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주
애리조나주(State of Arizona)는 미국 남서부의 주이다. 애리조나주는 뉴멕시코주, 유타주, 네바다주, 캘리포니아주와 경계를 접하며, 북동쪽 꼭짓점은 콜로라도주와 연결된다. 남쪽으로는 멕시코와 국경을 접한다. 그랜드 캐니언 외에도 국립공원, 기념물, 인디언 보호구역 등 많은 기념물, 관광지가 있다. 1912년, 미국 본토에서는 마지막인 48번째 주로 가입했다. 미국의 내륙주 중 하나이다.[1]
목차
개요
애리조나주 주도(州都)는 피닉스이다. 예로부터 많은 인디언이 살고 있었으나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래 에스파냐인들이 들어오고 이어서 미국인도 합세하여 각지에 식민지가 형성되었다. 1598년 에스파냐령, 그 후 미국-멕시코전쟁(1846∼1848)의 결과 북부 및 중부 지역을 멕시코로부터 할양받고 다시 1853년 남부지역을 멕시코로부터 1,000만 달러에 구입, 1912년 미국의 48번째 주가 되었다. 애리조나는 인디언어로 ‘작은 샘’이라는 뜻이다. 대부분이 고원과 대지(臺地)이나 산지도 적지 않다. 북서부에서 남동부에 걸쳐 애리조나 고지(너비 100km, 해발고도 2,500m)가 가로놓이고 그 북쪽은 콜로라도 대지와 접한다. 콜로라도강의 분류가 북부 및 서부를 흘러 각지에 대협곡을 이루며, 남부에는 지류인 힐라강이 흐른다. 건조기후로 인하여 주의 대부분이 스텝 또는 사막이다. 남부의 사막지방에는 선인장이 많고, 산지에는 숲도 있다. 주산업은 농목축업과 광업이다. 예로부터 비육우(肥肉牛)·면양 등을 대규모로 방목·사육해왔으며, 관개시설의 보급과 더불어 목화재배가 활발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을 비롯하여 오르간파이프 선인장 국정기념물, 후버댐, 미드호(湖), 고대 인디언의 유적, 에스파냐풍 건축물 등 관광자원이 많아 관광수입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주요 도시는 피닉스 외에 투산·플래그스태프 등으로, 이들은 관광·휴양도시로서의 성격이 짙다. 한편 인디언은 미국 50주 중에서 가장 많은데 대부분이 보호구역에서 살고 있다.
애리조나주는 선인장이 많은 사막 풍광, 매우 더운 여름과 온화한 겨울 날씨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온도의 차이가 심해서 북쪽 고원에 위치한 플래그스태프는 겨울의 최저 온도가 섭씨 영하 8도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굳이어(Goodyear)는 여름 평균 온도가 섭씨 42도다. 애리조나주를 포함한 다른 미국의 주들을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계산한다면 애리조나의 경제는 세계에서 61번째 규모에 달하고, 이는 아일랜드, 핀란드, 뉴질랜드보다 큰 규모이다. 애리조나는 미국 중에서 경제 규모로 따지자면 21번째로 규모가 크다. 애리조나주 초기의 경제는 구리(copper), 면화(cotton), 축우(畜牛, cattle), 감귤류(citrus), 그리고 기후(climate)라는 5C에 의존했다. 한때 애리조나는 미국 제1의 면화 생산지였고, 구리는 여전히 대규모의 노천 광산과 지하 광산 등에서 활발히 채굴되고 있으며 미국 구리 생산의 2/3를 차지한다. 애리조나주에서는 아직 대통령이 배출되지 않았다. 다만 배리 골드워터와 존 매케인이 이 주 출신으로 대선에 출마한 바 있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전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연고지이며, 주민들의 전반적인 정치적 성향은 공화당에 가깝다.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밋 롬니가 이 주의 선거인단 11명을 모두 가져갔다.[2]
역사
초기의 역사
인디언들은 최소한 12,000년 동안 애리조나에 살았다. 이들은 수 세기에 걸쳐 큰 정착지들을 건설하고 아나사지, 호호캠과 모골론으로 알려진 문명들을 개발하였다. 북부 지역에 살던 아나사지족은 오늘날 푸에블로 인디언의 조상들이다. 길라와 솔트강 유역들에 정착한 호호캠족은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관개 시스템들을 건설하였다. 그들의 자손들은 피마 인디언들과 파파고 인디언들로도 알려진 토호노 오드햄족이다. 모골론족은 현재의 애리조나주 동부와 뉴멕시코주 서부에 살았다. 아파치족과 나바호족은 스페인인들이 도착하기 얼마 전에 애리조나 지역으로 이주했다.
