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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갤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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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갤로퍼(Hyundai Galloper)
현대자동차㈜(Hyundai Motor Company)

현대 갤로퍼(Hyundai Galloper)는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과 현대자동차㈜에서 1991년 9월부터 2003년 12월까지 생산했던 바디온프레임 형식의 4WD SUV 차량이자 현대자동차의 첫 SUV 차량이다. 차명인 갤로퍼는 '경주마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다'는 뜻을 가진 영어 gallop의 명사형으로, ‘최고의 속력으로 질주하는 궁극의 경주마’를 의미한다.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미쓰비시자동차(Mitsubishi Motors) 산하에서 판매됐으며, 파제로 2세대 모델이 갤로퍼의 이름을 달고 일부 국가에서 판매되기도 했다.[1] 쌍용 코란도(Ssangyong Korando)와 함께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오프로드 차량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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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1991년 출시된 갤로퍼는 당시 현대자동차㈜와 협력관계에 있던 미쓰비시자동차의 파제로(Pajero)를 들여와 현대정공 자동차사업부에서 생산한 모델이다. 따라서 완벽히 자체 개발한 차량은 아니다. 갤로퍼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판매되며 2인승 부터 9인승 모델까지 다양한 라인업으로 판매되었다. 파워트레인은 2.5 디젤과 3.0 V6 가솔린이 주력이었고, LPG 차량도 있다.[2] 갤로퍼는 뛰어난 내구성과 완성도, 여기에 바디온프레임 특유의 견고한 차체오프로드 주행성능까지 겸비해 한국 시장에 사륜구동 SUV 차량으로 인기를 끌었다. 1997년 갤로퍼 II로 출시돼 2세대 모델로 변경됐으며, 3세대 모델까지 준비했지만 결국 2003년 단종됐다. 한국에서는 단종되었지만 도심형 SUV가 아니라, 오프로드 주행도 가능한 모델이었던 만큼 여전히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는 갤로퍼를 볼 수 있다. 한편 오늘날 갤로퍼는 리스토어 열풍 덕에 인기를 끌고 있다. 특유의 각진 디자인과 올드카 감성을 갖고 있으며, 차박캠핑 인기에 힘입어 개인의 개성을 연출한 리스토어 갤로퍼 모델이 증가하는 추세다.[3]

개발배경

갤로퍼는 현대자동차㈜의 로고를 달고 출시된 첫 번째 SUV 차량이다. 더불어 쌍용 코란도(Ssangyong Korando), 쌍용 무쏘(SsangYong Musso)와 함께 국산 사륜구동 SUV의 대명사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이 차는 현대자동차가 직접 개발한 모델이 아니었다. 갤로퍼는 당시 현대자동차그룹 내에 있었던 현대정공이라는 회사가 개발하였다. 이 회사는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오늘날 현대모비스㈜(Hyundai Mobis)와 현대 현대위아㈜(Hyundai Wia) 등의 전신이 되었다. 그리고 당시 이 회사의 수장이 바로 지금의 현대자동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다. 갤로퍼가 기획될 1989년 당시의 대한민국 자동차 업계는 전두환 정권이 벌인 '자동차공업합리화 조치'가 겨우 해제된 해였다. 이와 함께 당시 대한민국은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로 인한, 이른 바 3저 호황을 누리고 있었던 시기였다. 경기가 호황을 이루던 이시기는 삶의 질 향상과 함께 대한민국의 레저 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기존의 승용차 외에 사륜구동계를 갖춘 다목적차에 대한 수요가 늘게 될 것으로 전망되었고, 새로운 수요를 잡기 위해 현대자동차가 신모델을 직접 개발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때 정주영 회장이 현대자동차 대신, 장남인 정몽구 사장이 경영하던 현대정공에 신차 개발을 맡기게 된다. 이는 당시 항공기, 철도차량, 공작기계 등 기계 전문 회사로 성장하고 있었던 현대정공에 자동차까지 맡김으로써 종합 기계 제작사로 거듭나게 하여, 최종적으로 당시 정세영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었던 현대자동차를 정몽구 사장에게 승계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승용차 밖에 만들지 못했던 현대자동차의 경험 부족 등으로 인한 위험 부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갤로퍼는 기획 당시에는 엠카(M-car)로 명명한 현대정공의 독자개발 프로젝트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기존에 현대자동차에서도 손대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차를 현대정공이 직접 개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정공은 용인 마북리에 연구소를 신설하고 현대자동차에서 생산하던 엔진과 부품들을 활용, 독자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첫 사륜구동 자동차시제품이 완성되었고 이를 미국계 기업의 도움을 받아 성능 테스트를 거치게 된다.

