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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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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강구역 위치

보통강구역(普通江區域)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에 위치해 있는 구역이다.[1][2]

개요

보통강구역의 면적은 7.14㎢로서 시 면적의 0.27%를 차지한다. 구역 면적 가운데서 주민지구토지는 69.89%, 산업토지는 21.29%, 수역토지는 8.82%를 차지한다. 인구는 105,180(2008)명이다. 동쪽은 모란봉구역중구역, 서쪽은 만경대구역, 남쪽은 평천구역, 북쪽은 서성구역형제산구역과 접해 있다. 15동을 관할한다. 보통강구역은 본래의 보통강 중하류와 해방 후 원대한 구상에 의하여 짧은 기간에 건설한 보통강개수공사구간 사이의 보통벌에 위치하고 있다. 구역 이름은 보통강줄기로 둘러싸인 고장이라는데로부터 지은 이름이다.

보통강구역에는 조선중앙통신사, 류경호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등이 있다. 보통강과 보통강운하에 둘러싸인 섬 모양의 지형에 위치하고 있으며, 섬으로 인정한다면 북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남측의 영도와 인구가 비슷하다.

1988년에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대비하여 평양시 도시개발사업소와 4.25 돌격대가 서로 합작하여 만든 류경호텔이 105층 높이 솟아 있다. 평양 정보 기술국은 보통강구역 경흥동에 있는데, 세계적으로 이름난 프로그램인 조선글편집프로그람 창덕, 조선글입력기 단군을 만든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락원거리에 있는 평양수예연구소는 다양한 수예기법을 통해서 사실감이 있는 수예작품들을 만들었다. 이 곳에서는 조선중앙통신사의 지국이 있다. 이 곳은 조선의 외교적대변인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곳에서 실린 글은 북조선의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 보도되고 있다. 보통강운하 주변은 보통강유원지로 잘 꾸며져있다.[3]

자연환경

보통강구역의 지형은 북부에 치우쳐 있는 언덕들을 내놓고는 거의 대부분의 령역이 보통강에 의하여 형성된 충적지바닥으로 되여 있다. 북서쪽은 구역에서 제일 높은 봉화산(94m)을 비롯하여 해발높이 90~60m 되는 침식-삭박된 낮은 언덕 들로 되여 있다. 이 언덕산들은 동쪽으로 점차 낮아지면서 서장둔덕까지 연장된다. 보통강역앞 언덕산은 시생대 랑림층군의 결정편암,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동쪽부분의 언덕들은 중생대 송림산통의 회색사암, 분사암, 사질점판암 등으로 되여 있다.

구역의 남부와 남동부에 놓인 운하동, 붉은거리 1, 2동, 대타령 1, 2동, 보통강 1, 2동, 신원동, 석암동은 해발높이 5~7m 안팎의 충적지벌바닥으로 되여 있다. 이 벌바닥은 보통벌의 중심을 이루는데 제4기 충적층의 두께가 평균 7~8m이며 최고 15m까지 되는 곳도 있다. 밑바닥 석비레층 우에는 5~6m 되는 왕모래층이 끼여 있다.

보통강은 원래 형제산구역 령역에서 남쪽으로 흘러오다가 봉화산 북쪽기슭에 부딪쳐 그 방향을 동쪽으로 바꾸어 약 8㎞ 이상의 구간에 걸쳐 서성구역, 모란봉구역, 중구역, 평천구역과의 경계를 에돌아 운하동에서 남쪽으로 빠져 나갔다. 해방 전에 보통강은 수리시설이 전혀 없는 것으로 하여 해마다 큰물이 넘어나 주변부침땅(남한말:농사땅)은 물론 오막살이 살림집마저 물에 잠기여 《재난의 강》, 《원한의 강》으로 알려졌다. 봉화산 서쪽기슭을 파헤치여 봉화동, 운하동으로 통하는 5㎞의 직수로가 개설됨으로써 지난날 에돌던 보통강자리는 너비가 80~100m 되는 보통강운하로 전환되고 주변에는 보통강유원지가 꾸려졌다.

해방 전 진펄과 잡초만 무성하던 이곳 보통벌에는 붉은거리, 락원거리, 봉화거리, 경흥거리 등 화려한 현대적 거리가 형성되였다. 봉화산 기슭에 보통강개수공사기념탑을 높이 세웠다. 옛 보통강자리에는 봉화섬, 홍천도, 금란도, 운하도, 동각도, 서각도와 같은 자그마한 충적섬이 있다.

한해평균기온은 9.5℃이며 기온이 제일 높은 8월 평균기온은 24.5℃이다. 하루평균기온이 20℃이상 보장되는 기간은 6월 상순초부터 9월 상순초에 이르는 92일간이며 7월 하순부터 8월 상순 사이에는 평균기온이 25℃ 이상, 평균최고기온은 29℃ 이상 보장된다. 7~8월에는 기온이 높은데다가 비가 자주 내리면서 상대습도가 80% 이상 되므로 날씨는 매우 무덥다. 기온이 제일 낮은 1월에는 평균기온이 -7.8℃이고 평균최저기온은 -13.0℃이다. 하루평균기온이 0℃ 이하로 낮아지는 기간은 99일이며 12월 중순말부터 2월 상순말까지의 기간에는 하루평균기온이 -5℃ 이하로 된다. 이 시기에는 찬 북서철 바람이 자주 불어오므로 날씨가 춥다.

