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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0일 (금) 14:27 판

광주시(廣州市)는 대한민국 경기도 중동부에 있는 시이다. 광주산맥에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며, 경안천이 흐른다. 동쪽으로 양평군, 여주시, 서쪽으로 성남시, 남쪽으로 용인시, 이천시, 북쪽으로 하남시, 남양주시와 접한다.

개요

  • 행정 단위: 대한민국 경기도 도시
  • 면적: 431.05km²
  • 인구: 382,054명 (2020년)
  • 시청 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행정타운로 50
  • 시장: 신동헌(더불어민주당)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gjcity.go.kr/

지도

역사

고대시대

본래 백제의 남한산(南漢山) 지역이다. 기원전 6년(백제 온조왕 13년)에 한산(漢山, 현 서울의 한강 이북 지역)의 위례성에서 지금의 서울 송파구, 강동구 일대로 도읍을 옮기고 한성(漢城)이라 불렀다. 이후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를 침공해 한성을 함락한 475년까지 백제의 도읍지였다.(근초고왕 26년인 371년에 도읍을 한산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으나[4], 장수왕이 함락시킨 백제 수도는 한성이라고 기록되어 있다.[5]) 고구려는 한성에는 한산군을 설치하고, 한산에는 '북한산군'(남평양)을 설치하였다. 551년에 백제 성왕이 신라와 연합군을 결성하여 한성을 탈환하였으나, 553년에 신라 진흥왕이 이를 빼앗아 신주를 설치하였다. 557년(진흥왕 18)에 신주를 폐하고 북한산주를 설치하였으며, 다시 568년(진흥왕 29)에 북한산주를 폐지하고 남천주(현 이천시)를 설치하였다. 604년(진평왕 26)에 남천주를 폐하고 북한산주를 설치하였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한 후 주의 거점과 명칭이 한산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6] 757년(경덕왕 16년)에 시행된 한화(漢化) 정책에 따라 전국의 행정구역 명칭을 중국식 한자어로 고치면서 한산주도 한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

고려시대에는 태조 23년(940년)에 곡양현을 금주현(衿州 또는 금州)으로 개칭하였다.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된 시기는 성종대로서 성종2년(983년)에 지방제도의 최초인 12목제(牧制)를 실시하였다. 성종14년(995년)에는 전국을 10도제(道制)로 하였는데 양주(楊州), 광주(廣州), 황해(黃海) 등 여러 주현(州縣)을 통합하여 관내도(關內道)라 하였고, 이어 6개의 적현(赤縣)과 7개의 기현(畿縣)을 관할케 하여 모두 상서도성(尙書都省)에 직속시켜 경기(京畿)라 칭하였다. 현종때에 금주(衿州)는 양광도에 속하여 안남도호부의 예속하에 있었다. 문종23년(1069년)에 50개군으로 확장되어 금주도 처음으로 경기도 관할하에 예속되었고 공양왕 2년(1390년) 경기도를 좌우로 분정하자 경기좌도에 속하게 되었다.

중세 시대

940년(고려 태조 23년)에 한주는 지금의 명칭인 광주(廣州)로 개칭되었다. 983년(고려 성종 2년) 처음으로 십이목(十二牧)을 두었는데, 이 때 광주에 광주목(廣州牧)을 두었다. 995년(고려 성종 14년)에 절도사를 두어 봉국군(奉國軍)이라 이름하고 관내도(關內道)에 속하게 했다. 1012년 (고려 현종) 3년에 폐하여 안무사가 되었다가 1018년(고려 현종 9년)에 8목(牧)을 정할 때에 다시 목이 되었다.[7] 이때, 양광도에 예속되고 안무사를 설치하였다.

