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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5일 (수) 10:09 판

레이캬비크 시기
레이캬비크 휘장
레이캬비크 채색 지붕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어: Reykjavík)는 아이슬란드수도이자 회뷔드보르가르스바이디의 행정 중심지인 도시이다. 이 도시는 874년 스칸디나비아족인 잉골프 아르나르손이 정착하여 생긴 도시이며 대기가 맑은 도시이다.

이곳에서 1986년 10월 11일에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이 열렸으며 2000년에서는 유럽 문화 수도에 지정되기도 한 도시이다. 또한 온천이 있는 도시로도 유명한 도시다.

아이슬란드의 유명 코미디언 욘 그나르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이곳에서 시장을 역임한 적이 있다.

개요

역사

아이슬란드 정착 역사에 관하여 기록한 《란드나우마복 Landnámabók(the Book of Settlements)》에 따르면, 이 지역에 사람이 처음 정착했던 시기는 874년 노르웨이인 잉골프 아르나손(Ingólfr Arnarson)에 의해서였다. 전설에 따르면 잉골프는 나무기둥(öndvegissúlur)을 바다에 던진 다음 기둥이 해안으로 돌아오는 노르웨이 방식을 이용하여 정착지를 결정했다고 전해진다. 정착지로 결정된 지역에 온천이 있었다. ‘레이캬비크’라는 도시명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 ‘연기 낀 항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잉골프 아르나손 사후 후손들에게는 종교적 및 정치적 지도자란 의미의 ‘Allsherjargoði’이란 명칭이 주어졌다. 이들은 집단 통치를 시작했으며 ‘Kjalarnes Assembly’를 조직하여 주변 부족들과 연합해나갔다.

  • 930년경 이들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의회로 여겨지는 알팅기(Alþingi)를 형성하였다.
  • 13세기 노르웨이 왕국에 흡수되었고 이후 1380년에는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삼국 연합인 칼마르 연합(Kalmar Union)에 통합되었으며 덴마크 왕국의 지배 하에 있었다.
  • 11세기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었던 아이슬란드는 16세기 루터교로 개종했고 오랜 시간 종교 개혁 및 종교 투쟁을 겼었다. 이러한 문제와 더불어 아이슬란드의 제한된 자원, 기후조건과 같은 문제들은 주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고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시간이 지나면서 덴마크의 영향력은 강화되었다.
  • 19세기 아이슬란드에는 민족주의 정서의 영향으로 독립사상이 널리 퍼졌다. 레이캬비크는 이러한 사상의 중심지였고 독립 투쟁의 역사에서 중요한 지역으로 자리한다. * 1845년 아이슬란드 의회(알팅기)가 레이캬비크로 자리를 옮겼고 사실상 레이캬비크가 아이슬란드의 수도로 자리 잡았다.
  • 1874년 헌법제정 및 알팅기의 제한된 입법권 획득으로 오늘날과 같은 기관이 되었다.
  • 1904년 내정자치를 승인받았고 1918년 12월 1일 주권국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영국군이 아이슬란드를 점령했고, 전쟁기간 아이슬란드는 중립정책을 고수했으며 이후 미국이 주둔하기도 했다. 이 시기 영국과 미국이 아이슬란드를 전략적 요충지로 삼으며 공항을 건설했고 이는 대공황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레이캬비크의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 1944년 아이슬란드 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레이캬비크의 성장이 가속화되었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도시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며 레이캬비크는 근대도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 1972년 레이캬비크에서는 세계 체스 챔피언십 대회가 열렸다.
  • 1986년에는 미국-소련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레이캬비크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 1990년대 금융 부문의 규제 완화와 컴퓨터 혁명은 레이캬비크를 다시 변화하게끔 만들었으며 오늘날 금융, IT는 이 도시의 주요 산업으로 꼽힌다.

지리

Akrafjall 산(가운데)과 Esja 산 (오른쪽)을 배경으로 한 레이캬비크 전경

레이캬비크는 아이슬란드섬 남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해안은 반도, 만곡, 해협, 섬이 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가장 큰 강은 엘리다(Elliðaá) 강인데 배가 지날 수 없다. 도시 내 강에서 연어 낚시를 할 수 있다. 레이캬비크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은 에샤(Esja)다.

기후는 냉대습윤기후(Dfc)에 가까운 아극 해양성 기후(Cfc)가 나타나며 고위도에 위치해 있어 툰드라기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계절에 따라 긴 낮과 밤을 볼 수 있다. 때문에 5~7월 사이에는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백야 현상이 나타나며 반대로 12~1월 사이에는 극야현상이 나타난다.

고위도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대서양 해류와 걸프해류의 영향으로 겨울 기온이 영하 15°C 이하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어 비교적 온화한 겨울이 나타나며 여름은 평균적으로 10~15°C로 시원한 여름을 볼 수 있다. 다만, 도시의 위치가 바다와 근접한 탓에 바람이 잦고 겨울에는 강풍이 불기도 한다.

