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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년 계약 기간이 만료된 배성서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하고 김영덕 감독을 영입하여 정규 시즌을 2위로 마감한 빙그레 이글스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3전 전승으로 물리치고 창단 이래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정규 시즌 1위 팀 해태 타이거즈와 일전을 벌이게 되는데, 내리 3경기를 지게된다 경기를 잡고 분위기를 타는 듯 했으나, 결국 6차전에서 져서 2승 4패로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쳤다.
 
*'''1988년''' 3년 계약 기간이 만료된 배성서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하고 김영덕 감독을 영입하여 정규 시즌을 2위로 마감한 빙그레 이글스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3전 전승으로 물리치고 창단 이래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정규 시즌 1위 팀 해태 타이거즈와 일전을 벌이게 되는데, 내리 3경기를 지게된다 경기를 잡고 분위기를 타는 듯 했으나, 결국 6차전에서 져서 2승 4패로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쳤다.
 
*'''1989년''' 창단 4년 만에 빙그레 이글스는 6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 우승을 한다. 준 플레이오프에서는 태평양 돌핀스가 삼성 라이온즈를 이기고 올라왔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 타이거즈가 태평양을 잡았다. 88시즌에 이어 또 다시 빙그레 이글스와 해태 타이거즈가 만났다. 1차전에서는 빙그레가 에이스 이상군의 호투와 이강돈의 홈런으로 승리했다. 2차전에서도 4대 2로 앞선 상황이었지만 유격수 장종훈이 공을 뒤로 빠뜨리는 실책을 저지르면서 4대 4 동점, 이어 희생플라이까지 맞으며 역전패하고 만다. 결국 그 후 3경기를 모두 지면서 1승 4패로 두 번째 준우승을 기록하게 된다.
 
*'''1989년''' 창단 4년 만에 빙그레 이글스는 6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 우승을 한다. 준 플레이오프에서는 태평양 돌핀스가 삼성 라이온즈를 이기고 올라왔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 타이거즈가 태평양을 잡았다. 88시즌에 이어 또 다시 빙그레 이글스와 해태 타이거즈가 만났다. 1차전에서는 빙그레가 에이스 이상군의 호투와 이강돈의 홈런으로 승리했다. 2차전에서도 4대 2로 앞선 상황이었지만 유격수 장종훈이 공을 뒤로 빠뜨리는 실책을 저지르면서 4대 4 동점, 이어 희생플라이까지 맞으며 역전패하고 만다. 결국 그 후 3경기를 모두 지면서 1승 4패로 두 번째 준우승을 기록하게 된다.
*'''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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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빙그레 이글스는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했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게게 2패를 당하여, 포스트 시즌을 마감했는데 주전 유격수 장종훈이 시즌 막판 어깨부상에 시달렸으며 이 탓인지 같은 해 시즌에는 페넌트레이스 1위를 달렸다가 후반기에 페이스가 떨어져 준플레이오프 2패로 탈락했는데 장종훈은 1차전대타로만 출전했으며 장종훈 외에도 이정훈 등 타자 쪽에서 부상 선수가 많았다. 정규리그 4위였던 삼성이 빙그레(3위), 해태(2위)를 연달아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빙그레는 최종 순위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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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빙그레 이글스는 정규 시즌 2위에 올랐다.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올라온 삼성 라이온즈와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결과는 3승 1패로 빙그레 이글스가 한국 시리즈에 오라갔다. 한국시리즈에서 정규 시즌 우승팀인 해태 타이거즈와 4번째로 만났다. 하지만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0승 4패로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는데 그 해 주전 유격수 황대연이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연습 도중 허리를 다쳐 시즌을 마감해 내야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낸 것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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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이 해 빙그레 이글스는 역대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81승 2무 43패(승률 0.651)로 2위 해태와 10.5 경기차의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팀 홈런 146개를 기록하였으며, 신인 정민철은 14승(13선발승), 송진우는 19승(8구원승이 포함되어 있어 그 해 최다 선발승은 윤학길 이강철(이상 17선발승)에게 돌아감), 이상군도 10승(5선발승)을 했고, 팀의 주축 장종훈은 무려 41개의 홈런을 날렸다. 이정훈은 타율 0.360이라는 고타율을 기록하고 25개의 홈런을 날렸으며, 이강돈도 0.320의 타율과 13개의 홈런을 날렸다.
  
  

2021년 7월 26일 (월) 16:27 판

(주)한화이글스(Hanwha Eagles)
(주)한화이글스(Hanwha Eagles)

(주)한화이글스(Hanwha Eagles)는 대한민국의 대전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KBO 소속 프로야구단이다. 홈 구장은 대전광역시 중구 부사동의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이다. 제2구장은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사직도으이 청주야구장이며, 퓨처스 구장은 충청남도 서산시 성연면의 서산야구장이다. 현재와 같은 지역을 연고지로 1986년 3월 8일 빙그레 이글스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1998년 11월 1일 구단 이름을 한화 이글스로 변경하였다.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창단 이래 유일하게 우승하였다. 그후로는 11년만에 2018 준프레이오프를 진출했다. 마스코트는 위니, 비니, 수리이다.

