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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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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위치
량강도 위치
혜산시 위치
압록강변 혜산시

혜산시 (惠山市)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량강도 북쪽에 있는 도시이다. 운하교통의 중심지이자 생산공급지이고 량강도의 도청 소재지이다.[1][2]

개요

  • 행정구역: 량강도
  • 면적: 277km²
  • 인구: 192,680명(2008년)

혜산시 동쪽은 운흥군, 동북쪽은 보천군, 남쪽은 갑산군, 서쪽은 삼수군에 접한다. 북쪽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의 창바이 조선족 자치현이 있다. 현재 행정구역은 25동 4리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지역에 혜산구자(惠山口子)라는 고을이 있었는데, 후에 북방방위를 위해 진을 설치하면서 혜산구자의 '혜산'을 취하여 혜산진(惠山鎭)이라 하였다. '혜산'이란 이름은 이곳 압록강 기슭의 주민들이 이곳의 에 있는 자원의 혜택으로 살아간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과거에는 혜산진(惠山鎭)이라고도 했다. 탈북민이 많은 곳 중 청진시와 더불어 규모가 큰 도시고, 비교적 최근에 탈북이 많았으며, 중국과 대단히 가까워 한국에서 그 주민 생활이 가장 잘 알려진 북한의 도시로 꼽을 수 있다.

중국과 잇닿아 있는 국경 지역이어서 무역을 위한 크고 작은 무역회사들이 집결되어 있으며, 비공식적인 밀매가 왕성하다. 북중간 수출입 상품의 관세에 관한 일을 처리하는 혜산세관이 있어, 국가기관 산하 무역 지사들이 적지 않게 상주하고 있다. 본사를 평양시나 기타 도시지역에 두고 있는 무역회사들은 업무추진을 위해 사무실과 숙소, 수출입 상품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가 있는 출장소가 필요한데, 혜산시 내 가동하지 않는 공장건물을 임대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의 탈북민 대상 설문에 따르면, 강계시를 제외한 북한의 도 중심도시 중 가장 못 사는 곳으로 혜산이 꼽혔다. 2017년까지만 해도 사리원시개성시가 더 못산다고 하였는데, 이들 도시에 의해 추월당했다. 30~40% 가량이 혜산이 가장 못 산다고 한다. 다만 가장 잘 사는 도시를 꼽으라고 해도 청진시와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데, 이것은 남포시나 사리원시 같은 도시보다 잘 산다는 것이다. 이것은 10% 안되는 사람들이 가장 잘 사는 곳으로 꼽은 것이다. [3]

자연환경

혜산시는 압록강과 그 지류인 허천강이 합쳐지는 분지에 위치해 있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동쪽경계에 성유덕산(1,289m), 부채산(1,410m), 희상봉(稀喪峯, 1,585m), 남쪽경계에 안간령(1,138m), 운주봉(雲住峯, 1,586m)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녹봉(鹿峯, 1,365m), 제당령(祭堂嶺, 984m) 일대는 현무암대지로 되어 있다. 산림은 시 전체면적의 약 74%를 차지하는데 소나무, 잎갈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사시나무, 버드나무 등이 분포되어 있다.

기반암은 현무암, 규암, 역암, 석회암, 점판암, 조면암, 응회암, 화강암 등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금, 은, 납, 아연, 갈탄, 무연탄, 이탄 등 지하자원이 분포되어 있다. 토양은 표백화갈색산림토양과 갈색산림토양, 충적토로 되어 있다.

혜산시는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고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심한 대륙성기후를 보이고 있다. 연평균기온은 2.7℃, 7월 평균기온은 20.7℃, 1월 평균기온은 -19.3℃이다. 연평균강수량은 596.9mm이다.

눈이 내리는 기간은 9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190여 일간이다. 바람은 북동풍과 서풍이 우세하다. 연평균풍속은 1.3m/s이다.

혜산시의 기본수계를 이루는 하천압록강, 허천강(虛川江), 운총강(雲寵江) 등이 있는데, 하천망의 특징은 하천의 대부분이 하류부에 속하므로 구배가 심하지 않으며 하천망의 밀도가 작은 것이다.

하천의 물은 공업용수, 주민들의 생활용수, 관개용수, 뗏길로 널리 이용된다.[4]

역사

혜산시 지역은 삼국시대에 오랫동안 고구려의 영역으로 되어 있었으며 발해시기에는 발해의 판도로 되어 솔빈부(率賓府)에 속해 있었다. 발해가 패망한 이후 오랜 기간 외세의 지배 하에 있다가, 고려 공민왕시기에 고려의 영토로 수복되어 갑주만호부(甲州萬戶府)에 소속되었다.

