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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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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르호
아스완 하이 댐의 위성사진
나세르호 위성사진
나세르호
아부 심벨 신전

나세르호(영어: Nasser, 아랍어: بحيرة ناصر)는 이집트나일강이 아스완 댐에 막혀 이룬 인공호로 길이 550km, 면적 5,250km², 깊이 25.2m, 부피 132km³, 세계에서 가장 큰 인공 호수 중 하나이다. 여러 반발을 무릅쓰고 댐 건설을 강행한 이집트의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의 이름을 따왔다.[1]

개요

나세르호는 이집트에서 남서쪽으로 약 485km이며 남서쪽 말단부는 수단 영내에 들어 있다. 나일강은 여름마다 매시 범람했다. 고대 때와 마찬가지로 수천 년간 반복된 이러한 홍수는 유역의 토양을 옥토로 만드는 한편 많은 이로운 광물을 배출하면서 농경의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해주었다. 하지만 강 주변 거주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목화재배지와 농경지를 보호하고 한편으로 조절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댐의 건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스완 댐의 가장 처음 구조물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1889년 시작하였으며 그들의 공사는 1902년까지 계속됐다. 공사 기공식은 1902년 12월 10일에 열렸으며 공사에는 영국 내 저명한 건축가 다수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1960년 현대적 의미의 댐 건설이 비로소 시작됐으며 11년 뒤인 1970년 7월 21일에 공사가 완공된다. 사실 공사 완공 전인 1964년 미리 수원 저장을 시작하였으며 총 수원 한계량을 1976년에 처음으로 채우게 된다. 나세르호의 출현으로 이집트 쪽에서 약 5만, 수단 쪽에서 약 6만의 누비아인 주거지가 수몰되어 이주하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부심벨 신전을 비롯한 많은 고대 유적이 물에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적인 협력으로 이전공사가 이루어졌다. 호수에 의해 많은 고고학적 유물이 수몰 위기에 놓였지만 1960년대 유네스코의 문화재 구조 작업으로 수몰예정지에 대한 문화재 유적지 탐사를 하여 24곳의 주요한 유적을 높은 곳으로 옮기게 되었다. 대표적인 곳이 아부 심벨 신전이다. 마드리드와 뉴욕 등 세계 여러 기관과 국가들은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이집트 자체로는 아랍계의 오스만 아메드가 발굴 작업을 주도했으며 그의 경쟁자를 물리치며 작업을 해나갔다. 그러나 그는 소련이 당시 제공한 물자에 대해 불평을 많이 했으며 소련 기술자들을 결국에 내쫓아버렸다고 전한다. 이 호수의 물로 수력발전이 가능해지고 나일강 유역의 사막에 농경지와 목초지가 개발되었다. 호수를 수산자원의 육성과 관광 개발에 이용하는 등 경제적, 사회적 효과가 크다.[2][3]

아스완 댐

아스완 댐(Assuan Dam)은 이집트 나일강의 아스완시에 위치한 댐이다. 아스완 하이 댐(아랍어: Arabic: السد العالي;as-Sad al-'Ally)과 아스완 로우 댐이 크게 댐의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이집트 정부의 아스완 댐 건설 목적은 나일강의 범람을 막고 관개 및 농경을 위한 전력발전이다. 가장 처음 구조물은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1889년 시작하였으며 그들의 공사는 1902년까지 계속됐다. 공사 기공식은 1902년 12월 10일에 열렸으며 공사에는 영국 내 저명한 건축가 다수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1910년대에 이르러 처음의 공사 양식이 적합치 않다는 판단이 대두하면서 한 차례 증축 공사를 하여 댐의 높이를 높인다. 하지만 1946년 댐이 범람하면서 세 번째로 한 번 더 공사를 하게 되며 둘째 번에서 6km정도 높이를 더 끌어올리게 된다. 기초 공사는 1952년 시작됐으며 가말 압델 나세르의 쿠데타 이후로 미국과 영국이 혼란기를 틈타 자금 제공에 합의한다. 총 2억 7천만 달러를 차관 제공하기로 한 것은 나세르가 아랍 세계-이스라엘 전쟁 기미를 막는 데 협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미 양국은 나세르를 정치적으로 무력화하고자 비밀 회담을 열면서 1956년 7월 차관 제공을 철회한다. 1960년 현대적 의미의 댐 건설이 비로소 시작됐으며 11년 뒤인 1970년 7월 21일에 공사가 완공된다. 사실 공사 완공 전인 1964년 미리 수원 저장을 시작하였으며 총 수원 한계량을 1976년에 처음으로 채우게 된다.

아스완 댐은 아스완 남쪽 5km, 이집트를 북류하는 나일강과 북회귀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으며, 1970년대 완성된 아스완하이댐 다음가는 거대한 댐이다. 완공 후 1907, 1912, 1933년 3번에 걸친 공사끝에 확장되었다. 1961년에는 아스완발전소가 가동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전력으로 화학비료공장이 만들어졌다. 부근에 매장되어 있는 풍부한 철광을 이용한 제철공장도 건설되었다. 그 전까지 이집트의 농경은 에티오피아의 정기적 강우에 따른 나일강의 범람을 이용하였으나 댐이 완공되자 나일강의 수량조절로 사막을 경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서단(西端)에는 배가 항행할 수 있는 수문이 있다.[4]

