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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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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dal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8월 9일 (수) 00:47 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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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제도 위치
류큐제도

류큐제도(영어: Ryukyu Islands, 일본어: 琉球諸島, りゅうきゅうしょとう(류큐 쇼토))는 일본 난세이제도(南西諸島) 중에 오키나와현에 속하는 들로서 역사적으로는 1879년까지 이 지역을 지배하던 류큐왕국의 영토였다. 유구호(오키나와어: 琉球弧)라고도 부른다.[1]

개요

류큐제도는 일본 남부의 규슈대만 사이의 난류 지대에 있는 제도로 크고 작은 섬 200개가 줄지어 서 있다. 난세이제도의 일부인 류큐제도의 범위는 정의에 따라 다르나 일본 국토지리원의 정의에 따르면 현 오키나와현 관할 지역 중 태평양 쪽으로 따로 똑 떨어져 있는 다이토제도(大東諸島)를 제외한 전 지역이 여기에 속한다. 류큐제도에는 오키나와제도사키시마제도(先島諸島)가 있다. 섬나라로 유명한 일본의 류큐 열도는 일본의 다른 지역과 완전히 다르다. 아마미오시마와 오키나와의 생태계는 풍부하고도 다양하다. 이 두 섬의 주변에는 산호초가 발달해 있고 맹그로브 숲과 괴상하게 생긴 소철나무가 자라는 울창한 아열대 숲이 있다. 따뜻한 해류가 흐르는 섬 주변에는 고래, 거북이와 상어가 모여든다. 지질학적으로 살펴보자면 류큐제도는 큰 변화를 겪은 곳이다. 한때 이곳은 기반암으로 아시아 대륙과 이어져 있었는데, 이 기반암 부분이 해수면 위로 솟아올라 육교가 된 것이다. 후에 이 육교가 붕괴하자 섬은 말 그대로 섬이 되었다. 이런 과정이 2억 5,000만 년에 걸쳐 반복되었다. 열을 지어 늘어선 섬과 대륙이 연결되어 있었을 때는 동물들이 두 지역 사이를 오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분리되면서 동물들은 열도와 대륙으로 나누어져 각자 진화했다. 그 결과 아마미오시마 섬에 사는 야행성의 검은 토끼 같은 고유종이 발달했다. 류큐제도의 문화는 일본, 중국, 조선, 동남아시아 등 주변 여러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류큐 민족은 19세기까지 독립적인 문화권을 형성했으나, 일본에 합병된 이후 일본 문화권에 흡수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미국 점령 등의 영향으로 미국 문화의 영향도 받았다. 류큐제도의 토착민은 류큐 민족이다. 이 지역에는 1429년에 건국된 류큐국(琉球國)이 있었으나, 1879년에 일본 제국에 강제 병합되었다. 태평양 전쟁 중 일본 제국이 오키나와 전투에서 패한 후, 1945년부터는 미국이 점령하였다. 1967년 11월, 미·일 양국이 류큐제도 반환에 합의하여 1972년 5월 25일 일본에 다시 반환되었다.[2]

어원

류큐라는 이름이 맨 처음 나타난 것은 중국 수나라의 역사서인 수서이며, 여기서는 流求라고 쓰였다. 드물게 琉求도 쓰였다. 류큐 왕국이 명나라에 의해 공인된 후에는 표기가 현재의 琉球로 고정되었다. 수서에서 가리키는 流求는 현재의 오키나와가 아니라 타이완섬을 가리키는 명칭이었다는 게 다수설이다. 중국인들의 지리 인식이 빈약하여 타이완섬과 오키나와를 구분하지 못하다가 명나라 초기에 流求(흐를 류, 구할 구)의 표기를 좀 더 그럴 듯하게 고친 琉球(유리 류, 공 구. 유리공 유리 구슬)를 오키나와 일대의 왕국의 이름으로 공인하게 되었다. 流求의 어원은 불명이나, 당시의 대만 원주민 언어 중 하나에서 쓰이는 단어를 듣고 적당히 음역(音譯)했을 가능성이 있다. 표제어인 '류큐'는 일본어 표기이며, 류큐어로 발음하면 루추이다. 대만 핑둥현(屏東縣)에는 류추(琉球)라는 이름을 가진 섬이 있는데, 오키나와의 류큐와 구분하여 샤오류추(小琉球, 소류구)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영어로는 라마이(Lamay) 섬이라고도 한다. 유래는 오키나와를 가리키는 그 류큐와 같다고 파악된다.[3]