미쓰비시 파제로(Mitsubishi Pajero)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사륜구동형 자동차는 당대의 일반적인 승용차에 비해 차체 구조강성, 사륜구동 시스템 등, 승용차에 비해 여러가지로 감안해야 할 사항이 많았다. 그만큼 설계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또한 최대 수요지인 미국 시장의 요구에 맞지 않는 부분들도 많아, 수출에서도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개발 경험이 전무했던 신생 업체에서 쉽사리 손을 댈 수 있을 만한 정도의 분야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당시 정몽구 사장은 무리한 독자개발 대신 신뢰할 수 있는 제조사의 사륜구동 자동차를 라이센스 생산하는 것으로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꿨다. 이에 현대정공은 당시 현대자동차가 기술제휴 관계에 있었던 일본 미쓰비시자동차에 동사의 1세대 파제로(Pajero)를 면허 생산하는 사업을 제안했다.[4] 파제로는 1982년 5월에 첫 발매된 이래 7년 연속 판매 1위를 차지하는 등 일본을 대표하는 4WD 차종으로 자리를 굳힌 차량이다. 일본 내 판매 호조만이 아니라 전 세계 150여개국 수출을 해 좋은 반응을 받았다.[5] 이렇게 1990년도부터 기술 도입계약을 체결, 생산 설비의 신설하는 등의 준비기간을 거치게 된다. 그리고 1991년부터 갤로퍼의 생산이 시작되었다. 차명인 갤로퍼는'경주마가 전속력으로 질주하다'는 뜻을 가진 'Gallop'을 명사화한 것으로, '질주하는 말'을 의미했다.[6] 현대자동차는 갤로퍼를 다목적 승용차로 소개하며 마이카 붐 및 레저 붐이 일고 있었던 한국 시장으로 진입을 시작했다.[7]

출시

초기 모델

1세대 갤로퍼

갤로퍼는 1988년부터 자체 개발이 진행되었으나, 성능과 기술 등이 미국의 소비자 취향과 거리가 있어서 미쓰비시 파제로를 도입하여 생산하였다. 갤로퍼는 출시 초기에는 디젤엔진을 탑재한 롱바디 사양만 스탠다드(5인승)와 엑시드(6인승) 트림으로 출시되었다. 엑시드 트림은 대한민국산 최초의 SUV 차량으로 3열 시트를 갖춘 차량이었다. 이후 11월에는 자동변속기 사양을, 12월에는 터보 디젤 엔진 사양을 순차적으로 투입하였다. 엔진은 73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미쓰비시 아스트론 계열의 4기통 2.5리터 디젤엔진을 사용하였으며, 이후 81마력의 터보 사양, 그리고 93년에는 당대 디젤엔진 최고수준의 출력인 101마력을 내는 터보 인터쿨러 사양도 추가되었다. 그러나 초기 갤로퍼는 판매가 부진하였다.

1991년 9월에 하순에 정식 출시된 갤로퍼는 출시 직후부터 높은 인기를 보였다. 갤로퍼는 10월부터 12월까지의 3개월간 무려 3천대 가까이를 판매하며 쌍용자동차아시아자동차가 양분하고 있었던 SUV 시장에 무서운 기세로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8]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2년에는 무려 2만 4천여 대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시장의 쌍용 코란도코란도 훼미리, 그리고 아시아자동차의 록스타의 점유율을 뛰어 넘었다. 이는 당시 한국 SUV 시장의 약 52% 가량에 해당하는 엄청난 실적이었다. 갤로퍼의 인기 비결로는 이미 전 세계에서 검증을 끝난 SUV계의 성공작, 미쓰비시 파제로를 그대로 조립생산한 차였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1세대 미쓰비시 파제로는 우수한 주행 성능과 뛰어난 신뢰도로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차종이었으며,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만큼,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었다. 이 당시 가장 직접적인 경쟁상대였던 쌍용 코란도 훼미리는 갤로퍼에 비해 성능과 품질 모두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갤로퍼의 또 다른 인기 비결로는 현대자동차의 이름을 교묘하게 활용한 데 있다. 갤로퍼는 분명 현대정공에서 만들어진 자동차임에도 불구하고, 판매는 현대자동차에서 담당했다. 또한 현대정공의 이름 대신 현대자동차의 'HYUNDAI' 상표명을 그대로 사용했고, 후기형 페이스리프트 모델부터는 아예 라디에이터 그릴에 현대자동차의 로고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이름을 등에 업은 이 전략은 제대로 먹혀 들어서 갤로퍼가 빠르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7]

