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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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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구청

도봉구(道峰區)는 서울특별시북동부에 있는 자치구이다. 1973년 성북구에서 분리되였으며 동쪽으로는 노원구, 서쪽과 남쪽으로는 강북구, 북쪽으로는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시, 고양시와 접한다. 명칭은 이 지역의 명산인 도봉산(道峰山)에서 이름을 따왔다.[1]

개요

서울특별시의 북동부, 경도상으로는 동경 127˚ 00´ 25˝~127˚ 03´ 19˝, 위도상으로는 북위 37˚ 37´ 39˝~37˚ 41´ 55˝에 위치한다. 구의 동쪽과 남쪽 끝은 창동, 서쪽과 북쪽 끝은 도봉동이며, 동서 간 거리는 4.3㎞, 남북 간 거리는 7.9㎞이다. 도봉구 면적 중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부분은 북한산 국립공원을 비롯한 공원이다. 면적은 20.84㎢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3.4%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5번째에 해당한다. 행정구역은 14개 행정동(4개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봉 1동이 전체 면적의 42%를 차지하여 가장 크고 쌍문 3동이 전체 면적의 2.4%로 가장 작다. 인구는 2020년을 기준하여 32만 7361명으로 서울시 전체 인구의 3.3%를 차지하여 25개 구 가운데 18번째에 해당한다.

구를 상징하는 꽃은 꽃창포, 나무는 은행나무, 새는 학이다. 구청 소재지는 방학동이다. 애니메이션 아기공룡 둘리,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JTBC 드라마 힘센 여자 도봉순 등의 배경 지역으로 유명하고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성기훈이 사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서울에서 가장 서민적인 동네라는 인식이 있다. 문화도시, 여성친화도시, 만화도시, 아동친화도시 등의 슬로건이 있다.[2][3]

자연환경

도봉구 북부에 도봉산의 최고봉인 자운봉(740m)을 비롯하여 만장봉(718m)·선인봉(708m) 등이 연봉을 형성하여 경기도 의정부시와 경계를 이루고, 남단의 창동에는 잔구성 산지인 초안산(114m)이 노원구와 경계를 이룬다. 도봉산 서쪽으로는 북한산과 산줄기가 연결되고 동남쪽 사면에는 구릉성 산지가 발달하였으며, 산지의 골짜기에 도봉계곡·무수골계곡(보문사계곡)·문사동계곡 등이 형성되었다. 구의 동쪽으로 서울~원산을 잇는 추가령구조곡이 지나가고, 그 단층을 따라 흐르는 중랑천이 노원구와 경계를 이룬다. 대체로 동서로 좁고 남북으로 긴 지형을 이루며, 도봉산 산지와 중랑천 동쪽의 노원구에 자리 잡은 수락산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에 시가지가 발달하였다. 지질은 중생대 쥐라기에 대보조산운동으로 형성된 대보화강암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자운봉·만장봉 등은 산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화강암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하천은 도봉산에서 발원하는 우이천·방학천·도봉천 등이 중랑천에 합류하며, 창동 부근을 흐르는 중랑천을 한천(漢川) 또는 한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평균기온(2001~2010년)은 12.3℃로 서울특별시 평균(13.0℃)보다 0.7℃ 낮다. 연평균 일 최고기온은 17.5℃, 연평균 일 최저기온은 7.8℃로 연평균 일교차가 9.7℃로 나타나 서울시 평균(8.8℃)보다 1℃ 가까이 높다. 식물의 성장 가능 기간은 259.8일로 서울시 평균(268.5일)보다 8.7일 짧다. 연평균 강수량은 1522.6㎜로 서울시 평균(1387.3㎜)보다 135㎜가량 많으며, 연평균 강수량의 64% 이상이 여름철에 집중하는 하계 다우형이다.