보통강구역의 한해평균강수량은 990㎜ 정도이다. 철별로 보면 봄철 강수량은 145㎜로서 한해강수량의 15%에 해당한다. 봄철에는 강수량이 적은 데다가 개인날씨가 계속되면서 메마른 바람이 세게 불므로 날씨가 매우 건조하다. 여름철에는 강수량이 많아서 한해강수량의 63%에 해당하는 619㎜나 되는 많은 비가 내리는데 그 가운데서도 장마철에 많아서 7~8월강수량은 한해강수량의 53%에 달한다. 가을철에는 봄철보다 강수량이 약간 많아서 182㎜이고 강수량이 제일 적은 겨울철에는 44㎜로서 한해강수량의 4%에 지나지 않는다.[4]

역사

보통강구역은 이웃인 형제산구역 서포동유적, 남형제산유적, 만경대구역 룡산동유적 등 기원전 1천년기와 기원 전 5세기-기원전 2세기 유적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조선사람들의 활동무대였음을 알 수 있다. 보통강구역은 세계적인 강국이였던 고구려봉건국가의 수도성인 평양성의 서쪽관문이었다. 리조시기 보통강구역은 평안남도 평양부인흥부 룡산방에 속해 있었으며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후부터 해방 전까지는 평안남도 평양부 대타령리, 적굴리, 당상리에 속해 있었다.

보통강구역의 대타령리는 1946년 9월에 평양특별시 서구 대타령1리, 대타령2리, 대타령3리로 분리되였으며 1948년 7월에는 평양특별시 중구에 편입되였다.

1952년 12월에는 평양시 중구역 대타령1리, 대타령 2리, 대타령3리로 되였다.전후봉화거리, 락원거리, 붉은거리 등 현대적인 웅장화려한 거리들이 건설되고 주민들이 늘어남에 따라 행정구역을 여러 차례 개편하였다. 1955년 2월에는 대타령 2동을 분리하여 평양시 중구역 대타령동, 보통강동, 석암동으로 하고 대타령 1동은 서장동, 굴원동, 미륵동으로, 대타령 3동은 서재동, 봉수동, 궁골동으로 각각 개편하였다. 또한 중구역 적굴동에 남구역 당상 2동일부가 편입하였고 당상 1동일부와 당상 2동일부를 합하여 운하동을 신설하였다. 이와 같이 전후복구건설이 빨리 진행되고 도시구역이 늘어남에 따라 종전의 동들을 분리하여 새로운 동들을 수많이 내오게 되였다.

동들이 새롭게 많이 설치됨에 따라 1960년 10월에 당시 중구역의 8개 동과 외성구역의 1개 동으로 평양시 보통강구역을 새로 내오고 동을 개편하여 11개 동으로 하였다. 그후 1963년 5월에는 대타령동을 대타령1동, 대타령 2동으로 분리하였으며 1965년 1월에는 서장동을 서장1동, 서장 2동으로 분리하였다. 1967년 10월에는 대타령 1동 일부와 대타령 2동일부로 세거리동을, 락원동일부로 붉은거리동을 신설하였으며 1972년 11월에는 보통강동을 보통강 1동과 보통강 2동으로 하고 대타령 1동일부를 보통강 2동에 편입하였으며 붉은거리동을 붉은거리 1동과 붉은거리 2동으로 하였다.

1983년 8월에는 서장1동을 서장동으로 고치고 서장 2동은 경흥동과 서장1동에 각각 넘기고 없앴으며 붉은거리 2동일부로 붉은거리 3동을 신설하였다. 1986년 12월에는 락원동에 서재동을 통합하고 서재동을 없앴다. 보통강구역은 1989년 말 현재 16개 동(대타령1동, 대타령 2동, 서장동, 석암동, 신원동, 대보동, 봉화동, 락원동, 경흥동, 운하동, 세거리동, 보통강1동, 보통강 2동, 붉은거리 1동, 붉은거리 2동, 붉은거리 3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

해방 전 오늘의 보통강구역은 평양성 바깥지역으로서 변변한 공장이란 한 개도 없고 벼, 강냉이, 배추, 무우 등 알곡과 남새(남한말:채소)생산을 기본으로 하는 농업지역이였다. 보통강구역은 웅대한 수도 건설구상에 의하여 현대적이며 웅장화려한 거리들과 유원지 그리고 발전된 공업을 가진 도시 중심 구역으로 전변되였다.

해방 후 이 지역은 중구역에 속하여 있었으나 당시에는 도시중심지역에 남새를 공급하는 교외농업지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해방 후 현재의 운하동과 대타령 1, 2동, 보통강 1, 2동, 신원동, 대보동, 붉은거리 1, 2동 일대는 논과 남새밭으로 되여 있었다. 전후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에 따라 6·25전쟁이 끝난 1953년 말부터 보통벌에 공장들을 배치하기 시작하여 1960년을 전후하여 20여 개의 공장이 운하동지구에 일떠섰다.[5]

교통

도로는 구역 내 봉화 거리, 락원 거리와 붉은 거리가 여기를 통과한다. 철도는 평남선과 평양 지하철 혁신선이 있다.

명승지

보통강구역에는 명승지인 보통강 유원지가 있다. 보통강 유원지는 보통강 개수공사기념탑이 있는 봉화산 기슭으로부터 평천구역 정평동에 있는 삼강호에 이르는 약 10㎞ 구간에 총면적 약 300정보의 규모로 꾸려졌다. 보통강 유원지는 시민들의 즐거운 문화휴식터로, 교양장소로 되고 있다.[6]

지도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동아시아 바다
동아시아 섬
동아시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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