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국밥은 끓인 국에 밥을 만 음식이거나 국에 미리 밥을 말아 끓인 음식을 말한다.
개요
국밥은 밥을 국에 넣고 말아서 먹는 음식, 또는 그렇게 먹는 식문화로, 한자어로는 탕반(湯飯)이라고도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음식을 손꼽았을 때 국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식을 대표하며 그 역사도 매우 유서깊다. 국밥은 국에 밥을 넣어 말아 먹는 한국 요리이다. 취향에 따라 밥을 곁들이거나 말아 먹는다.
전통적인 국밥의 방식은 국에 밥이 말아져 나오는 것이다. 국물과 밥의 맛의 균형을 위하여 따뜻한 국물을 여러번 부어 데우는 행위를 하는데 이를 "토렴한다."라고 하며, 한국 고유의 탕 서비스 방식의 하나이다. 국물과 밥이 따로 나오게 된 것은 6.25 전쟁 당시 대구 지역의 피난민들 사이에서 발생한 방식으로 이는 반상의 구분을 원한다고 하여 피난간 양반들이 밥을 따로 시켜먹는데에서 기인한다. 이를 "따로국밥" 혹은 "대구탕"이라 지칭하여 일반적인 국밥과 구분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또 국밥을 처음부터 말아서 내오면 밥의 녹말이 국물에 퍼지면 국물의 깔끔함이 사라지며 밥 또한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밥의 어원이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임금이 직접 농가가 잘되기를 바라는 제사를 지냈던 선농단에서, 행사가 끝난 후 잔치를 열었을 때, 고기가 부족한 노동자들을 위한 고기국을 내놓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것으로 보았을 때 그 전부터 국밥은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혹은 보부상들이 많은 거리를 이동해 가면서, 시간을 아끼고, 짐을 보관하고 간단하고 빠른 식사를 하기 위해 주막이나 식당에서 빠르고 먹기 쉽도록 개량된 한끼 식사가 국밥이었을 거라는 추측이 있다.
밥 요리도 국 요리도 많지만 이렇게 된 이유는, 그 밥과 국이 어떤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밥을 먹는 문화는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등등 많지만 쌀 품종이 안남미(인디카)라서 생 쌀밥은 먹기가 쉽지 않아 대부분 볶음밥을 먹는다. 그걸 국에 말았다간 괴식이 탄생한다. 또한 그 국이라는 것도 대부분 국물이 아니라 건더기를 강조한다. 수질이 좋지 않아 국물 요리가 발전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반면 한국은 수질이 좋고 찰기있는 밥을 먹어 국 같은 게 잘 어울리는 데다, 조리 환경이 국물 요리에 적합하고 한랭한 기후 탓에 따뜻한 국물에 대한 열망이 강해 국물요리가 발전하기 쉬운 환경이었다. 그래서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국물이 발전한 나라가 되었다. 이런 한국 특유의 식습관이자 식문화인 국밥의 범위와 응용성은 매우 무궁무진하다. 순댓국에 말아먹으면 순대국밥, 콩나물국에 말아먹으면 콩나물국밥, 소고기국에 말아먹으면 소고기국밥이 되는 식이다. 특히 부산과 밀양의 돼지국밥은 향토적인 특성이 더해져 더욱 그 특징이 강하다.
조선후기의 문헌을 보면 '얇게 썰어 조린 쇠고기를 장국에 만 밥 위에 얹어 먹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1][2]
특징
국밥은 국에 밥을 말아내는 음식을 말한다. '장국밥'·'국말이'라고도 한다. 원래 국과 밥은 밥상에 따로따로 담아서 올리고, 먹는 사람도 따로따로 먹다가 밥을 국에 말아서 먹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국밥은 먹는 사람이 밥상에서 국과 밥을 합치는 것이 아니고 부엌에서 국에 밥을 넣어서 대접하는 것을 말한다. 한꺼번에 먹을 사람이 많은 경우나 추울 때 뜨겁게 먹기 위한 음식으로 알맞다.
