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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30일 (토) 03:1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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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말레이시아(말레이어: Malaysia Timur 말레이시아 티무르)는 보르네오섬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영토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전체 면적은 200,565㎢, 인구는 약 5,770,000명(2010년 기준)인데 면적은 말레이시아 전체 면적의 약 61%, 보르네오섬 전체 면적의 약 27%를 차지하며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의 약 20.4%를 차지한다.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와 국경을 접하며 남중국해를 경계로 반도 말레이시아와 서로 떨어져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키나발루산이 위치한다. 석유와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며 말레이시아의 2개 주(사바주, 사라왁주)와 1개 연방 직할구(라부안)가 이 지방에 속한다.[1] [2]
개요
기후는 적도가 섬의 중앙부를 통과하여 전체적으로 고온다습한 적도우림기후로, 동해안의 타라칸섬에서는 연평균 기온 25.7℃로 연교차는 0.8℃에 불과하나, 연강수량은 3,841mm에 달한다. 따라서 섬 전체가 밀림과 습원으로 덮여 거주지의 제한이 현저하다. 동물은 대체로 말레이·수마트라와 공통적이다. 포유류는 수상성(樹上性)인 것이 많아, 오랑우탄(성성이)을 비롯하여 각종 원숭이가 서식하며, 조류와 악어 ·뱀 등 파충류도 많다.
미개 부족의 생활은 지역에 따라 다르나 일반적으로는 화전(火田)을 이용하여 밭벼 재배를 중심으로 한 원시 농업과 구타페르카·다마르 수지(樹指)·등(藤) 나무 등 임산물의 채집과 수렵 등에 의존하는 부족이 많다. 북부의 두순족과 같이 정착하여 논벼 재배를 하는 부족도 있으나 그 수는 많지 않다. 이에 비하여 해안의 저지대와 교통이 편리한 일부 지역에서는 근래에 이르러 유럽인과 중국인이 경영하는 플랜테이션에서 고무·커피·코프라(코코스 야자)·후추·과일 등을 생산한다.
광산물도 풍부하여 금·다이아몬드는 일찍부터 알려졌으며, 최근에는 철광·석탄·석유 등의 지하자원 개발이 활발하다. 남동안의 발릭파판과 북동 안의 타라칸 유전은 인도네시아 경제에 큰 몫을 하고 있으며, 브루네이와 사바의 유전도 장래가 밝다. 보르네오의 인구 분포는 카푸아스와 바리토 등 2대 하천의 하류에 집중되며, 서해안의 폰티아낙와 남해안의 반자르마신 등의 도시도 이들 강과 연결되어 발전한다. 북해 안의 쿠칭·브루나이 등도 교통요지에 발달한 항구도시이다.[3]
행정 구역
2개 주와 1개의 연방 직할구로 이뤄져 있다.
- 연방직할구
- 라부안 (Labuan) : 동말레이시아 유일의 연방직할구. 사바 주 해안에서 약 8km 정도 거리에 위치한 섬이며 브루나이에 인접해 있다. 남중국해 연안의 석유/천연가스 채굴산업 육성을 위한 경제특구로 개발되고 있는 구역이다.
- 주
- 사라왁 (Sarawak) :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큰 주로 사라왁 주 혼자서 서말레이시아와 면적에서 비등할 정도. 주도이자 최대 도시는 쿠칭. 과거 브루나이 왕국의 영토였으나 영국인 제임스 브룩이 하사받아 세운 사라왁 왕국을 거쳐 말레이시아에 가입했다.
- 사바 : 말레이시아 최동단에 위치한 주로, 주도이자 최대 도시는 코타키나발루이다.
역사
동말레이시아는 1963년 이전까지 상당 기간을 서말레이시아(말라야)와 동떨어져 접점이 없었다. 동말레이시아 대부분의 경우 오랜 기간 브루나이 술탄국의 영역, 그리고 동부 사바의 경우 술루 술탄국의 영역이었음으로 말라야반도와 같은 국가였던 적은 없으며 영국이 말라야반도와 북보르네오를 식민지화한 후에도 말라야는 말레이 연합주, 말레이 비연합주(조호르, 크다, 클란탄, 프를 리스, 트렝가누)와 해협식민지로, 그리고 동말레이시아의 경우 사라왁 왕국과 북보르네오 식민지로 나뉘어 지배했다.
