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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야군(金野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남도 남부에 위치해 있는 군이다.[1][2] 1977년 3월에 기존 영흥군이 금야군(金野郡)으로 개칭되었다.
개요[편집]
금야군의 면적은 652.5km²이며 인구는 211,140명(2008)이다. 서쪽은 요덕군과 고원군, 북쪽은 정평군과 접하며, 동쪽은 동해에 면해 있다. 동서(연동리~문하리)의 길이는 41km이고, 남북(호도리~청백리)의 길이는 34km이며, 도 면적의 3.5%를 차지한다. 현재 행정구역은 1읍 4구 50리로 되어 있으며 군 소재지는 금야읍이다.
1977년 3월에 금야(金野)군으로 개칭되었는데, 검은 금(석탄)이 많이 나고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금야라는 명칭은 김일성의 작명이었다. 1975년경 김일성이 영흥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듣고 당장 이름을 바꾸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이때 영흥역도 금야역으로 바뀌었다. 김일성이 지은 이름인 만큼 통일 이후에는 영흥군으로 환원되거나, 혹은 더 이전의 지명인 화령군이나 화주군이 될 수도 있다.
행정구역상 호도반도가 여기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원산하고 맞붙어 있는지라 호도반도가 '원산'으로 잘못 표기되기도 한다.[3]
자연환경[편집]
금야군은 대부분 높고 험한 산지로 되어 있다. 금야군 전체 면적에서 해발 200m 이하의 지역이 1.4%, 200~500m의 지역이 18.2%, 500~800m의 지역이 32.2%, 800~1,000m의 지역이 21.4%, 1,000m 이상의 지역이 26.8%를 차지한다.
금야군의 북부에는 부전령산줄기, 동부에는 대덕산줄기, 서부에는 거두봉산줄기가 뻗어 있으며 북서부에 희사봉(2,117m), 북부에 남산(南山, 1,684m) · 후치령(厚峙嶺, 1,325m) · 검덕산(劍德山, 1,682m), 북동부에 대덕산(大德山, 1,445m), 동부에 망덕봉(望imagefont峰, 1,160m) · 궐령(蕨嶺, 559m), 남서부에 거두봉(擧頭峰, 1,303m) · 발의봉(發義峰, 1,477m), 서부에 차일봉(遮日峰, 1,667m) · 마산(馬山, 1,707m) · 사심봉(1,236m) · 천산대봉(天山大峰, 1,976m) 등이 솟아 있다.
금야군의 지질은 시생대 낭림층군, 하부원생대 마천령계의 성진통 · 북대천통 · 남대천통의 지층으로 형성되어 있다. 주요 암석은 화강편마암, 결정편암, 대리암이며 주요 관입암은 하부원생대 이원암군의 섬장암, 반려암과 중생대 단천암군의 화강암이다. 주요 지하자원은 동, 금, 납, 아연, 석, 철, 흑연, 석면 등이 있다.
덕성군은 함경남도에서 기온이 낮고 강수량이 비교적 적은 지역에 속한다. 덕성에서 연평균기온은 8.5℃이고, 1월 평균기온은 -7.1℃이며, 8월 평균기온은 22.4℃이다. 연평균최고기온은 14.7℃이고 1월 평균기온은 -0.1℃이고 8월 평균최고기온은 27.2℃이며 연평균최저기온은 3.5℃, 1월 평균최저기온은 -12.2℃, 8월평균최저기온은 18.7℃이다.
최고극기온은 38.8℃(1980년 6월 5일), 최저극기온은 -22.3℃(1967년 12월 9일)였다. 0℃이상 적산온도는 3,616℃, 5℃이상 적산온도는 3,519℃, 10℃이상 적산온도는 3,216℃, 15℃이상 적산온도는 2,577℃이다. 연평균일조율은 54%이다. 첫 서리는 10월 중순, 마지막 서리는 4월 말에 내린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북청남대천 계곡을 따라 ‘내기바람’이 분다.
