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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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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위치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그리스어: Περιφέρεια Ανατολικής Μακεδονίας και Θράκης)는 그리스 북동부에 위치해 있는 주이다.[1][2]

개요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의 면적은 14,157.76㎢이며 인구는 608,182명(2011년)이다. 주도는 코모티니이다. 드라마 현, 에브로스 현, 카발라 현, 로도피 현, 크산티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케도니아 지역 동부와 트라키아 지역 서부에 걸쳐 있다. '마케도니아 및 트라키 분권 정부'에 속한다. 동쪽으로는 마리차 강(그리스어로 에브로스 강)을 따라 튀르키예, 북쪽으로는 불가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1987년 동마케도니아주가 서트라키아주와 합병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주는 그리스의 모든 주 중 가장 무슬림 인구가 많다. 그 이유는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 당시 서부 트라키아 지방에 거주하는 약 9만 명의 튀르키예인들은 추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리스 정부에서 '튀르키예인'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대신 로잔 조약의 규정에 따라 트라키아의 '튀르키예인'들은 포마크인, 무슬림 집시들과 같이 하나로 묶어 '무슬림 그리스인'으로 분류 및 관리되고 있다. 그리스 대법원에서는 튀르키예인은 튀르키예 국적의 사람을 의미한다며 트라키아의 튀르키예인 소수민족 단체에 대해 '튀르키예인'이라는 이름을 못 쓰게 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일단 그리스 정부에서는 형식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트라키아 지방의 튀르키예인들을 비공식적으로 추방하는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튀르키예에서 추방된 정교회 '그리스인'들을 이 곳에 정착시키거나 트라키아 지방의 토지를 사는 그리스인들에게 저리 융자를 제공해 주는 등 트라키아 지방의 튀르키예 색채를 지우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행해왔으며, 아울러 실질적으로 이 지방의 튀르키예인들은 포마크인, 아나톨리아에서 이주해온 룸인들과 한 데 묶여 박해당하고 거의 비국민 취급을 받았다.

또한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은 그리스 내전 당시 주된 격전 지역이었기 때문에 내전에서 희생된 이들도 많았다. 당시를 기억하는 노인들에게 당시에 대한 증언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1970년대 그리스의 민주화 이후로도 키프로스 문제 때문에 그리스 내 튀르키예인들은 이런저런 차별을 받았다. 예를 들면 민족적 의미에서 그리스인이 아니라고 규정된 사람들은 귀국을 보증하지 않으면 출국과 동시에 그리스 국적을 박탈하는 법이 1990년대까지 있었는데 주로 튀르키예인 등의 그리스 무슬림들이 대상이었다. 링크 많이 나아진 지금에 와서도 그리스 정부와 그리스의 튀르키예인들은 앞서 언급한 '튀르키예인' 칭호 사용 금지 등 여러 갈등이 남아 있다. 현재도 그리스 인구의 1.3%는 무슬림이며 이 중 절반 가량이 바로 서부 트라키아 지방에 거주하는 튀르키예인이다.

자연환경

그리스에서 자연환경이 가장 좋은 지역으로 남아있다. 때묻지 않은 산지와 삼림지대가 많고 불곰, 황금자칼, 붉은여우, 붉은사슴, 알프스산양, 멧돼지, 검독수리, 그리폰독수리, 바위자고새, 들꿩, 딱따구리 등 여러 야생동물들도 많이 서식하는 등 야생 동물들의 서식 개체군이 아직도 남아있을 정도로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덕분에 그리스 여행을 가다 이 지역을 갖다온 서양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사냥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신화 속에서 사냥을 하던 사냥터 같다는 평을 내린다고 한다.