스페인의 탐험
1530년대 동안에 멕시코에서 스페인인들에 도달한 이야기들이 시볼라의 7개의 도시들의 거대한 재물에 대한 말을 해주고 있다. 스페인의 권력자들은 이 도시들을 찾으러 프란체스코회 성직자 마르코스 데 니사가 이끈 소규모 탐사대를 보냈다. 데니사는 7개의 도시들 중의 한 곳을 봤다고 보고하였다. 1540년에 탐험가 프란시스코 바스케스 데 코로나도가 이끈, 더욱 큰 원정대가 현재 뉴멕시코주의 북부에 속하는, 주니 푸에블로 족과 다른 푸에블로 인디언 정착지들로 이동했다. 코로나도의 상관 대리들은 호피 푸에블로족과 현재 북부 애리조나주에 있는 그랜드 캐니언을 방문하였다. 원정대는 금이나 은을 찾지 못하고 실망을 하며 멕시코로 돌아갔다. 애리조나의 스페인 정착은 1629년 프란체스코회 성직자들이 호피족을 따라 선교지들을 설립할 때 시작되었다. 하지만 1680년에 호피족은 이 선교사들을 살해하고 스페인 통치에서 벗어났다. 1600년대 후반과 1700년대 초반에 예수회 선교사 에우세비오 키노는 현재의 멕시코 북부와 애리조나 남부에 있는 오드햄 인디언들을 따라 다수의 선교지들을 세웠다.
스페인인과 개종된 인디언 정착지들은 소, 말, 양과 염소를 가진 이유로 아파치족들의 약탈 목표가 되었다. 아파치족의 공격 위협은 산타크루즈강 유역에 스페인 정착지를 한정되었다. 거기서 1752년에 스페인군은 애리조나주의 첫 백인 정착지인 투박에 군사 주둔지를 세웠다. 1775년과 1776년 동안에 군인들을 투산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과 아파치의 공격에서 피난 온 정착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높고 두꺼운 어도비 벽들과 함께 요새를 지었다. 멕시코는 1821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고, 현재 애리조나에 속하는 영토는 그 일부가 되었다. 1846년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에 들어갔다. 미군은 지방의 통치를 차지하였다. 1848년에 전쟁을 끝낸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미국은 뉴멕시코의 소유권을 차지하였다. 당시 뉴멕시코는 대략 길라강에서 남부로 멀리 애리조나를 포함하였다. 미국의 많은 동부인들은 새롭게 획득된 영토에서 노예 제도가 설립될 것을 우려하며 조약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미국 상원은 이 조약에 찬성하였다. 1853년 미국과 멕시코는 개즈던 매입에 서명하였다. 이 조약을 통하여 미국은 현재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길라 강의 남부 지방을 획득하였다.
준수 시대
남북전쟁이 애리조나에 커다란 정치적 변화들을 가져왔다. 1850년대에 정착자들은 애리조나 준주 건립을 미국 의회에 요청하였으나 이들의 요청들은 무시되었다. 아메리카맹방이 형성된 후, 많은 애리조나 정착자들은 자신들이 남부 출신인 이유로 맹방에 가입하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맹방 의회로 파견 위원을 선택하였다. 1862년 아메리카맹방은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지역들을 영유하기 위해 군인들을 보냈다. 한편 북군이 남부군에게서 승리를 거뒀다. 1863년 맹방 정부는 애리조나 맹방 준주를 세웠다. 그 활동은 전쟁 초기의 군사적 패배의 이유로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맹방 활동은 미국에 의한 활동으로 이끌었다. 의회는 오늘날 주의 모습과 똑같은 경계선들과 함께 애리조나 준주를 만들었다. 1863년 12월 27일, 존 N. 구드윈은 준주의 총독으로서 공식적으로 애리조나의 관리를 맡았다. 구드윈은 포트휘플에 자신의 집무실을 설립하였다. 요새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그를 위한 통나무집이 지어졌다. 프로스콧의 타운은 이 집의 주위에 번창하였다.