연평균강수량은 797mm이며 그의 60%가 6~8월경에 집중되어 있다. 비가 가장 많이 내린 해의 연강수량은 1,280mm(1962년), 가장 적게 내린 해의 연강수량은 509mm(1980년)였다. 1일최대강수량은 168.6mm(1979년 8월 17일), 2일최대강수량은 228mm(1962년 8월 1~2일)였다. 눈이 많이 내리는 기간은 11월 중순부터 다음해 4월 초까지 139일 정도이다. 눈이 가장 많이 쌓인 높이는 58cm(1979년 1월 31일)였다.
군 영역으로는 북청남대천과 이 강에 유입되는 50여 개의 강 하천이 흐르고 있다. 그 중 길이가 20km 이상인 하천은 거서천(車書川, 53.6km), 곤파천(坤坡川, 48.5km), 통괄령천(35.3km) 등이 있으며 그 밖의 하천들은 모두 길이가 5~20km인 중소하천들이다. 이 하천들은 일반적으로 길이가 짧고 유역너비가 좁으며 물매가 급한 산지하천의 특성을 띠고 있다. 금야군에는 엄동저수지(嚴東貯水池)를 비롯한 관개용 저수지와 보가 축조되어 있다.
산림은 금야군 전체 면적의 89%로서 도에서 산림이 가장 많은 군의 하나이다. 산림축적량에서 침엽수가 70%를 차지하는데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잎갈나무 등이 주요 수종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 참나무, 물푸레나무, 피나무, 고로쇠나무 등 활엽수들도 분포되어 있다. 금야군에서 가장 높은 지대인 희사봉마루에는 아한대성식물인 눈측백나무, 곱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밖에 덕성군에는 잣나무, 가래나무, 산초나무, 쪽동백나무, 딱총나무 등 가치 있는 경제식물들도 재배하고 있다.
산림에는 머루, 다래, 송이버섯, 더덕, 참나물, 고비, 두릅, 산마늘 그리고 당귀, 족도리풀, 삼지구엽초, 오미자, 삽주 등 산중부원이 풍부하다. 덕성군의 동물상은 비교적 다양한데 산양, 검은담비, 곰, 여우, 너구리, 오소리, 멧돼지, 노루 등 산짐승들이 서식하고 있다. 후치령에서는 조선특산아종나비인 후치령숫돌나비가 처음으로 채집되었다. 주요 토양은 표백성토양, 포백화갈색산림토양, 갈색산림토양이며 강하천 연안을 따라 일부 충적토도 분포되어 있다.[4]
역사[편집]
금야군 지역의 소라리에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유물들이 발굴된 것은 적어도 이때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문헌기록에 의하면 금야군 지역은 남옥저에 속해 있었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판도로 되어 장령진(長嶺鎭)이라 하였으며 후에 신라의 지배하에 있었다. 신라문무왕 9년 발해국 개국에 이르러 발해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에 소속되었다. 발해가 패망한 후 금야군 지역은 오랫동안 여진족의 손아귀에 들어 있었다. 그러다가 고려가 건립되면서 금야군 지역은 고려의 영역으로 되어 화주(和州)로 개칭되었다.
995년(성종 14년)에 화주안변도호부(和州安邊都護府)로 개편되었다가 1018년(현종 9년)에 화주방어사(和州防禦使)로 강등되었고 13세기 중엽에는 원나라가 화주에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를 두고 금야군 지역을 지배하였다. 1356년(공민왕 5년)에 다시 고려의 판도로 수복되었고 1369년(공민왕 18년)에 화령부(和寧府)로 승격되었다. 조선왕조가 들어서면서 1393년(태조 2년)에 이곳에 이성계의 외할아버지의 고향 영흥진이 있다 하여 영흥부로 고쳤다.