주요도시

코모티니

코모티니는 그리스 동마케도니아트라키아주의 로도페 현에 속하는 도시이다. 북동부 그리스의 주요 행정, 금융, 문화 중심지이고 주요 농축산업 센터이기도 하다. 트라키아의 테모크리토스 대학 캠퍼스가 이 도시에 있어서 학생 수천 명이 이 도시에서 공부한다. 이곳은 로마시대에 에그나티아 가도를 따라 지어진 요새 도시였다. 코모티니는 그리스 북동부에 있는 도시이다. 아테네에서 북동쪽으로 795km 떨어져 있고, 그리스 제2도시 테살로니키에서는 북동쪽으로 281km 거리에 있다. 같은 이름의 평원 북부에 자리잡았다. 도시의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트레로히마로스강과 보클루차스강이 흐른다.

코모티니는 대학도시이기도 하다. 트라키아의 테모크리토스 대학 캠퍼스가 이 도시에 있어, 그리스 학생과 유학생 수천 명이 이 도시에서 공부한다. 트라키아의 데모크리토스 대학에는 8개 학부가 있고, 각각은 인문학, 공학, 법학, 농학, 사범대학, 경제학과 사회과학, 보건학, 체육대학이다. 이 대학의 전체 재학생 수는 약 1만8000명이다. 트라키아의 데모크리토스 대학은 1973년에 설립되었고, 코모티니 외에 알렉산드루폴리, 크산티 등에도 캠퍼스를 두고 있다. 관광 측면에서 코모티니는 서구와 동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가운데 대학가의 활력이 더해졌다는 특징이 있다.

코모티니 가까이에는 공항이 없다. 알렉산드루폴리 공항은 65km 떨어져 있고, 카발라 공항은 80km 거리에 있다. 지상 교통이 편리해 철도와 도로를 통해 그리스 전역은 물론이고 터키의 이스탄불과도 연결된다.

이 지역에는 AD 2세기부터 정착촌이 형성되었다. 로마시대 이곳에는 에그나티아 가도를 따라 지어진 여러 요새 중 하나가 위치했다. 에그나티아 가도의 요새 도시 중 가장 중요한 곳은 막시미아노폴리스였다. 동로마(비잔티움) 시대에도 이곳은 모시노폴리스로 개명된 막시미아노폴리스에 가려 있었다. 불가리아의 침략으로 모시노폴리스가 파괴되면서 1207년에 이곳에 피난민이 왔고, 오늘날 코모티니의 구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코모티니는 1360년대에 오스만제국에 편입되었다. 오스만 시대에 코모티니는 콘스탄티노플과 유럽의 오스만 지역을 연결하는 요충지 역할을 활발히 이어갔다. 무슬림들이 계속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토착 그리스인들 중 일부는 무슬림을 피해 현재의 암모토포스와 트로파이아 등 지역으로 이주해갔다. 코모티니와 암모토포스, 트로파이아의 유대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불가리아가 1차 발칸전쟁(1912) 때 코모티니를 차지했다. 그리스는 2차 발칸전쟁(1913)에서 코모티니를 점령했다. 그러나 코모티니는 부카레스트 조약에 따라 불가리아로 다시 넘겨졌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불가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코모티니는 1차대전 종전 후 1919년에 서트라키아의 다른 지역과 함께 그리스에 통합되었다.[3]

알렉산드루폴리

알렉산드루폴리는 그리스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아주 에브로스현의 도시다. 알렉산드루폴리는 그리스 동북부의 주요 항구이자 상업 중심지다. 공항이 가까이 있고 철도와 도로 등의 교통도 편리하다. 매년 여름에 와인 축제를 개최한다. 터키 국경과 40km, 그리스 2대 도시 테살로니키와 346km 떨어져 있다.

