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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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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장자(중국어:莊子zhuāng zǐ)는 중국 전국 시대의 사상가이다.

개요[편집]

장자는 중국 고대의 사상가,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자이다.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보았다. 이는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며(無爲),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인다(自然)고 보는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이다.

장자는 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도(道)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본다. 도는 일(一)이며 대전(大全)이므로 그의 대상이 없다.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다. 도는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자연(自然)하다. 도는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거미 ·가라지 ·기왓장 ·똥 ·오줌 속에도 있다. [1]

장자의 생애[편집]

장자(기원전 369년?-기원전 286년)는 중국 전국 시대 송(宋)나라 몽(蒙; 현재의 안휘성 몽성 또는 하남성 상구 추정) 출신의 저명한 중국 철학자로 제자백가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노자(老子)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본명은 주(周)이다. 본명은 장주(莊周)이고, 자는 자휴(子休)이다. 전국시대 송(宋)나라 몽(蒙)출신으로, 제자백가 중 도가(道家)의 대표적인 인물. 맹자와 동시대에 살았다고 전해진다. 한때 칠원리(漆園吏)라는 말단 관직에 있었으나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다. 후세에 노자와 함께 부를 때 노장(老莊)이라 부른다. 도교에서는 남화진인(南華眞人), 또는 남화노선(南華老仙)이라 부르기도 하며,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 부른다. 《삼국지연의》에서 황건적의 지도자 장각에게 도를 전수하는 선인이 바로 남화노선(장자)이다.

장자는 정확한 생몰연대는 미상이나 맹자(孟子)와 거의 비슷한 시대에 활약한 것으로 전한다. 관영(官營)인 칠원(漆園)에서 일한 적도 있었으나, 그 이후는 평생 벼슬길에 들지 않았으며 10여만 자에 이르는 저술을 완성하였다. 초(楚)나라의 위왕(威王)이 그를 재상으로 맞아들이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저서인 《장자》는 원래 52편(篇)이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은 진대(晉代)의 곽상(郭象)이 산수(刪修)한 33편(內篇 7, 外篇 15, 雜篇 11)으로, 그중에서 내편이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 《사기》에 따르면, 장자는 일찍이 몽(蒙) 칠원(漆園)의 관리가 되었으나, 생활은 매우 가난했다. 《장자》 외편 〈추수(秋水)〉편에 따르면, 초나라 위왕(威王)이 사람을 보내 정치를 보좌해 주길 청했으나, 장자는 거절하였다. 혜자(惠子)와 교우했다.

장자의 사상[편집]

장자는 노자와 사상이 비슷하나, 노자는 '공을 이루면 뒤로 물러나야 위험이 없다', '백성들에게 (무엇을) 하려고 하지마라'는 정치술에 가까운 반면, 장자는 정치를 떠나 세속을 초탈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장자에도 정치술이 있긴 있다. 하지만 장자 사상의 핵심은 '어떤 것을 이래 볼 수도 있고 저래 볼 수도 있으니,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말고 자연을 따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자'는 것이지, 노자처럼 '통치자는 일을 많이 만들지 말고 욕심을 줄여야 된다'는 식의 정치적 조언은 아닌 것이다. 장자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삶은 '맞다 or 아니다' 중 하나로 정해지지 않으며, 두 개의 상반된 가치는 마치 하나로 이어진 도르래와 같아서, 둘을 나누어서 단정하지 말고 큰 하나로 보아 상황에 맞게 조절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은 생각에 머물러서 옳고 그름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따지지 말고, 하늘을 뒤덮는 대붕처럼 크게 생각해서 너그럽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면, 추한 사람도 인기가 많을 수 있으며, 장애를 가진 사람도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이다

인간의 마음은 일정한 시대 ·지역 ·교육에 의하여 형성되고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이 마음이 외부 사물들과 접촉하여 지식이 생긴다. 이러한 지식은 시대 ·지역, 그리고 사람들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보편타당한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 장자는 이러한 지식에 입각한 행위를 인위(人爲)라고 한다.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하여 그것을 이어주거나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하여 그것을 잘라주면 그들을 해치게 되듯이 인위는 자연을 훼손할 수 있다. 도가 개별적 사물들에 전개된 것을 덕(德)이라고 한다. 도가 천지만물의 공통된 본성이라면 덕은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도 덕이다. 이러한 덕을 회복하려면 습성에 의하여 물들은 심성(心性)을 닦아야 한다. 이를 성수반덕(性脩反德)이라고 한다. 장자는 그 방법으로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들었다. 덕을 회복하게 되면 도와 간격 없이 만날 수 있다.

도와 일체가 되면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다. 이를 이도관지(以道觀之)라고 한다. 물(物)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자기는 귀하고 상대방은 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만물을 평등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은 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연에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자유는 천지만물과 자아사이의 구별이 사라진 지인(至人)이라야 누릴 수 있다. 이 지인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천지만물들과도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다. 장자의 사상은 대부분 우언(寓言)으로 풀이되었으며, 그 근본은 노자(老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현세와의 타협을 배제하는 점에서는 더욱 철저하여, 바로 그와 같은 면에서 장자의 분방한 세계가 펼쳐진다.