뉴 갤로퍼

뉴 갤로퍼

1994년 등장한 후기형 뉴 갤로퍼는 사각형 헤드램프의 적용과 더불어 기존의 사이드미러를 파제로와 같은 깃발형으로 변경하는 등 상품성을 높였다. 갤로퍼 초기형 모델의 사이드미러는 상용차와 비슷한 구조를 취하고 있었으나 이를 통해 보다 승용차에 더 가까워졌다. 또한 엔진차체 크기 등을 기준으로 한 세부 모델의 가짓수를 늘려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 당시 뉴 갤로퍼의 하위 모델 라인업은 무려 20여종에 달했다. 2인승 모델을 시작으로 구식 지프(Jeep)의 좌우 대향형 좌석 배치를 차용한 9인승 모델까지 거느려 다양한 소비자들의 입맛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엔진 라인업에서는 그랜저(Grandeur)에 사용되었던 미쓰비시 사이클론 계열의 3.0리터 V6 SOHC 엔진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갤로퍼는 같은 해 12월까지 누적 생산대수 10만대를 돌파하게 된다. 하지만 꾸준히 잘 나갈 것만 같았던 갤로퍼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었다. 쌍용자동차메르세데스-벤츠(Mercedes-Benz)의 기술을 등에 업고 완성해 낸 무쏘(Musso)의 출현 때문이었다. 1993년 처음 등장한 쌍용 무쏘는 초기에는 부실한 파워트레인으로 인한 동력성능 부족 때문에 큰 인기를 얻지 못했으나, 2.9리터 OM602 모델의 도입과 함께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기세로 갤로퍼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두 차종은 2000년대 초반까지 경쟁하는 관계가 된다.[7]

갤로퍼2

갤로퍼2

현대정공의 갤로퍼는 이후 1997년, 한 차례의 부분 변경을 거치게 된다. 갤로퍼 II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갤로퍼의 최후기형 모델은 V6 3.0리터 SOHC LPG 엔진이 추가됐으며, 보기 드문 사륜구동 LPG 차량이었다. 또한 V6 3.0리터 SOHC LPG 엔진이 장착된 5도어 도 있었다. 더불어 기존 갤로퍼와는 달리, 전후면부 및 차체 디자인 등에 대대적인 수정을 가했다. 직선적인 1세대 파제로의 차체에 곡선적인 감각을 대폭 부여하여 상당히 다른 인상을 내는 데 성공했다. 디자인 변경은 롱바디 모델에 먼저 가해졌고, 숏바디 모델의 변경 모델은 1998년, 갤로퍼 II 이노베이션이라는이름으로 출시되었다. 그리고 이 차들은 현대정공의 자동차 부문이 현대자동차에 통합 이관되는 2000년도까지 싼타모 등과 함께 현대정공의 손에서 계속 만들어지게 된다.[7]

현대정공의 자동차 부문이 현대자동차에 이관됨에 따라 2000년 5월 22일에 출시된 2001년형은 현대자동차의 엠블럼이 달리고, V6 3.0L SOHC 가솔린 엔진이 사라지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2001년 2월에 출시된 테라칸(Terracan)은 갤로퍼 Ⅱ의 후속 차종으로 출시될 예정이었으나, 계획이 변경되어 상급 차종으로 출시됨에 따라 갤로퍼 Ⅱ 역시 한동안 계속 생산되었다.[8] 그 시기 쌍용자동차는 렉스턴(Rexton)을 출시하며 두 회사는 고급 SUV 차량 자리를 두고 대결을 했다. 2002년에는 기아㈜에서 쏘렌토(Sorento)를 내놓자 갤로퍼의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다. 1980년대의 감각으로 만든 차였기에 2000년대에 등장한 차들과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결국 갤로퍼는 안전성과 배출가스 규제 등의 원인으로 인하여 2004년 1월에 테라칸에 통합되는 형식으로 단종되었다.[9]

리스토어 열풍

한국에서도 30~40대 남성을 중심으로 구식 차를 복원하는 리스토어(restore)가 자동차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컴퓨터 코드만 약 10억 개가 들어갈 정도로 전장화된 최신식 자동차를 구입하는 대신 구식 차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차를 만드는 일을 선택한 이들이다. 리스토어란 차량을 개조하는 튜닝과 달리 과거의 감성을 현대의 기술로 고풍스럽게 해석해 복원하는 작업이다. 배기량과 가속력에 중점을 둔 머슬카의 표본이 된 제너럴모터스(GM)의 콜벳(Corvette)과 머스탱(Mustang), 1991년에 2만 대만 한정 생산된 닛산 피가로(Figaro) 같은 기념비적 모델이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리스토어 대상이다. 한국 시장에선 갤로퍼가 대표적이다. 보기 드문 박스 형태의 디자인이 특징으로 지금도 자동차 매니어와 전문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10] 실제로 중고차 거래 플랫폼 엔카닷컴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신규등록된 1980~90년대 생산 올드카 중 가장 많은 매물이 등록된 차량은 현대 갤로퍼다.[11]

