다.[1]
목차
개요[편집]
비엘코폴스카주의 면적은 29,826㎢이며 인구는 3,504,579명(2021년)이다. 북서쪽으로는 서포모제주, 북쪽으로는 포모제주, 북동쪽으로는 쿠야비포모제주, 남동쪽으로는 우치주, 남쪽으로는 오폴레주, 남서쪽으로는 돌니실롱스크주, 서쪽으로는 루부시주와 접한다. 주도(州都)는 포즈난(Poznań)이며 폴란드에서 면적은 두 번째, 인구는 세 번째로 많은 규모가 큰 주이다. 4개 도시군과 31개 군, 226개 그미나(지방 자치체)를 관할한다.
주 이름은 이 지역에 위치한 역사적 지역인 비엘코폴스카(대폴란드)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주요 도시는 주도인 포즈난을 비롯해, 남부의 칼리슈(Kalisz), 북부의 피와(Piła)와 동부의 코닌(Konin) 등으로 모두 포즈난과 함께 오랜 역사를 갖는 도시들이다. 포즈난은 폴란드에서 5번째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로 유구한 역사로 여러 문화유산이 산재하고, 폴란드의 유럽연합 가입 이후 동유럽의 관문으로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1921년부터 시작된 포즈난 국제박람회(Poznań International Fair)는 오랜 지배를 받던 폴란드가 독립 1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하였는데, 현재는 매년 전 세계에서 13,000여개 이상의 업체가 참여하는 폴란드 최대 규모의 무역박람회로 발전하였다. 2003년에 준공한 스타리 브로와르 센터(Stary Browar Shopping Arts and Business Centre)는 19세기 건축물과 현대적 인테리어가 결합되어 매년 900만 명이 방문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급속히 변모하는 포즈난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 건물이다.
주도인 포즈난에서 북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그니에즈노(Gniezno)는 비엘코폴스키에주를 대표하는 관광지이다. 이곳은 10∼11세기 폴란드 최초의 수도로 11세기에 지어진 그니에즈노 성당(Gniezno Cathedral)은 역대 5명의 폴란드 왕의 대관식이 거행된 장소이다. 남동부의 칼리슈는 포즈난과 함께 오랜 역사를 갖는 도시로 폴란드에서 디저트로 널리 즐기는 구운 웨이퍼의 일종인 안드루티(Andruty)의 본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는 포즈난 인근의 작은 도시 브닌(Bnin) 출신이다. [2]
자연환경[편집]
폴란드 내에서도 핵심 농업지역으로 주 면적의 약 60%가 농경이 가능한 비옥한 토양이고, 두 개의 국립공원을 포함해 주 면적의 약 26%는 산림이며 800여개의 호수가 산재한다.
역사[편집]
18세기 이후 강대국에 의한 폴란드 분할로 동부의 일부를 제외하고 프로이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가, 20세기 들어 제1·2차 세계대전을 통해 다시 폴란드의 영토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폴란드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지하자원으로 타 지역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주 전역에 걸쳐 인구가 고루 분포한다.
산업[편집]
폴란드의 16개 주 중에서 두 번째로 해외 직접투자 금액이 많은 곳으로 자동차, 기계와 건설 등의 전통적인 제조업이 발전하였고, 최근 들어 동서유럽을 잇는 요충지로 포즈난을 중심으로 금융, 비즈니스 서비스 및 물류도 활발하며, 넓은 경작지로 농업과 식품산업도 발전하였다. 석탄 매장량이 많은 지역인데 에너지 전환과 상업성을 이유로 현재는 채굴하지 않고, 주에서 소비할 정도의 천연가스만 소량 채굴하며, 소금광산은 폴란드 전체 생산량의 20%를 점한다.
교육[편집]
포즈난공과대학교[편집]
포즈난공과대학은 폴란드 서부 비엘코폴스카주의 주도(州都)인 포즈난에 있는 국립 공학 특화대학이다. 폴란드 최고의 공과대학 중 하나로 폴란드 최초로 1995년 유럽 공과대학들로 구성된 유럽공학교육연구회(CESAER)의 회원이 되었다. 유럽연합(EU) 교환학생 프로그램인 소크라테스-에라스무스(Socrates-Erasmus)의 회원이다. 이 대학의 약칭은 PUT이다.
학부 및 대학원 강의는 폴란드어로 제공되지만, 일부는 영어로 진행된다. 이 대학은 기술과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메인 캠퍼스는 도심과 올드 마켓, 몰타 호수와 같은 지역 명소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학생들에게 기숙사와 다양한 클럽과 스포츠 활동을 제공한다.
포즈난공과대학교는 대학평가기관 QS의 2023년 세계대학순위에서 세계 801-1000위권, 신흥유럽중앙아시아(EECA) 대학 중 85위로 평가됐다. 2023년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의 글로벌대학순위에서 세계 1443위, 유럽 대학 중 522위, 폴란드 대학 중 23위를 기록했다.[3]
주요도시[편집]
포즈난[편집]
포즈난은 폴란드 서부 비엘코폴스카주의 주도(州都)로 오데르강의 지류인 바르타강 유역에 있다.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며, 폴란드 최초로 가톨릭 교구가 설치된 곳이다. 독일이 지배하던 시기에 반독일 저항운동의 중심지였다. 1956년 공산 정권에 반대하는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박람회 중 하나인 포즈난 국제박람회를 매년 개최한다.