국밥에 관한 조리법은 조선 말엽의 『규곤요람』에서 처음 보이고 있다. 기름진 고기를 장에 졸인 것을 밥 위에다 부어 만든다고 하였다. 국밥에는 주로 맑은 장국을 이용한다. 맑은 장국은 기름기가 없도록 끓여서 간장으로 간을 맞춘 국이다. 주로 쇠고기의 양지머리를 이용하고 우둔살을 이용하기도 한다. 우둔살은 소의 볼기짝에 붙은 고기로 힘줄도 없고 기름도 섞이지 않아, 삶으면 잘 풀어지고 고기맛이 잘 우러난다.
국밥을 만드는 법은 양지머리와 사골을 같이 끓여서 뼈는 건지고 고기는 얇게 썬다. 국물은 차게 식으면 저절로 쇠기름이 엉겨서 하얗게 뜨게 되므로 쉽게 건져낼 수가 있다. 급하면 큰 얼음덩어리를 넣으면 기름이 빨리 엉긴다. 분량은 고기 600g에 물 12홉 정도를 넣고 끓여서 10홉 정도로 졸았을 때에 12그릇이 나온다.
이것을 표준으로 하여 마련한다. 물에 대한 고기의 양이 적으면 맛이 없다. 청장의 맛이 상품이 아니면 국의 맛이 나빠진다. 장의 빛이 검으면 국의 빛깔이 나쁘게 된다. 끓일 때에 누린내를 가시게 하기 위하여 후추를 약간 넣는다.
쇠고기를 삶을 때는 강한 불에 끓이다가 솟구쳐 끓어오르면, 뚜껑을 덮지 않고 약한 불로 오래 끓인다. 밥은 좋은 쌀로 질지 않게 짓는다. 반병두리나 조반기 같은 그릇에 뜨겁게 끓인 국을 담고 밥을 한 덩어리 만 다음에 썰어 놓은 삶은 고기를 얹는다.
국밥을 잘 만드는 법으로는 장국은 무와 고기를 같이 넣어 장국을 끓인다. 따로 콩나물 · 무나물 · 고사리나물 · 시금치나물 등을 갖추 무쳐놓은 다음에 고기를 두드려 양념하여 반대기를 지어서 산적을 굽는다. 국밥 위에 나물과 산적을 얹기도 한다. 먹을 때에는 고춧가루나 후춧가루를 식성에 따라 넣는다.
국밥은 가정에서보다 음식점에서 많이 팔던 음식이다. 조선 말엽에 유행하여, 서울에서는 주로 수표다리 건너편과 백목다리 건너편에 전문음식점이 있었다고 전한다. 수표다리 쪽에는 재상들만 갔고, 백목다리 쪽에는 부유한 상인들과 한량들이 다녔다고 한다.
국밥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서민들의 일품요리이다. 장이 서는 곳에는 장터 한귀퉁이에 간이국밥집이 서서 행상들이나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점심 요기로 애용되었다.[3]
역사
국밥을 국에 밥을 말아 먹는 모든 행위로 간주하여 범위를 넓게 보면, 그 역사는 한민족의 식습관 및 식문화의 시작과 그 맥을 같이할 것이다. 그러나 행위가 아닌 하나의 음식 그 자체의 범위에서 살펴보자면 이러한데, 조선 초기 문신이었던 유순(柳洵, 1441~1517)이 지은 오언고시인 십삼산도중(十三山途中)에 국밥, 즉 탕반(湯飯)이 언급 되는게 최초이다. 그리고 사극에서 묘사된 주막에서 국밥을 파는 장면은 빨라도 조선시대 중기부터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고려 중기이후 몽골과의 전쟁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이후에 전쟁 약탈 등 여러 이유로 식량 자급이 어려워 농민들이 고기국에 보리를 넣어 양을 늘려 먹던 것에서 유래한다고 하기도 한다.
