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시
구미시(龜尾市)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중서부에 있는 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출신지(구미면 상모사곡동)로 유명한 곳이다. 동북쪽은 군위군(대구)·의성군, 서쪽은 김천시, 동남쪽은 칠곡군, 북쪽은 상주시와 접한다.[1]
목차
개요
구미시는 동경 128°08′∼128°34′, 북위 36°06′∼36°22′에 위치한다. 면적은 615.49㎢이고, 인구는 2023년 7월을 기준하여 406,532명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6개 면, 19개 행정동(30법정동), 172개 행정리(98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구미시 송정동에 소재한다. 시를 상징하는 꽃은 개나리이고, 나무는 느티나무, 새는 까치이다.
이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며, 고인돌이나 삼국 시대를 전후로 형성된 고분군이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해동불교의 성지 도리사를 비롯한 불교 문화와, 길재를 연원으로 하는 이른바 영남학파의 한 축을 담당한 선산 사림의 유교 문화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한 지역은 구미 등으로 불리다가, 경부선 구미역의 개설 후 주요 중심지로 부상하였으며 1995년에 구미시와 선산군을 다시 합쳐 도농복합형 구미시를 설치하고, 구미시 선산 출장소를 설치함으로써 지금의 구미시가 형성되었다. 경상북도 내에서는 포항시에 이어 2번째로 큰 도시다.
1969년 박정희 정부가 구미시와 칠곡군 일대에 구미국가 산업단지를 조성해 전자 반도체 산업을 중점 육성했다. 이에 따라 전자산업, 반도체산업 관련 기업들이 대거 입주해 인구가 급증하고 산업도시로 성장했다. 2010년대부터 기업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예전에 비해서 국가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구미시의 비중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경상북도의 중요한 경제적인 축을 담당하고 있는 도시이며 경상북도에서는 포항시에 이어 2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다.[2][3]
자연환경
지형을 살펴보면, 대체로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동·서·북쪽에는 산지가 발달했고, 이들에 의해 중앙부에는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시의 중앙을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관류하고 있어 그 연안은 광활한 지역으로 넓은 평야를 이루었으며,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부와 서부로 양분되어 지질분포의 특성에 따라 특징적인 지형을 나타낸다.
북서쪽은 대부분이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으로 삭박작용(削剝作用)을 받아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낙동강에 직교하면서 흘러드는 지류는 충적층을 형성하고 있다.
소백산 줄기의 군봉(郡峰)이 남쪽으로 흘러 뻗어 형성한 연악산맥(淵岳山脈)의 지맥인 수선산(修善山, 684m)·복우산(伏牛山, 509m)·원통산(元通山, 476m)·옥녀봉(玉女峰, 520m)·비봉산(飛鳳山)·삼봉산(三峰山, 448m) 등이 솟아 남쪽으로는 금오산(金烏山, 977m)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동쪽에는 팔공연산(八公連山)의 지맥인 유학산(遊鶴山, 839m)·청화산(靑華山, 701m)·냉산(冷山, 692m)·베틀산(369m) 등이 솟아 곳곳에 고산준령이 있다. 퇴적암으로 된 천생산(天生山, 407m), 응회암질 암층으로 구성된 봉두암산(鳳頭岩山, 327m)과 유학산으로 이어지는 산계가 급한 경사와 상당한 기복량을 나타내며, 그들 사이를 이계천이 동서로 개석(開析)하면서 충적층을 이룬다.
북서부 지역의 중앙부에는 감천(甘川)·해평천 등 크고 작은 지류를 합치면서 낙동강이 남류하고, 유역에는 기름진 충적 평야가 발달되어 선산 분지를 이루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도문리의 냉일재에서 발원해 남서류하면서 해평면 도문리·월호리·낙성리·해평리를 관류하는 습문천(習文川)은 해평면 부근에서, 장천면 오로리·금산리·상림리를 흐르는 금산천과 여남리·상장리를 남서류하는 한천이 도심지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습문천은 곡저평야가 넓고 하류에 넓은 충적평야인 해평들을 형성하며, 해평면의 남부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해 주고 있다. 시의 남부에는 서쪽으로는 금오산 일대가 펼쳐지며 침식에 강한 화성암류로 구성되어 급한 경사와 함께 기복이 심한 산세를 이루어 특징적인 지형발달을 나타낸다. 낙동강 양안에 면한 중앙부는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으나, 점점이 분포된 화강섬록암 지역은 낮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기후는 한반도의 남부내륙형에 속하며, 비교적 한서의 차가 심한 대륙성기후의 특성을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13.6℃, 1월 평균기온 -0.4℃, 8월 평균기온 25.1℃이며, 강수량은 연평균 1,286.9㎜를 기록했다.[4]
역사
이 지역은 전근대사회에서 선산·인동의 두 지역으로 발전해 왔다. 이들 지역의 초기 역사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임수동·인의동, 선산읍 생곡리 등지에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시기 이후 인간의 거주가 활발히 진행되어 사회분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선산지역에서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초기 국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인동지역에는 변진 24개국에 속하는 변군미국(弁軍彌國: 지금의 인동동 일대)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백제와 신라의 영토확장으로 인한 각축장이 되었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어 일선군(一善郡: 선산지역)과 사동화현(斯同火縣: 인동지역)이 설치되었다.
