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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얼둬쓰시(몽골어: ᠣᠷᠳᠤᠰ ᠬᠣᠲᠠ, Ordos qota 오르도스, 중국어: 鄂尔多斯, è ěr duō sī, 중국조선어: 오르도스) 또는 오르도스시(Ordus)는 중국 네이멍구자치구의 남서쪽에 위치한 지급시(地级市)이다. 동서 길이 400㎞, 남북 거리 340㎞, 면적은 8.7만 km², 인구는 220.07만 명이다. 어얼둬쓰시는 예전의 이커자오맹(伊克昭盟)으로 불리던 곳이었으나 2001년 4월 30일 지급시로 승격함과 동시에 오르도스고원에 위치하였다고 하여 '오르도스'(Ordos)의 중국어 발음인 '어얼둬쓰'로 이름을 고쳤다. 오르도스는 가운데를 뜻하는 알타이어족의 어근에서 따왔다. 세계 최대의 채굴업체인 비트메인 채굴장이 있었던 지역이다.[1]
목차
개요[편집]
- 행정 단위: 지급시
- 면적: 87,000km²
- 인구: 220.07만 명(2022년)
- 정부 공식 홈페이지: www.ordos.gov.cn
- 우편번호: 017004[2]
어얼둬쓰시는 중국 네이멍구자치구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로 오르도스고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후허하오터시, 북동쪽으로 바오터우시, 북쪽으로 바옌나오얼시, 북서쪽으로 아라산맹, 서쪽으로 우하이시, 남쪽으로 닝샤후이족자치구, 산시성 (섬서성), 산시성 (산서성)과 접한다. 북쪽으로 흐르는 황허(黃河)가 인산산맥의 남쪽 기슭에서 만곡하는 부분과 만리장성으로 둘러싸인 고원 지대로 사막, 초원, 염호(鹽湖)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르도스란 15세기 중엽 이후 이곳이 내몽골 여러 부(部)의 하나인 오르도스부의 목축지를 이룬 데서 연유한 것으로서 현재 어얼둬쓰(鄂爾多斯)라고 표기하나, 본래 중국에서는 BC 3세기 이래 하남(河南), 후에는 하투(河套), 투중(套中) 등으로 불렀으며 몽골 유목민과의 교섭 또는 공방(攻防)의 요지로 삼아 왔다. 그러나 남북간 교섭 내지 공방 관계는 오르도스 내부의 사막화가 심하기 때문에 지금의 바오란(包蘭)철도 연변부 또는 장성선(長城線) 북쪽에서 전개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3]
어얼둬쓰시는 중국 전국시대에 산시(山西)의 조(趙)가 진출해서 인산에 장성을 쌓고 이어 진시황(秦始皇)이 흉노족을 북으로 쫓아, 그 장성을 만리장성의 일부로 하였다. 또 한무제(漢武帝) 때는 삭방(朔方), 오원(五原), 운중(雲中), 서하(西河)의 여러 군(郡)을 두었다. 그러나 대세는 오히려 흉노족의 세력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오호십육국시대(五胡十六國時代)의 하국(夏國)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수나라 이래 또다시 한인(漢人)이 진출함으로써 당대(唐代)에 오르도스 주변에 여러 주(州)가 생겼고, 인산 남쪽에 3개의 수항성(受降城)이 설치되어 남북항쟁의 중심이 되었다. 그 뒤 당말에는 티베트계 탕구트족이 이곳에 서하국(西夏國)을 세웠으나 칭기즈칸이 이를 멸망시킨 뒤 몽골족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한편 중국측의 무력진출이나 정치지배에 따라 오르도스 주변의 수리 가능한 지역은 한인 농민이 투입되거나 이주하여 경작지로 개발하였다. 수많은 염호가 있어서 내몽골의 대표적인 소금, 소다 산지가 되고 있으며 석유, 석탄도 발견되어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남부에는 방사림(防砂林)도 조성되어 있고, 남동쪽의 이진훠뤄(伊金霍洛)에는 칭기즈칸의 능(陵)이 있다.[4]
행정구역[편집]
2개의 시할구와 7개의 기를 관할한다.