조선 중기 문신인 윤국형(尹國馨, 1543-1611)이 지은 문소만록(聞韶漫錄)을 보면 전국을 유랑하며 본 견문중 주막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주막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오로지 술과 잠자리를 제공할 뿐, 나머지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나온다. 그리하여 많은 여행자들이 개인의 짐을 비롯한 먹거리까지 가지고 다닌다고 나온다. 물론 임진왜란 시기라 물자가 부족했던 시기였다는 사정이 다소 있기는 하나 실제 다른 문헌들을 찾아보더라도 여행자들은 쌀이나 보리, 조, 수수와 같은 곡식과 미역, 북어 등의 건조식량, 장이나 소금 따위의 부식을 들고 다니면서 스스로 해결하거나, 민가에 여분의 대가를 치르고 음식을 부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주모가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여행자가 음식 재료를 대고 요리를 해주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에선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조선 후기가 되어서도 한양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를 제외한 지방은 화폐를 쓰는 일이 거의 전무했다. 지방에서 돈의 역할을 하던 것은 쌀과 무명이었고, 돈을 내고 밥을 사먹는 행위가 성립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밥을 해먹으려면 최소한 쌀 같은 곡식은 스스로 준비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공업이 그나마 발달하는 조선 후기로 갈수록 화폐가 향촌 사회에도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 사이마다 주막이 생기고, 이에 따라 주막이 발전하면서 음식을 제공하는 것 또한 가능해졌다.
조선시기까지는 이런 식으로 사회가 굴러갔다. 우선 어느 보부상이 지방의 특산물을 구매한 뒤 이것을 도성에 팔려고 한다. 이에 보부상이 가다가 밤이 깊어지면 보부상은 인근 마을로 가서 형편이 괜찮아 보이는 집의 대문을 두들겨서 숙식을 요청하고, 특별한 거부 사유가 없다면 집주인은 보부상을 받아들인다. 이후 집주인은 보부상에게 저녁 식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화장실과 잠자리를 내어준다. 애초에 그 집에는 모든 가족 구성원들의 저녁 식사를 위해 음식을 넉넉히 준비해두었었고, 손님 맞이용 방도 미리 마련해두었으니 문제될 것은 전혀 없다.
그리고 집주인은 손님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보부상으로부터 지방에서는 뭐가 제철이고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성에서는 언제쯤 과거시험이 열릴 예정이고 임금님의 평판은 어떤지 등 이런저런 유용한 다른 지방 소식들을 전해 듣는다. 다음날 보부상은 집주인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며 다시 길을 떠나고, 집주인은 보부상에게 전달받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기 집 아들내미를 언제쯤 도성으로 보내서 과거시험을 보게 할지, 만약 아들이 과거에 합격해서 관리가 된 후 지방 감독관으로 파견된다고 하면 어떤 지역이 좋다고 권유할 수 있는지 등을 헤아린다.
훗날 그 집 아들내미가 정보를 바탕으로 과거를 보러 가면 가다가 밤이 깊어졌을 때 인근 마을로 가서 형편이 괜찮아 보이는 집의 대문을 두들겨서 숙식을 요청하고, 특별한 거부 사유가 없다면 집주인은 이 젊은 선비를 받아들여 저녁 식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화장실과 잠자리를 내어준다. 집주인은 젊은 선비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선비로부터 그의 고향과 관련된 이야기나 그의 목적지와 여행 목적(과거 시험)등 유용한 소식들을 전해 듣는다. 다음 날 선비는 집주인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며 다시 길을 떠나고, 집주인은 선비에게 전달받은 정보들을 바탕으로 자기 집 딸내미를 어느 집으로 시집을 보낼지, 손주를 언제쯤 과거 시험을 보게 할지 등을 분석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전통에 대해서는 접대의 관습 문서를 참고해도 좋다.