H-스타트업 옛차 프로젝트

리스토어된 현대 갤로퍼

갤로퍼의 판매사였던 현대자동차도 리스토어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해당 프로젝트는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한 시청자가 사연을 보내면서 시작됐다. 지난 30여년 간 아버지와 함께한 갤로퍼를 복원해달라는 사연이었다. 이에 놀면 뭐하니 측과 현대차가 갤로퍼 리스토어 작업에 착수했다.[12] 리스토어 작업에 들어갈 당시 갤로퍼는 시동이 힘겹게 걸렸으며, 공회전 시에도 이상 소음이 발생했다. 또한 엔진오일팬, 크랭크씰, 트랜스퍼케이스, 변속기, 호스 등 각종 부위에서 누유누수가 다량 진행됐다. 부식도 심각했다. 바디 하부 철판이 부식돼 프레임과 이탈할 우려가 있었고, 머플러도 부식돼 배기가스가 외부로 누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불쾌한 소음까지 유발했다. 오랜 시간 자외선에 노출된 까닭에 각종 램프와 바디 페인트도 원래 색을 잃어버렸으며, 바디 몰딩도 변형돼 이탈돼 있었다. 철제 범퍼는 외부 충격에 의해 찌그러졌고, 연료탱크는 상당한 부식으로 연료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서스펜션도 완전히 망가진 상태였다. 어퍼암, 로워암, 볼조인트는 마모가 진행돼 유격이 크게 발생해 주행안정성을 담보하기 어려웠고, 차체 흔들림을 억제하는 리어댐퍼는 누유로 인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밀리는 브레이크, 교환 시기가 지난 타이어, 브레이크 분진이 고착된 휠 등 이외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다. 인테리어도 파손된 부분이 많았다. 인조가죽 시트커버, 도어트림, 헤드라이닝, 크러시패드, 센터콘솔 등 다양한 인테리어 트림의 손상도 심한 편이었다. 즉, 프로젝트의 갤로퍼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부분을 분해해 신품으로 교환하거나 재생해야만 하는 대대적인 작업이 필요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큰 사고가 없었던 까닭에 부식을 제외한 프레임 손상이 없었다는 점이다.

오래된 모델이다 보니 부품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엔진을 비롯한 파워트레인 부품을 구하는 게 가장 큰 난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드림팀이 발품을 팔아가며 전국 현대모비스㈜ 대리점을 수소문했고 애프터마켓 업체에도 부품을 확보했다. 차체 판금 작업에는 부식된 부품 중 일부는 제거하고 일부는 재사용하는 방향으로 복원했다. 이렇게 판금 작업 후 2~3주 걸리는 도장 공정을 3~4일 만에 마무리하며, 전체 리스토어 작업 일정에 숨통을 틔웠다. 보디 온 프레임 방식으로 제작한 갤로퍼에는 차체와 프레임에 각각 차대번호가 각인된다. 차대번호를 교체하기 위해선 복잡한 행정적인 절차가 필요하다. 이에 프레임을 교체하는 것이 아닌 복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고 작업에 돌입했다. 먼저, 프레임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고정 볼트와 함께 고착된 부싱을 제거했다. 다행히 프레임에는 구멍이 뚫린 관통 부식이 없었고 표면 부식과 일부 오염이 발생한 정도에 그쳐 내구성 확보에 문제가 없었다. 이후 샌딩 작업을 통해 표면에 발생한 부식을 제거했으며 방청 작업 후 도색이 이뤄졌다.