시할구[편집]
- 둥성 구(东胜区)
- 캉바스 구(康巴什区)
기[편집]
- 다라터 기(达拉特旗)
- 준거얼 기(准格尔旗)
- 어퉈커 전기(鄂托克前旗)
- 어퉈커 기(鄂托克旗)
- 항진 기(杭锦旗)
- 우선 기(乌审旗)
- 이진훠뤄 기(伊金霍洛旗)
지리[편집]
어얼둬쓰시의 면적은 87,000km²로 오르도스고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시는 동쪽으로 후허하오터시, 북동쪽으로 바오터우시, 북쪽으로 바옌나오얼시, 북서쪽으로 아라산맹, 서쪽으로 우하이시, 남쪽으로 닝샤후이족자치구, 산시성 (섬서성), 산시성 (산서성)과 접한다. 어얼둬쓰시는 대략 동부의 구릉지대와 서부와 중앙의 고원지대, 남북의 모래사막과 황하의 남쪽 기슭의 평원으로 나눠볼 수 있다. 가장 높은 곳의 해발고도는 2,149m로 서부에 위치하고 가장 낮은 곳은 해발고도 850m로 동부에 위치한다. 지세는 서고동저로 지형은 동부의 구릉계곡지대, 서부의 고평원(高平原) 지역, 북부의 쿠부치(库布其) 사막지역이며 남부는 마오우쑤사막(毛乌素沙漠, 모오소사막) 지역이다. 경내의 해발고도는 850~2,149m 사이이며 전형적인 온대대륙성기후로 연평균 기온은 5.3℃~8.7℃, 월별 최저온도는 –10℃~13℃, 7월 평균 기온은 21℃~25℃이다. 동부지구의 강수량은 300~400㎜, 서부지역은 190~350㎜로 7~9월에 강수가 집중된다.
역사[편집]
어얼둬쓰시의 시역은 유목이 적합한 곳이고, 몽골고원에서 화북, 화북에서 몽골고원으로 통하는 교통상의 요충지이며, 옛날에는 흉노와 진·한이 쟁탈한 지대이다. 흉노의 호한야선우는 후한을 좇아 이곳에 왕정(王庭)을 두었다. 15세기에 몽골의 오르도스부가 이주해 왔기 때문에, 이것에 부응하여 지명도 오르도스로 불리게 되었다. 17세기에 오르도스부가 청에 복속하면서, 청은 맹기제(盟旗制)에 의해 오르도스부에 7개의 기를 두어 오르도스 왕가의 후예를 각 기의 기장으로 해, 오르도스 7기를 1맹(이커자오맹)으로 했다.
중국 근대 신해혁명 후의 1928년, 국민당 정부는 쑤이위안성을 두고, 이커자오맹(伊克昭盟)은 그 남부에 흡수되었다. 만주사변 후, 일본의 관동군의 지원을 받아 덕왕(데므치그돈로브)의 자치운동이 일어나면 이커자오맹도 여기에 참가해, 1939년에 성립된 몽강국 정부 산하에 들어갔다. 국공내전 후인 1956년, 중국 치하에서 최종적으로 쑤이위안성이 폐지된 후, 행정구로서 부활하여 네이멍구자치구에 편입됐다. 풍부한 자원이 있어, 1인당 GDP는 베이징시나 상하이시를 크게 웃돌고 있다.
