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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2일 (토) 11:3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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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중부지방은 지리적으로 인도 공화국의 중부지역을 말한다.[1]
목차
개요
인도 중부지방은 대략 북위 21도에서 25도, 동경 73도 에서 80도 사이 에 있는 지역이다. 인도 중부지방은 느슨하게 정의된 지역이다. 명확한 공식 정의는 없으며 다양한 정의가 사용될 수 있다. 한 가지 일반적인 정의는 거의 모든 정의에 포함되는 차티스거주 및 마디아프라데시주로 구성된다. 일부 다른 정의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동서 축에서 "중앙"인 북부 인도의 일부를 차지한다. 따라서 인도 정부가 설립한 중앙 구역 위원회는 이 두 주와 북쪽의 우타르프라데시 및 우타라칸드를 포함하며 마지막으로 히말라야산맥의 티베트와 중국과 국경을 접하게 된다. 인도르는 인도 중부지방에서 가장큰 도시 이다.[2][3]
자연환경
인도 중부지방은 거의 전역에 비옥한 힌두스탄 평야가 펼쳐져 있고, 인도 남부의 거의 전역은 데칸고원이 차지한다. 데칸고원은 중부 인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고원으로 북쪽으로는 빈디아산맥, 서쪽으로는 서가츠산맥, 동쪽으로는 동가츠산맥과 접하고 있는 거대한 삼각형 모양의 고원이다. 데칸 트랩이라고 하는 6600만 년 전의 거대한 화산 활동의 영향으로 인해 형성되었으며 면적은 대략 190 km²이다. 고원의 평균 높이는 해발 600m 정도로 서가츠산맥 경계에서는 910m, 동가츠 산맥 경계에서는 300 m의 높이며 서쪽으서 동쪽으로 갈수록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중부 인도를 흐르는 4대 하천 고다바리강, 크리슈나강, 마하나디강, 카베리강을 포함하여 수많은 강들이 데칸 고원을 통과하여 벵골 만으로 흐른다. 산맥 사이에 끼어있는 고원의 특성상 대체적으로 건조한 기후를 띤다.
중부 인도의 4대 하천인 고다바리강, 크리슈나강, 마하나디강, 카베리강이 벵골만으로 흐르기 때문에 동가츠 산맥은 연속되어 있는 하나의 산맥이 아닌 4대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중간중간 끊겨있는 구조이며 전체적인 높이는 서가츠 산맥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4]
문화
인도의 문화는 무려 4,5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오랫동안 발전해왔다. 기원전 1700년 경부터 시작된 베다 시대에 현대 힌두 문학, 신화, 세계관, 철학 등의 기초가 놓였으며, 이때 시작된 관습들과 사상들, 예를 들어 다르마, 카르마, 요가 등의 것들이 아직까지도 전해져 내려온다. 인도는 세계적으로도 다양한 종교로 유명한데, 힌두교, 불교, 시크교, 이슬람교, 기독교, 자이나교 등이 주요 종교를 점하고 있다. 가장 주요 종교는 인도에서 발흥한 힌두교로, 여러 분파로 나뉘어 있으며 가장 주요한 신들에는 창조의 신 브라마, 질서의 신 비슈누, 파괴의 신 시바 등이 있다. 힌두교는 이후에 발생한 불교에도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예술
인도의 건축의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타지마할 등이 있다. 타지마할과 같은 건물들은 무굴 제국의 양식과 남인도의 건축 양식이 혼합된 것으로, 인도 토착 건축 양식과 해외에서 전래된 양식들이 아름답게 섞여 있다. 인도에서는 외적인 조형미 외에도 내적인 건축 방식 또한 대단히 중시하는데, 이 또한 지역마다 특색이 있어 모두 다르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점에서는 동아시아의 건축과도 유사성을 띠는데, 인도에서는 기하학과 도형학을 건축에 적용하여 우주의 원리를 건물 속에 녹여내고자 한 것이다. 