선산지역에 483년(소지왕 5) 큰 수재가 일어나자, 왕이 행차해 백성을 위문하고 곡식을 하사했다고 하며, 614년(진평왕 36) 군사적인 색채가 강한 일종의 군관구(軍管區) 조직인 일선주(一善州)가 설치되었다.
삼국통일 후인 687년(신문왕 7)일선주는 폐지되었고,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일선군은 숭선군(嵩善郡)으로, 사동화현은 인동현(仁同縣)으로 개칭되었다. 한편 일선군의 모례(毛禮)의 집에 눌지왕 때에는 묵호자(墨胡子)가, 소지왕 때에는 아도(阿道)가 와서 불교를 전하기도 하였다.
후 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이곳은 후백제와 고려의 각축장이 되었는데, 907년(효공왕 11)견훤이 일선군과 그 남쪽 10여 성을 점령한 이래 후백제의 영역에 들어감으로써 후백제가 경상도 북부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936년(태조 19) 양국의 군대가 선산읍 동쪽 일리천(一利川)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여 여기서 승리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이때 이 곳의 호족 김선궁(金宣弓)이 왕건에게 귀부해 큰 공을 세워 중용되었고, 이후 그의 후예들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가문이 되었다. 995년(성종 14) 선주(善州)로 개편되어 자사(刺史)가 임명되었으나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 일선현으로 주현(主縣)으로 승격되어 해평군·군위현·효령현·부계현을 속현으로 거느리다가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승격되었다.
인동현은 1018년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어 고려 말까지 계속 유지되어 오다가 1390년(공양왕 2) 감무가 설치되어 독립행정단위가 되었다. 한편 1235년(고종 22) 이유정(李裕貞)이 군대를 이끌고 해평에서 몽고군과 싸우다가 크게 패했고, 1380년(우왕 6)과 1383년에는 왜구의 침입을 받아 크게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이 때 금오산성(金烏山城)과 선주 읍성(邑城)이 축조되어, 백성들이 안주하게 되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시 선주는 선산군으로 개명되었고, 인동현은 현명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각기 군수·현감이 파견되었는데, 선산군은 2년 뒤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당시 이 곳의 토지는 선산지역이 비옥한 반면 인동지역은 비옥·척박이 반반이며, 풍속은 선산은 화려하고 학문을 좋아한 반면 인동은 검솔하고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호구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선산은 809호 9,136인, 인동은 320호 2,301인이었다고 한다.
한편 고려 후기 이래 이곳의 선산김씨·해평윤씨·인동장씨들이 명문으로 등장했고, 길재(吉再)의 성리학이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인재(人才)의 부고(府庫)’인 영남지방 중에서 “영남의 인재 가운데 반은 선산에 있다(嶺南人才 半在一善).”라는 말도 나오게 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장현광(張顯光)과 같은 성리학자가 배출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의 개편에 따라 선산군·인동군이 되었으나, 1914년 인동군은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이 시기에 신교육의 보급이 이루어지자, 이곳 유지들은 창선(彰善)·선진(善進) 등의 학교를 건립해 인재양성에 노력했고, 항일의병투쟁에도 적극 참여해 임오동(林吳洞)에서 의병장 허위(許蔿)를 배출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4월 3일 해평면에서, 4월 12일에는 선산면에서 각각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6·25 때에 이곳은 북한군의 대구공격을 위한 주된 통로가 되었다. 1963년 구미읍의 승격에 이어 1969년 구미공업단지의 조성으로 국내 최대의 내륙공업기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1978년 구미읍과 인동면의 통합에 따라 구미시로 승격되어 선산군으로부터 독립되었고, 다음 해에 선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95년 시군의 통합에 따라 구미시와 선산군이 다시 통합되어 구미시로 되었다. 1997년 11월 1일에는 고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9년 3월에는 선주·원남동을 선주원남동으로, 원평2·3동을 원평2동으로, 사곡·상모동을 상모사곡동으로 각각 통합하였다.