근세 시대

조선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명종 14년(1559년)에 목사가 파견되었고 1577년 (조선 선조 10년) 광주부(廣州府)로 승격하고 경안, 오포, 도척, 실촌, 초월, 퇴촌, 초부, 동부, 서부, 구천, 중대, 세촌, 돌마, 낙생, 대왕, 언주, 왕륜, 일용, 월곡, 북방, 송동, 성곶, 의곡면(儀谷面) (도합 23개면)을 관할하였다. 즉 이때 광주부가 승격되면서 광주군의 면이 생긴 것이다. 이후 1626년(인조 4년) 남한산성이 축성되었다.

1789년(정조 13년)에 일용면과 송동면이 수원군으로 편입되었다.

대한 제국

1906년(대한제국 고종 44년) 군(郡)이 되어 군청을 중부면 산성리에 설치하고 북방면, 성곶면, 월곡면을 안산군에, 초부면을 양주군에 편입하였다.

일제 강점기

  • 1911년 8월 29일 상적리에 대왕면사무소를 개설하고 돌마면은 1911년 말 정자리에 면사무소를 개설하였다.
  • 1914년 4월 1일 광주군 군내면 소속의 7개리 (산성, 검복, 불당, 오전, 광지원, 용미, 상산곡리) 와 세촌면 소속의 7개리 중 6개리 (단대, 상대원, 수진, 복정, 창곡, 탄리)를 관할로 하여 중부면이 신설되었으며, 세촌면 1개리(하대원리)는 돌마면에 편입되었음. 이로써 경안면, 중부면, 동부면, 서부면, 오포면, 초월면, 실촌면, 도척면, 퇴촌면, 남종면, 낙생면, 돌마면, 대왕면, 언주면, 구천면, 중대면의 16면으로 개편하고 중부면 산성리에 군사무소를 배치하였다. 이때, 의곡면, 왕륜면을 합하여 "의왕면"(儀旺面)이라 하고 수원군에 편입되고, 양평군 남종면은 광주군으로 편입되었다.[12][13]
  • 1914년 9월 4일 경기도고시 제46호로 도내 각 면의 사무소 위치를 고시하였는데 언주면사무소 소재지는 염곡동, 대왕면은 괴하동이었으며 신동면은 우면리였다.
  • 1915년 동리 폐합과 함께 일부 군·면계가 조정되었으며, 특히 한강 이북에 있던 동부면 팔당리가 양주군 와부면에 편입되었다.[14]
  • 1917년 12월 군청 소재지를 경안면 경안리로 이전
  • 1938년 1월 1일 경안면을 광주면으로 개칭하였다.[15]
  • 1939년 군청 소재지를 광주면 송정리로 이전

현대

  • 1946년 중부면 성남출장소 설치: 중부면은 면 중앙에 남한산성의 준령이 있어 그 서남기슭에 취락이 형성된 지역적 여건으로, 1946년 3월 3일 종전의 세촌면 관할구역 6개리(단대, 탄, 수진, 상대원, 복 정, 창곡리 27.43km2)를 관할하는 중부면 성남출장소를 설치하여 탄리 275번지에 개소하였다가 1948년 수진리로 옮겨 사무를 보게 되었다.

1963년 1월 1일 구천면 등이 서울특별시 성동구로 편입되었다.

