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델플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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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델플라타(스페인어: Mar del Plata)는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서남쪽 400km 해안에 있는 유명한 해수욕장이자 관광지이다. 인구는 약 68만 명이며 아르헨티나에서 5번째로 큰 도시이다. 세계 제1이라고 하는 공영 카지노는 룰렛의 명소이며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의 개최지이다.[1]
개요
마르델플라타는 아르헨티나 동북부,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도시이며 푸에레돈 군(General Pueyrredón)의 군청소재지이다. 마르델플라타의 상주인구는 68만 명이 넘으며, 여름철에는 고용 인구가 늘어나 100만 명에 이르기도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안에서는 주도인 라플라타(La Plata)에 이어 제2의 도시이다. 팜파스 남부 상공업의 중심지로 제분, 낙농제품, 식육가공 등의 공업이 성하다. 마르델플라타의 주요 고등 교육기관은 1975년에 개교한 마르델플라타 국립대학교(Universidad Nacional de Mar del Plata)으로 자연과학부, 인문학부, 법학부, 심리학부, 공학부 등 다수의 학부와 대학원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마르델플라타국립대학을 비롯하여 스테야마리스대학과 박물관이 있다. 20세기에 이르러 긴 해안선과 쾌적한 기후 때문에 휴양지로서 알려져 ‘아르헨티나의 진주’로 불린다. 일대에는 해수욕장, 카지노, 클럽 등 관광시설이 많으며, 여름에는 수많은 휴양객으로 붐빈다. 도시에서 매년 11월에 개최되는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는 남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세계 영화계에서도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2]
지리 및 기후
마르델플라타는 아르헨티나 동북부의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도시로,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남쪽으로 약 400㎞ 떨어져 있다. 평균 고도는 해발 약 38m로 대체로 평탄하며, 해안에는 길이가 8㎞에 이르는 모래 해변이 발달하여 해수욕 및 수상 레저와 휴양을 즐기기에 알맞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쾨펜의 기후 구분에 따르면, 마르델플라타의 기후는 온난 습윤한 여름과 상대적으로 냉량한 겨울이 특징인 서안 해양성 기후(Cfb)에 속한다. 마르델플라타의 배후에 있는 팜파스(Pampas) 초원의 대부분은 아열대 습윤 기후(Cfa)를 띠지만, 마르델플라타와 인근 해안 지대만 여름은 덜 덥고 겨울은 덜 추운 해양성 기후 지역을 이루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약 14℃이고, 최한월 평균 기온은 7.7℃, 최난월 평균 기온은 21℃이다. 대체로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는 편이며, 연 강수량은 921㎜이다. 연중 강수량은 고른 편이나, 6~9월의 월 강수량이 다른 계절에 비해 다소 적다.
역사
마르델플라타는 1581년에 후안 데 가라이(Juan de Garay)가 지휘한 에스파냐 탐험대에 의해 유럽 세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18세기 초까지 본격적인 취락이 발달하지 않았다. 1746년에 와서야 예수회 선교사들이 마을을 세워 한때 인구가 1,200명에 이르기도 하였으나, 원주민의 습격을 받아 1751년에는 버려지고 말았다. 이곳은 19세기 초인 1825년 아르헨티나가 독립한 뒤에도 한동안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였다.
마르델플라타의 배후 지역, 즉 아르헨티나 동북부 일대의 초원 지대를 가리켜 팜파스(Pampas)라고 부른다. 팜파스는 농업 지대로서 큰 잠재력을 가졌지만, 19세기 중엽까지 그 개발은 부에노스아이레스 부근에 국한되었다. 그 이유는 팜파스에서 생산되는 쇠고기를 주요 시장인 유럽까지 신선하게 실어 나를 수 있는 기술과 교통이 미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후엽에 이르러 일련의 기술 혁신이 팜파스의 변모를 촉진하게 되었다. 우수한 품종의 소와 양이 도입되면서, 냉장 기술이 개발되고 조선 기술이 발달하여 신선한 냉장육이 빠르게 유럽 시장에 공급될 수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를 정점으로 방사상(放射狀)의 철도망이 팜파스 전역으로 넓혀져 사람의 왕래와 화물의 수송이 편리해졌고, 관개 시설이 보급되어 팜파스에서 목축 이외에도 밀, 콩, 해바라기, 유채 등의 재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혁신과 개발로 부족해진 노동력을 해소하기 위하여 유럽에서 대거 이민이 이루어졌다.
마르델플라타의 성장도 팜파스의 이러한 일련의 변화가 불러온 직접적인 결과이다. 1856년포르투갈의 사업가인 호세 코엘류 메이렐리스(José Coelho de Meyrelles)가 아르헨티나 팜파스에서 산출되는 쇠고기를 육포로 가공하기 위한 공장을 세웠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았다. 이후 1873년에 아르헨티나의 실업가인 파트리시오 페랄타 라모스(Patricio Peralta Ramos)가 이 일대를 사들여 개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라모스는 자신이 세운 도시를 ‘라플라타(La Plata: 아르헨티나의 옛 이름)의 바다’라는 뜻을 가진 마르델플라타(Mar del Plata)로 이름 지었다.
