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대구)
중구(中區)는 대구광역시 가운데 있는 구로, 대구광역시청 소재지이다. 면적이 대구광역시에서 가장 작다. 대구광역시 최대의 시장인 서문시장이 있는 대신동과 성내동 관할의 태평로, 동성로, 종로, 봉산동 등은 대부분 중심 상업 지구이며, 남산동과 대봉동, 달성동 일대에만 전형적인 주거지를 볼 수 있다. 중구는 조선 선조 34년(1601년) 경상감영이 현 포정동에 설치되면서, 경상도의 행정, 산업, 군무의 중심지로 형성되었고 현재도 경상북도, 대구광역시의 심장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1]
개요
대구광역시의 중앙, 경도상으로는 동경 128˚ 34'~128˚ 36', 위도상으로는 북위 35˚ 51'~35˚ 52'에 위치한다. 동쪽으로는 대구시 동구와 수성구, 서쪽으로는 서구, 남쪽으로는 남구, 북쪽으로는 북구에 접한다. 구의 동쪽 끝은 동인동 4가, 서쪽 끝은 대신동, 남쪽 끝은 대봉동, 북쪽 끝은 달성동이며, 동서 간 거리는 3.6㎞, 남북 간 거리는 2.5㎞이다. 면적은 7.06㎢로 대구시 전체 면적의 0.8%를 차지하여 8개 구·군 가운데 가장 작다. 예로부터 대구의 중심 지역으로서 행정구역은 12 행정동(57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인동이 전체 면적의 14%를 차지하여 가장 크고 대봉 2동이 전체 면적의 3.5%로 가장 작다. 인구는 2023년 7월을 기준하여 83,945명이다. 구를 상징하는 꽃은 백일홍, 나무는 느티나무, 새는 백로이다. 구청 소재지는 동인동 2가이다.
중구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구는 사통팔달 대구광역시의 교통 1급지다. 대구광역시 시내버스 노선 대다수가 중구를 경유하고 대구 도시철도 1, 2, 3호선 모두 중구에서 환승한다.
중구의 대부분이 근대 이전 대구읍성의 성내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역사가 깊은 지역이다. 그 대구읍성은 일제강점기 때 헐렸는데, 성곽을 부순 자리에는 길이 생겨 현재의 동성로(현재 우리가 아는 시내 동성로), 서성로(서문시장 인근), 남성로(약령시 인근), 북성로(대구역 앞)를 구성하고 있다. 이 거리들의 어원을 모르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다.
서울로 치면 한양의 사대문 안과 비슷한 지역이다. 삼국시대 초기 토성유적인 달성 역시 중구 서쪽 끝에 있으며 대구의 감영, 성곽, 군영, 대구향교(원래 교동에 있었다.), (옛날과 지금의) 서문시장은 물론 성당이나 교회 같은 근대 건축물까지 모두 중구 안에 있다. 아울러 나이 많은 분들 중엔 옛날에 중구 시내를 성내(城內)라고 불렀다는 분도 있으며 지역 조폭인 향촌동파, 동성로파(모두 중구)는 서로 같은 '성내 식구들'이라 부르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 동성로와 신천 사이에 있는 동인동, 삼덕동, 봉산동이 일본인의 거주지였던 터라 일본인의 관사와 주택, 공공시설들이 지어졌고 재개발을 거친 지금도 이 동네에는 가끔씩 일본식 주택이 발견된다. 일본인 사찰(관음사)과 일본인 교회(성공회 대구교회)는 주인만 바뀌어 아직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실거주 인구는 지속적으로 줄고, 따라서 번화한 낮과 썰렁한 밤의 대비가 아주 인상적이다. 현재 대구의 자치단체 중 인구가 가장 적어 국회의원 선거도 남구와 합쳐서 1명을 뽑는다.
중구는 오랫동안 대구광역시의 중심 상업지구였다. 실제로 중구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산동 등 일부 동네를 빼면 아파트 단지를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 들어서 태평로 일대의 오래된 공업지역과 슬럼화된 주거지역이 있던 자리에 1군 건설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의 분양, 입주가 시작되었고, 이후 중구 곳곳의 1960~70년대 형성된 오래된 주택단지가 있던 곳에 재개발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주거단지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남산동의 청라언덕역 일대도 천지개벽이 일어나고 있는 동네다. 이 같은 재개발 과정에서 도로망 확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교통 정체, 주거지와 상업지의 구분 없이 뒤섞인 난개발, 도심 기능의 악화는 해결해야 할 문제다.
