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한겔스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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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한겔스크주(러시아어: Арха́нгельская о́бласть)는 러시아 북서연방관구에 속해 있는 주이다.[1][2]
목차
개요
아르한겔스크주의 면적은 413,103㎢이며 인구는 1,127,051명 (2019년)이다.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992km 떨어진 러시아 북서부 백해(Белое море, White Sea) 연안에 위치한다. 주도는 아르한겔스크(Архангельск, Arkhangelsk)이고, 지리상 유럽 러시아에 속한다. 면적은 유럽 러시아 지역들 중 가장 크다. 네네츠자치구를 포함한 요상한 형태를 하고 있다. 프란츠 요제프 제도, 노바야 제믈랴 제도와 네네츠자치구에 접해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는 홀모고리, 카르고폴, 솔비체고츠크이다. 모스크바 시간대 (MSK/MSD)에 접해 있다. UTC와의 시차는 +0300 (MSK)/+0400 (MSD)이다.
인구의 95%가 러시아인이다. 그리고 네네츠인들을 포함한 소수민족들도 거주하고 있다. 바이킹들은 이 땅을 뱌르말란드(Bjarmaland)라고 불렀으며, 옛날 러시아와 노르웨이의 갈등 끝에 확고하게 러시아령이 되었다. 다만 이 지역에 정착한 주민들 대부분은 법적으로는 토착 러시아인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서 이주해 온 바이킹들의 후손이라서 금발벽안의 외모를 가지고 있다.
모스크바 총 대주교를 지낸 니콘(Никон, 1605~1681)과 러시아 최초의 과학자이자 교육자로서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를 설립한 미하일 로모노소프(Михаил Васильевич Ломоносов, 1711~1765)가 이 지역 출신이다.[3]
자연환경
동유럽 평원 북쪽에 위치해 있다. 백해, 바렌츠해, 페초라 만, 카라해에 접해 있다. 아르한겔스크주는 평야, 구릉, 습지, 빙하로 이루어져 있다. 남부는 냉대기후, 북부는 한대기후에 속하며, 겨울이 길고 추운반면 여름은 짧고 시원하다. 특히 백해 연안은 짙은 안개가 끼는 날이 연중 최대 60일을 기록할 정도로 안개가 잦다. 식생은 남부에서 북부로 갈수록 타이가에서 툰드라의 분포로 나타나고, 이에 따라 전나무림과 소나무림이 발달했다.
역사
러시아어로 '아르한겔(архангел, archangel)'은 '대천사'라는 의미이다. 이는 12세기 건설되었던 대천사 미하일 수도원(Михаило-Архангельский монастырь)에 도시의 기원을 두고 있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1584년 이반 뇌제(Иван Грозный, 1530~1584)의 명으로 아르한겔스크 지역에 당시 러시아의 유일한 항구가 건설되었고, 1693년 표트르 대제(ПётрⅠ, 1672~1725)는 이 지역 솔롬발라(Соломбала)섬에 러시아 최초의 조선소를 세웠다. 이에 따라 아르한겔스크 지역은 국가의 대외 무역을 주도하며 동방 진출의 거점이 되어 빠르게 번영하였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혹한으로 인하여 항구가 반 년 가까이 결빙되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던 탓에, 1703년 표트르 대제는 부동항 건설을 목표로 발트해 연안에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였고, 이로 인해 아르한겔스크 지역 고유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었다.
1703년, 세인트루이스의 건설과 함께.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부족했던 아르한겔스크.유럽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페테르부르크와 얼지 않는 무르만스크 항구는 러시아 제국의 주요 무역 항구로서의 중요성을 상실했다. 하지만, 20세기 초 아르한겔스크는 러시아 북극 탐험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1830년대 표트르 파크투소프는 노바야 젬랴를 조사하고 지도를 만들기 위해 아르한겔스크에서 두 번 항해했다.
