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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0일 (금) 10:06 판
지룽시(중국어 정체자: 基隆市, 병음: Jīlóng Shì, 한자음: 기륭시, 대만어: Ke-lâng-chhī, 께랑치, 영어: Keelung)는 중화민국 타이완성 북쪽에 있는 성할시이자 항구 도시이다. 대만에서 2번째로 큰 항구가 있으며 무역항이다. 야경으로 유명하다. 타이베이현이 직할시인 신베이시로 개편되어 타이완성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월경지가 되었다.
개요
- 행정단위: 성할시
- 면적: 132.7589km²
- 인구: 361,874명(2024년 3월)
- 시장: 황민후이(谢国梁,xiè guó liáng)
- 정부 공식 홈페이지: https://www.hccg.gov.tw/ch/index.jsp
지명
이 지역은 본래 대만 원주민 중 한 일족인 케타갈란(Ketagalan, 한자 음차로는 凱達格蘭) 족의 땅이었고, 계롱(雞籠), 대만어로는 Ke-lâng)으로 불리는데 '케타갈란'이 와전된 것으로 보이며 한자에는 별 뜻이 없는 음차 표기이다.
1861년 개항이 되어 외국과 교류할 때 이름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1885년에 Ke-lâng과 발음이 비슷한 현재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한자가 基隆이 된 건 기지승륭(基地昇隆)에서 따왔기 때문. 그러나 대만어로는 변함없이 이전 지명인 Ke-lâng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고, 현재의 한자 표기대로 읽은 Ki-liông은 드물게 쓰이는 듯하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Keelung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우정식 병음에서 유래했다. 19세기 말 관화(표준중국어의 모태가 되는 방언)에서는 오늘날 한어병음으로 'ji'라고 쓰이는 것들이 '기' 비슷하게 발음되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기룽' 비슷하게 칭했고, 서양인들이 이를 Keelung이라고 옮겼다. 대만일치시기 당시 일본인들도 이 도시는 자신들 한자 독음대로 읽지 않고 Keelung에서 따와 きいるん(키-룽)이라고 읽었다.
역사
지룽은 원래 계롱(雞籠)으로 불렸던 곳이다. 17세기 초에 스페인인들이 이 곳으로 진출한 이후부터 네덜란드인, 정성공 일파의 거점이기도 했다. 청나라가 정씨왕국을 격파한 다음에는 청나라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청나라가 통치할 시기인 1861년, 대외적으로 개항이 시작했다. 게다가 1885년에는 타이완성이 설치되었고, 지명도 계롱에서 기륭(基隆)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개명은 같은 발음의 뜻이 좋은 한자로 바꾼 것이다.
이처럼 지룽은 일본제국의 식민 통치 시대(대만일치시기) 이전부터 대외 무역의 거점이었지만, 항만의 수심이 얕았고 게다가 대형선이 정박하기에는 부족한 것도 많았다. 그리고 근대적인 항구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거기서 일본이 1895년부터 대만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4년 뒤인 1899년부터 준설 공사와 방파제 건설을 빨리 진행시켜서 1만 톤 급의 선박이 정박 가능하게 공사를 진행했다. 같은 시대에 지룽은 타이완 남북 철도의 북쪽 기점으로 여겨지면서 그 중요성이 높아졌다. 사실상, 지룽은 일본 해군이 위치한 군항이자 요새였다.
지룽은 대만 북쪽이라는 지형으로 인해서 일본과도 연결되었다. 일본에서 이주한 일본인도 많았고 도시화도 빨리 진행되었다. 1925년에 시가 되었는데 그 당시의 인구는 7만 명으로 4분의 1이 일본인이었다.
현재 지룽은 대만 북부의 항만 도시이자 타이베이의 위성 도시로서 발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성인(外省人)이 많아 국민당의 지지율이 높은 편이다. 최근에는 지룽항 주변을 정비해 관광지화를 도모하고 있다.
지리
지형은 산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 이상 발전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스펀이나 진과스쪽의 지형과 마찬가지로 대만 북부는 해안 바로 옆에 산세가 험해 많은 인구가 거주하기 힘들다. 지룽 또한 항구 근처 땅을 빼면 거주지로 쓸만한 땅이 없다. 산 틈새로 난 자투리 땅에 부도심이 형성되고 각 부도심 사이 구간은 산지로 단절된 형태가 되다보니 인구가 증가하지 못했다. 실제로 외부에서 지룽 도심을 들어오기 위해서는 무조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 지룽역을 출발한 열차는 얼마 안 되어 터널을 통과해야 하고 지룽항 부근에서 시작하는 중산고속공로는 아예 출발과 동시에 터널을 통과하는 수준이다.