  • 1964년 2월 24일: 광주군 조례 제68호에 의거 중부면 성남출장소가 "광주군 직할 성남출장소"로 승격되어 수진리 145번지에 성남출장소 건물을 신축 개소하여, 인구 및 행정수요 증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광주군수 직할 지휘 감독 체제로 전환하였다.
  • 1973년 7월 1일 기존의 경기도 성남출장소 관할하던 지역(대왕면·낙생면·돌마면 일원과 중부면 중 단대리·상대원리·탄리·수진리·복정리·창곡리)을 관할로 성남시가 설치되었다.[18] 그 밖에 초월면 상번천리와 하번천리가 중부면으로, 오포면 목리가 광주면으로, 도척면 삼리와 초월면 신대리가 실촌면으로, 퇴촌면 금사리, 이석리, 삼성리가 남종면으로 편입되었다.
  • 1979년 5월 1일 광주면이 광주읍으로 승격되었다.[20] (1읍 9면)
  • 1980년 12월 1일 동부면이 동부읍으로 승격되었다.[21] (2읍 8면)
  • 1989년 1월 1일 동부읍·서부면 일원 및 중부면 상산곡리를 관할로 하남시로 분리, 설치되었다.[22] (1읍 7면)
  • 2001년 3월 21일 광주군을 광주시로 승격하였다.[1] 이와 함께 광주읍을 경안동·송정동·광남동의 3개 행정동으로 분할하고, 오포면을 오포읍으로 승격하였다. (1읍 6면 3행정동)
  • 2001년 3월 21일: 광주군을 광주시로 승격하였다.[3] 이와 함께 광주읍이 경안동·송정동·광남동의 3개 행정동으로 분동하고, 오포면이 오포읍으로 승격하였다. (1읍 6면 3동)
  • 2004년 6월 21일: 초월면과 실촌면이 각각 초월읍, 실촌읍으로 승격하였다.[4] (3읍 4면 3동)
  • 2011년 6월 21일: 실촌읍이 곤지암읍으로 개칭하였다.[5]
  • 2015년 10월 16일: 중부면이 남한산성면으로 개칭하였다.[6]
  • 2020년 12월 1일: 경안동에서 쌍령동을 분동하고, 남은 경안동과 송정동을 경안동·송정동·탄벌동으로 재편하였으며, 광남동이 광남1동과 광남2동으로 분동하였다(3읍 4면 6동).

지리

광주시는 경기도의 중부에 있는 도시로서 동서간 27.88 km, 남북간 30.26km로 전면적 431km2에 달한다. 동쪽으로 여주시, 이천시에 접하고, 서쪽에는 성남시, 남쪽에는 용인시를 이웃하고 있으며, 한강을 경계로 하여 남양주시, 양평군과 하남시를 마주보고 있다. 서울-부산간 국도가 광주시를 남북을 종단하고 있어 자동차가 빈번히 왕래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광주시의 경작지는 주로 한강 유역과 동서를 관통한 경안천 유역에 있고, 그 외에는 산간 계곡에 흩어져 있으나 산악이 좋은 곳이다.[7]

행정 구역

광주시의 행정 구역은 2016년 8월을 기준으로 3읍 4면 6동 253통리이다.

  • 오포읍(五浦邑)
  • 초월읍(草月邑)
  • 곤지암읍(昆池巖邑)
  • 도척면(都尺面)
  • 퇴촌면(退村面)
  • 남종면(南終面)
  • 남한산성면(南漢山城面)
  • 경안동(京安洞)
  • 쌍령동(雙嶺洞)
  • 송정동(松亭洞)
  • 탄벌동(炭筏洞)
  • 광남1동(廣南1洞)
  • 광남2동(廣南2洞)

관광

  •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에 걸쳐 남한산에 있는 산성으로, 행정 주소 상으로는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로 784-16 (산성리 563)에 속해 있다. 병자호란 때 조선 인조가 청나라에 대항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50년대에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공원화된 후 현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시민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남한산성의 역사는 삼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백제의 수도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되기도 했던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세운 성으로 알려졌으나, 신라 시대에 쌓은 주장성이라는 설도 있다. 조선 시대에 인조와 숙종 때에 각종 시설물을 세우고 성을 증축하여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직전인 1907년에 일본군에 의해 다수의 건물이 훼손되기도 하였다.

1963년 1월 21일 남한산성의 성벽이 국가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고, 1971년 3월 17일 남한산성은 경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제 158호), 5년 후인 1976년 7월 1일 관리사무소가 개소되었다. 1999년에는 남한산성 역사관이 개장하고, 2014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팔당호

팔당호는 팔당댐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호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이다. 흔히 두 물이 만난다 하여 '두물머리'라 한다. 다목적댐은 아니며 일반댐이다. 북한강의 하류지점이며 남한강은 이곳에서 북한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흐른다. 남쪽으론 경안천이 흘러들어온다.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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