도심 재개발 덕분에 인구가 감소하는 대구의 다른 지역들과 달리 인구가 소폭이나마 증가 추세에 있으며 2022년 12월엔 8만명대 회복에 성공했다.
이곳은 주로 동명보다는 동성로, 북성로, 남성로, 서성로 및 반월당으로 구분되고 말하기 때문에 대구지역 사람들도 중구의 법정동은 일부 말곤 생소해 하는 경우도 많다. 근대부터 존속하던 도시여서 워낙 법정동의 규모가 작고 경계가 엉망이며, 매우 조밀하기 때문인데, 이 점은 서울의 중구와 닮은 편이다. 대표적으로 반월당이 있는 곳인 성내동조차 모르는 시민들이 많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산이 없다. 서울 영등포구에도 산이 없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출입이 불가능할 뿐 “쥐산” 이라는 산이 존재한다.[2][3]
자연환경
분지상 대구 지역의 중심지로 팔조령에서 발원하는 신천의 서쪽 범람원과 그 주변에 발달한 낮은 구릉지로 형성되어 있다. 그 범람원은 두텁게 퇴적된 사력질 토양의 충적층으로 두께가 3~5m이기 때문에 투수성이 강하다. 북동부의 팔공산(1,193m)과 남구의 대덕산(584m)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개방된 나팔상의 대구분지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다.
기후는 현저한 내륙성 기후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14.8℃이며, 최한월인 1월의 평균기온은 0.8℃인 반면에 최난월인 8월의 평균기온은 25.8℃로써 연교차는 25.0℃에 달하고, 연간 강수량은 1222.4㎜ 내외로 한국의 대표적인 과우지역이다.[4]
역사
신천 유역의 대봉동에서 고인돌과 민무늬토기 등 청동기시대에 취락이 형성되었던 유적 및 유물이 확인된다. 삼국시대에 대구 지역은 신라에 복속되어 위화군(喟火郡)이 설치되고 달구화현(達句火縣)·팔거리현(八居里縣)·다사지현(多斯只縣)·설화현(舌火縣)의 4개 현이 영현(領縣)이 되었는데, 달구화현이 지금의 중구를 포함하는 대구 중심부의 신천 중하류 지역에 해당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 달구화현은 대구현(大丘縣)으로 개편되어 '대구(大丘)'라는 지명이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조선 정조 이후 '丘'와 '邱(구)'가 혼용되다가 철종 때부터 '大邱'로 굳어져 지금에 이른다. 고려시대에 대구현은 상주목(尙州牧) 경산부(京山府)의 속현(屬縣)이 되었다가 1143년(인종 21) 현령이 파견되어 지방관이 관할하는 주읍(主邑)이 되었고, 지금의 달성군 지역인 화원현(花園縣)과 하빈현(河濱縣)을 속현으로 두었다.