알렉산드루폴리는 항구, 공항, 철도, 도로를 갖추고 있다. 인근의 디모크리토스 국제공항은 알렉산드루폴리 도심에서 약 6km 떨어져 있다. 이 공항에서는 아테네와 크리티로 매일 운항하고 성수기에는 독일과 러시아도 오간다. 항구는 주로 여객 운송에 활용되고, 사모트라키섬을 매일 오가는 배편이 있다. 철도는 테살로니키와 디카이아 등으로 연결된다. 알렉산드루폴리의 버스는 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의 주요 도시들과 아테네를 오가고, 불가리아, 터키와도 연결된다. 알렉산드루폴리는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띤다. 연평균 강수량은 549mm로 많지 않은데,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 비가 더 내린다. 8월의 일중 최고기온 평균은 30.2도, 1월의 일중 최저기온 평균은 1.1도이다.

알렉산드루폴리는 행정구역상으로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아주 에브로스현에 속하고 현청 소재지다. 그리스에서 신도시로 꼽히고, 이전에 터키식 지명으로 불리다 1920년에 '알렉산드로스의 도시'를 뜻하는 현재의 지명이 부여되었다. 19세기 말까지도 이 지역은 작은 마을이었고 주민들은 어로에 종사했다. 인근에는 고대에 사모트라키 식민지였던 살레 지역이 있다. 사모트라키는 1863년에 출토된 니케 조각상으로 널리 알려진 섬이다.

알렉산드루폴리는 매년 여름에 와인 축제를 연다. 와인 축제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행사다. 알렉산드루폴리와 에브로스 현의 문화 단체들은 축제 참가자들에게 이 지역의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을 다양한 육류 안주를 곁들여 제공한다. 와인 축제는 198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5년 뒤인 2013년에 재개되었다. 알렉산드루폴리에는 1400석 규모의 정원 극장이 있다. 2017년에 알티날마지스 생태공원 내에 조성된 이 정원 극장에서는 연극 공연과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린다. 해변의 킹알렉산드로스 거리에서 매년 도서전시회가 열린다. 부두 일대에서는 격년으로 알렉스포 무역박람회가 개최된다.

알렉산드루폴리의 관광명소는 등대, 트라키아 민속박물관, 에브로스 삼각주, 키클로페스 폴리페모스 동굴 등이다. 등대는 1850년에 세워졌고 1880년부터 가동되었다. 바다로부터의 높이는 27미터다. 등대의 불빛은 전기로 15초마다 세 번 깜박이고 24해리(약 44km)까지 도달한다. 트라키아 민속박물관은 1899년에 지어진 신고전 양식 석조 건물에 2002년 개관했다. 트라키아 지역의 토속적인 의복, 음악, 과자, 청동기와 토기, 섬유, 농경 문화 유적을 전시한다.

희귀 생물이 많이 서식하는 에브로스 삼각주는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 삼각주의 희귀 생물은 식물 300종, 포유류 40종, 파충류 28종, 어류 46종, 조류 320종으로 집계되었다. 키클로페스는 그리스 전설의 외눈박이 거인족이고, 폴리페모스는 그 중 한 명으로 오딧세우스의 모험에 등장한다.[4]

크산티

크산티는 그리스의 북동쪽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아주 크산티현의 현청 소재지이다. 크산티는 그리스 북동쪽에 자리잡고 있다. 크산티는 그리스 제2 도시 테살로니키와 206km 떨어져 있고, 수도 아테네와의 거리는704km다. 행정구역상으로 크산티는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아주 크산티현에 속한다. 크산티는 크산티현의 현청 소재지다.

크산티는 터키와 가까워, 이스탄불에서 397km, 에디르네와는 236km 떨어져 있다. 크산티는 그리스 북쪽에 있는 불가리아와도 가깝다. 크산티 북쪽으로 51km 떨어진 그리스와 불가리아 국경에 국경관리소가 운영되고 있다. 국경을 넘으면 나오는 불가리아 도시는 즐라토그라드이다.