조선왕조가 건립된 이후 1413년(태종 13년)에 갑주만호부가 갑산군으로 개칭되어 갑산군(甲山郡)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그 후 혜산시 지역에 혜산진이 설치되었다. 1895년에 부군제를 실시하면서 이 지방은 갑산부의 관하에 있었고 그 이듬해인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함경남도 갑산부(甲山府)에 소속되어 있었다.

조선 말기에 혜산시 지역은 갑산군 보혜면(普惠面)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가, 일제강점 후 이른바 국경경비요충지, 산림자원략탈의 본거지로 되면서 그 규모가 급속하게 확장되었다.

그리하여 1934년에 갑산군 보혜면이 혜산읍(惠山邑)과 보천면(普天面)으로 개편되었다. 1942년에 갑산군에서 혜산읍, 운흥면, 보천면, 삼수군의 별동면 일부가 분리되어 혜산군(惠山郡)이 신설되었다.

광복 직후에 보천면의 일부를 분리하여 대진면(大鎭面)을, 운흥면의 일부를 분리하여 봉두면(鳳頭面)을 신설하였고, 혜산읍을 혜산면(惠山面)으로 개편하면서 혜산면의 혜산리 일부가 혜흥리, 혜장리, 혜강리, 혜명리, 성후리로 분리되었고, 1949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춘동리와 석덕리를 병합하여 춘동리(春洞里)로 개편하였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혜산군 보천면, 대진면의 전체 리와 운흥면의 오산리가 신설되는 보천군(普天郡)에 편입되었고, 별동면의 6개 리가 삼수군(三水郡)에 편입되었으며, 혜산면, 봉두면의 전체 리와 운흥면의 23개 리, 별동면의 6개 리를 병합하여 혜산군을 구성하였다.

이때 혜산면의 혜흥리 · 혜강리 · 혜화리 · 혜장리 · 혜명리 · 혜산리를 병합하여 혜산읍(惠山邑)으로, 봉두면의 용암리 · 신전리와 화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용암리(龍岩里)로, 봉두면의 복안리 · 용운리 · 사덕리와 신덕리 일부를 병합하여 복안리(福安里)로, 봉두면의 장항리 · 용천리 · 신풍리 · 발막리를 병합하여 장항리(獐項里)로, 봉두면의 별남리 · 보안소리 · 심포리 · 백암리를 병합하여 심포리(深浦里)로, 봉두면의 하봉리 · 봉두리를 병합하여 봉두리(鳳頭里)로, 봉두면의 설령리와 화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영하리(嶺下里)로, 봉두면의 생장리와 동흥리를 병합하여 생장리(生長里)로, 봉두면의 용포리와 용봉리를 병합하여 용포리(龍浦里)로, 운흥면의 산양천리 일부와 남포리 · 대오시천리를 병합하여 운흥리(雲興里)로, 운흥면의 삼포리와 수동리를 병합하여 동포리(洞浦里)로, 운흥면의 하자문리 · 후복리 · 상자문리를 병합하여 장언리(長彦里)로, 운흥면의 오시천리와 산양천리 일부를 병합하여 오시천리(五是川里)로, 운흥면의 산당리 · 모정리 · 운총리를 병합하여 운총리(雲寵里)로, 운흥면의 장성리 일부와 노동리 · 중평리를 병합하여 노중리(盧中里)로, 운흥면의 장성리 일부와 일건리 · 대봉리를 병합하여 일건리(日建里)로, 운흥면의 문산리와 대하리를 병합하여 대하리(大下里)로, 운흥면의 대중리와 신덕리 일부를 병합하여 대중리(大中里)로, 혜산면의 강구리 · 늪평리 · 요동리 · 춘동리를 병합하여 춘동리(春洞里)로, 혜산면의 영봉리 · 여달평리와 운흥면의 신흥리를 병합하여 영흥리(英興里)로, 별동면의 보사리 · 신석리 · 장수리를 병합하여 신장리(新長里)로, 별동면의 안계리 · 동평리 · 장강리를 병합하여 장안리(長安里)로, 혜산면의 위연포리와 성후리를 병합하여 위연포리(渭淵浦里)로, 혜산면의 송봉리 · 중리와 운흥면의 신복리를 병합하여 중리(中里)로, 운흥면의 대상리와 대전평리를 병합하여 대상리(大上里)로 각각 개편되었고, 위연포리가 위연포노동자구(渭淵浦勞動者區)로 승격되어 1읍 1구 23리를 관할하였다.

