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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펀들랜드섬(영어: Newfoundland, 프랑스어: Terre-Neuve, 아일랜드어: Talamh an Éisc)은 캐나다의 섬으로 섬의 면적은 108,860km²이고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 인구의 대부분이 살고 있다.[1]
개요[편집]
뉴펀들랜드섬은 캐나다 뉴펀들랜드 래브라도주의 남동부를 차지하는 섬이다. 1000년 무렵, 바이킹 탐험가들은 북대서양을 넘어서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섬에 도착했다. 이로써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북아메리카가 처음으로 연결되었고 미미한 형태로나마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시작되었다. 1583년 영국령으로 선언되었으나 이후 오랫동안 프랑스와 영유권을 둘러싼 쟁탈전이 있었으며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영국령이 됐으나 어업권은 프랑스가 소유하였다. 1934년 영국 식민지가 되고 1948년 주민 투표에 의해 정식으로 캐나다의 일부가 되었다. 뉴펀들랜드섬은 캐나다 끝자락 동네에 유명한 볼거리도 없다보니 캐나다 사람들에게 이곳의 인식은 시골이다. 섬의 전체 면적은 108,860km²으로 남한의 면적(100,363㎢)보다 조금 더 넓은 수준이나 인구는 불과 47만 명으로 의정부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인구밀도는 불과 4.39/㎢명으로 인구밀도 낮은 캐나다에서도 최하위 수준이다. 이마저도 세인트 존스, 갠더와 같은 도시에 몰려 살고 있다. 뉴펀들랜드에 가까운 래브라도의 일부 지역과 함께 UTC-3 1/2라는 독립된 시간대를 사용한다. 이 섬은 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가 많지 않아서 딱히 도시라고 할만한 곳은 별로 없지만, 섬 동부 끝자락에 있는 세인트존스시 광역권에 약 20만 명이 살고 있어서 나름의 중심 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캐나다 최초의 일출은 이 섬에서 시작된다. 캐나다에서 이 섬은 한국의 제주도나 일본의 홋카이도 포지션이 된다.[2][3]
뉴펀들랜드섬은 뉴펀들랜드주를 이루는 섬으로 동쪽으로는 대서양, 서쪽으로는 세인트로렌스만에 면해 있다. 대륙성 기후이나 바다의 영향을 받아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도 -10℃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뉴펀들랜드주의 인구 대부분이 이 섬에 거주하며 주민의 92%가 영국계이다. 캐나다 본토와는 북쪽으로 벨아일해협, 남쪽으로는 캐벗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해발고도 최고 802m의 대체적으로 완만한 지형이다. 남부가 높고 북동쪽에 이를수록 점차 낮아진다. 유럽인 존 캐벗이 1497년에 이 섬을 처음 발견하였는데, 당시의 영국 왕 헨리 7세가 새로운 섬을 발견한 대가로 그에게 10파운드를 주었다고 한다. 섬 북부에서 발굴 조사된 고고학적 유물에 의하면 1000년경 이미 바이킹이 이 섬에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형학적으로 북아메리카의 애팔래치아 산계에 속하며 삼각형 모양을 이룬다. 침엽수와 자작나무, 노랑자작나무 같은 활엽수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수목이 분포하며, 멕시코 만류와 래브라도 해류의 한·난류가 교차하는 앞바다에서는 여름에 짙은 안개가 끼는 경우가 많다. 빙식작용을 받아 빙하호가 많다.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며, 주변에는 작은 섬이 많다. 남쪽 앞바다에는 프랑스령 상피에르, 미켈론 등의 섬이 있다. 남동쪽의 그랜드뱅크스를 중심으로 한 세계 굴지의 어장이 가까이 있어 어업이 성하며, 세계 1위의 어획량을 자랑하는 대구를 비롯하여 청어, 연어, 고등어, 가자미, 새우 등이 많이 잡힌다. 저지대는 침엽수림이 무성하나 400m 이상의 고지는 툰드라를 이루므로 삼림 면적은 섬의 35%에 불과하다. 조난사고 때의 구조견(救助犬)으로 유명한 뉴펀들랜드종은 이 섬에서 개발된 품종이다.[4]
뉴펀들랜드 합병[편집]
뉴펀들랜드섬은 초기에 캐나다에 합병하는 것을 거부하고 영국의 식민지 자치령으로 남아 있기를 고집했다. 해안지역 주민들은 대구와 오징어와 물개 등을 잡아 생활했으므로 수산업이 발달했고, 섬 내륙에서는 목재 산업이 발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벨레 섬에는 철광석, 구리, 납, 주석들이 매장되어 있었다. 세인트 존스 상인들은 이와 같은 것들을 주로 영국과 서인도 제도에 내다 팔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이 생산하지 못하는 기계류와 농산물을 구입해왔기 때문에 그날그날 생활하는 데는 별 아쉬움이 없었다. 그러나 대공황이 닥쳐왔을 때 뉴펀들랜드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목재와 철광석 거래가 중단되고 수산물의 수출길도 막혀 1934년에 와서는 3명 중 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일반 가정의 수입은 1년에 겨우 150달러에 불과했고, 의료혜택과 교육기관도 없었다. 뉴펀들랜드 정부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이자를 지불할 돈도 마련할 수 없어 자치령은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뉴펀들랜드는 영국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영국은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권고했다.