인디언들의 싸움
애리조나의 정착자들은 적대적인 원주민들과 대립하였다. 1864년 유명한 척후병인 킷 카슨은 나바호족을 패퇴시켰다. 그러나 아파치족은 지속적으로 항전하며, 남서부를 통해, 정착민들의 목장과 개척지들을 수차례 습격하였다. 제로니모 같은 지도자의 지휘 아래 아파치족은 정착민들의 요새와 마을을 공격하였다. 제로니모 휘하의 인디언들은 1886년 9월 4일에 최종적으로 항복하였다.
준주의 발전
인디언들과의 갈등이 지속되는 동안 애리조나에는 금과 은의 발견으로 많은 채굴꾼들이 들어왔고, 그를 통해 발전을 이루었다. 1867년쯤에는 오늘날의 피닉스 인근의 솔트강 유역에서 농부들이 밭에 관개를 시작하였다. 방목은 1880년대에 대규모의 산업이 되었다. 애리조나의 풍부한 구리 광산들은 1880년대와 1890년대에 많이 개발되었다. 서던 패시픽 철도가 1877년 9월 30일에 캘리포니아주에서 애리조나로 들어왔다.
주 승격
1890년경 준주였던 애리조나를 주로 만드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1910년 의회는 헌법을 작성하고 애리조나를 주로 승격 신청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은 제출된 주 헌법이 일반 투표에 의해 공무원의 해임권으로 알려진 진행에 의하여 사무소로부터 재판관들을 제거하는 데 투표인들을 허락할 것 같은 이유로 법안을 거부하였다. 이 조항이 헌법에서 삭제된 후 주로서의 승격이 승인되었다. 1912년 2월 14일, 애리조나주는 미국의 48번째 주가 되었다. 주민들은 재판관들을 소환하여 헌법을 바꾸었다. 민주당원 조지 W. P. 헌트는 애리조나주의 초기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주의 초대 주지사였던 그는 7번의 임기를 맡았다. 그의 임기 동안 그는 댐의 개발과 관개 시스템들을 성원하고 방목과 광업에 유리한 법률들을 제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연방 정부의 계획은 수자원 개발과 관광업에 대하여 새로운 주에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관개의 물을 마련하는 첫 번째 큰 댐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댐으로, 1911년] 피닉스에 있는 솔트강에 지어졌다. 그 후로 25년 동안 더 많은 댐들이 지어졌다. 길라강에 쿨리지 댐, 버드강에 바틀렛 댐과 솔트강에 3개의 추가 댐들이 주의 관개 지역에 많이 추가되었다. 가장 큰 댐인 후버 댐이 1936년 콜로라도강에 완공되었다. 미국 정부는 경치와 역사적 장소들 개발로, 관광업을 늘리는 데 도움을 주었다. 따뜻하고 건조한 기후가 요양자들과 겨울 방문객들을 끌어들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는 동안에 면화는 중요한 수확물이 되었다. 관개된 땅의 규모는 빠르게 늘어났고 농산물의 생산량도 증가하였다. 농부들은 펌프로 땅에서 끌어올린 물에 의지하게 되었다. 애리조나주의 구리 생산은 1920년대를 걸쳐 증가하였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국가의 많은 부분들에서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직업들을 찾는 데 강요하였다. 그들 중의 어떤 이들은 애리조나주에 정착하였다. 1920년과 1940년 사이에 인구는 334,162명에서 499,261명으로 늘어났다.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해가 뜨는 날이 많아 비행 날씨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정부는 애리조나주에 많은 공군 기지들을 세웠다. 애리조나주의 주요 생산물인 소, 구리와 면화 수요는 세계 대전 절정기에 빠르게 증가하였다. 피닉스는 생산을 2배로 늘렸다. 1950년대에 들어 붐이 지속되면서 애리조나주에 주둔해 온 수천 명의 베테랑 군인들이 자신들의 가족과 함께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에어컨이 널리 사용되면서 사막 지역에서도 생활이 윤택해졌기 때문에 많은 퇴직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동부에서 애리조나주로 이주하였다. 