도시는 우항(雨港)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비가 많이 오기로 유명하다. 연 강수량이 3,755mm에 달하는데 1년 365일 중 비가 오는 날만 208.8일이다. 서울의 비오는 날이 365일 중 109일, 홍콩이 비오는 날이 134일, 도쿄 118일, 하노이 152일, 호찌민 155.6일, 런던 110일인 것에 비하면 지룽은 말 그대로 비만 오는 도시이다. 바로 아래 타이베이가 1년에 비가 오는 날이 165.5일, 가오슝은 아예 88.6일인 것에 비해서도 지룽의 강우는 특이한 경우이다. 지룽의 비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데, 지룽 일대는 기묘하게 북태평양 고기압과 중국 양쯔강 기단의 경계선이며 남쪽에 위치한 중양산맥 때문에 북풍이 우세한 겨울에 강제상승 효과로 인해 많은 비가 쏟아진다. 이로 인해 지룽에는 겨울이 여름보다 비가 많이 온다. 최한월인 1월에는 31일 중 21.2일이 비라는 초월적인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1월에는 거의 한 달 내내 비가 온다는 소리다. 반면 최난월인 8월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대만 전역을 덮어버리고, 남서풍이 우세한 시기이기 때문에 겨울과 반대로 푄 현상까지 가세하여 31일 중 9.4일만 비가 온다. 강우량도 12월, 1월, 2월 등 겨울에 집중되어 있고, 반대로 여름에는 태풍이 들이닥칠 때에만 비가 온다.
행정 구역
신주시는 7개 시할구로 구성되었다.
교통
대만 도로교통의 핵심 간선망인 중산고속공로와 포모사고속공로의 기점지이다.
종관선 철도의 기점인 지룽역이 있다. 간선 철도의 기점역이지만 대만 철도 첩운화 계획에 따라 장거리 노선은 많이 사라졌고, 대부분 구간차 위주로 운행하고 있다. 타이베이역까지 기차로 45분 가량이 소요되며, 요금은 구간차가 41NTD, 쯔창하오는 71NTD이다. 종관선 대부분의 열차는 지룽시 치두구에 위치한 치두역에서 출발하고 있다.
기차가 난강역, 쑹산역, 타이베이역으로만 운행되고 있어 타이베이 곳곳을 운행하는 시외버스 편이 매우 발달해 있다. 1550(싱톈궁역), 1573(네이후), 1800(타이베이 시청역), 1813(타이베이역), 9006(위안산역)번 등의 시외버스는 15~30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10여개 노선이 지룽-타이베이 간을 운행하고 있다.
지룽에서 타이베이 난강을 잇는 지룽 첩운도 계획중이다.
지룽시 시내버스는 지룽시에서 직영하고 있다. 지룽객운이라는 민간 버스회사가 있으나 지룽시내와 신베이의 지룽생활권 지역을 오가는 노선을 운영하는 신베이 관할 사업자다.
마쭈 열도로 가는 배편이 이 곳에서 운항한다.
인구
타이베이의 위성도시이며, 국공내전에서 패전한뒤 대만으로 들어온 외성인의 비율이 높다. 1940년대 중국은 여객기가 보편화되지 않아서 외성인들은 소수의 정부 인사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배를 타고 대만에 왔기 때문에, 이들이 처음 도착한 곳은 대부분 지룽 아니면 가오슝인 점에서 유래한다. 좀 옛날 통계지만 1990년 기준으로 외성인 인구가 19.8%로 타이완 섬에서는 타이베이(25.5%)에 이어서 2위. 외성인과 본성인의 구분은 호적지인데 대만 정부가 1990년 이후로는 호적지 통계를 내지 않아 알 수 없다.
도심확장이 불가능한 지형 때문에 이미 1970년에 인구가 30만이 넘어 전국에서 5번째로 큰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구가 40만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타이베이와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있다. 역시 타이베이 대도시권에 속하는 타오위안시와 중리시가 당시 인구 10만명에서 40만으로 급격하게 불어난 것과 꽤 대조된다. 타이베이에서 제법 떨어진 신주도 그 기간 동안 20만에서 40만 이상으로 인구가 증가했다. 인구에 큰 변동이 없었던 탓인지 1945년 이래로 계속 성할시였던 유일한 도시이다.
지도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