1416년(태종 16년) 함길도의 관찰사영을 함흥으로 이전하면서 화주목으로 개칭하였다가 1426년(세종 26년)에 영흥대도호부로 승격되었으며 1470년(성종 1년) 이시애란으로 함길도 관찰사영을 영흥으로 다시 이전하고 영흥부로 고쳤다. 그 후 1509년(중종 4년)에 관찰사영을 다시 함흥으로 이전하고 영흥대도호부를 설치하였다.
1895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시에 부군제를 실시하면서 함흥부 영흥군으로 되었다가 그 이듬해인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함경남도 영흥군으로 되어 홍인사(洪仁社), 복흥사(復興社), 순녕사(順寧社), 억기사(憶岐社), 진평사(鎭坪社), 영인사(寧仁社), 인흥사(仁興社), 덕흥사(德興社), 장흥사(長興社), 선흥사(宣興社), 요덕사(耀德社), 횡천사(橫川社), 운곡사(雲谷社) 등 13개 사를 관할하였다.
조선 말에 사 전체가 면으로 개편되면서 운곡면이 고원군에 이관되었고, 1910년대 초에 영인면이 고녕면(古寧面)과 호도면(虎島面)으로 분리되었으며, 1935년에 흥인면이 영흥면(永興面)으로 개칭되었다. 1943년에 영흥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복흥면 전체를 흡수하였고 광복 후에 다시 면으로 강등되어 당시 군 산하에 11개 면이 있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전 영흥군의 덕흥면, 고녕면, 호도면의 전체 리와 인흥면의 30개 리, 순녕면의 1개 리, 진평면의 13개 리를 신설되는 인흥군(仁興郡)에 편입하였고, 선흥면 · 요덕면의 전체 리와 횡천면의 23개 리는 신설되는 요덕군(耀德郡)에 편입하였다.
동시에 전 영흥군의 영흥면 · 억기면 · 장흥면의 전체 리와 순녕면의 29개 리, 진평면의 5개 리, 횡천면의 1개 리, 인흥면의 1개 리를 통합하여 영흥군을 구성하고 영흥면의 삼사리 · 용남리 · 도랑리 · 연당리 · 남산리 · 도정리 · 운평리를 병합하여 영흥읍(永興邑)을, 영흥면의 필석리 · 중동리와 순녕면의 유남리 · 유북리를 병합하여 중남리(中南里)를, 순녕면의 석북리 · 석남리 · 송전리 · 두산리를 병합하여 평화리(平和里)를, 순녕면의 상갈전리 · 하갈전리 · 풍동리 · 남양리를 병합하여 갈전리(葛田里)를, 순녕면의 신정리 · 경암리 · 성남리 · 풍흥리를 병합하여 순안리(順安里)를, 순녕면의 작산리 · 쌍화산리 · 소라리를 병합하여 용강리(龍江里)를, 억기면의 덕미리 · 신산리 · 삼기리를 병합하여 덕산리(德山里)를, 억기면의 신흥리 · 남북세리 · 중흥리와 진평면의 평탄리 · 인흥면의 인남리를 병합하여 흥평리(興坪里)를, 억기면의 인흥리 · 미흥리 · 봉조리를 병합하여 봉흥리(鳳興里)를, 억기면의 용호리 · 오포리 · 구만리를 병합하여 구룡리(九龍里)를, 억기면의 유도리 · 율산리와 진평면의 제도리를 병합하여 해중리(海中里)를, 억기면의 인성리 · 남성리 · 재리를 병합하여 성재리(成-里)를, 장흥면의 봉남리 · 봉양리 · 초하리 · 초상리를 병합하여 봉산리(鳳山里)를, 장흥면의 인하리 · 삼봉리 · 문성리 · 신흥리를 병합하여 신성리(新城里)를, 장흥면의 늪재리 · 인상리 · 원산리 · 동하리를 병합하여 수원리(水源里)를, 장흥면의 염교리 · 송천리 · 원하리 · 정산리를 병합하여 용흥리(龍興里)를 각각 신설하고 영흥면의 문하리 · 상태리 · 반룡리와 횡천면의 산계리를 병합하여 문하리(文下里)로, 영흥면의 영풍리 · 팔정리와 순녕면의 원천리 · 흥남리를 병합하여 영풍리(永豊里)로, 영흥면의 용원리 · 신흥리와 장흥면의 인흥리를 병합하여 