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한국일보(韓國日報, The Hankook Ilbo)는 1954년 6월 9일에 창간된 대한민국의 신문이다.
개요
1954년 장기영이 《태양신문》을 인수하여, 1954년 6월 9일부터 《한국일보》라는 제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54년 8월 1일 기자 제1기 6명을 공채한 이후 정기적으로 기자를 공개 채용해 다른 신문사에 이러한 관행을 퍼뜨렸다. 《한국일보》는 1964년 사주 장기영의 경제부총리 입각으로 인해 하향세를 걷다가 1965년 창간된 《중앙일보》가 다른 신문사에서 기자들을 스카우트했는데, 한국일보는 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어 편집국 인원 25명과 업무, 광고 분야 인원 상당수를 잃어 또 한 번 휘청거리게 되었다. 이후에도 4대신문 또는 4대 일간지로 불렸으나, 현재는 조중동과 격차가 크다. 한국어판과 영어판이 있으며, 한국ABC협회에 따르면 2011년 유료 발행 부수는 17만4천7백97부였다. 뉴욕타임즈나 로스앤젤레스타임즈로부터도 기사를 제공받고 있다. 2008년 10월 9일자로 미국 블룸버그 TV와의 콘텐츠 제휴로 서울경제TV를 개국하였다. 이명박 대통령, 이윤호 지식 경제부 장관 등의 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개국식에 참석하여 개국을 축하하였다.[1]
연혁
- 1954년 6월 9일 : 한국일보 창간
- 1954년 8월 1일 : 제1기 기자 6명 공채
- 2002년 장재국 : 외환관리법 위반 유죄 판결
- 2008년 10월 9일 : 미국 블룸버그 TV와의 콘텐츠 제휴로 서울경제TV 개국
- 2013년 6월 15일 :장재구 회장 등 사측 인사들이 편집국 폐쇄
- 2013년 8월 12일 : 한국일보 발행 정상화[1]
역사
1954년 백상 장기영 창업주가 <태양신문> 판권을 인수해 창간했다. 1956년 국내 최초로 TV방송을 개시하고 1957년 미스코리아 대회를 처음으로 개최했으며, 1958년 조석간제를 실시했다. 1960년 <서울경제신문> 및 <소년한국일보>도 창간했다. 그러나 1962년 '신당 사회노동당' 기사 사건으로 장기영 사장, 홍유선 편집국장 등 3명이 구속되고 3일간 휴간되기도 했다. 1964년 국내 최초 주간지 <주간한국>을 창간 했지만 1968년 목조 사옥 본관에 큰불이 나 전소되고, 진화 중이던 사원 7명이 숨지는 비극을 겪었다. 1969년 구 본사 자리에 신관을 지으며 <주간여성> 및 <일간스포츠>를 창간했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첫 해외지사를 세웠다. 1978년 주식회사로 법인전환했다. 1960~70년대에는 동아일보와 함께 부수 1~2위를 다툴만큼 메이져급 신문으로써 명성을 떨쳤고, 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조선, 중앙, 동아와 함께 4대 일간지로 꼽혔다. 그러나 1990년을 전후하면서 언론 업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987년 대선과 1992년 대선을 거치면서, 과거 보도지침이 횡행하던 시절에 비해 언론의 자유도가 높아졌고, 언론 매체의 인허가 또한 대폭 늘어난 것이다. 또한 지상파 방송인 SBS가 개국을 하는 등 언론의 무한 경쟁 체제가 확립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1990년 즈음부터 신문들은 본격적인 증면 경쟁을 벌이게 되는데, 80년대까지만해도 일반적으로 8면에서 12면 정도 발행하던 신문들이 40면에서 많게는 80면까지 발행하기 시작한다. 이때 한국일보는 한국 신문업계 사상 초유의 조석간 동시 발행이라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더 많은 신문을 찍기 위해 윤전기를 늘려야 했고, 배달을 위한 지국도 늘려야 했다. 필요한 돈은 은행에서 빌렸고, 빚은 무한정 늘어났다. 조석간 동시 발행은 91년 12월 16일부터 93년 12월 1일까지 약 2년간 지속되었는데, 이 일은 회사의 재무 상태를 급격히 나빠지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격적이고 무리한 경영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심지어 1990년대 중후반 이후에도 조선, 중앙, 동아에게 서서히 밀린 상황을 지속적인 부수 확장전략으로 메꿀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하며 채무가 더욱 급속도록 불어났다. 이후 IMF 외환위기까지 겹치면서 한국일보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을 거듭하게 되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1993년 故 장강재 회장의 별세 이후 형제들간에 벌어진 경영권 다툼으로 한국일보의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또 1980년 서울경제신문 폐간에 따른 재정적 부담 역시 이에 일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창업주인 백상 장기영이 자매지를 내면서 여기저기 손을 뻗기도 했는데 코리아타임즈, 서울경제신문, 주간여성, 소년한국일보, 서울경제TV, 주간한국, 엘르, 톱모델, 프리미어, 일간스포츠, 스포츠한국, 학생과학 등이 있다. 그 이전까지로 가 본다면 HLKZ-TV를 인수해서 2년 정도 운영했던 일도 있었고 소년한국일보에서 만화출판업을 겸하여 합동출판사와 함께 1982년 결별시까지 독점에서 양대산맥을 이룬 적이 있었다. 소년한국일보를 통해 데뷔하거나 활동한 만화가로는 신영식, 박기정, 엄희자, 길창덕, 김수정, 허영만, 박봉성, 김동화, 이원복, 임웅순 화백 등이 있었다. 이외에도 1977년 1월에 미국의 타임-라이프 북스와 합작으로 타임-라이프 북스의 한국어판을 번역, 출간했던 한국일보 타임-라이프라는 별도의 출판사를 설립하였으나 외환 위기 이후에 폐업했다. 이 중 코리아타임즈와 서울경제신문은 완전히 독립된 별도 법인이기 때문에 사실상 다른 곳으로 보면 되고 주간한국은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시사주간지였다가 문화주간지로 전환되었다. 