지리

류큐제도는 북쪽에서 남서쪽으로 섬들이 길게 줄을 지어 늘어선 열도(列島)의 형태로 동중국해필리핀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가장 남쪽의 섬은 하테루마 섬이다. 북쪽은 가고시마현에, 남쪽은 타이완과 필리핀에 접해 있다. 이 지역은 대체로 온대 기후에 속하며, 남쪽의 야에야마제도는 열대 기후에 속한다. 태풍의 진로에 있어 자주 영향을 받는다. 류큐제도는 맹그로브 숲이 형성되어 있으며, 여러 열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다. 이곳에 서식하는 동식물은 타이완, 필리핀과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과 유사하다. 특히, 이리오모테 섬에는 멸종 위기종인 이리오모테살쾡이가 서식한다.

구성

오키나와제도

오키나와제도(일본어: 沖縄諸島, おきなわしょとう)는 난세이제도 중앙부의 크고 작은 섬 들의 무리로 오키나와현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 류큐제도의 일부로 면적은 2,388.2km², 오키나와 지형의 특색은 여러 섬 주위에 발달한 해안 단구와 류큐 석회암(琉球石灰岩)의 대지가 널리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해안에서 산호초가 발달하고 있다. 오키나와의 주도인 오키나와섬은 북동방에서 남서로 길게 뻗친 길이 약 120km의 좁은 섬이다. 섬의 지협부(地峽部)를 경계로 지형, 지질이 다르다. 지협부 이북은 기반이 중·고생대의 암석으로 되어 있고, 이남에 비해 지형이 급준(急峻)하다. 한편, 해안 단구가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세키료산맥(脊梁山脈)이 도상(島狀)으로 보인다. 지협부 이남은 기반이 비교적 새로운 제3기의 도고층(島尻層)으로 되어 있고, 더욱이 류큐 석회암이 덮여 있어 지형도 평탄하다. 반면, 이시가키섬(石垣島)은 오키나와에서 가장 복잡한 지형, 지질을 이루고 있다. 오키나와현오키나와제도 외에 사키시마제도, 다이토제도도 포함한다.[4]

사키시마제도

사키시마제도(일본어: 先島諸島, さきしましょとう)는 난세이제도의 중부, 오키나와현의 남서부, 미야코제도, 야에야마제도의 크고 작은 섬들을 말한다. 센카쿠 열도를 포함할 수도 있으며, 오키나와현에 속한다. 선사 시대의 사키시마제도에서는 조몬문화의 영향은 거의 발견되지 않으며, 대만과 공통점이 많은 토기가 많이 발견되고 있다. 약 2500년 전부터 무토기 문화(요리뿐만 아니라 무토기 문화를 가진 폴리네시아와 같이 돌솥을 많이 사용했다고 생각되는)에 들어가지만,이 시대도 갯조개 패부 등을 볼 수 있고, 이것도 필리핀 방면과의 문화적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약 800년 전 무렵부터 카무이야키이나 과형 토기 등 본섬 또 북방과의 관계가 나타나게 된다. 14세기에서 15세기에 오키나와에 발흥한 류큐 왕국에 의한 해상 교역의 중계지로서 점차 그 영향권에 놓였다.[5]