용원리(龍源里)로, 영흥면의 사현리 · 성동리 · 상산리 · 용연리를 병합하여 사현리(社峴里)로, 영흥면의 상중리 · 하국사리 · 국태리를 병합하여 상중리(上中里)로, 순녕면의 중양리 · 광진리 · 정자리 · 대흑석리 · 소흑석리를 병합하여 중양리(中陽里)로, 순녕면의 송재리 · 풍남리 · 용포리 · 덕동리 · 태평리를 병합하여 풍남리(豊南里)로, 진평면의 진흥리 · 석남리 · 건천리를 병합하여 진흥리(鎭興里)로, 억기면의 양탄리 · 양상리 · 신창리를 병합하여 양탄리(兩灘里)로, 장흥면의 정동리 · 현흥리를 병합하여 정동리(正洞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25리를 관할하였다.
1953년에 해중리의 일부가 인흥군 광덕리에, 진흥리 일부가 인흥군 진수리에, 중양리 일부가 인흥군 금풍리에 각각 편입되었고, 1954년에 구룡리 일부가 인흥군 용산리에 편입되었으며, 1972년에 갈전리가 노동자구로 승격되었다.
1974년 1월에 인흥군이 폐지되면서 인흥군의 인흥읍(仁興邑), 가진노동자구(加津勞動者區), 금풍리(金豊里), 청동리(淸洞里), 풍동리(豊洞里), 백산리(白山里), 동흥리(東興里), 지인리(智仁里), 작동리(芍東里), 온정리(溫井里), 송재리(松-里), 범포리(范浦里), 대응리(大鷹里), 삼봉리(三峯里), 왕장리(旺場里), 중동리(中東里), 신당리(薪塘里), 진수리(鎭岫里), 용산리(龍山里), 광덕리(廣德里), 독구미리(獨九味里), 원평리(原平里), 안동리(安東里), 연동리(蓮洞里), 청백리(靑白里) · 호도리(虎島里) 등 1읍 1구 24리 전체가 영흥군에 흡수되었고, 인흥읍이 노동자구로 격하되어 군 산하에 1읍 3구 48리를 두고 관할하였다.
1977년 3월에 영흥군이 금야군(金野郡)으로 개칭되면서 영흥읍이 금야읍(金野邑)으로, 용흥리가 비단리(緋緞里)로, 순안리가 긴재리로, 중양리가 솔밭리로, 용강리가 새동리로 각각 개칭되었다.
1986년 5월에 요덕군의 용남리(龍南里), 용암리(龍岩里), 용천리(龍川里), 용상리(龍上里)가 흡수되었고 1991년에 왕장리가 금사리(金沙里)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에 풍동리가 풍성리(豊城里)로 개칭되었다. 2001년에 독구미리 일부, 해중리 일부와 원평리를 통합하여 광명성노동자구를 신설하고 독구미리의 나머지부분은 안동리에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은 1읍(금야읍), 4구(가진노동자구, 갈전노동자구, 광명성노동자구, 인흥노동자구), 50리(광덕리, 구룡리, 금사리, 금풍리, 긴재리, 대응리, 덕산리, 동흥리, 양탄리, 연동리, 용남리, 용산리, 용상리, 용암리, 용원리, 용천리, 문하리, 백산리, 범포리, 봉산리, 봉흥리, 비단리, 사현리, 삼봉리, 상중리, 새동리, 성재리, 솔밭리, 송재리, 수원리, 신당리, 신성리, 안동리, 영풍리, 온정리, 작동리, 정동리, 중남리, 중동리, 지인리, 진수리, 진흥리, 청동리, 청백리, 평화리, 풍남리, 풍성리, 해중리, 호도리, 흥평리)로 구성되어 있다. 금야군 소재지는 금야읍이다.[5]
산업[편집]
금야군의 산업은 공업 · 농업 · 수산업 등으로 이루어졌다. 공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석탄생산이다. 금야군에는 1974년에 개발된 대규모의 금야청년탄광(金野靑年炭鑛)이 있다. 여기서 생산된 갈탄은 주로 함경남도와 강원도 일대에 공급되고 있다. 기계공업도 군의 주요 공업부문의 하나이다. 여기서는 농업과 건설 부문에 쓰이는 여러 가지 기계와 부속품들을 만든다. 특히 트랙터부속품과 연결차 등을 많이 생산한다.