조선이 개국한 뒤, 1413년(태종 13) 전국이 8도로 재편되어 대구현은 경상도에 속하였다. 1419년(세종 원년) 대구현이 대구군(大邱郡)으로 승격한 데 이어 1466년(세조 12)에는 대구군이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로 승격하였으며, 1601년(선조 31) 경상도 감영(監營)이 지금의 중구 포정동으로 이전하여 조선 말기까지 영남 지방의 중심지가 되었다.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되면서 대구도호부는 대구부가 되어 대구군·칠곡군을 비롯한 23개 군을 관할하였으며, 이듬해 23부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13도로 재편되면서 대구군은 경상북도에 소속되어 동상면·서상면을 비롯한 34개 면을 관할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대구군이 대구부로 개칭되고 1911년 동상면과 서상면을 통폐합한 대구면이 설치되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이 시행되어 대구부는 지금의 중구 대부분과 북구 칠성동에 해당하는 대구면만 관할하고 나머지 지역은 16개 면으로 통폐합되어 신설된 달성군에 편제되었다. 1917년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과 봉덕동 일부가 대구부에 편입되어 대봉동이 신설되었으며, 1938년에는 달성군 수성면 전역의 14개 동과 성북면의 4개 동, 달서면의 10개 동이 대구부에 편입되어 관할구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8·15광복 후, 1948년 대구부가 대구시로 개편되었다. 1953년 지금의 중구 지역에 동인동1가를 비롯한 17개 동을 관할하는 중부출장소와 덕산동을 비롯한 38개 동을 관할하는 종로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63년 대구시에 구제(區制)가 실시되어 중부출장소와 종로출장소를 통합한 중구(中區)가 설치되었다. 신설된 중구는 54개 법정동과 21개 행정동으로 편제되었으며, 1964년 북구의 태평로3가가 중구에 편입되어 55개 법정동이 되었다. 1965년 행정동 통폐합을 거쳐 13개 행정동(남성동, 달성동, 대신동, 동성동, 동인동1·2가, 동인동3~4가, 봉산동, 북성동, 삼덕동1·2가, 삼덕동3가, 서성동, 종로동)으로 개편되었다.
1980년 남구의 남산동과 대명동·대봉동 일부가 편입되어 법정동인 남산동·대봉동, 행정동인 남산 1~4동과 대봉 1~2동으로 편제되고 종로동이 폐지되어 19 행정동 57 법정동으로 재편되었다. 1988년 자치구로 승격되었고, 1995년 대구광역시에 소속되었다. 1998년 동인동 1·2가와 동인동 4가가 동인동 1·2·4가로, 삼덕동1·2가와 삼덕동3가가 삼덕동으로, 동성동과 봉산동이 성내 1동으로, 남성동과 북성동이 성내2동으로, 달성동과 서성동이 성내3동으로, 대신 1~2동이 대신동으로 각각 합동되어 13개 행정동으로 축소되었으며, 2011년 동인동 1·2·4가와 동인동 3가가 동인동으로 합동되어 12 행정동 체제로 정비되었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2 행정동(남산 1~4동·대봉 1~2동·동인동·삼덕동·성내 1~3동·대신동) 57법정동(계산동 1~2가·공평동·교동·남산동·남성로·남일동·달성동·대봉동·대신동·대안동·덕산동·도원동·동문동·동산동·동성로 1~3가·동인동 1~4가·동일동·문화동·봉산동·북내동·북성로 1~2가·사일동·삼덕동 1~3가·상덕동·상서동·서내동·서문로 1~2가·서성로 1~2가·서야동·수동·수창동·시장북로·완전동·용덕동·인교동·장관동·전동·종로 1~2가·태평로 1~3가·포정동·하서동·향촌동·화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
상업은 조선시대에 대구읍성 북문 밖에서 매달 끝자리가 2일과 7일인 날에 정기적으로 열린 부내장(府內場, 대구장)이 평양장·강경장과 함께 전국 3대 장터로 번성하였다. 대구장은 조선 숙종 때 경상감영의 서문 밖으로 이전하여 서문시장의 유래가 되었으며, 서문시장은 1923년 대신동의 현 위치로 이전하여 대구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교동의 교동시장, 남산동의 남문시장, 용덕동의 대구 패션주얼리 특구, 동인동4가의 동부시장, 대봉동의 방천시장, 태평로1가의 번개시장, 장관동의 약령시장, 덕산동의 염매시장(덕산시장) 등 20여 개소의 전통시장이 상설시장으로 운영된다.