주의 인구는 1940년대 동안에 대략 50퍼센트, 1950년대에 대략 74퍼센트로 올랐다. 1948년 애리조나주의 인디언들은 투표권을 얻었다. 애리조나주 대법원은 인디언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한 주의 법률 일부를 폐지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애리조나주는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경제 방향을 바꾸었다. 1967년부터 농산물 대략 10억 1천만 달러와 비교하여 산업 생산품의 가치는 1조 달러에 도달하였다. 새로운 공장들은 전기 제품, 컴퓨터와 냉장 장치를 포함한 다양한 전자 제품을 생산하였다. 애리조나주의 따뜻한 겨울은 휴양을 즐기려는 사람들을 불러들였고, 관광업은 더욱 큰 산업이 되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들어 농업, 제조업과 인구의 번창은 애리조나주의 수자원을 압박하였다. 1960년대 이후로, 주는 내리는 비보다 지하에서 끌어올리는 물의 공급을 늘렸다. 1963년 미국 대법원은 한 해에 콜로라도강의 물 2,800,000에이커 피트(3.5조 큐빅 미터)에 관한 권리들을 애리조나주에 주었다. 1에이커 피트(1,233 큐빅 미터)는 1피트(30 센티미터) 깊이의 물의 1에이커(0.4 헥타르)에 동일하고, 한 해에 대략 5개의 도시 거주민들에게 공급되었다.
1965년 재판관 로나 록우드가 애리조나주 대법원의 최고 재판관으로 선출되었다. 동료 재판관들이 선출한 그녀는 미국에서 주 대법원을 이끄는 첫 번째 여성이 되었다. 애리조나주의 인디언들은 1960년대에 경제적 수입을 창출해 냈다. 일부 부족들은 비지니스 회사, 공장, 산업과 자신들의 보호 구역에 휴양지를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969년에 나바호족 커뮤니티 칼리지가 주의 북동부에 있는 나바호족 보호 구역에 있는 매니 팜스에 개교되었다. 칼리지는 1973년에 체일로 옮겨졌다.
20세기 후반
1974년 주에 충분한 물을 안전하게 공급하는 데 디자인된 운하, 터널과 파이프라인의 시스템인 센트럴 애리조나 프로젝트를 위한 건설이 시작되었다. 프로젝트는 1991년에 완료되었다. 이 시스템은 336마일(541킬로미터)를 덮고 콜로라도강에 하바수호로부터 투산의 남서부에 있는 샌 사비어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뻗어있다. 1975년 선출된 라울 H. 카스트로는 주지사로 되었다. 그는 사무소로 선출되는 데 첫 멕시코계 미국인이 되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애리조나 재판관 샌드라 데이 오코너를 미국 대법원으로 임명하였다. 그녀는 첫 여성 회원이 되었다.
1900년대 후반에 카지노 도박이 많은 애리조나 인디언 종족들과 보호 구역들에 보건, 교육과 주택 프로그램들에 기금을 위한 세입의 중요한 근원이 되었다. 또한 종족들은 새로운 농업 프로젝트를 창조하거나 도시들에 팔려고 센트럴 애리조나 프로젝트의 할당을 이용하기도 하였다. 1988년 에번 메컴 주지사는 주의 입법부에 의하여 사무소로부터 퇴거되었다. 그는 자신의 자동차 판매권에 불법적으로 주의 돈을 빌려주고 자신의 측근들 중의 하나가 대배심의 증인들에 대항하여 죽음의 위협을 만든 고발들에 조사를 막으려 한 이유로 고발되었다. 주의 하원은 그를 탄핵하였다. 상원은 메컴을 고발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그를 사무소로부터 퇴거시켰다. 로즈 모퍼드는 임기를 마치고 애리조나주지사를 지낸 첫 여성이 되었다. 1997년 파이프 시밍턴 주지사는 은행들에 잘못된 재정적 계산서들을 채운 이유로 사기의 유죄 판결을 받은 후에 사임하였다. 이 활동들은 그가 주지사로 되기 전에 부동산 개발업자로 지내는 동안에 일어났다. 1998년 시밍턴은 자신의 유죄 판결을 항소하였다. 시밍턴을 대신한 제인 디 헐이 그 해 주지사로서 임기를 완전히 채우기 위하여 선거에 나갔다. 선거에서 우승한 그는 주에서 선출된 첫 여성 주지사가 되었다.