1918년과 1919년에 아르한겔스크주는 러시아 내전에서 가장 활발한 전장 중 하나가 되었다. 1918년 8월 2일, 아르한겔스크는 백인 운동과 연합한 영국군과 미국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행정적으로, 그들은 아르한겔스크를 중심으로 북부 주를 설립했다. 남북전쟁의 이 에피소드는 북러 개입으로 알려져 있다. 군대는 남쪽으로 진격하여 1918년 9월 오보제르스카야 역을 점령하고 북드비나 강과 바가 강을 따라 이동했다. 동맹국들이 점령한 최남단 지점은 셴쿠르스크와 베르흐냐야 토이마였다. 동맹군은 알렉산드르 콜차크의 군대가 코틀라스 방향으로 이동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백군은 이 방향으로 진격할 수 없었다. 1919년 1월, 셴쿠르스크 전투 이후, 연합군은 셴쿠르스크 지역에서 쫓겨났다. 플레세츠카야 역 주변에서 전투가 이어졌다. 1920년 2월 20일, 붉은 군대는 아르한겔스크에 진입했다. 그때는 이미 모든 동맹군이 대피해 있었다.
1930년대에 소련은 경제학에서 소련의 다른 곳과 같은 실험을 했다. 농어민들은 강제로 집단농장으로 조직되었다. 많은 보조금을 받았고, 보조금이 중단되었던 1990년대에 결국 농업을 붕괴시켰다. 실제로 최초의 수용소인 솔로브키 수용소는 1920년 옛 솔로베츠키 수도원 부지에 만들어졌다.
1932년, 블라디미르 보로닌이 지휘하는 쇄빙선 시비랴코프가 아르한겔스크에서 항해하여 단 한 번의 항해로 북해 항로를 건넜다.
아르한겔스크 주는 1937년에 설립되었다. 1991년 이전까지, 주의 높은 권한은 아르한겔스크 주 CPSU 위원회의 제1서기(사실상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주 소비에트 의장(입법권), 주 집행위원회 의장(집행권) 등 세 사람이 공유했다. 1991년에 CPSU는 모든 전력을 잃었다. 주 행정부의 수장, 그리고 결국 주지사가 선출되거나 임명되었다.
1990년대의 경제 위기는 소련의 붕괴 이후 아르한겔스크 주에 매우 큰 타격을 주었다. 비록 이 주의 경제의 기초가 되는 목재에 대한 강력한 수요가 남아 있지만, 아르한겔스크 주의 인구는 특히 시골 지역에서 꾸준히 감소했다. 많은 마을들이 인적이 끊겼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4]
산업
북극해 해양 조사 및 어업의 기지로 역할하며, 그 밖에도 목재 가공품, 펄프, 제지 등의 산업이 발달했다. 이는 백해 연안에 서식하는 풍부한 어종과 툰드라 및 타이가에 분포하는 방대한 삼림 식생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광물, 석유, 천연가스 등의 매장량도 풍부하여 광업과 채굴업 또한 활발하다. 남부 지방에 일부 농업 지역이 있다.
교통
주도인 아르한겔스크에서 북동쪽으로 약 11km 떨어진 곳에 아르한겔스크 국제공항(Международный аэропорт Архангельск)이 있다. 철도는 1898년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노선이 건설된 것을 시작으로 광역 장거리 철도 외에 여러 노선이 운행 중이다. 쇄빙선을 이용하여 추운 겨울에도 대부분의 여객선 및 화물선의 항로가 정상 운행되도록 하고 있다.
교육
북방(북극)연방대학교
북방(북극)연방대학교는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주 아르한겔스크시에 위치한 국립 종합대학교이다. 공식 명칭은 M.V. 로모노소프 북방(북극) 연방대학교이다. 2010년에 공과대학교로 출발했다. 공학 대학 외에 자연과학 · 기술대학, 정보기술 · 자동화시스템대학, 사회과학 · 인문학 · 국제커뮤니케이션대학, 경제 · 경영 · 법학대학 등 7개 대학을 운영한다. 북방(북극)연방대학교는 대학평가기관 QS의 2023년 세계대학순위에서 신흥유럽 · 중앙아시아(EECA) 대학 중 251-300위권에 들었다. 2023년 에듀랭크(EduRank)의 평가에서는 세계 2842위, 유럽 대학 중 855위, 러시아 대학 가운데 45위를 기록했다. 아르한겔스크는 백해(白海)에 면한 러시아 서북쪽의 무역항이다.