중구는 대구광역시의 제1 도심으로 여러 상업시설, 은행들과 기업체의 대구지점/지사가 밀집한 곳으로 수성구, 달서구와 더불어 대구에서 가장 중요한 구이기도 해서 경제 상황이 나쁘지는 않다. 다만 문제는 대구광역시청이 2026년 달서구로 이전할 예정이라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교통
대구시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사통팔달의 도로망과 철도망을 갖추고 있다. 도로 교통은 달구벌대로가 달성군 하빈면을 기점으로 달서구~중구~서구를 거쳐 수성구 사월동까지 이어져 대구시 중앙부를 동서로 연결하고, 신천 대로가 달서구 월성동을 기점으로 서구~북구~중구~남구를 거쳐 달성군 가창면까지 이어진다. 이 밖에 남구 대명동을 기점으로 중구를 거쳐 북구 침산동까지 이어지는 중앙대로와 서구 중리동을 기점으로 중구를 거쳐 수성구 만촌동까지 이어지는 국채보상로를 비롯하여 명덕로[[(달서구)] 두류동~중구~수성구 범어동)·공평로(삼덕동 2가~북구 칠성동 2가)·큰장로(남산동~대신동)·태평로(달성동~동인동 3가)·신암로(동인동~동구 신암동)·원대로(달성동~북구 침산동)·이천로(남구 봉덕동~삼덕동2가)와 남산로·남성로·달성로·동성로·북비산로·북성로·서성로·종로·침산로 등이 중구의 내·외곽을 연결한다.
철도 교통은 1997년 대구 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하여 달성군 화원읍의 설화명곡역을 기점으로 달서구·남구·북구 지역과 중구의 명덕역~반월당역~중앙로역을 거쳐 종점인 동구 괴전동의 안심역까지 32개 역을 운행한다. 2005년 대구 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하여 달성군 다사읍의 문양역을 기점으로 달서구·서구·수성구 지역과 중구의 청라언덕역~반월당역~경대병원역을 거쳐 종점인 경북 경산시의 영남대역까지 29개 역을 운행하고, 2015년에는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이 개통하여 북구의 칠곡경대병원역을 기점으로 서구·남구 지역과 중구의 달성공원역~서문시장역~청라언덕역~남산역을 거쳐 수성구의 용지역까지 30개 역을 운행한다. 명덕역에서 1호선과 3호선이, 반월당역에서 1호선과 2호선이, 청라 언덕역에서 2호선과 3호선이 각각 접속한다.
관광
예로부터 대구의 중심지로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축적된 역사문화유산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며, 달성토성을 비롯하여 경상감영과 옛골목, 국채 보상운동기념공원, 동성로와 서문시장 등 '대구 12경' 가운데 5곳이 중구에 속한다. 달성동의 달성토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곽으로서 사적(대구 달성)으로 지정되었으며, 성지(城址) 일대에 달성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달성공원은 경상감영의 정문을 옮겨 세운 관풍루(觀風樓, 대구문화재자료)와 향토 역사관, 호랑이·사슴·타조·물개 등을 관람할 수 있는 동물원과 오솔길 등이 조성되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의 휴식처이다. 조선 후기에 경상도를 다스리던 감영이 있던 포정동의 경상감영지(慶尙監營址, 사적) 일원에도 경상감영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경상도 관찰사가 집무실로 쓰던 선화당(宣化堂, 보물)과 살림채로 쓰던 징청각(澄淸閣, 대구유형문화재)이 보존되어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다.
동인동 2가의 국채보상 운동 기념공원은 일제강점기에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된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공원으로서 맑은 종소리로 향토의 얼과 시민의 기상을 일깨우는 22.5t의 달구벌대종과 독립지사 흉상, 국채보상운동기념관 등이 휴식 공간과 함께 조성되어 있다. 동성로는 태평로2가의 대구 역네거리에서 동성로 관광안내소에 이르는 문화·쇼핑의 중심지로서 옛 대구읍성을 표시하는 장대석으로 이어진 보행자 전용 거리와 이면 도로로 이어지는 골목 상권에 걸쳐 백화점·영화관·소극장과 귀금속거리·떡볶이 골목·가방 골목·야시골목·구제골목 등 볼거리·먹거리·즐길거리가 풍성하다. 서문시장은 조선 시대 대구장의 전통을 잇는 대구 최대의 재래시장으로서 대구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한번쯤은 들르는 관광 명소이며, 2016년에 개장한 야시장도 미디어 파사드가 펼쳐지는 화려한 야경 속에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넘쳐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풍부한 역사문화유산이 산재하는 골목을 연계한 '골목 투어'가 경상 감영달성길·근대 문화 골목·패션 한방길·삼덕 봉산문화길·남산 100년 향수길의 5개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1코스 '경상감영달성길'(3.25㎞)은 경상감영공원에서 대구근대역사관과 옛 번화가인 향촌동, 북성로와 경찰역사 체험관,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감옥 생활을 지켜보았다 하여 붙여진 대구 종로초등학교 교정의 최제우나무, 삼성그룹의 모태가 된 삼성상회 터 등을 거쳐 달성공원에 이른다. 2코스 '근대 문화 골목'(1.64㎞)은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코스로 박태준의 가곡 《동무 생각》의 배경인 동산 청라언덕과 3·1 만세운동길, 1902년에 건축된 계산동성당(사적), 경북 지방 최초의 기도교 교회인 대구 제일교회(대구유형문화재),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민족운동가 서상돈(徐相敦) 고택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李相和) 고택,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桂山藝家), 조선에 귀화하여 대구에 정착하였던 명나라 장수 두사충(杜師忠)의 일화가 깃든 뽕나무 골목, 36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대구약령시와 한방 의료체 험타운, 옛 번화가 종로와 대구화교소학교(대구화교협회) 등으로 이어진다.