장자사상은 위진현학(魏晉玄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남북조 시대에 성행한 반야학(般若學)과 당나라 때 융성한 선종(禪宗)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현종(玄宗)은 그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호를 추증하였으므로,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읽혔다. 송(宋) ·명(明) 이학(理學)은 유학을 위주로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장자 철학을 수용하였다. 장자의 이러한 초탈 사상은 자연주의 경향이 있는 문학예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전기에 이단(異端)으로 배척받기도 하였으나 산림(山林)의 선비들과 문인들이 그 문장을 애독하였다.

노장사상[편집]

노자와 장자를 묶어 흔히 노장사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는데, 노자가 정치와 사회의 현실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데 대해, 장자는 개인의 안심입명에만 몰두했다. 노자가 혼란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무위자연에 처할 것을 가르쳤던 반면, 장자는 속세를 초탈하여 유유자적하고자 했다. 즉 노자는 어느 정도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진 반면 장자는 오직 개인에 대한 것을 강조하였다.

저서 《장자》[편집]

《장자》는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의 저서. 당나라 현종(玄宗)에게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존칭을 받아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고도 한다. 내편(內編) 7, 외편(外編) 15, 잡편(雜編) 11로 모두 33편이다. 그 중 내편이 비교적 오래되었고 그 근본사상이 실려 있어 장자의 저서로, 외편과 잡편은 후학(後學)에 의해 저술되었다. 장자는 노자(老子)의 학문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그의 사상의 밑바탕에 동일한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진(秦)의 시황제(始皇帝) 분서(焚書)의 화를 입기도 하고, 한(漢) 때 분합(分合)·재편성되기도 하다가 진(晉)의 곽상(郭象) 이후 오늘의 33권으로 정해졌다. 이 곽상주(註)가 완본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기본자료이다. 그 후에도 당(唐)나라 성현영(成玄英)의 《주소(註疏)》, 송(宋)나라 임희일(林希逸)의 《구의(口義)》 등 많은 주가 나왔다.

《장자》의 문학적인 발상(發想)은 우언우화(寓言寓話)로 엮어졌는데, 종횡무진한 상상과 표현으로 우주본체(宇宙本體)·근원(根源), 물화현상(物化現象)을 설명하였고, 현실세계의 약삭빠른 지자(知者)를 경멸하기도 하였다. 그의 심현한 철학사상서이자 우수한 문학서인 이 《장자》는 위(魏)·진(晉) 때에 널리 읽히고 육조시대(六朝時代)까지 그 사상이 유행하였다.

도가[편집]

도가(道家)는 중국사상(中國思想)의 여명기인 선진시대(先秦時代) 이래 유가(儒家)와 함께 중국 철학의 두 주류를 이루었던 학파이다. 도가라는 일컬음은 이 사상의 개조(開祖)라 할 수 있는 노자(老子)가 우주 본체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도(道)와 덕(德)의 개념에서 비롯되어 도덕을 논하는 일련의 학자들을 도덕가라고 호칭하다가 뒤에 이를 약하여 도가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호칭이 선진시대부터 나타난 것도 아니며, 전한대(前漢代) 유흠(劉歆)과 사마 담(司馬談) 부자가 중국사상의 내원(來源)을 설명하는 가운데 구가(九家) 또는 육가(六家)로 분류한 데서 일반화되었다.

도가라고 할 때, 넓은 뜻으로는 노자를 교조(敎祖)로 하여 뒤에 성립하는 종교형태인 도교(道敎: Taoism)도 포함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도교와 구별하여 노자 ·장자(莊子) ·열자(列子) ·관윤(關尹) 등이 중심이 되는 철학파를 가리키며, 좁은 뜻으로는 노장철학(老莊哲學)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보면 노자와 장자, 양주(楊朱) ·열자를 중심으로 한 선진도가(先秦道家)뿐만 아니라 위진시대(魏晉時代)의 왕필(王弼)과 향수(向秀) ·곽상(郭象) 등을 주로 하는 현학파(玄學派)와 명리학파(名理學派)도 도가에 속한다.

도가는 부정적 사변법(思辨法)을 사용하여 유가(儒家)의 가치도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론적 본체관념(本體觀念)으로서 '道'와 '德'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도가의 도덕은 인위조작(人僞造作)하지 않으면서도 어김없이 전개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며, 이에 따라 인생론에서도 무욕과 허무의 방법 등 부정적 방법을 통하여 자연대도(自然大道)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하였고, 지식과 가치의 문제에서는 시비(是非)가 양행(兩行)하는 상대주의(相對主義)와 반지주의(反知主義)를 주창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장자(莊子)의 개체(個體)의 절대자유 ·절대평등의 사상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1. 장자(莊子,BC 369~BC 289?)〉, 《두산백과》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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