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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6일 (토) 14:46 판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는 시인 최영미가 쓴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나오는 시이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
-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 창자를 뒤집어 보여줘야 하나, 나도 너처럼 썩었다고
- 적당히 시커멓고 적당히 순결하다고
- 버티어온 세월의 굽이만큼 마디마디 꼬여 있다고
- 그러나 심장 한귀퉁이는 제법 시퍼렇게 뛰고 있다고
- 동맥에서 흐르는 피만큼은 세상모르게 깨끗하다고
- 은근히 힘을 줘서 이야기해야 하나
-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 나도 충분히 부끄러워 할 줄 안다고
- 그때마다 믿어달라고, 네 손을 내 가슴에 얹어줘야 하나
- 내게 일어난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 두 팔과 두 다리는 악마처럼 튼튼하다고
- 그처럼 여러 번 곱씹은 치욕과, 치욕 뒤의 입가심 같은 위로와
- 자위 끝의 허망한 한 모금 니코틴의 깊은 맛을
- 어떻게 너에게 말해야 하나
- 양치질할 때마다 곰삭은 가래를 뱉어낸다고
- 상처가 치통처럼, 코딱지처럼 몸에 붙어 있다고
- 아예 벗어붙이고 보여줘야 하나
- 아아 그리하여 이 시대 나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나
- 아직도 새로 시작할 힘이 있는데
- 성한 두 팔로 가끔은 널 안을 수 있는데
- 너에게로 가는 길을 나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