21세기
주의 경제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강하게 남아있었다. 그러나 쇠퇴하는 구리의 가격들과 장기적 노동 논쟁들은 몇몇의 광산 지역들에서 엄격한 경제적 문제들로 이끌었다. 애리조나주는 지속적으로 국가에서 가장 빠르게 번창하는 주들 중 하나가 되었다. 인구는 1980년과 1990년 사이에 35퍼센트, 1990년과 2000년 사이에 40퍼센트나 증가했다. 그 요인은 많은 인구가 시골 지역에서 벗어나 도시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경제
서비스업
서비스업은 애리조나주의 고용과 국내총생산의 대략 80퍼센트를 차지한다. 서비스업의 대부분은 피닉스와 투산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주도인 피닉스는 정부 활동의 중심지이다. 몇몇의 금융 연구소들이 피닉스와 둘러싸인 지역들에 있다. 호텔, 식당과 소매상들의 다수는 피닉스와 투산 지역들에 있다. 호텔과 식당들은 특히 해마다 애리조나주를 방문하는 수억 명의 관광객들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미국의 주요 교통 회사 US 에어웨이스 그룹이 템페에 기지를 두었다. 주의 빠르게 자라나는 인구는 새로운 주택을 위한 강한 요구를 창조하였다. 1990년대 초반 이래 많은 사무소 건물과 리조트들이 개장하였다. 군사 기지와 아메리카 인디언 보호 구역의 운영은 애리조나주에서 중요한 정부 서비스이다. 군사 기지들은 데이비스-몬선 공군 기지, 화추카 요새, 루크 공군 기지 등을 포함한다. 주에는 몇몇의 큰 인디언 보호 구역들이 있다. 미국에서 가장 큰 보호 구역인 나바호족 보호 구역은 애리조나주 북동부의 대부분을 덮고 있다.
제조업
애리조나주의 지도적인 제조품들은 컴퓨터와 전자 제품과 교통 수단이다. 피닉스 지역의 공장들은 전자 제품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전자 제품들은 수색, 검파, 항해 기구들과 반도체를 포함한다. 피닉스와 투산 지역에서는 많은 양의 교통 수단을 생산한다. 교통 수단의 대부분은 항공기와 그 부품을 포함한 항공 제품, 헬리콥터와 우주항공 제품이다. 다른 제조품들은 화학, 합성 금속 제품, 비금속 미네랄과 가공 식품들을 포함한다. 이 제품은 주로 피닉스와 투산 지역에서 생산된다. 세탁용 제품과 약품은 선도적인 화학품들이다. 중요한 합성 금속 제품들은 건축용 금속과 창문과 문을 위한 틀을 포함한다. 콘크리트는 선도적인 비금속 미네랄 제품이다. 식품은 제과류와 낙농 제품을 포함한다.
농업
농장 지대는 애리조나주의 3분의 1 이상을 덮고 있다. 애리조나주의 15개 카운티들은 모두 어떤 관개 대지를 가지고 있다. 애리조나주 농장 지대의 대략 절반은 관개되었다. 수확물은 애리조나주 총 농장 소득의 대략 절반을 차지하며, 주의 대지의 5퍼센트 이하는 수확물을 재배하는 데 쓰인다. 상추는 가장 가치적인 수확물이며, 대부분 유마 카운티에서 생산된다. 면화와 건초의 생산은 남부 애리조나주, 특히 매리코파와 피널 카운티에 집중되어 있다. 애리조나주는 감귤류, 멜론과 채소의 주요 생산지로 랭킹에 올라있다. 가축 또한 농장 소득의 대략 절반을 차지한다. 육우와 젖소는 주에서 농장 소득의 주요한 요인이다. 이 주의 목축업자들은 대부분 육우를 사육한다. 낙농 지대의 대부분은 매리코파와 피널 카운티에 있다. 앙고라 염소, 돼지와 양도 애리조나주에서 사육된다.