역사

도봉구 지역 일대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선사시대로 추정되나 아직 선사시대의 유적이나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넓은 의미에서 한강 유역 서울의 일부라는 점에서 한강변 선사 문화권에 포함될 수 있다. 강 하류의 서울 지역은 일찍이 삼국 세력의 각축장이 되었던 곳이며, 구체적으로 역사에 등장한 시기는 백제가 고대국가 체제를 갖추면서 한강 중심의 통치 구역에서 점차 남북으로 영토를 넓혀갈 무렵인 백제 고이왕(古爾王) 때로 알려져 있다.

고대 사회에서 군사적 요충지이며, 농업생산 활동을 위한 필수조건인 배산임수의 지형이 잘 발달된 도봉구 지역은 그 특성으로 인하여 각국의 선점 노력이 경주된 곳이기도 하다. 도봉구 지역은 백제의 한성시대를 지나, 장수왕(長壽王)의 남하정책에 의해 고구려 영토에 편입되었고, 고구려는 군현제에 따라 현재의 도봉구, 양주군 일대에 매 성군(買省郡)을 설치하였다. 이후 757년(경덕왕 16)에는 현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양주군 일대에 내소군(來蘇郡)이 설치되었다. 고려 태조는 이 내소군을 견주(見州)라 개칭하고, 신라 때의 한양군을 양주(楊州)라 고쳐 견주를 관할하게 하였고, 1081년(현종 9)에는 견주를 양주에 편입시켰다.

1394년(태조 3)에는 양주 범위 내에서 도읍 한성부를 정하고, 현재 도봉구 지역을 포함한 기타 양주 지역은 그대로 양주로 속하게 하였다. 2년 후인 1396년에는 한성부의 오부 방리(五部方里)를 정하여 경계 표석을 세웠는데, 이때 도봉구 일부 지역은 동부 숭신방(崇信坊)에 속하였다. 따라서 도봉구의 일부 지역은 조선시대부터 한성부의 성 외 지역이 되어왔다.

1895년(고종 32)에는 한성부 소속의 양주군은 칙령에 의거, 13도제에 따라 경기도의 3등 군이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기인 1912년경 노원면과 해등촌면은 양주군에 계속 속해 있다가 2년 후인 1914년 노원면과 해등촌면이 노원면으로 통합되게 되는데, 창동·도봉·방학·쌍문리 등의 도봉구 전체 지명이 비로소 나타나게 되었다.

1949년에는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됨에 따라 고양군 숭인면에서 새로 편입된 지역과 동대문구 일부 지역이 합해져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도봉구 지역은 숭인 출장소가 관할하게 되었다. 그리고 1963년 양주군 노해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 성북구에 편입되었고, 성북구 노해 출장소가 설치되어 도봉·방학·쌍문·창동리 등을 관할하게 되었다.

1973년 성북구의 공릉동·도봉동·미아동·방학동·번동·상계동·수유동·쌍문동·우이동·월계동·중계동·창동·하계동 등 13개 동을 분리하여 도봉구를 신설하고 21개 행정동(13개 법정동)으로 편제하였다. 구의 명칭은 지역의 명산인 도봉산에서 따왔으며, 이후 여러 차례의 분동을 거쳐 1985년에는 36개 행정동으로 확대되었다. 1988년 도봉 1~2동·창 1~3동·월계 1~2동·공릉 1~2동·상계 1~5동·중계동·하계동이 신설된 노원구에 편입되고 방학 3동이 신설되어 21개 행정동으로 축소되었으며, 1989년 도봉 1~2동과 창 1~3동이 다시 도봉구에 편입되고 창 4동이 신설되어 27개 행정동으로 재편되었다. 1991년에는 미아 9동·번 3동·쌍문 4동·창 5동에 이어 1994년 수유 6동·방학 4동이 신설되어 33개 행정동으로 확대되었다.