  • 미야코 열도 : (일본어: 宮古列島)는 난세이제도 서부, 사키시마제도의 동부에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을 말한다. 미야코 열도, 미야코 군도라고도 한다. 행정구분으로는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시, 미야코군 다라마촌의 1시 1촌에 속한다.
  • 야에야마 열도 : (일본어: 八重山諸島, 야에야마어: Yaima, 오키나와어: Ēma)는 일본 오키나와현에 있는 군도이다. 섬들은 일본 본토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일본 최남단의 유인도인 하테루마섬과 일본 최서단의 요나구니섬을 포함한다. 야에야마제도는 오키나와섬보다 타이완에 더 가깝다. 섬들은 난세이제도의 남쪽의 일부이다. 야에야마군은 행정적으로 이시가키섬과 분쟁중인 센카쿠 열도를 제외한 야에야마제도의 모든 섬들을 포함한다.
  • 센카쿠 열도(尖閣列島) : (일본어: 尖閣列島, 문화어: 센가꾸 렬도) 또는 댜오위다오 및 부속 도서(중국어 간체자: 钓鱼岛及其附属岛屿, 병음: Diàoyúdǎo jí qí fù, 문화어: 다오위다오)는 동중국해 남서부에 위치한 다섯 개의 무인도와 세 개의 암초로 구성된 군도로, 타이완과 류큐제도 사이에 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군도를 센카쿠제도(일본어: 尖閣諸島) 또는 센카쿠열도(일본어: 尖閣列島)라고 지칭하며, 중국에서는 댜오위다오 및 부속 도서(중국어 간체자: 钓鱼岛及其附属岛屿, 병음: Diàoyúdǎo jí qí fù →댜오위 섬 및 부속 도서)라고 부르며, 중화민국에서는 댜오위타이 열서(중국어 정체자: 釣魚臺列嶼, 병음: Diàoyútái lièyǔ) 또는 댜오위타이 군도(중국어 정체자: 釣魚臺群島, 병음: Diàoyútái Qúndǎo)라고 부른다.[6]

미국 통치기 류큐열도

제2차 세계 대전 말기인 1945년 4월부터 미국은 류큐 지역을 일본에서 따로 분리해서 신탁통치했다. 원래 목표는 장기적으로 류큐를 일본과 별도의 독립국으로 되돌려 놓으려고 했던 것인데, 주민들의 지지가 강하지 않아 결국 1972년까지 차례차례 반환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오키나와 현(1972년 반환), 아마미 군도(1953년 반환), 토카라 열도(1952년 반환)로 시작했는데, 아마미 군도와 토카라 열도는 조기에 일본에 반환되었다. 주민들이 격렬하게 일본 복귀 운동을 벌이는 데다가 어차피 미군 시설을 많이 둔 것도 아니어서 미국이 굳이 이 두 곳을 억지로 통치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오키나와 지역의 각종 기관들의 명칭에 '오키나와' 대신 '류큐'를 사용하는 경우 미국 통치 시기에 설립된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류큐 방송과 류큐 대학이 있다.

류큐국

류큐국(오키나와어: 琉球國 루츄쿠쿠) 또는 유구국(琉球國)은 1429년부터 1879년까지 류큐제도에 있는 왕국이었다. 류큐제도는 류큐국에 의해 명나라의 속국으로 통치되었으며, 오키나와섬을 통일하여 산잔 시대를 끝내고 왕국을 아마미군도사키시마제도로 구성하고 류큐국은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중세 동아시아동남아시아의 해상 무역망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류큐국은 1609년 류큐 침공 이후 사쓰마번속국이 되었지만 1872년 일본제국에 의해 류큐번으로 전환될 때까지 법적인 독립을 유지했다. 류큐국은 공식적으로 합병되었다. 1879년 4월 일본에 의해 해체되어 오키나와현이 형성되었고 류큐국은 새로운 일본 귀족으로 통합되었다. 대유구국(오키나와어: 大琉球國 티루츄쿠쿠) 이라고도 한다.[7]

지도

동영상

각주

  1. 류큐 제도〉, 《위키백과》
  2. 류큐 제도(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자연 절경)〉, 《네이버 지식백과》
  3. 류큐〉, 《나무위키》
  4. 오키나와 제도〉, 《위키백과》
  5. 사키시마 제도〉, 《위키백과》
  6. 센카쿠 열도〉, 《위키백과》
  7. 류큐국〉, 《위키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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