북방(북극)연방대학교는 1929년 개교한 아르한겔스크 국립공과대학교를 기반으로 2010년에 대통령령으로 설립되었다. 2011년 다른 국립대학과 직업학교를 통합해 종합대학교가 되면서 명칭을 M.V. 로모노소프 북방(북극) 연방대학교로 변경했다. 당시 이 대학교에 통합된 곳은 M.V.로모노소프 포모르 국립대학교(Lomonosov Pomor State University), 표트르 1세 임업공학대학(Emperor Peter I Forestry Engineering College in Arkhangelsk), 세베로드빈스크공학대학(Severodvinsk Technical College)이었다. 미하일 V. 로모노소프(1711~1765)는 아르한겔스크주 출신 박물학자로 시인이자 과학자, 언어학자, 계몽사상가로 활동했다.[5]
관광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는 솔로베츠키예제도(Соловецкие острова)와 솔로베츠키 수도원(Соловецкий монастырь), 케노제르스키 국립공원(Кенозерский национальный парк) 등이 있다. 지역의 최고등 교육기관은 러시아 북부와 북극의 발전을 위한 혁신 과학 및 인적 자원 기반 창출을 목표로 하는 북극연방대학교(Северный (Арктический) Федеральный университет имени М.В. Ломоносова)로 러시아 북서부의 주요 대학으로 꼽힌다.
아르한겔스크
아르한겔스크는 유럽 러시아 서북부에 있는 아르한겔스크주의 주도로 북(北)드비나강의 양안과 하류의 삼각주에 있는 수많은 섬을 따라 40km 이상 뻗어 나가며 형성된 도시다. 북드비나강은 아르한겔스크를 지나서 50km를 더 내려간 후 백해로 흘러든다.
아르한겔스크는 17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대체될 때까지 중세와 근대 초기에 걸쳐 러시아 제1의 항구 도시였다. 아르한겔스크는 1990년대 이후 인구가 계속 감소하다가 최근 들어서는 현상 유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르한겔스크는 아북극성 기후다. 길고 매우 추운 겨울(11~3월)과 시원한 여름(6~8월)으로 요약되는 것이 특징이다. 가장 따뜻한 7월의 평균 최고 기온은 21.8°C이고 가장 추운 1월의 평균 최저 기온은 영하 16.5°C다.
아르한겔스크에서 볼로그다와 야로슬라블을 거쳐 모스크바까지 1,133km 길이의 철도가 운행되고 있다. 항공편은 탈라기공항과 규모가 이보다 작은 바스코보공항에서 이용한다. 스마르타비아(옛 아에로플로트 노르트와 노르다비아) 항공사가 탈라기공항에 본사를 두고 있다.
아르한겔스크는 현재 러시아 최대의 목재 수출항이다. 목재, 펄프, 종이 등 대규모 목재 가공 산업이 활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선박 건조와 수리, 화학제품 생산, 기계 제작도 아르한겔스크의 주요 산업이다. 아르한겔스크는 어선의 기지와 북해로 나가는 러시아의 서쪽 종착역이다.[6]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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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 〈아르한겔스크주〉, 《위키백과》
- 〈아르한겔스크주〉, 《나무위키》
- 〈아르한겔스크주〉, 《네이버 지식백과》
- 〈아르한겔스크 주〉, 《요다위키》
- 〈북방(북극)연방대학교〉, 《네이버 지식백과》
- 〈유럽지명사전 : 러시아 아르한겔스크〉, 《네이버 지식백과》
같이 보기
러시아유럽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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