1995년 미아동·번동·수유동·우이동을 관할하는 18개 행정동이 신설된 강북구에 편입되어 도봉구는 15개 행정동으로 축소되었으며, 2008년 방학 3~4동이 방학 3동으로 통합되어 지금의 14개 행정동 체제가 갖추어졌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4개 행정동(도봉 1~2동·방학 1~3동·쌍문 1~4동·창 1~5동) 4개 법정동(도봉동·방학동·쌍문동·창동)으로 이루어져 있다.[4]

산업

도봉구는 부동산업을 비롯한 서비스업의 비중이 크다. 2018년을 기준하여 지역 내 총생산(GRDP)은 3조 3527억 원으로 서울시 전체 GRDP의 0.8%에 불과하여 25개 구 가운데 강북구 다음으로 비중이 낮다. 경제활동별 부가가치의 비중은 부동산업(6822억 원)이 약 22%로 가장 크고, 이 밖에 도소매업(12.6%), 교육서비스업(10.4%), 보건업·사회복지 서비스업(10.3%), 공공행정·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업(7.2%) 등의 순이다.

2018년을 기준하여 사업체 수는 1만 8894개로 서울시 전체 사업체의 2.3%에 그쳐 25개 구 가운데 가장 적다. 사업체별로는 운수·창고업체(5099개)가 약 27%로 가장 많고, 이 밖에 도소매업체(18.3%), 숙박·음식점 업체(14.6%), 협회·단체 수리 및 기타 개인 서비스 업체(10.9%), 제조업체(5.4%) 등의 순이다. 전체 사업체의 88%가 개인 사업체이고, 종사자 5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가 85%를 차지한다. 운수·창고업체는 서울시 전체 대비 5.3%로 25개 구 가운데 7번째로 많고, 제조업은 의류봉제·섬유 및 식료품 업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업체 종사자는 7만 4314명으로 서울시 전체 종사자의 1.4%에 그쳐 강북구 다음으로 적으며, 보건업·사회복지 서비스업 종사자(15.7%)가 가장 많다.

상업은 조선시대에 지금의 도봉동에 공립 여관 격인 누원(다락원)이 설치되었고, 누원 주변에 누원점(樓院店)이라는 장시가 형성되어 상업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시전 상인들의 금난전권이 미치지 않았던 누원점은 특히 함경도에서 올라오는 어물을 독점하였으며, 송파장과 더불어 한양도성 인근에서 손꼽히는 장시로 번성하였다. 오늘날 도봉구의 전통시장은 방학동 도깨비시장을 비롯하여 도봉동의 신도봉시장, 창동의 창동 신창시장과 창동골목시장, 쌍문동의 백운 시장과 쌍문 시장 등이 상설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교통

도봉구 도로 교통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서울시 송파구까지 이어지는 동부 간선도로가 중랑천을 따라 도봉구의 도봉동·방학동·창동 외곽을 거쳐 간다. 이 밖에 강북구 미아동에서 도봉동까지 이어지는 도봉로와 강북구 수유동에서 도봉구를 거쳐 경기도 남양주시까지 이어지는 덕릉로를 비롯하여 마들로(노원구 월계동~도봉동), 노해로(강북구 수유동~도봉구~노원구 상계동), 도당로(쌍문동~방학동), 방학로(강북구 우이동~방학동), 우이천로(노원구 월계동~쌍문동), 창포 원로(도봉동~경기도 의정부시) 등의 간선 도로가 도봉구의 내·외곽을 연결한다.

철도 교통은 1911년 창동역이 영업을 시작하여 서울~원산 간의 경원선이 운행하였다. 이후 1985년 상계역~사당역 간의 서울 지하철 4호선이 개통한 뒤 당고개역과 오이도역을 기·종점으로 하는 수도권 전철 4호선으로 확장되어 도봉구의 창동역~쌍문역을 경유하고, 1986년에는 경원선의 복선 전철화를 거쳐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성북역(지금의 광운대 역)~의정부역 구간이 개통하여 도봉구의 도봉산역~도봉역~방학역~창동역~녹천역을 거쳐 간다. 1996년에는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역에서 인천시 석남역까지 운행하는 수도권전철 7호선이 개통하여 도봉산역을 거쳐 간다. 창동역에서 수도권 전철 1호선과 4호선이, 도봉산역에서 수도권 전철 1호선과 7호선이 각각 접속한다.