인구[편집]
어얼둬쓰 지급시의 전체 인구는 약 220만명 정도(2022년 기준)로 이는 다른 나라들 기준으로는 상당한 대도시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 특유의 행정구역 체계에 의한 착시인데 명색이 시(市)가 면적 87,000km²로 대만의 2.5배가 넘는다. 대한민국(남한) 전체가 약 10만km²다. 인구밀도가 그나마 가장 높은 중심의 대도시 구역(1km²당 108명)인 둥셩구(东胜区)에는 약 58만 명이 산다. 면적은 2,137km² 정도로 서울의 3배가 넘으며 도쿄와 비슷하다. 인구는 1/22인데도 말이다. 즉, 다른 나라와 엄밀히 비교하면 인구 58만명의 중소도시인 셈이다. 그나마 이것도 2007년의 24만 명에서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교통[편집]
2016년 5월 산시성 시안(西安)과 바오터우(包头)를 잇는 바오시 철도가 개통하여 어얼둬쓰역(鄂尔多斯站)이 개업하였다. 따라서 이곳에도 여객열차가 정차한다. 어얼둬쓰 이진훠러 국제공항(鄂尔多斯伊金霍洛国际机场)이 관내에 존재한다. 국제공항이지만 국내선만 존재한다.[5]
관광[편집]
어얼둬쓰(鄂尔多斯)는 내몽고 남부의 고원에 위치한 도시다. 넓은 초원과 사막이 함께 펼쳐져 있는 특별한 지역이다. 어얼둬쓰는 중국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곳이다. 이곳의 주요 산업은 석탄, 양모, 희토류다. 어얼둬쓰에서는 세계 양모의 30%를 생산하고 있다. 드 넓은 초원이 이를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몽고인들은 아직도 그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파란 스카프로 목을 두르는 것이 이들의 맞이 방식이다.
어얼둬쓰의 초원은 광활하다. 초원은 양과 말 들이 뛰노는 공간이다. 어얼둬쓰 초원에는 호텔과 승마장 등 다양한 편의, 위락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어얼둬쓰의 초원은 주변에 산 하나 없는 대평원이다. 초원과 하늘이 맞닿은 모습이다. 경이롭다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어얼둬쓰는 6월~8월까지는 가을 날씨를 보여준다. 낮 최고기온이 섭씨 27도 내외다. 아침 저녁에는 섭씨 15도 내외라 선선하다. 이곳의 연평균 온도는 섭씨 21도다. 한 여름의 더위를 피해 어얼둬쓰로 피서를 오는 분들이 많다. 주변에 사막과 징기스칸릉이 있어 관광지로도 적격이다.
초원에는 몽고식 주택인 게르가 설치되어 있다. 몽고인은 양을 초원에서 방목하며 생활한다. 이들은 새로운 풀을 찾아 항상 이동을 해야 한다. 때문에 게르는 설치와 철거가 용이한 구조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단열효과가 뛰어나다. 요즘엔 이동을 하지 않고 한곳에 정착하는 몽고인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몽고인들은 평생 초원에서 말을 타고 지낸다. 어릴 때부터 말과 어울리는 이들의 말타기 기술은 신기에 가깝다. 어얼둬쓰 초원에서 몽고인들의 말타는 묘기를 볼 수 있다.[6]
쿠푸치사막[편집]
쿠부치사막(중국어 간체자: 库布齐沙漠, 정체자: 庫布齊沙漠)은 중국 네이멍구자치구의 사막으로, 중국에서 7번째로 큰 사막이자 오르도스사막에 속한다. 이 사막의 면적은 18,600km²이다. 200여 년 전에 초원으로 추정되나 사람들의 무분별한 방목으로 인해 사막화되었다. 1988년 엘리온 그룹과 베이징 정부가 이 사막을 복원하기로 결정하였고, 이들의 노력 끝에, 녹지 3분의 1이 복구되었다. 여름이 되면 쿠부치사막의 인기가 뜨겁다. 여행객들은 드넓게 펼쳐진 사막을 감상하며 낙타 타기, 샌드 슬라이드 등 독특한 체험을 즐기고 있다.
징기스칸능[편집]
징기스칸능(成吉思汗陵)은 어얼둬쓰 중심부에서 약 1시간이 걸린다. 중국에서는 징기스칸을 청지스한(成吉思汗)이라 부른다. 징기스칸능은 전체 면적이 8만km² 나 될 정도로 넓다. 몽고인들은 매년 음력 3월 21일 징기스칸을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 모여든다. 그의 일생에서 유일하게 패한 전투가 있는데 그 날이 음력 3월 21일이란다. 징기스칸은 중국 역사에서도 큰 위인으로 추앙받는다.