금야군에는 또한 기와와 블록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건재공장과 도내의 화학공업과 주물품생산에서 의의있는 팽윤토광산이 있다. 방직 및 피복 공업도 발전되어 있는데, 금야군에서 생산되는 비단천은 색깔이 곱고 품질이 좋아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이외 이 지역에는 금야장공장(金野醬工場), 금야과실가공공장(金野果實加工工場), 금야수산물가공공장(金野水産物加工工場), 금야고기가공공장, 금야일용품공장(金野日用品工場), 금야화학공장(金野化學工場), 금야포장용기공장(金野包裝容器工場), 금야종이공장 등 여러 부문의 공장들이 있다.
금야군의 농업은 함경남도 농업발전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금야군은 함경남도 내의 주요 곡물 산지의 하나이다. 농경지 면적에서 논이 45%, 밭이 36%를 차지하는데, 벼가 군 곡물 총생산량의 약 70%를 점한다. 주요 벼산지는 풍남리, 덕산리, 흥평리, 봉흥리, 구룡리, 해중리, 성재리, 진흥리, 양탄리이며 옥수수는 수원, 비단, 청동, 지인, 연동 지역에서 많이 재배한다. 감자도 많이 난다. 과수업도 발달하여 사과, 배, 복숭아, 감, 자두, 살구 등 갖가지 과실이 산출되고 있는데, 그중에서 사과가 50% 이상을 차지한다. 이외 무, 배추 등 채소와 담배, 들깨를 비롯한 공예작물도 재배하고 있으며 돼지, 소, 양, 염소 등을 사육하여 축산물생산도 늘리고 있다.
금야군에는 3개의 수산사업소, 6개의 수산협동조합, 2개의 천해양식사업소가 있는데, 주요 수산기지는 광명성노동자구, 호도리, 안동리, 청백리 등 지역이며 주요 수산물은 명태, 멸치, 가자미 등이 있다. 광명성노동자구에는 다시마, 미역, 굴을 많이 생산하는 천해양식사업소가 있고 진흥리, 안동리에는 양어사업소가 있다.[6]
교통[편집]
교통은 평라선 철도와 이 선에서 갈라진 풍남선 철도가 통과하고 있으며 평라선에 금야청년역(金野靑年驛), 인흥역(仁興驛), 범포역(范浦驛), 왕장역(旺場驛), 현흥역(賢興驛) 등이, 풍남선에 풍남역(豊南驛)이 설치되어 있다. 이외 주요 도로로 함흥을 경유하는 원산~우암 간 1급 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금야~요덕 간 2급 도로 그리고 인흥~신상(정평), 금야~호도 간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7]
지도[편집]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 ↑ 〈금야군〉, 《위키백과》
- ↑ 〈금야군〉, 《나무위키》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금야군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금야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금야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금야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금야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편집]
- 〈금야군〉, 《위키백과》
- 〈금야군〉, 《나무위키》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금야군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금야군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금야군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금야군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 〈조선향토대백과: 함경남도 금야군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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