1963년, 싱가포르가 영국에서 독립하고 이미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말라야 연방에 가입 의사를 타진한다. 하지만 이미 상당수 중국인들이 존재하던 말라야 연방은 싱가포르의 연방 가입 시 말라야 연방에 말레이인보다 중국인들이 더 많을 판이었고 말라야 정치인들은 이를 우려한다. 더군더나 싱가포르인 상당수는 좌익 계열 인민행동당이었고 이는 갓 말라야 비상사태라는 이름의 공산당 반란을 겪은 우익 말라야 정치인들이 경기를 일으키게 하였다. 그렇다고 말라야가 싱가포르의 가입을 거부하는 것도 모양새가 많이 안 좋았던지라 그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 더 많은 말레이인들을 연방으로 가입시키는 것. 따라서 말라야 연방은 싱가포르와 함께 가입할 주들로 보르네오를 눈여겨본다.
영국령 보르네오, 즉 오늘날 동말레이시아는 원래 북보르네오 연방이라는 이름의 별개의 국가로 독립하는 계획이 있었고 많은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브루나이 국왕은 새 국가의 출범이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며 결과적으로는 브루나이의 오일머니를 사라왁과 사바에 나눠주는 것을 꺼렸으며 이 계획은 무시된다. 대안이 사라진 상황에 사라왁과 사바는 말레이시아 가입을 매우 원한 싱가포르의 설득을 받아 말레이시아 가입에 동의, 브루나이 또한 의회의 다수당이자 북보르네오 연방 계획의 주 지지세력이던 브루나이 인민당 의원들이 부재할 때를 노려 말레이시아 가입을 표결에 부쳐 날치기로 통과해버린다.
그리하여 말레이시아가 출범되고 사라왁과 사바는 동말레이시아가 되었다. 참고로 브루나이의 경우 1962년 날치기 표결에 반발한 브루나이 인민당의 반란 이후 말레이시아 가입을 취소, 1984년에 독립한다.
사라왁과 사바의 가입은 수카르노의 인도네시아의 반발을 불렀으며 'Konfrontasi'라 불리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대치와 동말레이시아에서의 공산 반란이 일어나며, 인도네시아와의 대치는 수하르토의 G30S 쿠데타 이후 종식되지만 북보르네오 공산 반란은 계속된다.
사라왁과 사바의 가입에 주 역할을 한 싱가포르는 연방에서 축출되며 동말레이시아에는 서말레이시아 주도의 연방정부에 의한 국가폭력을 겪고 자치는 무시되며 1990년대가 되어서야 상황이 개선된다.
교통
도로
서말레이시아 지역에 비해 동말레이시아, 즉 말레이시아령 보르네오의 교통 인프라는 평균적으로 열악하다. 쿠칭, 코타키나발루 등 주요 도시는 도로가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도시를 벗어나 멀리 이동할수록 포장 상태가 나쁜 길이 이어진다. 쿠칭에서 코타키나발루로 이동해야 할 경우 약 20시간(1,000km) 걸리는 자동차 도로보다는 항공편(약 1시간 30분)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다.
주로 도로가 해안을 따라 부설되었다는 점은 같지만, 서말레이시아가 아니라 인도네시아령 보르네오와 비교하면 말레이시아령의 도로 인프라 상태가 조금 더 좋은 편이다. 내륙 도로의 상태는 인도네시아령과 비슷하지만, 말레이시아령은 내륙 영토가 적어 개발하기에 조금 더 좋은 환경이다. 말레이시아 사바 주는 내륙을 관통하는 주 순환 도로가 있지만 중앙부는 국립공원과 자연 보호 구역이 많아 접근이 비교적 어렵다. 사라왁주는 동부 내륙은 인도네시아령 내륙과 비슷한 정도로 도로 접근성이 낮고 수운, 항공 등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인구가 비교적 밀집된 서부는 웬만한 곳은 도로로 이동할 수 있다.