주로 힌두교의 사원들도 인도의 건축을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건물들인데, 주로 ‘바스투 푸루샤 만달라’라고 불리는 고대 힌두 예술 문헌들에서 본을 따 지은 것들이다. 인도의 랜드마크이자 상징이기도 한 타지마할은 1631년과 1648년에 샤자한 황제가 자신의 아내를 기리기 위하여 지었는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자 국제적으로 공인된 세계의 문화대작’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었다. 한편 19세기 후반에는 신인도-사라센 양식이 영국인들에 의하여 인기를 끌기도 하였으며, 이때 인도-이슬람 양식이 주 건축양식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인도의 초기 문학은 주로 기원전 1500년과 기원후 1200년 사이의 문학을 뜻하며, 주로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졌다. 산스크리트 문학의 대표적인 명작들에는 리그베다, 유명한 힌두 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시와 희곡들이 현재까지 남겨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타밀계 문학들 중 상감 문학은 현재까지도 473명의 시인들이 지은 2,381개의 시들이 남겨졌는데, 이 것이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들이다.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인도의 문학은 카비르 다스, 툴시다스, 구루 나낙과 같은 명시인들이 연이어 나오며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생각과 표현의 방식이 극히 다양해졌으며, 이로 인하여 중세 인도 문학은 고전 인도 문학에 비하여 확연한 풍부성을 갖추고 있다. 19세기에는 인도의 작가들은 사회적인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으며, 사람의 내면에 집중하였다. 20세기에는 벵갈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등장하여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하였다.
대중문화
인도의 음악은 지역마다 모두 특색이 다르고, 전통 음악과 현대적 음악이 뒤섞여 매우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인도의 고전 음악은 주로 북부의 힌두 음악과 남부의 카르나타 음악이 있다. 인도의 춤 또한 다양한 민속 전통과 합쳐져 미묘하게 어우러지고 있는데, 지역마다 모두 다르다. 펀자브 지역에서는 반그라 춤, 아사 지역에서는 비후 춤, 자칸드, 오디샤와 서벵골 지역에서는 주마이르 춤과 차우 춤, 구자라트 지역에서는 가르바 춤과 단디야 춤, 라자스탄에서는 구마르 춤, 마하라슈트라에서는 라바니 춤이 유명하다. 한편 8개의 무용 형태들은 인도 국립 음악, 무용, 연극 학회에 의하여 공식 고전 무용으로 지정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8개의 형태들에는 타밀 나두의 바라타나트얌, 우타르프라데시의 카타크, 케랄라의 카타칼리와 모히니야탐, 안드라프라데시의 쿠치푸디, 마니푸르의 마니푸리, 오디샤의 오디시, 아삼의 사트리야 등이 있다. 인도의 전통 연극은 음악과 춤, 대본이 화려하게 뒤섞여 있다. 종종 힌두교의 신화에 기본 각본을 덧입히는 형태가 가장 많으나, 중세의 로맨스나 사회정치적 사건들도 다루곤 한다. 인도의 유명 연극에는 구자라트의 바바이, 서벵골의 자트라, 북인도의 나우탄키와 라밀리아, 마하라슈트라의 타마샤, 안드라프라데시의 부라카타, 타밀 나두의 테루쿠투, 카르나타카의 야크샤가나 등이 있다. 인도는 국립연극학교를 따로 뉴델리에 세워 젊은 연극인재들을 양성하고 있으며, 문화부 산하에 둔 국립기관으로 만들어 정부의 지원을 하고 있다. 인도는 영화 산업으로도 대단히 유명하다. 볼리우드로 상징되는 인도의 영화계는 세계에서 가장 관객 수가 많은 시장이기도 하며, 전체 박스오피스 수입의 43%가 볼리우드, 즉 힌두계 영화들이며 그 다음이 남인도의 텔루구 영화와 타밀 영화가 36% 정도를 차지하며 뒤쫓고 있다.