마르델플라타는 1874년 2월 1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도시로 공식 편입되었고, 이날은 도시의 설립 기념일로 지정되었다.[3]
경제
마르델플라타는 아르헨티나에서 손꼽히는 휴양지이다. 이처럼 휴양지로 발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온화한 기후와 긴 해변이다. 매년 휴가철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8㎞에 이르는 마르델플라타 해변에서 해수욕과 일광욕, 요트 등의 수상 레포츠를 즐긴다. 또한 북반구의 겨울이 남반구에서는 여름이므로, 마르델플라타의 온화한 여름 날씨는 아르헨티나 내국인뿐 아니라 겨울 추위를 피하려는 북반구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요소가 되고 있다.
수많은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업, 요식업, 클럽, 레저 및 스포츠, 카지노 등은 마르델플라타 경제의 핵심 산업이다. 시 근교에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골프장도 다수 들어서 있고, 시내에는 여러 개의 카지노가 성업 중이다. 이 중에서도 중앙 카지노(Casino Central)는 마르델플라타를 대표하는 명물로 알려져 있다. 1938년에 개장된 중앙 카지노는 마르델플라타 해변의 경치를 즐길 수 있도록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유명 건축가인 알레한드로 부스티요(Alejandro Bustillo)가 설계한 이 건물은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을 정도로 아름다워, 마르델플라타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손꼽힌다.
마르델플라타는 휴양지로서 우수한 조건과 시설을 갖추었기 때문에 컨벤션 산업도 활기를 띠고 있다.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바다 축제, 패션쇼, 수산업 대회 등이 매년 열리는 행사이며, 국제수학올림피아드(2012년) 등 국제 행사도 끊임없이 유치되고 있다.
마르델플라타의 제조업은 경공업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아르헨티나 농축산업의 중심지인 팜파스 평원을 배후지로 삼고 있는 데다 부에노스아이레스와의 교통도 편리한 편이어서, 농축산물 가공업이 발달하였다. 또한 바닷가에 입지한 유리한 조건에 힘입어 수산물 가공업도 마르델플라타의 주요 공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소규모이지만 조선소와 선박 수리소도 있다.
마르델플라타는 다수의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한 도시이기도 하다. 1995년에 제12회 팬아메리칸 경기대회(Pan-American Games)가 이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팬아메리칸 경기대회는 남북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이 참여하는 종합 스포츠 대회로 4년마다 열리는데, 국제올림픽위원회(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IOC)의 승인을 받은 대회라는 점에서 아시안 게임에 비견될 만하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과 2001년 아르헨티나 피파(FIFA) 세계청소년축구 선수권대회(FIFA World Youth Championship)의 일부 경기가 열렸으며, 1987년부터 매년 마르델플라타 마라톤 대회(Mar del Plata Marathon)를 개최하고 있다.[4]
교통
마르델플라타 인근에는 아스토르 피아졸라 국제공항(Aeropuerto Internacional Ástor Piazzolla)이 자리 잡고 있다. 음악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아르헨티나 출신의 탱고 음악가인 아스토르 피아졸라(Ástor Piazzolla)의 이름을 딴 이 공항에서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비롯하여 국내 주요 도시를 오가는 노선이 운항되고 있다.
마르델플라타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연결된 철도 노선이 부설되어 있다. 이 노선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부설되었는데, 이를 이용하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류층 사람들이 별장과 휴양 시설을 세웠던 것이 마르델플라타가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 휴양지로 발전하는 바탕이 되었다.
고속도로를 포함한 도로망 또한 부에노스아이레스 등 팜파스 일대의 주요 도시와 잘 연결되어 있어 도로 교통도 편리하다.[5]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
매년 개최되는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Festival Internacional de Cine de Mar del Plata)는 1959년에 시작되어,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영화제작자연맹(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s Associations de Producteurs de Films, FIAPF)으로부터 공인받는 등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은 국제 영화제이다.
마르델플라타 국제영화제는 처음 개최된 이후 1970년까지 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등의 유럽 영화들을 중심으로 열렸으며, 프랑스의 누벨바그(Nouvelle Vague),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등 당시로서는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영화 사조에 따라 제작된 영화들을 남아메리카에 소개하는 창구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1970년 이후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불안 때문에 한동안 중단되었던 이 영화제는 26년이 지난 1996년부터 다시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홍상수 감독이 2006년작 ‘해변의 여인’으로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2013년 11월에 열린 28회 마르델플라타 영화제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특별전이 열리는 등 한국 영화가 출품되어 호평을 받았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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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 ↑ 〈마르델플라타〉, 《위키백과》
- ↑ 〈마르델플라타(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 〈마르델플라타〉, 《요다위키》
- ↑ "Mar del Plata", Wikipedia
- ↑ 〈마르델플라타의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 〈마르델플라타〉, 《위키백과》
- 〈마르델플라타〉, 《요다위키》
- "Mar del Plata", Wikipedia
- 〈마르델플라타(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 〈마르델플라타의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남아메리카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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