철도
2021년 기준, 보르네오 지역을 통틀어 영업 중인 철도 노선은 사바 주에서 운영하는 사바주 철도(Sabah State Railway)와 브루나이의 소규모 화물 철도뿐이다. 사바 주에서 철도는 영국 보호령 시대인 1896년부터 1906년까지 부설되었으며, 이때 총연장은 196km에 달했다. 태평양 전쟁 과정에서 파괴되었으나 전후 복구를 거쳐 재사용되었다.
오늘날 사바주 철도는 코타키나발루와 트놈(Tenom)을 잇는 134km 길이의 서부선(Western Sabah Railway Line)만 운영 중이다. 서부선 중 코타키나발루에서 파파르(Papar)까지는 해안 지역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관광 열차도 운영되고 있다. 2015년부터 사바 철도를 코타키나발루 동북쪽으로 연장해서 해안을 돌아 코타키나발루~쿠닷(Kudat)~산다칸(Sandakan)~타와우(Tawau)를 연결하는 동북선(North Eastern Sabah Railway Line) 프로젝트도 논의되고 있다.
사라왁주에는 20세기 전반에 1915년부터 주도 쿠칭 지역과 인근에만 화물 운송용으로 약 16km 길이의 철도가 운영된 적이 있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사라왁 철도는 1931년 운행을 중지했고, 이후 간헐적으로 특수 목적으로만 운행되다 결국 1947년에 완전히 폐선 되었다. 1959년에는 선로도 철거되었다. 21세기 들어 말레이시아 정부에서는 사라왁에 철도를 부설하려는 제안을 검토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 시일 내에 착수할 것으로 보이는 프로젝트는 2021년 현재 아직 없다.
독립문제
사라왁과 사바는 각각 1963년 7월 22일과 1963년 8월 31일 주권국가로 독립했으나, 이는 당초 지도부가 영국으로부터 빨리 독립하려는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곧바로 두 나라는 말레이시아에 강제로 합병되었으며, 숱한 부정부패와 폭력이 만연한 국민투표를 거쳐 9월 16일 출범한 말레이시아의 일원이 되었다. 결코 두 나라 민중들이 이루던 바가 아니었으며, 문제는 1965년 8월 9일 싱가포르가 독립하면서 더욱 불거진다.
당초 말레이시아 조약은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말레이시아'를 목표로 했는데, 문제는 싱가포르가 나왔으니, '하나라도 나왔으니 더 이상 공존할 이유가 없다'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으며, 그 무렵 인도네시아의 사바 침공으로 두 자치주는 일단 말레이시아에 남아 있다가 후에 독립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두 자치주는 어느 날 아무런 통보도 없이 '주'로 단위가 바뀌었으며, 이후 정부의 철저한 통제를 받게 되었다.
말라야 지역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연방정부는 두 주에 사람을 보내 일부 현지 주민들에게 무슬림으로 개종할 것을 강요했으며, 이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 유린과 학살이라는 폭력을 자행했다. 심지어 이곳에는 풍부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그 사용을 '로열티 지불 시에만 허락'할 정도로 철저히 통제해, 경제적 발전을 저해했다. 이 문제는 1976년 6월 6일 사바 주지사 툰 푸아드 스테픈 및 정부 각료 피터 모준틴 등이 타고 있던 비행기가 폭파해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불거졌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사바 주정부에 석유 사용에 대한 로열티를 지불하라고 명령했는데, 사바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저질렀다. 그러나 이것은 그저 추측이자 일부 사람들의 주장일 뿐이며, 확실한 증거는 없다. 두 주에 대한 통제는 매우 철저해져, 이 지역은 오늘날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주의 하나로 남아있다.
현재 이 지역에서는 독립을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사바, 사라왁의 독립을 주장하는 단체 "사바-사라왁이 말레이시아를 떠나다(Sabah Sarawak Keluar Malaysia; SSKM)"는 최근 독립투쟁을 강화했으며, 이 지역에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두 지역의 독립을 위한 준비는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았으며, 설상 독립하더라도 어떠한 부작용이나 역풍이 있을 지도 아무도 모른다. 특히 사바의 경우, 독립 후 필리핀 남부의 술루족의 침공이 우려될 수 있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과거 사바였다가 연방 특별구로 승격된 라부안의 경우, 두 지역의 독립 시 어떻게 해야 하는가도 논란이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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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