1959년부터 인도에서 TV 전파가 시작되었으며, 국영방송으로 시작된 방송국들은 점차 민간 부문들이 활발히 참여하며 지난 20여년 동안 크게 발전하였다. 1990년대에 이르러 드디어 국가가 방송에 대한 독점을 종결하였고, 이때부터 대대적으로 시작된 위성방송들은 인도의 대중문화 형성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현재 텔레비전은 인도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미디어들 중 하나로, 2012년 기준으로 5억 5,400만 명에 달하는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신문, 라디오, 인터넷과 비교하여도 훨씬 더 많은 양의 소비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의 예술과 문화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전통 예술에서 현대 예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독립 이래 연방 정부와 여러 주정부는 랄리트칼라 아카데미(국립 미술 아카데미)·상게트나타크 아카데미(음악·무용·드라마 아카데미)·사히티아 아카데미(국립 문학 아카데미) 등 여러 문화·예술 관련기관을 설립하여 예술·문화활동을 촉진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인도는 또한 영화 문화 산업이 매우 발달해있다.
의복
인도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헐렁한 천 형태의 의복을 주로 입고 다녔다. 여성의 경우에는 사리를 주로 입고 다니는데, 사리는 거대한 천 하나로 구성되어 있으며 길이가 6야드가 넘으며 몸 전체를 칭칭 싸매는 형태로 되어 있다. 사리는 허리부터 두르기 시작하여 한쪽 끝을 고정한 뒤, 하체 전체를 두른 이후에 어깨에 천 끝부분을 얹고 다니는 것이다. 현대의 사리는 머리까지도 덮을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어떨 때에는 마치 베일처럼 얼굴까지 가릴 수 있게 되어있기도 하다. 주로 인도식 페티코트와 함께 입으며, 흘러내리지 않도록 허리에 딱 붙는 띠를 맨다. 또한 인도식 블라우스와도 함께 입어지는데, 블라우스는 주로 상체를 가리며 사리의 어깨쪽 끝을 자연스럽게 덮어 사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방지하는 기능을 함께 하기도 한다.
남성의 경우에도 사리와 비슷하나 길이가 더 짧은 도티라는 옷을 입는다. 하체를 가리는 용도이며, 사리와 비슷하게 허리에 감으며 신체에 둘러지는 천 형식을 하고 있다. 남인도 지방에서는 하체 전반에 모두 감기며, 끝부분은 허리춤에 끼워넣는다. 북인도에서는 각 다리에 한번씩 더 감아주고, 다리 사이로 끝부분을 넣어 고정시키기도 한다. 또다른 전통 의복에는 남성과 여성이 신체를 가리거나 추위를 막기 위하여 쓰는 차도르, 태양과 추위를 가리기 위해 입는 터번과 비슷한 파그리 등이 있다.
인도는 제1천년기 동안 전혀 바느질되지 않은 의복을 입고 다녔다. 쿠샨인들이 48년 즈음에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오자, 북인도에서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제도되고 바느질을 한 의복들이 엘리트층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일반인들은 여전히 바느질을 하지 않은 의복들을 입었고, 델리 술탄조와 무굴 제국 시기에 이르러서야 바느질을 한 의복들이 대대적인 인기를 끌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중세와 근세 북인도에서 주로 입었던 것들에는 바지와 비슷한 샬와르와 피자마, 튜닉과 비슷한 쿠르타와 카미즈 등이 있었다. 남인도에서는 다만 바느질을 하지 않은 의복들이 여전히 사용되곤 했다.