연혁

  • 1985년 한국 프로야구 리그 참가를 희망한 한화그룹에서 1월 15일 창단 준비 위원회를 발족시킨다. 다음 날인 1월 16일 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제 7구단으로 승인받게 되고 3월 11일 연고지를 대전으로 삼은 (주)빙그레 이글스 야구단이 설립되고 감독으로 배성서 감독이 취임한다. 그 해에는 2군 리그에 참가했다.
  • 1986년 3월 8일 대전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3월 9일 청주야구장에서 빙그레 이글스 창단식을 개최한다. 그 해 처음으로 1군 리그에 참가했다. 하지만 86시즌에서는 청보 핀토스에게 밀리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청보는 만약 빙그레가 86시즌 꼴찌를 면했다면 구단 역사를 모두 꼴찌로 장식하는 기록을 세울정도의 약팀이었으니 이 시기 빙그레가 얼마나 못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전기 리그는 7위로 마감했으나 후기 리그에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해체로 트레이드 된 장명부와 이상군의 활약으로 6위를 한다. 하지만 신생 구단의 한계와 얕은 선수 츠응로 정규 리그 7위를 기록했다.
  • 1987년 2번째 시즌에는 전기리그 6위와 후기리그 공동 5위로 후기리그 공동 5위로 간신히 정규리그 6위를 기록했을 뿐 특별한 성적을 내비치진 못했다. 그 해 처음으로 빙그레 이글스에서 외야수 이정훈 선수가 신인왕으로 올랐다.
  • 1988년 3년 계약 기간이 만료된 배성서 감독과 재계약을 포기하고 김영덕 감독을 영입하여 정규 시즌을 2위로 마감한 빙그레 이글스는 플레이오프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3전 전승으로 물리치고 창단 이래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정규 시즌 1위 팀 해태 타이거즈와 일전을 벌이게 되는데, 내리 3경기를 지게된다 경기를 잡고 분위기를 타는 듯 했으나, 결국 6차전에서 져서 2승 4패로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쳤다.
  • 1989년 창단 4년 만에 빙그레 이글스는 6할의 승률을 기록하며 정규 시즌 우승을 한다. 준 플레이오프에서는 태평양 돌핀스가 삼성 라이온즈를 이기고 올라왔고, 플레이오프에서는 해태 타이거즈가 태평양을 잡았다. 88시즌에 이어 또 다시 빙그레 이글스와 해태 타이거즈가 만났다. 1차전에서는 빙그레가 에이스 이상군의 호투와 이강돈의 홈런으로 승리했다. 2차전에서도 4대 2로 앞선 상황이었지만 유격수 장종훈이 공을 뒤로 빠뜨리는 실책을 저지르면서 4대 4 동점, 이어 희생플라이까지 맞으며 역전패하고 만다. 결국 그 후 3경기를 모두 지면서 1승 4패로 두 번째 준우승을 기록하게 된다.
  • 1990년 빙그레 이글스는 정규 시즌 3위를 기록했다. 준 플레이오프에서 삼성게게 2패를 당하여, 포스트 시즌을 마감했는데 주전 유격수 장종훈이 시즌 막판 어깨부상에 시달렸으며 이 탓인지 같은 해 시즌에는 페넌트레이스 1위를 달렸다가 후반기에 페이스가 떨어져 준플레이오프 2패로 탈락했는데 장종훈은 1차전대타로만 출전했으며 장종훈 외에도 이정훈 등 타자 쪽에서 부상 선수가 많았다. 정규리그 4위였던 삼성이 빙그레(3위), 해태(2위)를 연달아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면서 빙그레는 최종 순위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 1991년 빙그레 이글스는 정규 시즌 2위에 올랐다. 롯데 자이언츠를 꺾고 올라온 삼성 라이온즈와 플레이오프에서 만났다. 결과는 3승 1패로 빙그레 이글스가 한국 시리즈에 오라갔다. 한국시리즈에서 정규 시즌 우승팀인 해태 타이거즈와 4번째로 만났다. 하지만 단 한 경기도 이기지 못하고 0승 4패로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는데 그 해 주전 유격수 황대연이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연습 도중 허리를 다쳐 시즌을 마감해 내야수비에서 허점을 드러낸 것이 컸다.
  • 1992년 이 해 빙그레 이글스는 역대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다. 81승 2무 43패(승률 0.651)로 2위 해태와 10.5 경기차의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팀 홈런 146개를 기록하였으며, 신인 정민철은 14승(13선발승), 송진우는 19승(8구원승이 포함되어 있어 그 해 최다 선발승은 윤학길 이강철(이상 17선발승)에게 돌아감), 이상군도 10승(5선발승)을 했고, 팀의 주축 장종훈은 무려 41개의 홈런을 날렸다. 이정훈은 타율 0.360이라는 고타율을 기록하고 25개의 홈런을 날렸으며, 이강돈도 0.320의 타율과 13개의 홈런을 날렸다.


각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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