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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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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고인돌(Ganghwa Dolmen)
강화 고인돌(Ganghwa Dolmen)
강화고인돌 안내판

강화 고인돌(Ganghwa Dolmen)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의 하나로서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고려산 기슭을 따라 160여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는 길이 6.399m, 높이 2.454m의 우리나라 최대의 탁자식 고인돌이 있으며 우리나라 고인돌의 평균고도보다 높은 해발 100m-200m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인즈 제24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개요

고인돌은 B.C. 2000~1000년 전 세계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문화에서 나타난 거석문화이다. 영국 스톤헨지·오크니 제도 돌무덤 유적·아일랜드의 보인(Boyne) 굴곡부 유적·서아프리카 돌무덤처럼 돌을 정렬하거나 쌓는 의례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나라 고인돌은 커다란 바위를 활용하여 만든 선사시대 거석기념물로 무덤의 일종이다. 고창, 화순, 강화 등에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하나의 지역에 수백 기 이상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다양한 형식과 밀집도에서도 그 유례가 없다. 고인돌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사회 구조 및 동북아시아 선사시대 문화 교류를 연구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경기지방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거대한 탁자식(卓子式)으로 뚜껑돌[蓋石]은 길이 7.1m, 너비 5.5m인 화강암 돌을 그 밑에 굄돌 2매가 받치고 있다. 덮개돌은 그 무게가 50여 톤 이다. 일반적으로 북방식 고인돌은 굄돌이 4매로 직사각형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뚜껑돌을 놓는 방식인데, 부근리 고인돌은 돌방 짧은 쪽의 굄돌 2매가 없다. 이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과거에 없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부근리 고인돌 전체 높이는 2.6m이며, 긴 이 남북방향으로 놓여 있다. 2개의 굄돌 방향은 남북이다.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굄돌이 거대한 덮개돌을 지탱하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가공되지 않은 형태로 되어 있다. 고인돌은 단순한 무덤방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최근 제의와 관련한 것으로도 보는 경향도 있다. 흙이 고인돌을 덮고 있는 경우 풍화작용과 동물들에 의해 없이진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은 유골을 묻기 위해 시신을 수습하는 제단으로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고인돌은 대개 고지대 묘지에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고인돌을 그 모양에 따라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의 두 가지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탁자식은 지상 건축물로 굄돌 4개를 석곽이나 석관 가장자리에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놓는다. 바둑판식은 무덤방을 석벽이나 적석벽으로 땅 밑에 만들고, 땅 위에 놓인 돌무지로 덮개돌을 지탱한다. 바둑판식의 변종은 덮개돌을 땅에 묻힌 돌 위에 놓은 것이다. 강화 고인돌은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또 강화 고인돌은 높은 지대에 있을 뿐 아니라 형태가 초기 것이 많은데, 부근리와 고천리 고인돌이 그러하다.

특징

강화도 분포 고인돌 특징은 첫째, 고려산·별립산·봉천산 등 산지를 중심으로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것,

둘째, 여러 고인돌이 한 곳에 군집을 형성한다는 것,

셋째, 산 경사면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것,

넷째, 탁자식 고인돌이 높은 비중 차지하는 것, 다섯째, 굼[星穴]이 있는 고인돌의 수가 적다는 것이다.

부근리 고인돌은 북방식으로 우리나라 고인돌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이다.

강화 고인돌 유적

강화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고려산 기슭을 따라 157 기의 고인돌들이 분포해 있다. 표고 280m의 높은 곳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며 탁자식 고인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화순·고창 고인돌과 달리 여러 지역에 흩어져 분포하고 있다. 강화도에는 한반도 고인돌을 대표하는 부근리지석묘(사적137호)를 비롯하여 많은 고인돌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고창과 화순 고인돌군과 함께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강화고인돌은 한강하구에 해당하는 고려산 북쪽편과 별립산에서 많이 분포하고 있다. 이들 고인돌들은 지금은 바다에서 먼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오늘날 강화도의 들판은 대부분 간척을 통해 조성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해안가 언덕에 조성한 무덤이라 할 수 있다. 강화도의 고인돌은 탁자식(북방식)과 바둑판식(남방식)이 섞여 있으며, 고인돌에서는 청동기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 강화 부근리 지석묘(사적 제137호)

