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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9일 (화) 23:13 판

바르나 위치
바르나 야경

바르나(불가리아어: Варна, 영어: Varna)는 불가리아 동해안에 있는 도시로 바르나주의 주도다. 불가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며 불가리아 흑해 연안과 북부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면적은 238km², 인구는 약 35만 명이다. 불가리아 동부, 흑해와 바르나호 연안에 위치한다. 역사가 깊은 도시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손꼽힌다. 선사 시대의 유적도 있으며 기원전 4000년 경에 문명을 형성한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유적도 발견되었다. 불가리아가 2004년 유럽연합(EU)에 가입하면서 바르나는 흑해 지역의 교육, 해상운송의 중심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1]

개요

바르나는 흑해의 바르나만(Gulf of Varna)에 위치한 불가리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해변으로 오래전부터 휴양도시로 명성을 얻었다. 바르나는 메소포타미아문명이 태동하기 전인 기원전 4600년경 청동기와 철기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고 문명을 이룬 곳이다. 이 지역에는 기원전까지 북유럽, 동유럽중앙아시아로부터 온 여러 민족이 거주하였고, 서기 1세기부터는 로마와 비잔틴 제국이 점령하였다. 현재의 불가리안 민족의 선조인 슬라브족이 바르나에 정착한 것은 서기 6세기경으로 불가리아 왕국(Bulgarian Kingdom)을 세워 발칸 일대를 지배하였다. 이후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 불가리아가 비잔틴 제국, 오스만 제국,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바르나는 흑해의 무역항이며 군사항으로 발전하였다. 바르나는 오랜 역사로 풍부한 문화재와 시내에 면한 백사장과 쾌적한 기후로 불가리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종종 ‘불가리아 바다의 수도’(Sea Capital of Bulgaria)로 불리기도 한다. 바르나의 바닷가를 따라 건설된 리조트 타운은 흑해 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유럽에서도 여름철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조건으로 의료관광을 포함한 관광산업이 시의 핵심 산업이 되었다. 바르나는 항구 도시로 바르나항은 흑해의 대표적인 무역항이며, 불가리아 해군본부가 위치하여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2003년 바르나는 유럽 48개국이 가입한 통합기구인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에서 주관한 흑해 지역 도시(Black Sea Euroregion) 회의를 개최하였고, 2014년에는 유럽연합의 유럽 청년 수도(European Youth Capital)로 선정된 바 있다. 불가리아는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중에서 부패지수가 가장 높은 국가로 바르나도 예외 없이 도박, 관광, 부동산 등에서 마피아와 결탁한 부정부패가 만연하였다. 그러나 불가리아 정부의 강력한 범죄소탕으로 현재는 범죄가 많이 감소하여 불가리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힌다.[2][3]

지리 및 기후

도시 북쪽 석회석 성분의 프란가(Franga) 고원(높이 356m)과 남쪽의 아브렌(Avren) 고원 사이에서 내려오는 청정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말굽 모양의 흑해 바르나만(灣)과 가늘고 긴 바르나 호수를 거느린다. 바르나만과 호수는 2개의 인공 수로와 아스파루호프(Asparuhov) 다리로 연결돼 있다. 고대시대부터 포도원, 과수원,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상업적 운송 시설들은 내륙의 호수운하로 이전되고 있는 반면 바르나만은 휴양지로 남아 있다. 수변 지역은 대부분 공원으로 조성됐다. 20km가 넘는 해변 백사장이 있고 뜨거운 광천수(온도 35~55℃)가 풍부하게 분출된다. 흑해의 바닷물은 1989년 이후 농촌에서의 화학비료 사용 감소로 깨끗해졌다. 염도는 낮고, 조수 간만의 차는 사실상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다.[4]

역사

선사 시대 정착지 는 세계 선사 시대의 주요 고고학 유적지이자 바르나 문화의 시조이며 국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규모 금 유물 발견으로 간주되는 금석 시대 묘지(기원전 5천년 중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현대 도시 경계 내에 존재했다. 바르나 호수(1900년대 이전에는 담수)의 더 넓은 지역과 인접한 카르스트 샘과 동굴에서 30개가 넘는 선사 시대 정착지가 발굴되었으며, 중세 구석기 시대 또는 1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최초의 유물이 포함되어 있다. 1972년 10월엔 도시 인근에서 294개의 무덤이 있는 기원전 4000~5000년의 신석기 시대 대규모 묘지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선 무게가 총 6kg이 넘는 3000개 이상의 금 장식물이 나왔다.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황금 보물로 평가받고 있다.