2021년 현재 행정구역은 선산읍·고아읍·산동읍을 비롯해 무을면·옥성면·도개면·해평면·장천면과 송정동, 원평 1∼2동, 지산동, 도량동, 선주원남동, 형곡 1∼2동, 신평 1∼2동, 비산동, 공단동, 광평동, 상모사곡동, 임오동, 인동동, 진미동, 양포동의 3읍 5면 18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
구미시 자체가 공업도시이다 보니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으며, 인구도 많지 않다. 그래도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농업 생산이 이루어진다. 낙동강 유역 지역은 주로 벼 농사를 하며, 구미국가 산업단지 개발 이후에도 읍면 지역에는 아직도 논이 많다.
구미, 나아가 경북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구미국가 산업단지는 국내의 대표적인 수출 품목인 IT 기기, 반도체, LED, 방산 장비 등을 제조하며, 주요 대기업의 연구소나 공장들이 많이 몰려 있다. 그래서 구미가 남초 지역이다. 1970년 조성 이후 수출 10억 불을 돌파했고, 1976년에 수출 도시임을 상징하는 수출탑이 도시의 중심에 세워졌다.
한때는 구미 국가산업단지의 수출액이 대한민국 전체 수출 흑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시 구미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라는 말이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했고, 남북전쟁이 일어나면 북한군이 반드시 타격할 주요 도시로 꼽히기도 했다.
포항시와 함께 경상북도의 경제를 주도하는 도시다. 구미국가 산업단지가 전성기를 이루던 20세기까지는 대구 역시 구미의 경제권에 포함됐다. 즉 구미는 대구에 일자리를 제공하고 대구는 구미에 인프라를 제공하는 방식의 관계가 유지됐다.
국내에서 최초로 인터넷이 구축된 도시가 구미다. 1982년 5월 31일, 서울과의 연결에 성공했다. 구미 전자기술연구소와 서울대학교 연구팀이 연구 3년 만에 이루어낸 성과로, 세계 2번째로 인터넷을 개발한 국가의 첫 번째 인터넷이다.
교통
철도 교통
경부선 철도가 시의 남서쪽에 위치한 도심을 관통한다. 현재 구미역에서는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를, 사곡역에서는 무궁화호를 탈 수 있다.
경부고속철도 개통 이후 일반 열차 편성이 감소하고, 구미시에서도 KTX 정차 요구가 끊임없이 지속 되었다. 구미시는 이를 위해 한국철도공사 측에 운행 적자의 보전과 구미역 광고용 전광판의 설치, 도로 정비, 주차장 부지 제공 등 250억 원 가량의 지원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운행 횟수가 너무 적은데다 운행 시간 또한 출·퇴근 시간대나 업무 시간대와 동떨어져 이용객에게 불편을 준다는 지적이 있어, 한국철도공사에서는 2008년 1월부터 구미역을 경유하는 KTX 열차의 운행 편수를 기존 상·하행 각 2회에서 하루 상·하행 각 4회씩으로 늘렸다. 2010년에는 김천시 남면 경북혁신도시에 김천(구미)역이 완공·개통되었으며, 이에 따라 구미역을 경유하는 KTX는 폐지되었다.
2005년에 당선된 남유진 구미 시장은 2011년까지 경부고속철도 김천(구미)역과 구미국가산업단지 사이를 연결하는 경전철을 건설한다는 공약을 제시하였으나, 5천억 원 이상의 건설비에 비하여 활용도나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될 뿐만 아니라 계획도 세워져있지 않아 실현 전망은 불투명하다.
도로 교통
경부고속도로가 도심을 동서로 관통하며,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창원을 기점으로 양평과 연결되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는 구미국가산업단지에서의 마산항의 물자 수송에 도움이 되고 있으며 동측으로는 중앙고속도로가 통과한다. 경부고속도로 선상의 구미 나들목과 남구미 나들목, 중부내륙고속도로의 선산 나들목, 상주영천고속도로의 도개 나들목이 있다. 구미 나들목은 연간 492만여 대의 차량이 이용하며, 남구미 나들목은 433만 여대, 선산 나들목은 71만여 대의 차량이 이용하고 있다.