광업
구리는 애리조나주의 광업 소득의 대부분을 마련하고, 주는 주요 구리 생산지이다. 그린리, 피마와 피널 카운티는 구리의 대부분을 공급한다. 길라와 야바파이 카운티도 또한 주요 구리 광산이 있다. 금, 몰리브덴과 은은 채굴되는 구리 광석의 부산물로서 재발견되었다. 석탄, 깨진 돌, 모래와 자갈도 중요한 광물이다. 석탄은 나바호 카운티에 있는 광산에서 생산된다. 석회암은 지도적인 깨진 돌이다. 애리조나주는 몰리브덴, 모래와 자갈의 주요 생산지이다.
기후
애리조나주는 사막에 있는 주라 그런지 선인장이 많은 사막 풍광이 떠오르는 동네이다. 그래서 애리조나 자동차 번호판에 사막풍경이 들어가 있다. 이런 풍경에 걸맞게, 애리조나 남부는 세계에서 일조량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주도인 피닉스의 일조시간은 연간 3,870시간에 달하며 연간 강수량이 200mm에 불과하고, 주 남서부에 위치한 유마(Yuma)는 무려 연간 4,015시간의 일조시간으로 세계 1위이고 일년 강수량이 겨우 85mm밖에 안된다. 이로 인한 뜨거운 여름과 따뜻한 겨울 날씨로도 유명하다. 주도 피닉스의 7월 평균 최고 기온은 41.2℃이고, 역대 최고 기온은 50℃이다. 역대 최고 기온은 레이크하바수시티(Lake Havasu City)에서 2003년 7월 기록된 53℃. 겨울도 따뜻한 편인데, 2012년 1월 1일 피닉스 지역 낮 최고 기온은 섭씨 26도였다. 2013년 2월 20일 주 남부-피닉스, 투손 지역에도 눈이 내렸다.
피닉스 메트로와 투손, 피닉스 북부에서 부터 시작되는 산악-고원 지역은 숲이 우거지고 깊은 계곡이 많이 형성되어 있다. 북쪽 고원에 위치한 그랜드 캐니언의 입구인 해발 2,100m의 플래그스태프는 겨울의 최저 온도가 섭씨 영하 8도 까지도 내려가며 겨울에 많은 눈이 내리며 스키장도 있다. 그랜드 캐니언 지역은 높은 고도로 인해서 한 7~8월에도 비교적 서늘한 기후를 보인다. 북동부 아파치족 보호 구역에 있는 해발 2,500m의 홀리호(Hawly Lake)에선 1971년 1월 영하 40℃가 기록된 적 있다. 기본적으로 한반도보다 큰 면적이므로 애리조나 주 자체에서도 다양한 기후를 보인다. 북중부 코코나도 국유림 중심부에 위치한 휴양지이자 지구 자기장이 나오는 곳이 4곳이나 있는 곳으로 유명한 세도나도 이 주에 있다. 여름에 다른 곳에 비해 엄청 덥지도 않고 겨울에 춥지도 않아 한국인이 생각 외로 많이 산다. 하지만 눈은 온다.[3]
교통
애리조나주 주요 도로로는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서 시작해 미 남부를 잇는 I-10 고속도로가 동서로 가로지르며, 샌디에이고에서 피닉스와 투손 사이를 잇는 I-8 고속도로가, 역시 로스앤젤레스에서 북부 플래그 스태프를 통해 뉴멕시코 북부를 잇는 I-40, 피닉스에서 플래그 스태프를 남북으로 잇는 I-17이 있다. 주가 주이니 만큼 휴게소는커녕 마을조차 눈씻고 찾아봐도 안 나오는 구간이 많으므로 이 곳을 여행한다면 미리 점검을 하고 수시로 기름을 채우면서 운전하는 것을 권장한다. 미국답게 웬만한 도시에 공항이 있으며, 큰 국제공항으로 피닉스에 스카이하버 국제공항이, 투손에 투손 국제공항이 있다. 투손 남부에 있는 I-19 고속도로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미터법을 쓰는 고속도로이다. 이는 1975년 미국의 대통령 제럴드 포드이 미터법 변환법을 서명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은 미터법 사용을 미국의 무역과 상업을 위해 사용을 할수 있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미국 단위계의 사용은 허락했다.