청동기 시대 말기(기원전 13-12세기)부터 오데소스 주변에는 트라키아인들이 거주했다. 기원전 8-9세기 동안 지역 트라키아인들은 아나톨리아, 테살리아, 코카서스, 지중해에서 온 사람들과 활발한 상업적, 문화적 접촉을 가졌다. 이러한 연결은 수입되거나 현지에서 만들어진 그 시대의 청동 비골 형태와 같은 일부 지역 제작물에 반영되었다. 대부분의 교류가 바다에서 이루어졌고 오데소스만은 교환이 발생한 장소 중 하나이다. 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1천년 동안에 이 지역 역시 반신화적인 킴메르인들이 정착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존재의 예로는 아마도 우연한 사고일 것이다. 바르나주 벨로그라데츠 근처에서 기원전 8-7세기 고분군이 발견되었다.

오데소스 주변 지역은 흑해의 서쪽 해안에 그리스인들이 오기 훨씬 전부터 트라키아인들이 밀집해 있었다. 이것은 도브리나, 키프라, 브레스탁, 그리고 바르나 지방의 다른 마을 근처의 기원전 6-4세기 트라키아의 네크로폴리제에서 발견된 수공 또는 수레로 만든 도자기, 말타기용 청동 장식품, 철제 무기로도 증명된다. 이 지역의 트라키아인들은 기원전 5세기에서 1세기 사이에 존재했던 거대한 트라키아 국가들인 오드리시아 왕국, 게타이나 사페이아족과 연합한 왕들에 의해 통치되었다. 기원전 336-280년 사이에 이들 트라키아 국가들은 오데소스와 함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되었다.[5]

고고학적 발견은 북동부 트라키아의 인구가 오데소스 주변 지역을 포함하여 매우 다양했음을 보여준다. 기원전 6-4세기 동안 이 지역에는 중부 유라시아 스텝(남러시아와 우크라이나)과 부분적으로 이스트로스 강 남쪽 지역(다뉴브 강 하류의 트라키아 이름)에 거주하는 스키타이인들이 거주했다. 이들 문화의 특징은 무기와 청동 물체가 지역 곳곳에서 발견된다. 스키타이인의 말 장신구는 트라키아 양식과 매우 가까운 동물 양식으로 생산되는데, 트라키아 북동부 지역에서 두 사람이 자주 혼합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많은 청동 공예품은 말머리의 응용과 앞판, 그리고 인근 및 멀리 떨어진 정착지의 그러한 제품을 위한 주형과 같은 과정에 대한 증거를 제공한다. 기원전 4세기부터 이 지역에는 다뉴브 삼각주 주변의 두 해안에 거주하고 있는 트라키아 부족인 켈트족이 더 많은 살고 있었다.

켈트족은 기원전 280년 발칸 반도를 침공한 후 이 지역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불가리아 북동부 전역과 심지어 오데소스 근처에서도 켈트족 장식품과 전형적인 무기들이 있는 상당한 수의 청동 물품들이 발견되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트라키아인들에게 빠르게 채택되었다. 오데소스 근처에서 80km 떨어진 아르코브나는 아마도 켈트의 마지막 왕 카바르(기원전 270/260–216/210)의 영구 수도였을 것이다. 그의 왕국이 멸망한 후, 켈트족 그 나라의 많은 수의 트라키아인들과 섞였다. 기원전 2세기에서 1세기 사이에 현재의 도브루자 땅은 디오니소폴리스(발치크)와 오데소스 사이에 많은 작은 스키타이 주들이 만들어졌다. 그들의 왕은 오데소스를 포함한 흑해 서부 해안의 도시에 위치한 조폐국에서 동전을 주조했다.

바르나는 기원전 570년 고대 트라키아인(Thracian) 정착지에 소아시아(Asia Minor)의 그리스 고대도시 밀레트(Milet)에서 온 개척자들에 의해 오데소스(Odessos)라는 이름의 무역 식민지로 건설되었다. 서기 15년 로마 제국에 합병되면서 도시 성장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지역 개발을 강화하고, 급수 시스템과 많은 사원 및 온천탕 등 공공건물을 건설하면서 2~3세기에 눈에 띄는 발전을 이뤘다.

오데소스는 기원전 425년의 델리아 동맹 평가에 포함되었다. 기원전 339년 펠리페 2세에 의해 포위되었으나 기원전 335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항복하였고 이후 그의 디아도쿠스 리시마코스에 의해 지배되었고, 기원전 313년 다른 폰토스 도시와 게타에 연합군의 일부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원전 4세기 말에 도시는 리시마코스의 요새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도시는 많은 지중해 국가들과 다양한 지역 산물의 지원을 받는 도시들과의 강력한 해상 무역으로 인해 이 시기부터 매우 번영하게 되었다. 기원전 108년 직후, 오데소스는 폰토스의 미트리다테스 6세의 종주권을 인정했다. 395년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된 후 이 도시는 동로마(비잔틴) 제국의 중요한 항구가 되었고 기독교로 개종됐다. 불가리아의 다른 도시처럼 이민족에게 여러 번 침략을 받거나 지배를 받았다. 5세기에 훈족(Huns), 6세기엔 아바스족(Avars)과 슬라브족(Slavs)에게 파괴를 당했다. 슬라브족은 이때 도시의 이름을 바르나로 바꿨다.