관광

한국의 100대 명산의 하나로 꼽히는 도봉산이 북한산과 연접하여 북한산 국립공원을 구성한다. 도봉산은 자운봉·만장봉·주봉·오봉과 암벽등반 코스로 유명한 선인봉 등의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들이 이어져 장관을 이루고, 골 깊은 암봉 사이로 도봉계곡·문사동계곡·보문사계곡 등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축사와 도선국사가 창건한 원통사 등의 고찰(古刹)이 명산의 정취를 더하고, 우이암·무수골·신선대·포대능선 코스를 비롯하여 도봉구 방면에서 도봉산에 오르는 다양한 등산로가 조성되어 서울 및 근교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서울과 경기도에 걸쳐 북한산국립공원 주변에 조성된 북한산 둘레길 21개 구간 가운데 다락원에서 녹야원~도봉사를 거쳐 무수 골에 이르는 도봉 옛길과 무수 골에서 정의공주 묘에 이르는 방학동 길이 도봉구에 속한다.

역사 명소로는 방학동에 조선 제10대 왕인 연산군과 왕비 거창군 부인 신씨의 묘가 보존되어 서울 연산군묘라는 명칭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도봉동에는 도봉서원과 인근의 도봉계곡에 송시열·송준길 등 조선시대의 문인·학자들의 글씨가 새겨진 각석군(刻石群)이 남아 있다. 이 밖에 만화 《아기공룡 둘리》의 공간 배경인 쌍문동에 조성된 둘리 뮤지엄과 둘리 유아숲 체험장, 30만 본의 붓꽃으로 가득한 붓꽃원과 약용식물원·습지원 등 12개 테마로 조성된 도봉동의 서울창포원,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된 수령 600년의 방학동 은행나무와 도봉구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방학동 도깨비시장, 벚꽃이 만개하면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우이천 벚꽃길,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공간 배경인 쌍문동의 유명세를 치르고 오래된 골목길에 다양한 음식점·카페 등이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명소로 떠오른 쌍문역 주변의 쌍리단길 등이 있다.

교육

전통 교육기관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에 속하여 1401년(태종 1)에 창건된 양주향교가 공공 교육기관 역할을 하였다. 이 밖에 1573년(선조 6) 해 등촌면(지금의 도봉구)에 조광조를 배향하는 도봉서원이 건립되어 사학(私學)의 역할을 하다가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된 뒤 1972년에 복원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은 1930년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지금의 도봉구 창동)에서 개교한 창동 보통학교가 도봉구 지역의 첫 근대 초등학교로 기록된다. 창동 보통학교는 창동 공립심상소학교·창동 국민학교 등의 변천을 거쳐 지금의 서울 창동초등학교로 이어지며, 이 학교를 모태로 하여 서울 도봉초등학교·서울 방학초등학교·서울 창도초등학교·서울 숭미초등학교·서울 월천초등학교·서울 창일초등학교·서울 창원초등학교 등이 개교하였다. 이 밖에 1937년 종로구 연건동에서 개교한 창경 국민학교가 1989년 쌍문동의 현 위치로 이전하여 지금의 서울 창경초등학교로 이어진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69년 도봉 여자중학교(지금의 신도봉중학교), 1971년 도봉중학교와 정의여자중학교, 1975년 신경 여자상업고등학교(지금의 세 그루 패션디자인고등학교), 1976년 정의여자고등학교 등이 개교하엿다. 고등교육기관은 1925년 종로구에서 개교한 근화 여학교가 근화여자실업학교·덕성여자실업학교·덕성여자초급대학·덕성여자대학 등의 변천을 거쳐 1984년 쌍문동의 현 위치로 이전한 뒤 1987년 종합대학 덕성여자대학교로 승격하여 지금에 이른다. 2019년을 기준하여 교육기관은 대학교 1개교와 고등학교 10개교, 중학교 13개교, 초등학교 23개교 등이 있다. 학생 수는 3만 8890여 명으로 서울시 전체 학생 수의 약 2%를 차지한다.

문화재

지도

동영상

각주

  1. 도봉구〉, 《위키백과》
  2. 도봉구〉, 《네이버 지식백과》
  3. 도봉구〉, 《나무위키》
  4. 도봉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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