크산티는 코신토스강을 경계로 동서로 나뉜다. 서쪽에는 구시가지신도시가 들어서 있고, 동쪽에는 자연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다. 크산티의 구시가지에는 동로마(비잔티움)제국시대 그리스 교회와 18~19세기 신고전 양식 저택, 그리고 오스만시대 모스크 등 건물이 있다. 크산티의 관광명소로는 아브데라 고고학박물관과 그리스 민속박물관이 있다.

크산티시 경계에서 몇 km 거리에 에그나티아 자동차 도로가 지나간다. 이 도로는 마케도니아, 이피로스, 트라키아주를 지난다. 크산티는 버스를 통해 그리스 전역의 도시와 연결된다. 크산티 교외에는 크산티역이 있고, 이 역을 통과하는 철도는 테살로니키-알렉산드루폴리 노선이다. 크산티에는 공항이 없다. 이 도시에서 항공 여행을 하려면 42km 떨어진 카발라 공항이나 112km 거리의 알렉산드루폴리 공항으로 가야 한다.

크산티는 오랜 역사와 전통, 관습을 바탕으로 지역에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여러 문화가 어우러져 '천의 얼굴을 지닌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크산티에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것은 터키어를 쓰는 무슬림 인구가 크산티를 비롯해 동마케도니아와 트라키아 지역에 많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무슬림이 거주한 시기는 오스만 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케도니아와 이피로스 지역의 무슬림은 1920년대의 그리스-터키 인구교환에서 제외되었다. 그리스-터키 전쟁(1919~1922) 이후 이뤄진 인구교환은 터키에 거주하던 그리스 정교도는 그리스로 오고, 그리스에 살던 무슬림은 터키로 가는 조치였다. 이 지역의 무슬림은 1972년 시 당국의 시계탑 철거 시도를 무산시켰다. 오스만 시대인 1870년에 지어진 시계탑은 오늘날에도 크산티의 랜드마크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크산티에서는 매년 2월 카니발이 열린다. 그리스 전역의 40여 문화단체가 카니발에 참여한다. 카니발은 콘서트, 연극, 전시 등 행사와 함께 펼쳐진다. 매주 토요일에는 엠보리오우 광장에 시장이 열린다.

크산티 주민들은 전통적으로 담배 재배를 비롯한 농업과 상업 등에 종사했었다. 관광업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고, 크산티의 거리는 특히 카니발 기간에 붐빈다.

크산티는 고대 그리스의 기록에서는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동로마제국 시대에 도시로 발달했고 1361년에 오스만 제국에 편입되었다. 18세기 초에 이르면 고급 담배 산지로 알려졌다. 1차 발칸전쟁(1912) 때 불가리아가 크산티를 차지했다. 그리스는 2차 발칸전쟁(1913)에서 크산티를 점령했다. 그러나 크산티는 부카레스트 조약에 따라 불가리아로 넘겨졌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9년까지 불가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1차대전 종전 후 연합군 진주를 거쳐 그리스가 크산티를 되찾았다.

크산티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다시 불가리아의 지배 아래 놓였다. 독일이 1941년에 그리스 본토를 점령한 다음 그리스의 일부 지역을 동맹국 불가리아에게 넘겼기 때문이다. 불가리아는 점령기에 크산티 남자 2000여 명을 불가리아로 보내 강제 노역을 시켰다. 또 1943년에 크산티의 유대인을 체포해 수감한 뒤 550명을 폴란드의 나치 캠프로 보냈고 이 가운데 6명만 홀로코스트를 모면했다. 크산티는 1944년 10월 말에 불가리아 군대가 연합군의 압력에 따라 철수하면서 해방되었다.[5]

지도

동영상

각주

  1. 동마케도니아 트라키주〉, 《위키백과》
  2. 동마케도니아 트라키〉, 《나무위키》
  3. 유럽지명사전 : 그리스 코모티니〉, 《네이버 지식백과》
  4. 유럽지명사전 : 그리스 알렉산드루폴리〉, 《네이버 지식백과》
  5. 유럽지명사전 : 그리스 크산티〉,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남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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