스포츠한국은 무가지로 한국일보 신문에 같이 끼어서 나오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의 신문이라고 봐도 된다. 일간스포츠는 장기영의 장손 장중호가 분리하여 나갔다가 결국 중앙일보에 넘어갔다. 또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다른 신문에 앞서 견습기자 공개채용제도를 실시하여 많은 기자를 양성한 곳으로도 유명하고, 그들 중에는 오인환, 심명보, 권혁승, 조세형, 이원홍, 박현태 등처럼 공직에까지 오른 분도 있어서 '기자 사관학교'로 이름을 날렸다. 최초의 시사주간지 주간한국은 1960년대 중반 이후 주간지 붐을 일으킨 시초가 되었다. 1993년부터 활판제작 대신 CTS로 전환한 후 1998년부터 가로쓰기를 실시했다. 중앙일보와 악연이 좀 있는데 1965년에 중앙일보가 창간될 당시 다른 신문사에서 기자들을 스카우트할때 한국일보는 이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어 편집국 인원 25명과 업무, 광고 분야 인원 상당수를 잃어서 사주의 경제부총리 입각과 더불어 큰 타격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이런 기자 빼가기는 21세기 들어와서도 한동안 이어지면서 사세 약화에 꽤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1995년에는 석간신문이던 중앙일보가 조간신문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때 한국일보가 "삼성의 광고를 잃어도 재벌 언론의 문제점을 비판하겠다"며 3월25일 ‘재벌의 언론파괴’라는 사설을 내보내 삼성그룹 산하의 언론사이던 중앙일보와의 전면전을 펼치기도 했다. 사주가 도박을 하다가 구속된 사건이 있는데 장재국 전 한국일보 회장이 회장 재직시절이던 1997년에 라스베이거스에서 큰 돈으로 도박을 하여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2002년에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건이다.결국 회장이 배임과 횡령 혐의로 구속 되었고 법원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전통있는 신문사답게 이런저런 역사의 소용돌이에도 많이 휘말렸다. 신춘문예를 받는 곳중 하나고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미스코리아 대회의 주관사이기도 하다. 1973년부터 창간 2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대한산악연맹과 공동으로 한국 에베레스트 등반계획을 세워 1977년 고상돈의 한국 최초 에베레스트 정상 등정에 기여하기도 했다. 심지어 1969년부터 2016년까지 프로바둑기전 명인전을 주최한 바 있었다.〈한국일보 역사〉, 《나무위키》</ref>
한국일보 사태
2013년 4월 29일 한국일보 기자들은 장재구 회장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장 회장은 6월 15일 용역업체를 고용해 편집국 문을 폐쇄해 버려 이른바 '한국일보 사태'가 시작됐다. 7월 8일 법원이 편집국 폐쇄를 풀어달라는 기자들의 가처분신청을 인용 결정했다. 검찰은 장 회장을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업무상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했고, 장 회장은 2014년 2월 11일 1심 선고 공판에서 3년형을 선고 받았다. 한편 한국일보 기자들을 포함한 구성원들은 장재구 회장의 부실 경영과 배임 등으로 회사 경영 상태가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고 판단, 7월 29일 법원에 임금 채권자 자격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회생 절차에 들어갔다. 이후 법원은 공개 매각을 실시, 우선협상대상자로 삼화제분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양사는 2월 25일 본계약을 체결했으나 이듬해 인수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계약이 파기되었고, 재입찰을 통해 동화그룹에 매각하였다.[1]
한국일보닷컴 출범
2014년 5월 19일 한국일보가 한국일보닷컴 https://www.hankookilbo.com/을 출범시켰다. 이전의 한국일보 웹사이트인 한국아이닷컴 https://www.hankooki.com/을 운영하던 (주)인터넷한국일보와 계약을 끊고 독자적으로 뉴스서비스를 만들었다. 이는 위의 '한국일보 사태' 전후 한국일보 사측이 구성원 몰래 (주)인터넷한국일보 지분 상당부분을 팔아버리는 바람에 한국일보의 자회사 지위에서 벗어난 것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일보와 (주)인터넷한국일보는 당시 한국일보의 기사 콘텐츠를 (주)인터넷한국일보에 무료로 제공하는 식으로 계약을 갱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한국일보는 이렇게 제공받은 콘텐츠를 국내 포털사이트 등에 판매하고 자사 사이트에서 서비스하여 광고를 유치, 운영하고 있었다. 한국일보는 법정관리 개시 후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발견했고 4월 30일 법정관리 기업의 관리인에게 부여되는 계약 해지권을 행사, (주)인터넷한국일보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이후 한국일보는 신문 편집국 내에 디지털뉴스부를 설치, 자사 기자들을 배치한 뉴스사이트 한국일보닷컴을 출범시켰다. 한국일보닷컴의 슬로건은 '반칙 없는 신문'이다. 한국일보는 이날부터 (주)인터넷한국일보에 뉴스 제공을 하지 않고 있어, 한국일보 뉴스는 한국일보닷컴에서만 볼 수 있다.[1]
계열사 및 자매지
- 코리아타임스(The Korea Times)
- 한국스포츠경제
- 스포츠한국
- 미주한국일보
- 백상경제연구소[1]
각주
참고자료
- 한국일보 공식 홈페이지 - https://www.hankookilbo.com/
- 〈한국일보〉,《위키백과》
- 〈한국일보〉,《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