지난 50년 동안, 인도의 의복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북인도 지방의 도심 지대에서는 사리가 더 이상 일상 의복이 아니며, 오직 공식적인 행사 등에서만 간간히 입는 옷이 되었다. 전통적인 샬와르나 카미즈 등은 주로 어린 여성들이 간혹 입는 경우가 많으며, 이들마저도 더 편한 청바지나 티 종류를 선호한다. 남성들이 주로 입었던 쿠르타도 현재 인기가 떨어지며 서양식 의복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특히 에어컨 등이 인도 전역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아지며 화이트칼라 사무직들은 스포츠 자켓과 같은 편한 의상들을 훨씬 선호한다. 결혼식이나 공식 행사의 경우에는 중산층, 상위층 사람들은 주로 반드갈라(인도식 정장)이나 네루 자켓(네루 총리가 입어 유명해진 자켓) 등을 입고 참석한다. 한때 인도인들이 즐겨 입었으며 간디가 직접 물레를 돌려 만들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진 도티는 더 이상 도심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며, 힌두교의 사제들만이 간간히 입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음식
인도의 요리는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와 특색을 가지고 있다. 워낙 영토가 넓기에 토양, 기후, 문화, 인종, 국가들도 모두 달랐고, 이에 따라 모두 다른 식문화들이 형성된 것이다. 주로 토착 향신료, 허브, 채소, 과일들을 주재료로 사용한다. 인도의 식문화는 특히 힌두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무굴 제국의 통치기로 인하여 이슬람의 영향도 강하게 받았다. 남서부 해안지역에서는 포르투갈의 영향을, 19세기에는 영국의 영향도 크게 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음식들에는 인도의 쌀밥과 비슷한 필라프, 치킨과 비슷한 비리야니, 빈달루 커리, 머튼 커리 등이 있다. 또한 아메리카 대륙에서 전래된 감자, 토마토, 땅콩, 캐슈넛, 파인애플, 구아바, 칠리 고추 등이 큰 영향을 미쳤으며, 모두 현재의 인도 음식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그 외에도 인도의 풍요로운 향신료는 유럽인들이 대항해시대의 문을 열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할 정도였다.
인도의 곡식 재배는 특히 몬순 기간에 영향을 많이 받고, 강우량에 따라서 전국적으로도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관개 시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의 인도에서는 강우량에 의하여 곡물들이 확연히 자라는 지역들이 달랐는데, 물이 많이 필요한 쌀은 북동부와 서부 해안 지대의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 재배되었으며, 기장처럼 물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데칸 고원이나 라자스탄주 등에서 재배되었다.
인도인들은 주로 곡물을 빻아 반죽으로 만들어 구워 난을 만든 다음, 여러 향이 강한 반찬들과 곁들여 먹는다. 주로 렌틸콩 등을 재료로 사용하며, 마늘과 생강과 같은 향신료를 넣은 채소와 함께 먹는 것이다. 다만 그 외에도 고수, 쿠민, 강황, 계피, 카다몬 등의 향신료도 함께 사용한다. 먹을 때에는 ‘탈리’라고 불리는 식판 위에 음식들을 올려놓는데, 곡물류 음식을 중간에 놓으며 그 주위에 있는 작은 판들 위에 반찬들을 놓는다. 인도 음식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여러 채식 음식들이 많다는 것이다.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에서 유래된, 모든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겠다는 뜻의 아힘사 문화이기도 한데, 이 때문에 남인도, 구자라트, 북중부 인도에서는 거의 채식 위주의 음식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육류를 대체적으로 기피하며, 이로 인하여 인도는 막대한 인구에도 불구하고 육류 소비량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중국의 경우에는 육류 섭취량이 크게 증가하였으나, 인도는 그 검소한 식문화와 채식 위주의 식문화로 인하여 우유나 유제품을 통하여 동물성 단백질을 주로 섭취하고 있다.
인도는 특히 무굴 제국기에 큰 식문화 변동을 겪었다. 인도는 쌀의 재배가 이미 훨씬 전에 알려져는 있었으나, 무굴 제국기에 들어서야 필라프와 같은 주식으로 만들어지고 널리 퍼진 것이다. 요구르트에 고기를 재우는 등 다양한 요리 기술들이 이때 보급되었다. 페르시아에서 전래된 요구르트를 인도에서는 양파, 마늘, 아몬드, 향신료 등을 넣어 먹었다. 쌀은 무굴의 수도인 아그라에서까지 재배되었고, 이슬람 세계에서도 그 뛰어난 맛으로 유명하였다. 또한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고기에 소스를 치고, 냄비 뚜껑을 꽉 닫아 풍미를 더하며 느리게 요리하는 등의 문화도 전파되었다. 인도의 식문화는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가장 대표적으로는 커리나 탄두리 치킨 등이 있다. 탄두리 치킨은 탄두르 오븐에서 굽는데, 펀자브나 델리 시골 지방에서 무슬림들이 빵을 굽기 위하여 사용한 것이었다. 다만 탄두르 오븐은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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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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