새로운 불가리아 국가를 세운 서기 681년 비잔틴 제국과의 평화 조약이 바르나에서 체결되었고 다뉴브강 남쪽의 첫 번째 불가리아 수도는 아마도 이베이에 의해 바르나 호수의 북쪽 해안 근처의 테오도리아스라는 고대 도시에 임시로 위치했을지도 모른다. 중세 시대 동안 통제는 비잔틴에서 불가리아의 손으로 여러 번 바뀌었다. 9세기 후반과 10세기 전반, 바르나는 보리스 1세가 그의 수도원 은신처로 사용했을 수도 있는 수도원에 있는 프레슬라프 문학 학교의 주요 대본이 있던 장소였다.

1444년에는 오스만 술탄국과 유럽 십자군간의 바르나 전투가 일어났고 이후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16~17세기 사이에 바르나는 오스만 제국의 주요 항구 중 하나로 기능하였으며, 이후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제국이 바르나를 두고 여러 차례 공방전을 벌였다. 16세기와 17세기에 오스만 제국의 주요 항구, 농업, 무역 및 조선 중심지로서, 중요하고 경제적으로 활동적인 불가리아 인구를 보존하면서, 바르나는 나중에 불가리아의 나머지 부분과 러시아를 포함하는 4각 요새 중 하나가 되었다. 러시아는 바르나 공성전이 장기화된 후 1773년에 일시적으로 점령하였고, 1828년에 다시 점령하였고, 중세 요새가 파괴된 후 2년 후에 오스만 제국에 반환되었다. 1878년 7월 27일 러시아-투르크 전쟁으로 마침내 해방되었고 이를 계기로 급속도로 성장했다.

대중 관광은 1950년대 후반부터 생겨났다. 중공업과 소련과의 무역은 1950년대와 1970년대에 호황을 누렸다. 1949년 12월 20일부터 1956년 10월 20일에는 도시 이름이 잠시 스탈린으로 개명되기도 했다. 바르나는 1989년까지 서부로의 여행이 금지되었던 동유럽인들에게 인기 있는 휴양지가 되었다.[6]

관광

냉전 시대 바르나는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 국민들에게 인기 있는 해변 휴양지였다. 소련 해체 이후에는 독일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장소 중 하나이다. 바르나 시 북부 해변은 따로 황금 모래(Златни пясъци)라고 해서 해변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해변 관광지 외에도 고대 고고학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 및 중세 수도원 유적지도 인기 목적지 중 하나이다. 시 외곽에는 바르나 전투 당시 전사한 폴란드 국왕 브와디스와프 3세의 영묘당과 바르나 전투를 설명하는 박물관이 있다. 서쪽으로 좀 더 가면 포비티 카마니(Побити камъни)라는 이름의 사막이 있다. 바르나만 일대에는 1990년대 후반과 21세기 초반 국내외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져 많은 리조트들이 들어섰다. 화학 공장을 비롯한 굴뚝 산업과는 지리적 거리가 멀어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바르나는 또한 불가리아의 유일한 국제 크루즈 여행지로 2014년 36번의 크루즈 여행이 이루어졌으며 주요 국제회의와 온천시설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평가받는 신석기 시대 금제품을 전시하는 바르나 고고학 박물관, 바르나 전투 박물관, 어뢰정을 이용한 해군 박물관, 오스만 시대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민족 박물관 등이 유명하다. 시내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바다 정원’도 관심을 끈다. 이곳에는 야외극장과 수족관, 동물원, 자연사박물관, 놀이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모여 있어 국내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바다 목욕탕이라고 불리는 도시 해변에는 곳곳에서 최고 55℃에 이르는 황색 광천수가 나온다. 길이 2.05km, 높이 52m의 아스파루호프(Asparuhov) 다리는 인기 있는 번지점프 장소이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바르나〉, 《위키백과》
  2. 바르나(불가리아)〉, 《나무위키》
  3. 바르나(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바르나(유럽지명사전)〉, 《네이버 지식백과》
  5. 불가리아 바르나〉, 《요다위키》
  6. "Varna, Bulgaria", Wikipedia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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