부근리 고인돌군은 사적 제137호로 지정된 강화부근리 지석묘 주변, 해발 50m 내외의 낮은 구릉과 평지에 모두 16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평지에는 사적 제 137호인 강화부근리 지석묘와 탁자식 고인돌의 고임돌로 추정되는 석재 하나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북동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솔밭에 덮개돌 밑에 고임돌이 없는 고인돌인 개석식 고인돌 3기가 축조되어 있으며, 사적 제 137호의 동쪽 낮은 구릉에는 탁자식 4기와 개석식 고인돌 4기가 분포하고 있다.

  • 강화 내가 오상리 고인돌(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6호)

이지역의 고인돌을 2000년 선문대학교 고고연구소에서 발굴하고 현재 인천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된 고인돌을 중심으로 주변에 10기의 고인돌을 복원하였다. 이 고인돌의 크기는 길이 335cm로 큰 편이며, 돌방(石室)은 돌널형태로 바닥은 맨바닥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2000년 발굴 당시 석기류는 간돌칼〔磨製石劍〕, 돌화살촉〔石鏃〕, 바퀴날도끼〔環狀石斧〕,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돌자귀〔石手斧〕, 갈판〔耉石〕등 비교적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토기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와 붉은간토기〔丹塗磨硏土器〕, 그리고 팽이모양토기〔角形土器〕편 등이 출토되었다.

  • 강화 대산리 지석묘(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1호)

대산리 고인돌은 고려산의 동쪽 봉우리인 북산의 북쪽 능선의 맨 마지막 자락에 있다. 해발 약 20m 위치의 평평한 대지 위에 약간의 흙과 자갈을 돋우고 그 위에 고임돌이 무너진 상태에서 덮개돌이 내려앉아 있다. 고인돌무덤은 오른쪽의 크기가 길이 2.40m, 너비 1.50m, 높이 0.45m이다. 왼쪽의 크기는 길이 1.60m, 너비 1.30m, 높이 0.30m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3.68m, 너비 2.60m, 두께 0.50m이다. 덮개돌 밑으로 마감돌로 보이는 판석이 흙과 자갈에 묻혀 있다. 덮개돌의 석질은 흑운모편마암으로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 강화 부근리 점골 고인돌(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2호)

이 고인돌은 강화읍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인화리 방면으로 가다 송해면과 하점면 경계지점을 지나 부근리-망월간 도로의 중간지점으로 고려산 북쪽에서 흘러내린 주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해발 15m 정도의 낮은 지대의 밭에 위치해 있다. 고임돌이 기울어져 무너져 내린 것을 현재는 원형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동서방향의 고인돌을 바로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려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북쪽 방향에는 마감돌이 유실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어 점골 고인돌은 물론 강화지역에 분포한 고인돌의 구조와 형태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고인돌 유적이다. 이 고인돌은 강화읍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인화리 방면으로 가다 송해면과 하점면 경계지점을 지나 부근리-망월간 도로의 중간지점으로 고려산 북쪽에서 흘러내린 주능선의 끝자락에 있는 해발 15m 정도의 낮은 지대의 밭에 위치해 있다. 고임돌이 기울어져 무너져 내린 것을 현재는 원형 그대로 복원되어 있다. 동서방향의 고인돌을 바로 세우고 그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올려 전형적인 탁자식 고인돌의 모습을 갖추고 있으며 북쪽 방향에는 마감돌이 유실되지 않고 보존되어 있어 점골 고인돌은 물론 강화지역에 분포한 고인돌의 구조와 형태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고인돌 유적이다.

동영상

지도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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