연 강수량은 840mm며 여름보다는 겨울에 더 높은 강수량이 나타난다.

행정 구역

레이캬비크는 10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뉘며 대부분 20세기에 형성되었다.

경제

18세기 중반까지 주요 산업은 농업이었다. 하지만 1786년 덴마크 왕국은 독점 거래를 폐지했고 아이슬란드 전역에 무역헌장 6군데를 설치했다. 레이캬비크는 그 중 한 곳으로 이는 무역도시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1749년 사법집행관으로 임명된 스쿨리 마스누손(Skúli Magnússon)은 주식회사 인레틴가르(Innréttingar)를 설립하면서 모직물 제품을 생산하려 했으나 덴마크 왕 프레드릭 5세(Frederik V)의 지원으로 16개의 추가 시설을 건설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회사는 유황채굴, 어업, 농업, 조선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했고 이 무렵 도시의 산업화가 일어났다.

이후 지속적으로 산업이 발전하면서 1880년에는 레이캬비크는 모든 나라와 무역이 가능할 정도로 성장했고 아이슬란드 상인들의 영향력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농업도 19세기 후반~20세기 초까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농업으로 발전하였다.

1960년대 후반까지 도시 내에서도 전통적인 농장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도시 외곽에 상업농업이 존재한다.

오늘날 레이캬비크의 주요 산업은 금융, IT이다. 은행 시스템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전면 개편돼 2020년 현재 아이슬란드 증권거래소(ICEX)를 비롯해 3대 시중은행 NBI, Arion Bank, Islandsbanki, 소규모 은행 및 저축은행들이 레이캬비크에 있다.

관광산업도 아이슬란드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으로 아이슬란드 방문객들이 숙박시설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은 수도인 레이캬비크이다. 어업 또한 1920~30년대 발전하여 아이슬란드 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수산가공·냉동·간유제조·조선업과 관련된 회사들이 레이캬비크에 위치해있다.

문화

  • 문화의 밤’(culture night, Menningarnótt): 8월 셋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행사로 레이캬비크에서도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다. 1996년에 처음 시작하여 도심 내 다양한 문화 행사, 콘서트, 항구에서 불꽃쇼 등이 열리고 매회 10만여 명이 참석한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지열을 이용한 온천 및 수영장을 저렴한 비용으로 1년 내내 즐길 수 있는데, 레이캬비크에서도 다양한 곳을 방문할 수 있다.
  • 할그림스키르캬 교회(Hallgrimskirkja): 뫼보르그(Miðborg)에 있는 루터교 교회다. 교회명은 아이슬란드 성직자이자 시인인 할그리뮈르 페튀르스손(Hallgrímur Pétursson)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 그뷔드욘 사무엘손(Guðjón Samúelsson)이 디자인했으며 1937년 설계, 1986년 완공되었다. 레이캬비크 최대 랜드마크로 높이는 약 74m이며 초대형 오르간이 있고 정기적으로 오르간을 연주한다.
  • 레이프 에이릭손(Leifur Eiriksson)의 동상: 할그림스키르캬 교회 앞에 있으며 그는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난 탐험가로 콜럼버스보다 앞선 시기 북아프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이다. 그의 동상은 1930년 아이슬란드 위회 개최 1000년을 기념하여 미국 정부가 축하의 의미로 기증한 것이다.
  • 하르파 홀(Harpa Concert Hall): 해변에 위치한 하르파 홀(Harpa Concert Hall)은 2011년 개관했다. 현무암 절벽을 형상화 한 유리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날씨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며 공연뿐 아니라 간담회 등도 열린다.

교육

레이캬비크에는 아이슬란드 대학교, 레이캬비크 대학교, 아이슬란드 예술대학이 있다.

  • 아이슬란드 대학교(University of Iceland)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고등교육기관으로 국립과학연구소가 위치해 있다. 1911년 설립된 이 학교는 종합대학으로 성장하여 14,0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사회과학, 인문, 법학, 의학, 자연과학, 공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 레이캬비크 대학교(Reykjavík University)는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큰 사립대학교로 3,500여 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1988년 컴퓨터 과학을 시작으로 10년 뒤 경영대학이 설립되었고 2000년 ‘레이캬비크 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2002년 법학대학, 2005년 아이슬란드 기술 대학교와 합병하면서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 대학에는 2020년 현재 법학대학, 경영대학, 컴퓨터과학대학, 공과대학이 있다.
  • 아이슬란드 예술대학(Iceland Academy of the Arts)은 아이슬란드에서 유일하게 대학 수준의 예술 교육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1998년 9월 21일 아이슬란드 연극학교(Iceland Drama School)와 레이캬비크 예술학교(Reykjavík Arts Schoo)를 통합하여 설립되었으며 1999년 가을부터 정규과정이 시작되었다. 2020년 현재 예술교육, 디자인 & 건축, 미술, 음악, 연극 & 무용 총 5개 학부가 개설되어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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