1954년 10월에 양강도가 설립될 때 혜산군의 복안리, 장항리, 심포리, 봉두리, 영하리, 생장리, 용포리, 운흥리, 동포리, 장언리, 오시천리, 운총리, 노중리, 일건리, 대하리, 대중리, 대상리, 신장리, 장안리, 신전리를 분리하여 운흥군(雲興郡)을 신설하였으며, 나머지 혜산읍 · 춘동리 · 영흥리 · 중리 · 위연포노동자구를 통합하여 혜산시(惠山市)로 개편되어 양강도의 소재지로 되었는데, 이때 혜산읍을 분리하여 혜산리(惠山里) · 혜화동(惠花洞) · 혜흥동(惠興洞) · 혜장동(惠長洞) · 혜신동(惠新洞) · 혜명동(惠明洞) · 혜강동(惠江洞)을, 위연포노동자구를 분리하여 위연동(渭淵洞) · 성후리(城後里) · 연두리(蓮頭里)를 신설하였고, 삼수군의 중운리 일부가 춘동리에 편입되어 7개 동, 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55년에 혜산리를 혜산동(惠山洞)으로, 성후리를 성후동(城後洞)으로, 연두리를 연두동(蓮頭洞)으로 개편하였고, 1957년에 위연동 일부를 분리하여 연풍동(淵豊洞)을 신설하고, 혜장동을 혜강동에 편입하였다.

1961년에 영흥리를 영흥동(英興洞)으로, 중리를 송봉동(松峯洞)으로, 춘동리가 춘동(春洞)으로 개편되면서 일부가 강구동에 편입되었고, 혜강동 일부와 혜산동 일부를 통합하여 혜장동을, 춘동리 일부와 삼수군 중운리 일부를 병합하여 강구동(江口洞)을 복귀하였으며, 혜명동 일부와 영흥리 일부를 병합하여 연봉동(蓮峯洞)을 신설하였고, 중운리의 나머지 일부는 삼수군 보성노동자구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혜화동 일부와 혜흥동 일부가 혜신동에, 송봉동 일부가 연풍동에, 혜산동 일부와 혜흥동 일부가 혜강동에 편입되었으며 운흥군의 오시천리, 노중리, 운총리, 신장리, 장안리가 혜산시에 편입되었다.

1965년에 혜흥동 일부를 분리하여 신흥동(新興洞)을, 연두동 일부와 위연동 일부를 병합하여 강안동(江岸洞)을, 춘동 일부와 혜화동 일부를 병합하여 혜탄동(惠炭洞)을, 혜명동 일부 · 연봉동 일부 · 성후동 일부를 병합하여 탑성동(塔城洞)을 신설하였고, 연풍동 일부를 위연동에, 혜산동 일부를 혜명동에 편입하여 20개 동,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72년에 연봉동을 분리하여 연봉일동(蓮峯一洞)과 연봉이동(蓮峯二洞)을 신설하였고, 1973년에 춘동의 일부를 분리하여 마산동(馬山洞)을 신설하였으며, 1981년에 오시천리를 검산동(劒山洞)으로 개편하였다.

1993년에 마산동을 분리하여 마산일동(馬山一洞)과 마산이동(馬山二洞)을 신설하였고, 1999년에 송봉동을 분리하여 송봉일동(松峯一洞)과 송봉이동(松峯二洞)을 신설하였다.

2003년 현재 행정구역은 25동(강구동, 강안동, 검산동, 연두동, 연봉일동, 연봉이동, 마산일동, 마산이동, 성후동, 송봉일동, 송봉이동, 신흥동, 연풍동, 영흥동, 위연동, 춘동, 탑성동, 혜강동, 혜명동, 혜산동, 혜신동, 혜장동, 혜탄동, 혜화동, 혜흥동)과 4리(노중리, 신장리, 운총리, 장안리)로 구성되어 있다.[5]

행정구역

현재 혜산시는 25동, 4리로 구성되어 있다.

  • 강구동(江口洞)
  • 강안동(江岸洞)
  • 검산동(劒山里)
  • 련두동(蓮頭洞)
  • 련봉1동(蓮峯一洞)
  • 련봉2동(蓮峯二洞)
  • 마산1동(馬山一洞)
  • 마산2동(馬山二洞)
  • 성후동(城後洞)
  • 송봉1동(松峯一洞)
  • 송봉2동(松峯二洞)
  • 신흥동(新興洞)
  • 연풍동(淵豊洞)
  • 영흥동(英興洞)
  • 위연동(渭淵洞)
  • 춘동(春洞)
  • 탑성동(塔城洞)
  • 혜강동(惠江洞)
  • 혜명동(惠明洞)
  • 혜산동(惠山洞)
  • 혜신동(惠新洞)
  • 혜장동(惠長洞)
  • 혜탄동(惠炭洞)
  • 혜화동(惠化洞)
  • 혜흥동(惠興洞)
  • 로중리(盧中里)
  • 신장리(新長里)
  • 운총리(雲寵里)
  • 장안리(長安里)

산업

주요 산업은 광업·방직·제지공업이다. 양강도 제일의 공업도시로서 제재·제지공장, 방직·견직물 ·마직물 공장, 시멘트 공장, 주류 공장이 있으나, 공장과 기업소들의 가동률은 40 % 남짓이다. 지하자원으로 구리·철이 매장되어 있으며 혜산 청년광산(구리)이 있다.