인테리어 트림 중 상당수는 한국에 재고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기존 인테리어 트림 중 최대한 살릴 수 있는 것들은 살리는 방향으로 복원을 진행했다. 부러진 것은 붙이고 일부는 새로 성형했으며, 변색됐거나 스크래치가 많은 인테리어 트림은 특수 도색으로 되살렸다. 출고 당시에는 직물 시트였지만, 그동안 고객이 인조 가죽 커버를 씌워서 사용해왔다. 따라서 고객이 기존 차량 상태와 유사하게 느낄 수 있도록 외부 업체의 도움을 받아 인조 가죽 시트를 새로 만들어 장착했다. 헤드라이닝, 도어트림은 최초 출고 직후 엠보싱이 작업 됐고 이후 차와 함께 오랜 세월을 보내며 함께 낡게 변한 상태였다. 리스토어 작업을 통해 새것으로 교환하고자 고민했지만, 동일 패턴 원단을 구하기 힘들고 고객의 손때 묻은 부분임을 고려해 복원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손상된 부분은 동대문종합시장에서 구매한 유사한 패턴의 원단으로 채웠고, 나머지 부분은 세정 뒤 가죽 광택제를 도포해 재장착했다. 해당 프로젝트의 경우, 기존 디젤엔진가솔린 엔진으로 교체하면서 엔진과 함께 구성되는 시스템인 ECU, 계기판, 연료펌프, 각종 컨트롤 릴레이, 공조기 등도 함께 달라졌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전체 와이어링 하네스를 가솔린 모델의 것으로 교체했고, 기존 실내 전장품과 연결되도록 새로운 회로를 설계해 연결했다.

리스토어 과정에서 새로 탑재된 엔진은 갤로퍼 가솔린 사양에 장착되던 V6 3.0ℓ 엔진이다. 순정과 다른 점은 흡기 매니폴드에 V6 3000이라는 각인을 새로 넣어 강조한 부분이다. 아울러 라디에이터 그릴에 V6 엠블럼을 장착해 프로젝트의 의미를 되새겼다. 참고로 갤로퍼 가솔린 모델은 1991년 12월에 출시됐지만, 당시 국내 갤로퍼 고객들의 디젤 선호 분위기로 인해 현재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차로 남았다. 구조변경을 승인받기 위해 프로젝트가 진행된 남부하이테크센터의 사업자등록증을 변경해야만 했다. 기존 자동차 수리업 외에 자동차 성능 개조가 가능한 사업자 종목을 추가해야 했기 때문이다. 구조변경 검사는 드림팀의 성과를 국가로부터 인정받는다는 데 의미가 컸다. 차량 인도를 하루 앞둔 12월 28일에 구조변경 검사를 진행했으나, 첫 검사에서 질소산화물 과다로 인해 배출가스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좌절을 겪었다. 그날 배기가스 검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다음날 촬영 일정이 미뤄지면서 갤로퍼를 의뢰한 고객과 <놀면 뭐하니> 관계자는 물론, 드림팀의 사기마저 저하될 수 있었다. 그러나 드림팀은 배출가스 정화장치인 촉매를 새로 구하기 위해 모든 인맥을 동원한 지 3시간 만에 새 촉매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13]

각주

  1. 현대 갤로퍼〉, 《나무위키》
  2. 양봉수 기자, 〈"오래될수록 비싼 갤로퍼, 결국 5천만 원 돌파", 과연 어디까지 오를까?〉, 《오토트리뷴》, 2023-03-18
  3. 김선웅 기자, 〈현대 갤로퍼, 20년만에 부활할까?〉, 《오토뷰》, 2022-09-06
  4. 박병하 기자, 〈알고 보니 다른 집 자식이다? – 자동차 세계 출생의 비밀〉, 《모토야》, 2018-04-03
  5. 최진희 기자, 〈디자인과 승차감이 뛰어난 4WD의 탄생, 현대 갤로퍼〉, 《카테크》, 2020-07-31
  6. 교양공감팀, 〈(공감신문) 자동차 네이밍의 숨겨진 의미〉, 《공감신문》, 2017-03-14
  7. 7.0 7.1 7.2 7.3 박병하 기자, 〈(특별했던차)현대자동차 갤로퍼〉, 《모토야》, 2018-04-09
  8. 8.0 8.1 현대 갤로퍼〉, 《위키백과》
  9. 갤로퍼, 쌍용차 잡으려 현대가 만든 명마!〉, 《KB차차차》, 2022-09-01
  10. 김영민 기자, 〈300만원 중고차 8500만원 들여 싹 바꿔 ‘나만의 갤로퍼’ 부활〉, 《더중앙》, 2016-02-13
  11. 금준혁 기자, 〈"갤로퍼랑 차박"…그시절 아빠차, MZ세대 인스타서 뜨는 이유〉, 《뉴스원》, 2023-09-03
  12. 이지완 기자, 〈이게 아직도 굴러가?...되살아난 현대차 갤로퍼〉, 《이코노미스트》, 2023-01-22
  13. 현대자동차, 〈현대차 드림팀의 열정으로 완성한 ‘갤로퍼 리스토어 프로젝트’〉, 《현대자동차그룹》, 2023-01-19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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