절망에 빠졌던 뉴펀들랜드의 경제적 파탄과 고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끝났다. 전쟁이 터지자 영국, 미국, 캐나다에서 돈과 기술이 섬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북미와 유럽 사이에 위치한 뉴펀들랜드의 입지조건은 해군과 공군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세인트 존스는 호송선단의 사령부가 되었고, 새로운 현대식 공항이 래브라도(Labrador)에 있는 구스베이(Goose Bay)와 섬에 있는 간더(Gander)에 생겼다. 공장에서 생산된 항공기들은 유럽 전선으로 가는 도중 이곳에 들러 재급유를 했다. 당시 뉴펀들랜드에서는 어디서나 미군과 캐나다 군인들을 볼 수 있었다. 대전이 끝난 후 영국은 뉴펀들랜드도 이제는 민주적인 정부 형태로 거듭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뉴펀들랜드의 장래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주민들이 선출한 대표들이 모였다. 그들은 지금과 같이 선거에 의하지 않고 임명에 의해 뽑힌 3명의 섬 대표와 3명의 외부인사로 구성된 위원회에 의해 계속 다스려나갈 것인지, 아니면 주민들이 투표하여 선출한 자치정부를 구성할 것인지를 놓고 토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부 대표들은 캐나다 연방에 합병하자는 제3안을 내놓았다. 그밖에도 일부에서는 미합중국에 합병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정식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드디어 세 가지 안을 놓고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그러나 투표결과 세 가지 안 중 과반수를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다시 제2안과 제3안인 자치정부를 선출할 것인지, 캐나다에 합병할 것인지를 놓고 2차 투표에 들어갔다. 2차 투표 결과는 캐나다 연방에 합병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되었다. 뉴펀들랜드와 래브라도는 1949년 3월 31일 드디어 캐나다 연방의 10번째 주로 합병되었다. 이로써 캐나다는 잃었던 양을 찾은 기쁨과 만족감을 얻게 되었다.[5]
발음[편집]
명칭인 "Newfoundland"에 띄어쓰기를 넣어보면 New found land, '새롭게 발견된 땅'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프랑스어 명칭인 "Terre-Neuve"(테르뇌브)는 '새로운 땅'이라고 한다. 캐나다 사람들은 이 섬의 명칭을 어떻게 발음하냐에 따라 캐나다 영어를 쓰느냐 아니면 미국 영어를 쓰느냐를 판명한다. 일종의 십볼렛에 해당하는 셈이다. 캐나다 영어에서느 d를 묵음처리하고 제2음절을 단모음으로 발음하고 마지막음절 모음이 /ə/ 이지만 미국영어에서는 모두 해당하지 않는다. 그중 가장 최악은 마지막 음절 모음을 /æ/로 발음하는 것인데, 이렇게 발음할 경우 외부인임이 너무 분명해진다. 한국어에서의 차용 형태는 미국 식 발음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인이 이 섬의 이름을 잘못 발음하는 것은 사실 생각보다 진지한 문제라서 1876년에는 이 섬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냐를 두고 다툼이 일어나 총싸움이 나기도 했다.