지하자원은 혜산군 운흥면 일건리(日建里)의 마그네사이트광(鑛)이 유명하다. 또한 200 m를 넘는 유년곡(幼年谷)이 발달하여서 수력발전에 유리한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8 ·15광복 후 보천보(普天堡) 부근에 대규모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혜산에는 제지 ·제재공업을 비롯하여 정미 ·양조업이 성하며, 지역 콤비나트의 중심지를 이루어 방직 ·제지 ·식료품 공업이 발달하였다.

혜산시는 중강진(中江鎭) 부근과 함께 가장 추운 지역으로 농작물의 생육기간이 짧은데다가 농경지로 이용할 수 있는 땅이 적어 농경에는 불리한 점이 많다. 현무암(玄武岩) ·화산회(火山灰) 등이 분화된 레구르토(土)는 지미(地味)가 비옥하고, 여름 기온이 높기 때문에 짧은 성장기간에 자라는 밀 ·조 ·귀리 ·메밀 ·감자 ·아마 ·홉(hop) 등의 농산물 재배가 비교적 성하다. 면양(緬羊)의 사육이 활발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콩과 채소이며 홉은 혜산의 특산물이다.

한편,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창바이현[長白縣]과 맞닿아 있어 밀무역이나 뙈기밭 등 제한적인 개인영농이 이루어져 북한의 지방도시 중 생활형편이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임업은 이 지역 최대의 산업으로서 대진면 ·보천면 ·운흥면 ·봉두면 일대는 함북 도계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면적의 임야를 가지고 있다.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낙엽송 ·전나무 등의 밀림이 무성하여 일본은 곳곳에 삼림 철도를 부설하고, 원목을 대량으로 벌채하여 반출하였는데, 일본은 러 ·일전쟁[露日戰爭]의 전비(戰費)를 이 개마고원 일대의 임목(林木)만으로 충당하였다고 한다. 벌채된 원목은 혜산을 집산지로 하며, 혜산 ·길주 ·성진 ·신의주 등지에서 제지(製紙) 원료로 이용되었다.

교통 및 관광

북부 내륙선(만포~혜산)·백두산 청년선(길주~혜산)·삼지연선(혜산~삼지연) 철도가 연결되는 철도교통의 중심지이다. 갑산·운흥·삼수·보천으로 통하는 도로가 있다.

혜산은 개마고원 북부의 교통요지로서 압록강 ·두만강 남안의 국경도시들을 연락하는 국도가 지나며, 풍산을 거쳐 장진 ·단천에 이르고, 신흥 ·북청 ·갑산을 거쳐 성진에 이르는 도로가 있다. 혜산은 압록강 철교를 통하여 중국의 창바이부[長白府]와 연결되는 국경도시이다. 철도는 혜산선을 이용하여 백암 ·길주 ·성진 ·청진 등과 연결된다.

그 후 혜산선의 위연역(謂淵驛)~보천보~포태리(胞胎里)에 이르는 철도를 완공시켰다. 이 철도는 백두산을 비롯한 국경지역의 개발을 위해 허항령(虛項嶺)을 넘어 무산을 연결할 예정선으로 되어 있다. 수로는 압록강을 이용하여 갈파진 ·만포 ·신의주에 이를 수 있으며, 8 ·15광복 전에는 프로펠러선이 내왕하였다.

북쪽에 백두산과 무산군으로 빠지는 오계동(五溪洞)이 있는데, 웅장한 고원으로 백두산 등반의 기지가 되며, 단풍 ·녹음이 유명하고, 부근에 온천이 있다. 혜산 시내에는 복융대(服戎臺)가 있는데, 괘궁정(掛弓亭)이라고도 하는 명소이며, 봉천대(奉天臺) ·보다회산(甫多會山)이 있다. 압록강에는 심연과 암석이 교차되고, 하안에는 높은 침식곡이 있어서 경승지를 이루는 곳이 많다.

지도

동영상

각주

  1. 혜산시〉, 《위키백과》
  2. 혜산시〉, 《나무위키》
  3. 조선향토대백과: 량강도 혜산시 개요〉, 《네이버 지식백과》
  4. 조선향토대백과: 량강도 혜산시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5. 조선향토대백과: 량강도 혜산시 역사〉,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동아시아 바다
동아시아 섬
동아시아 강
동아시아 주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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