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시
청두(成都, chéng dōu)은 중국 쓰촨성의 성 소재지이며 서남지구의 중심도시이다.
개요
- 행정 단위: 쓰촨성(四川省) 부성급시[1]
- 시정부소재지: 우허우구 꾸이시가 찐웨이시루2호(武侯区桂溪街道锦悦西路2号)
- 면적: 14,335km²
- 인구: 1658만1000 명(2019년)
- 시장: 뤄챵(罗强,luó qiáng)
- 지역전화: 028
- 우편번호: 610000
지도
이름의 유래
기원전 4세기 춘추시기에 촉나라 왕이 도성를 청두로 옮기면서 유래하였는데 도읍이 만들어 졌다는 혹은 마지막 도읍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촉나라 말로 청두의 발음이 촉도(蜀都)와 발음과 같기 때문이다.
역사
청도는 서남지구의 중요한 위치에 있어 옛날부터 문화, 군사중심지이다. 기원전 21세기 전에 청두평원에 고대 촉나라가 형성되었으며 기원전 4세기에 도성을 청두로 옮겼다. 기원전 316년 진나라가 촉나라를 점령하고 군을 설치하고 기원전 256년에 이빙 부자가 교외에 수리 시설인 도강언:두장옌(都江堰)을 건설했는데 지금도 성도에 홍수 없이 물을 공급하고 있다. 도강언과 청성산:칭청산(靑城山)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이다. 진나라가 멸망하고 서한시기에 들어 서면서 청두는 경제, 문화가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한나라가 위나라에 의해서 멸망한 후에는 유비가 익주를 수도로 촉한을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덕분에 지금도 삼국지나 삼국지연의를 읽은 독자들에겐 유명한 도시. 허나 유비의 아들인 유선대에 이르러 촉한이 위나라에 망하고 익주도 대도시의 지위를 잃고 만다.
당나라 때에 비로소 대도시의 지위를 되찾고, 다시 익주에서 성도로 불린다. 성도는 낙양, 금릉, 장안에 버금가는 가장 큰 도시로 발전한다. 유명한 당나라의 시인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성도에서 삶의 일부를 보내기도 했다. 안사의 난 때에는 현종이 이곳으로 피난하기도 하였다.
명나라 말기 이자성의 난 때는 서나라의 수도 대서경:다시징(大西京)이기도 하였던 성도는 중국 국민당이 중국 본토에서 최후까지 점유하던 도시가 바로 성도이다. 1949년 12월 10일 본토인 중국 대륙 전체가 중국 공산당에 장악될 때까지 장제스(蔣介石)는 안간힘을 다하여 성도 방어를 지휘했으나, 결국 중국 국민당은 중국 대륙에서 중화민국 관할 영역을 모두 상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