한편, 캐나다 내에서 세대별로도 차이가 나는데 (이 섬의 주민을 포함해서) 1970년대 출생을 기준으로 이후 출생자들은 /ˈnu.fən.ˌlʌnd/ 라고 발음하지만 그 이전시기에 태어난 고연령층, 특히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서는 /ˈnju.fən.lənd/ 가 더 흔하다. 참고로 1930년대에 나온 CBC 고유명사 발음지침을 보면 영국이 지어놓은 지명인 new-found-land의 어원의식이 남아있었는지 표준발음에서 1음절과 3음절에 강세를 명시하고 있다. 참고로 동시대의 BBC 발음지침에서는 이 지명을 단일어가 아닌 복합어로 보았다.
교통[편집]
만약 한국인이 이 섬에 온다면 북미권 기준으로도 어마어마하게 불편한 교통에 놀랄 것이다. 원래 북미권에서 어딜 가려면 최소한 차를 렌트하는 것이 거의 상식이기는 해도, 불편하게나마 대안으로 버스나 기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섬에는 그런 것 따위 절대 기대하면 안된다. 이 섬에는 섬 서부와 동부를 연결하는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라는 고속도로가 있는데, 이 고속도로 노선을 이용해서 매일 한번 DRL이라는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현지인들도 매우 인기리에 애용하는 운송수단인데, 이 섬에서 자가용 또는 비행기를 쓰지 않고 섬을 횡단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다만 버스가 정차하는 곳이 시청 앞 또는 편의점 앞인 경우가 많아서 꼭 현지인들에게 물어보고 타는 것이 좋다. 현지인들조차도 그런 대중교통이 우리 섬에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 섬에서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캐나다라는 나라가 워낙 넓기 때문에 지역 공항들이 현지인들의 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 섬의 대표적인 공항은 섬 서부의 Deer Lake 공항, 뮤지컬 Come from away의 배경으로도 유명한 섬 중부의 Gander 공항, 섬 동부의 세인트 존스 공항 등이 있다. 다만 겨울철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악천후 때문에 비행기가 지연되는 일이 많아서 본인의 비행기 스케줄을 너무 과신하지 않는 것이 좋다. 캐나다의 다른 지역과 다리로 연결되지 않지만, 노바스코샤로 가는 페리와 래브라도로 가는 페리가 있어서 비행기를 타지 않고 다른 캐나다로 빠져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교육[편집]
뉴펀들랜드섬의 유명한 대학교로는 메모리얼 대학교(Memorial University of Newfoundland)가 있다. 약칭은 MUN이며, 학생들끼리는 뫈 비슷한 발음으로 부른다. 1925년에 설립되어 18,000여 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인 국립종합대학이며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춘 내실 있는 학교다. 특히 해양 관련 연구로는 전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학교다. 4개의 캠퍼스가 있지만, 사실상 한국 학생들이 볼 수 있는 캠퍼스는 세인트 존스 캠퍼스나 기껏해야 섬 서부의 그렌펠 캠퍼스일 것이다. 보통 뉴펀들랜드 사람들이 자기 동네에 있는 이 대학에 많이 진학하지만, 국제화가 잘 되어 있어 다른 국가의 학생들도 굉장히 많이 볼 수 있다.
관광[편집]
캐나다 사람들에게는 한번 쯤 가보고 싶은 곳으로 통하는 듯 하다. 특히 섬 서부의 Gros Morne Park 는 그 독특한 자연경관으로 인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까지 지정된 아주 유명한 곳이다. 현지인들이 쓴 여행기에서도 잊을만 하면 언급되는 공원이다. 2019년 1월 기준으로 세인트 존스 시에 한인 식당이 2곳 존재한다. 전설로만 전해내려오던 빈란드의 유적이 발견된 것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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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뉴펀들랜드섬〉, 《위키백과》
- ↑ 〈뉴펀들랜드 섬〉, 《나무위키》
- ↑ 〈뉴펀들랜드(세계지명 유래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 〈뉴펀들랜드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뉴펀들랜드 합병(캐나다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뉴펀들랜드섬〉, 《위키백과》
- 〈뉴펀들랜드 섬〉, 《나무위키》
- 〈뉴펀들랜드(세계지명 유래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 〈뉴펀들랜드섬(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뉴펀들랜드 합병(캐나다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