아스완하이댐

아스완하이댐(Assuan High Dam)은 이집트 아스완주(州)에 있는 댐으로 높이 111m, 제방 길이 3.6km,저수량 1,570억m³, 저수지 길이 500km인 아스완 부근 나일강(江) 급류를 막아 건설한 세계 최대의 록필(rock-fill)댐이다. 1902년 영국인이 나일강의 홍수조절과 관개용수 확보를 위하여 아스완에 댐을 만든 이후 1960년에 러시아의 기술 원조로 공사에 착수하였고 1971년에 완공하였다. 고대 이집트의 많은 문화 유적이 물속에 잠길 것에 대비하여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가 중심이 되어 유적의 이전계획이 추진되었다. 그 중에서 최대의 공사는 아부심벨신전의 이전이었다. 이 신전은 BC 13세기에 연안의 절벽을 파서 만든 것으로 높이 20m, 절벽 속의 너비 60m였는데, 신전을 구성하는 바위(砂岩)를 톱질하여 20∼30 t의 블록으로 절단한 다음 저수지의 수면보다 높은 위치로 옮겼다.[5]

이점

댐은 각각 175메가와트의 동력기를 12개 갖고 있으며 2.1기가와트의 수력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수력발전은 1967년 시작됐으며 당시의 수력전기는 이집트의 총 전력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다. 사상 최초로 이집트 전역의 모든 마을에 전기를 제공하게 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한편, 1964년과 1973년의 대홍수를 진정시키는 데 절대적인 공헌을 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나세르 호 주변으로는 새롭게 어업이 활기를 띠게 되기도 했다.

환경 및 문화 관련 우려

나일강 지류에 댐을 설치한 것은 수많은 환경적, 문화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90,000명의 주민이 이주해야 했으며, 지금의 나세르 호 자리에 위치하던 귀중한 고고학적 유산은 자취를 감추었고 묻혀있을지도 모를 유산의 가능성은 사장되었다. 더군다나 댐이 지어지기 전에 홍수로 인해 토양이 비옥해졌던 것이 이제는 옛말이 되면서 원성을 사기도 한다. 특히 아부심벨 신전을 막대한 금액을 들여 이동시키기도 하였다. 관개 목적이라는 정부의 목표에도 불구하고 관개를 위해 강이 자연적으로 배출하던 광물은 없어졌고 되려 염기가 농작지로 스며들어 염해 피해를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중해 연안 어업은 댐 건설 이후 실적이 급락하였으며 이는 나일강의 풍부한 자연 광물이 더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농부들과 광부들의 보상 요구가 극심하였다.

농경 관개사업

충분한 비가 내리지 않기 때문에 이집트의 농업은 전적으로 관개에 의존하고 있다. 관개가 이뤄지면 이모작이 가능하다. (사탕수수 제외) 아스완 하이 댐은 평균적으로 매년 55억 m²의 물을 배출하며 그 중 4600만 m³의 수원이 관개 목적으로 충당된다. 나일 삼각주와 계곡 일대 8백만 페단(1 feddan = 4,200m²)의 농경지 중 대부분은 이 혜택을 입어 한 해 2회 경작한다면 1.8 정도의 수확을 올린다고 한다. 따라서 그 효율성이란 세계 평균을 보더라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사실 단일 경작지로 통계자료를 돌려보면 그렇게 효율성이 높은 것은 아니며 실상은 관개 용도의 물이 하류로 내려가면서도 계속해서 사용되기 때문에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있다. 지류에 상관없이 관개 용수가 동등하게 분배될 필요가 큰 것이다. 댐 수역의 염기는 0.25 kg/m³로 꽤 단 맛에 가깝다고 한다. 매년 유입되는 소금기는 55억 m³이며 매년 수출로만 1400만톤이 소모된다. 연안 호수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물의 염분은 대개 2.7 kg/m³이다.[6]

아부 심벨 신전

아부 심벨 신전(아랍어: أبو سنبل 또는 أبو سمبل)은 이집트 남부에 있는 고대 이집트의 유적이다. 20m의 좌상들과 암벽을 60m 깊이로 파서 만든 석굴사원으로, 우리나라로 친다면, 석굴암 비슷한 것이다. 그리고 2년에 한번씩 햇살이 신전 깊숙한 곳까지 비치도록 만들었다. 자신을 위해 지은 신전으로 정면 높이 32m, 너비 38m이며 입구에 22m의 람세스 2세 조각상이 4개, 우측으로는 아부 심벨 소신전 2구의 네페르타리 왕비 및 4구의 람세스 2세상이 번갈아 놓여있다. 대신전의 네 구상은 람세스 2세로 그 앞에 나란히 있는 것은 가족상이다. 안쪽에는 프타 신, 아멘 라 신, 라 호르아크티 신, 그리고 람세스 2세의 상이 있다. 상의 다리에는 누비아 원정을 떠난 그리스인 용병의 고대 그리스어 낙서가 새겨져 있다. 람세스 2세 상 중 왼쪽에서 두 번째 상은 신전이 완공된 몇 년 뒤 일어난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으며 머리 부분이 2구 앞으로 나뒹굴고 있다. 벽면에는 성스러운 배 앞에서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부조로 왕의 업적, 북쪽 벽에는 카디슈 전투, 남쪽 벽에는 시리아, 리비아, 누비아와의 싸움이 그려져 있다. 아스완댐 건설에 따라 이 지점의 수위(水位)가 60m 높아져 수몰의 운명에 놓이게 되었으나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의 헌신적인 노력과 현대공학의 혜택으로 1964∼1968년에 이 신전을 원형대로 65m를 끌어올려 영구히 보존하게 되었다.[7][8]

지도

동영상

각주

  1. 나세르 호〉, 《위키백과》
  2. 나세르 호〉, 《요다위키》
  3. 나세르호(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4. 아스완댐(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5. 아스완하이댐(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6. 아스완 댐〉, 《위키백과》
  7. 아부 심벨 신전〉, 《위키백과》
  8. 아부심벨신전(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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