1980년 조선소 노동자였던 레흐 바웬사가 자유연대노조를 출범시키면서 폴란드에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폴란드는 1989년 9월 7일 법적으로 민주화되어 폴란드공화국으로 바뀌었다. 1999년 단행된 폴란드 행정구역 개편으로 포즈난은 비엘코폴스키에(Wielkopolskie: ‘대폴란드’라는 뜻)주의 주도(州)都가 되었다. 이후 서부 폴란드 산업 · 무역 · 교육 · 문화의 중심지이자 폴란드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도시 중 하나로 발전하고 있다.
포즈난에서는 5년마다 헨리크 비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콩쿠르가 개최된다. 시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매달 클래식 음악회를 열 정도로 클래식 애호가가 많다. 1939년 창립된 포즈난 나이킹게일 합창단은 여전히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매년 11월 11일에는 성 마르티누스 축제가 열리며 12월에는 국제청소년영화제가 있다. 포즈난의 최고 명문인 아담 미츠키에비치대학은 공식적으로는 폴란드가 독립을 되찾은 후인 1919년 개교했지만, 대학의 기원은 중세시대인 1611년에 두고 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을 지낸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포즈난(포젠)에서 태어났다.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모두들 행복이 있다고 말하기에…’로 시작하는 시 ‘산 너머 저쪽’으로 한국인에게도 잘 알려진 시인 칼 부세(1872~1918)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V-2 로켓 개발을 주도한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1912~1977)도 포즈난 출신이다. 근대성 연구로 유명한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1925~2017)의 출생지도 포즈난이다.[4]
칼리시[편집]
칼리시는 폴란드 중부 비엘코폴스카주에 있는 도시이다. 비엘코폴스키에주 공업 · 무역의 중심지로 여러 대기업과 공장들이 자리 잡고 있다. 독일과 국경이 가까운 탓에 제1, 2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75년부터 칼리시주의 주도였으나 1999년 폴란드 행정구역 개편으로 비엘코폴스키에주에 속하게 되었다.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2세기부터 사람들이 거주했다.
고대 로마 학자 프톨레마이오스(83~168)가 칼리시를 칼리시아(Calisia)라고 표기한 기록이 남아 있다. 칼리시는 장신구 재료인 호박(琥珀)을 나르던 ‘호박의 길’ 경로에 있었다.
현재의 칼리시는 9세기경 요새로 둘러싸인 정착지로 만들어졌다. 1106년 폴란드 왕 볼레스와프 3세가 이 지역을 점령해 통치했다. 1138년 시작된 폴란드 왕국 분열시대에는 피아스트 왕조의 왕족이 통치하는 독립된 공국이었다. 13세기 중반에 도시 특권을 인정받아 번영하기 시작했다. 직물업과 임업이 특히 발달했다.
칼리시의 번영에는 후스파 개신교도와 유대인들이 크게 기여했다. 1264년에는 유대인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는 법령이 반포돼 곧 폴란드 왕국 전역에 적용되었다.
1314년에는 브와디스와프 1세 왕이 칼리시를 칼리시주 주도로 선포했다. 1426년에는 시청사 건물이 완공됐다.
1792년 폴란드 왕국 2차 분할 때 칼리시는 프로이센 왕국에 흡수되었다. 시 명칭도 독일어 이름(Kalish)으로 바뀌었다.
나폴레옹 전쟁 시기 나폴레옹이 세운 바르샤바 대공국 영토에 편입되었으나 나폴레옹 몰락 후인 1815년 러시아 황제가 왕을 겸하는 폴란드 왕국(의회 폴란드) 영토가 되었다. 1902년에는 칼리시와 바르샤바, 우치를 잇는 철도가 개통되었다.
칼리시는 제1차 대전 초기인 1914년 8월 7일부터 8월 22일까지 독일군의 집중 포격을 받았다. 1914년 개전 당시 6만 8,000명이던 인구는 1918년 전쟁 종료 시 5,000명으로 줄었다.
칼리시는 1918년 독립한 폴란드 왕국 영토에 속하게 되었다. 폴란드 정부는 1925년 시청사를 재건축하는 등 복구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시 나치독일에 다시 점령돼 많은 시민들이 학살 · 추방되거나 강제노동에 끌려갔다. 칼리시는 제2차 대전 후 다시 폴란드 영토가 되었다.
칼리시는 비엘코폴스키에주의 교육 중심지이기도 하다. 포즈난대 분교와 포즈난 경제대학, 포즈난 과학기술대학 등이 있다. WSK 칼리시와 캐나다에 본사를 둔 프랫 앤 휘트니 등 2곳의 항공기엔진공장이 있다. 네슬레 산하 식품회사 공장, 빅스타 청바지 공장도 가동 중이다. ‘칼리시아(Calisia)’ 브랜드로 유명하던 피아노 공장이 있었으나 2007년 폐업했다. 피아노 공장 건물은 2019년 호텔로 새 단장했다.[5]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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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바르미아마주리주〉, 《위키백과》
- ↑ 〈두산백과: 비엘코폴스키에주〉, 《네이버 지식백과》
- ↑ 〈세계의 대학: 포즈난공과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포즈난〉, 《네이버 지식백과》
- ↑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칼리시〉,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바르미아마주리주〉, 《위키백과》
- 〈두산백과: 비엘코폴스키에주〉, 《네이버 지식백과》
- 〈세계의 대학: 포즈난공과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포즈난〉,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폴란드 칼리시〉,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유럽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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