징기스칸능 안으로 들어서니 전투 대형을 한 몽고군의 진영이 나타난다. 마치 금방이라도 굉음을 내며 달려들 기세다. 앞에 서면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 맨 앞에 말을 탄 기마병들의 모습은 용맹스러워 보인다. 징기스칸의 몽고군은 기동력이 뛰어났다. 몽고군은 소를 이용해서 막사를 통째로 이동을 했다. 징기스칸의 막사를 이동하는 소는 총 22마리다. 말은 빠르지만 끄는 힘이 부족하다. 소는 빠르지 않지만 막사를 이동하기에 충분한 힘을 지녔다. 이를 잘 활용한 몽고군들의 용병술이 대단하다. 막사를 움직이는 바퀴의 크기가 엄청나다. 그 뒤의 진영을 끄는 소는 8마리다. 징기스칸의 막사에서는 잠도 자고 군을 진두지휘해야 하기 때문에 커야 했을 것이다. 기동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군영이다. 낙타와 개들의 모습도 보인다. 징기스칸의 몽고군은 사막을 지나 서역까지 갔다.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낙타가 필수적이었다. 낙타는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동물이다 전쟁터에는 양까지 동원되었다. 몽고군들은 일부 전쟁터에서 양을 몰고 다녔다. 전투 식량을 직접 끌고 다닌 셈이다. 또한 몽고군은 양이나 말고기를 육포로 만들어서 전투식량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몽고군은 기마병이 주축이 되었다. 몽고인들은 말을 잘 다루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몽고인들은 말에서 태어나 말에서 자라고 말에서 죽는다는 말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어느 군대보다 빠른 기동력으로 세계를 제퍠했다.
중간에 징기스칸 박물관이 나타난다. 박물관도 엄청난 규모다. 여기에 소장된 유물들은 대부분 근대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징기스칸의 초상화가 제일 먼저 나타난다. 세계를 지배했던 인물치곤 평범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의 업적은 세계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엄청나다. 징기스칸 박물관의 대부분은 그의 생애를 그린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많은 관람객들이 위대한 징기스칸의 체취를 느끼기 위해 이곳에 들린다. 안내자의 설명을 들으면 그의 일생이 더욱 실감난다. 징기스칸은 몽고는 물론 중국의 영웅으로 불린다. 2마리의 말이 서있는 기념탑에는 '몽고의 영웅, '중국의 위인' , 세계 역사의 거인' 이렇게 쓰여져 있다. 징기스칸 능이라고 하지만 정작 묘는 없다. 징기스칸의 묘는 어디에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7]
지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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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어얼둬쓰시〉, 《위키백과》
- ↑ 〈鄂尔多斯市〉, 《百度百科》
- ↑ 〈어얼둬쓰시(중국행정구획총람)〉, 《네이버 지식백과》
- ↑ 〈어얼둬쓰(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어얼둬쓰시〉, 《나무위키》
- ↑ INHWAN, 〈내몽고 어얼둬쓰(鄂尔多斯) 초원, 경이로운 몽골의 대초원〉, 《네이버 블로그》, 2019-08-14
- ↑ INHWAN, 〈내몽고 어얼둬쓰 징기스칸능( 成吉思汗陵), 정작 징기스칸의 묘는 없다〉, 《네이버 블로그》, 2019-08-12
참고자료[편집]
- 〈어얼둬쓰시〉, 《위키백과》
- 〈어얼둬쓰시〉, 《나무위키》
- 〈어얼둬쓰시(중국행정구획총람)〉, 《네이버 지식백과》
- 〈어얼둬쓰(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鄂尔多斯市〉, 《百度百科》
- INHWAN, 〈내몽고 어얼둬쓰(鄂尔多斯) 초원, 경이로운 몽골의 대초원〉, 《네이버 블로그》, 2019-08-14
- INHWAN, 〈내몽고 어얼둬쓰 징기스칸능( 成吉思汗陵), 정작 징기스칸의 묘는 없다〉, 《네이버 블로그》, 2019-08-12
- 김길수 기자, 〈세계 최대 비트코인 광산 "비트메인 오르도스 공장" 하루 전기요금만 4400만원〉, 《글로벌이코노믹》, 2017-08-25
- 고란 기자, 〈하루 전기료만 4400만원…비트코인 캐는 사람들〉, 《중앙일보》, 2017-08-31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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