교육
애리조나주 유명한 대학교이자 전국구 라이벌 학교로 투산에 애리조나 대학교(the University of Arizona), 템피에 애리조나 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가 있으며, 이 두 대학교의 졸업생들이 애리조나를 꽉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애리조나 주립대학교는 혁신적인 온라인 대학을 운영하며 미국 가장 혁신적인 대학 1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2위, 3위권에 MIT, 스탠퍼드와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썬더버드 경영대학원을 흡수하여 전세계 20권 경영대학을 갖게 되었다. 애리조나 대학교도 퍼블릭 아이비리그에 꼽힐 만큼 교육의 질이 높으며, 평판이 전국구로 좋다. 플래그 스태프에 북애리조나 대학교(Northern Arizona University), 그랜드 캐니언 유니버시티 등이 있다. 또한 미국에서 등록학생 수가 가장 많은 통신대학교로 온라인으로 수강하고 학사 또는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는 정식 4년제 대학교이자 미국 대학교육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온라인 교육과 관련해서 성공사례로 종종 언급되는 피닉스 대학교(University of Phoenix)의 본부도 피닉스에 있다. 이 학교는 학위가 없는 이들을 위한 대학교에 불과하다. 그러나 엄청난 자금력이 있어 미국 곳곳에 서비스 센터들을 두고 학생들을 유치하고 있다.
주민
2000년 미국 인구 조사국은 애리조나주의 인구가 5,140,632명이라고 보고하였다. 인구는 1990년으로 본 3,655,228명에서 40 퍼센트나 증가하였다. 2000년 조사국에 의하면 애리조나주는 50개의 주들 중 인구에서 20위에 들어와있다. 애리조나 주민의 대략 88 퍼센트는 메트로폴리탄 지역들에 산다. 60 퍼센트 이상은 피닉스-메사-스코츠데일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산다. 대략 15 퍼센트는 투산 메트로폴리탄 지역에 산다. 애리조나주의 대도시 피닉스는 풍부한 농업 구역을 위한 교역과 운송의 중심지이다. 투산은 애리조나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양 도시는 중요한 제조업의 중심지이며 휴양 지역들이다. 애리조나주의 다른 대도시들은 메사, 글렌데일, 스코츠데일, 챈들러와 템페이다.
애리조나 주민 100명 중 대략 5명은 아메리카 인디언이다. 애리조나주는 미국에서 3번째로 큰 인디언 인구를 가지고 있다. 오클라호마주와 캘리포니아주가 더 많은 인디언들이 있다. 나바호 족은 애리조나주에서 가장 큰 종족이다. 북부 애리조나주에 있는 오레이비의 인디언 정착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지속적인 거주지들 중의 하나이다. 호피 족은 1100년대에 정착지를 지었다. 애리조나주에는 16개의 종족 회의가 있다. 이 회의들은 다양한 종족을 다스리고 그들의 재산을 관리하는 도움을 준다. 애리조나 주민의 대략 25 퍼센트는 히스패닉이다. 멕시코 계통의 주민들이 주의 히스패닉 인구의 82 퍼센트를 차지한다. 이 단체들의 많은 가족들은 집에서 스페인어를 쓰나, 이 가족들의 자식들은 학교에서 영어를 쓴다. 멕시코 음식과 전통 의상이 애리조나 주민들 사이에 인기있다. 주에는 또한 독일, 아일랜드, 영국 계통의 주민들도 있다.
한인사회
'2010년 센서스국 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애리조나에 거주하는 한인 인구는 공식적으로 총 1만5022명으로 나타났다. 한인인구는 애리조나 전체 인구 중 점유율이 0.2%이다. 애리조나 아시안 커뮤니티 가운데 한인사회는 인도, 필리핀, 중국, 베트남에 이어 5위 규모를 기록했다. 애리조나 한인사회 인구수는 2000년부터 지난 10년 사이 64.7%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조지아주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로 한인사회규모 성장이 컸던 것으로 조사됐다. 한인사회 소식을 전해주는 애리조나 타임즈 주간지가 2011년1월부터 발행되어 교포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피닉스와 투산지역을 포함 애리조나 전반적 뉴스를 보도하며 2015년 4월부터는 인근주인 뉴멕시코주 소식란도 추가해서 서비스 지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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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