국도 제33호선이 남북으로 관통해 선산읍과 고아읍을 연결하며, 남측으로 김천과 칠곡을 연결하는 국도 제4호선이 국도 제33호선과 연결된다. 북측으로는 국도 제25호선이 국도 제5호선과 연결되어 대구와 상주를 이으며 통과하고 있다. 국도 제67호선이 동측에서 남북으로 2공단과 3공단을 통과해 상주와 칠곡을 연결하고 있다.
시외로의 대중교통은 구미종합터미널과 선산터미널의 2개 터미널과 고아·해평·도개·산동·장천의 5개 정류소가 분담하고 있으며, 구미종합터미널은 고속버스와 시외버스가 공동으로 이용하고 있다.
시내버스는 일선교통과 구미버스가 공동으로 배차하고 있으며, 노선 협의 및 조정을 위해 공동관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의 노선은 2004년부터 노선체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하여, 2005년 7월 10일부터 시행하기 시작한 노선이다. 당초에는 지·간선 체계 도입 및 무료 환승 등을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2004년말 예산이 배정되지 않으면서 종전의 버스 노선을 일부 개편하되 새로 조성된 대규모 주택 단지를 경유하거나 시·종점으로 하는 노선을 확충하고 노선 번호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체계가 도입되었다. 교통카드 환승 할인 제도 도입, 버스 도착 안내 시스템 설치를 통해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에 편리함을 더해주고 있다.
관광
구릉성 산지가 널리 분포해 이름난 높은 산은 없으나, 낙동강이 시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류하고 있어 하천을 중심으로 하는 아름다운 자연적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명산 금오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천연의 명승 관광지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불교의 발상지로서 문화적 관광자원도 풍부하다.
대한민국 최대의 전자 공업도시로서 산업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산업 관광지로서의 구미 공업단지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서쪽에 섬유단지로 출발한 일반단지와 전자공업의 요지인 전자단지로 형성된 제1공업단지가 있고, 동쪽에는 반도체 및 컴퓨터단지인 제2 공업단지(일명 인동공업단지)와 전자 관련 부품공장이 들어선 제3단지가 있는 전국 최대의 내륙 공업단지이다.
금오산은 구미역에서 남서 약 8㎞ 지점에 솟아 있는 높이 977m의 명산으로, 1970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경승지이며, 천혜의 요새를 이루어 신라시대부터 변경수호의 간성이 되어왔고, 임진왜란 때는 크게 활용되었다. 금오산도립공원에는 관광자원이 포장(包藏)되어 있으며, 관광호텔과 케이블카 등 관광시설도 잘 되어 있다. 도선굴과 높이 25m의 명금폭포 그리고 정상 북쪽 아래 거대한 암벽에 높이 5m쯤 되는 마애보살입상, 박희광동상(朴喜光銅像), 허위유허비(許蔿遺墟碑), 동락서원과 그 밖에 6·25 때 격전지인 낙동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충혼탑 등이 있으며 금오산 가는 길에 경관이 아름다운 보트장이 있다.
그리고 해평면과 도계면의 경계지역에 우뚝 솟은 냉산(冷山 일명 태조산, 692m) 중턱에 도리사가 있다. 이 절은 신라에 최초로 불교를 전래한 아도화상이 417년(눌지왕2)에 창건한 ‘해동 최초의 가람’으로, 우리나라 불교의 발상지이며, 경내에 화엄석탑(華嚴石塔)·금동육각사리합(金銅六角舍利盒)·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이외에도 아도화상과 관련된 갖가지 유물과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17세기에 세운 아도화상 사적비를 비롯해 아도화상이 좌선을 했다는 좌선대와 황악산 직지사의 터를 가리켰다는 망대 서대(西坮)는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밖에도 시내 도처에 대둔사(大芚寺)·수다사(水多寺) 등 불교유적이 많다. 고아읍 예강리낙동강변에 세워진 매학정은 조선 중종 때의 명필로 중국의 대서예가들이 왕희지 이후의 제1인자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황기로선생의 유적지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도개면의 청화산 남쪽 기슭에 있는 주륵폭포(朱勒瀑布)는 4계절 쉬지 않고 떨어지는 물이 주변 경치와 조화를 이루며, 피부병과 관절염에 특효가 있다 해 특히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는 곳이다. 또한 동락유원지(東洛遊園地)가 조성되었고, 그 앞에는 제1공단과 인의동을 잇는 구미대교가 가설되어 낙동강 동안지역의 관광객 유치에 한몫을 하고 있다.
문화행사 및 축제
정월 대보름에는 금오산의 금오제단에서 시장이 헌관으로 참여하는 금오대제가 열린다. 또한, 10월경에 원평동의 문화로를 중심으로 문화로 거리축제가 열린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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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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