3코스 '패션한방길'(2.65㎞)은 동문동의 패션 주얼리 타운과 교동의 귀금속거리, 동성로와 남성로 약령시를 거쳐 서문시장으로 이어지고, 4코스 '삼덕봉산문화길'(4.95㎞)은 국채 보상 운동 기념공원에서 삼덕동 문화거리와 김광석다시그리기길, 봉산문화거리와 대구향교를 거쳐 건들바위(大邱笠巖, 대구기념물)로 이어진다. 대봉동의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은 이곳 출신의 가수 김광석을 기념하여 그의 삶과 음악을 주제로 한 벽화와 노래하는 모습의 조형물 등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김광석 스토리 하우스에서 그가 남긴 노래와 유품 및 콘서트 영상 등을 접할수 있다. 매년 가을에 김광석 노래부르기경연대회가 열리며, 인근의 방천시장과 연계된다. 봉산문화거리는 1990년대부터 봉산동에 크고 작은 화랑들이 들어서면서 화랑 골목이 형성되었고, 봉산문화회관과 청소년문화의집 등이 더해져 예술가와 시민이 함께하는 대표적 문화예술의 거리로 자리매김하였다. 5코스 '남산 100년 향수길'(2.12㎞)은 대구에서 한국인이 세운 첫 백화점 반월당이 있던 남산동 반월당 사거리에서 천주교 순교자들을 기리는 관덕정순교기념관, 1914년 완공된 유럽풍의 성유스티 노신학교(대구문화재자료)와 1918년 완공된 성모당(聖母堂, 대구유형문화재), 1927년 증축된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성당(대구유형문화재) 등으로 이어져 이국적 건축물과 다양한 종교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
1990년 5월 대구의 중심 상권인 동성로 일대에서 동성로 축제가 시작되어 대구를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하였다. 동성로 축제는 식전 행사인 길놀이와 개막 퍼레이드를 시작으로 동성로가요제와 모델 오디션 등 경연 프로그램, 댄스 공연과 버스킹·뷰티 마켓·플리마켓·북 페스티벌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조선 시대 한약 유통의 거점이었던 남성로 대구약령시 일원에서 1978년 대구 약령시 한방문화축제가 시작되어 한방체험·한방의료뷰티체험·약령예술콘서트·청춘 보부상 등의 행사가 펼쳐지고, 1997년부터 서문시장 일원에서 서문시장글로벌축제가 열려 보부상 퍼레이드와 서문 가요제·7080청춘콘서트·한복패션쇼·댄스 퍼레이드·풍물놀이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화랑 골목이 형성된 봉산동 봉산 문화거리에서는 1993년부터 봉산 미술제가 열려 다양한 작품전과 도슨트 아트투어, 어린이미술제와 미술품 경매 행사 등이 열린다. 이밖에 용덕동의 대구패션주얼리특구에서 매년 5월경 열리는 대구 패션 주얼리위크, 근대골목 일원에서 8월에 열리는 대구문화재야행, 근대 화교들의 거점이었던 종로 화교거리에서 10월에 열리는 대구 화교 중화문화 축제 등이 있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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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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