즉 이런 식으로 여행객들은 가까운 유력자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댓가로 귀중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식으로 사회구조가 유지되었고, 그러니 '음식을 돈받고 판매하는' 행위가 존재하기가 어려웠다. 당연하게도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한다면 한상 제대로 차려서 대접하지, 없어 보이는 국밥 한 그릇 따위를 내줄 일은 더더욱 없으니 국밥류가 발달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당대 최고의 해장국으로 명망이 높았던 효종갱같이 돈 받고 파는 국밥 음식도 있긴 했으나, 화폐가 활발하게 유통되었던 수도권에서나 가능하였지 지방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국밥집의 개념으로 돌아오면 이렇게 조선 후기부터는 외식이라는 문화가 상공업에 발맞춰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한양에는 수많은 장국밥집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장국밥집들 중에서 매우 유명했던 곳으로는 19세기에 조선 헌종조차 변복하고 자주 드나들었다는 설이 있는 무교탕반이라는 곳이 있다. 신분의 고하에 관계없이 인기가 좋았던 곳으로 장국밥을 주로 팔았다. 지금이야 국밥이 다양하고, 이 시대의 장국밥은 현대인에겐 맛이 없어 먹지도 않겠지만, 그 당시에는 인기가 매우 좋았다. 간장 또는 된장을 사용하여 국물의 간을 맞춰 이름이 장국밥인데, 흔히 유행했던 다른 지방의 국밥들이 시래기 등을 가지고 끓인 채소 국밥인 반면 이 국밥은 고기를 듬뿍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대로 지속되었는지 아니면 후대인들이 개량을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월탄 박종화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이 집은 "양지머리만 가지고 국밥을 만들어도 충분한데 젖통 부위 고기를 넣고 또한 갖가지 고명으로 양념한 산적까지 넣어주니 고기와 산적이 어우러져 천하진미가 따로 없다." 하였다. 하지만 이후에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먹는 음식으로 간주되었던 설렁탕이 특유의 냄새와 푸짐함, 고소함 등을 무기로 일제강점기 내내 득세하면서 장국밥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해방 이후 물자가 풍족해지면서 경상도 고향 지방 특색의 돼지국밥이나 전주에서 유명했던 콩나물국밥 등도 많이 인기를 끌면서 그 외 여러가지 다양한 국밥들이 다양한 변모를 걸쳐 현재까지 이른다.
서울의 설렁탕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설렁탕은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짜장면과 비슷한 인식의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설렁탕은 외식 메뉴 중 제일 저렴하고 누구나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요리였다. 펄펄 끓는 가마솥에 뽀얀 국물을 당시 부잣집 사람들은 나가서 먹기에는 눈치가 보였는지, 식당에 가서 먹기보다는 배달이 흥하였다. 이 시기부터 배달이라는 개념이 한국에 자리잡았다는 설이 있다. 일례로 1929년 <별건곤(別乾坤)>이라는 월간지의 1929년 12월 호에는 설렁탕을 절절히 묘사했다. 짧게 요약하면 '설렁탕집의 주인은 백정이고 그릇은 옹기 그릇이라 장국밥에 비해 점잖치 못한 차림새' 때문에 드러내놓고 설렁탕을 한 그릇 먹는 게 점잖은 사람들, 특히 조선이 망하기 전 양반 노릇하던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또한 1930년대 당시 조선총독부의 고시가격에 따르면 비빔밥 1그릇이 15전인데 비해 설렁탕은 1그릇에 5전이었다. 즉 남는 뼈나 고기 따위를 끓여서 양을 불려먹는 일종의 서민적인 음식이었던 것.
이런 설렁탕의 배달 문화에 대해서는 당대의 사회상을 다룬 염상섭의 삼대에서도 몹시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어 있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병화도 종종 사먹을 수 있는 비교적 값 싼 음식이면서, 일제강점기 시기를 통해 보급되기 시작한 전화를 통한 주문도 가능했다. 하지만 부잣집 도련님인 덕기가 설렁탕을 먹은 것을 본 지인이 '저런! 설렁탕을 어떻게 자셨소?' 라고 놀라서 한마디 할 정도로 싸구려 음식 취급을 받았던 것. 또한, 해당 작품을 보면 설렁탕을 주문하면 큰 투가리에 담아서 배달해 주고, 먹는 사람들은 집에 있는 그릇에 나눠 부어 먹고, 식은 설렁탕을 다시 데워 먹기 위해 투가리를 난로에 올려놓는 등 취식 행태도 접할 수 있다.
그리하여 체면을 중시하는 조선시대 문화 속에서 배달업을 발달시켜 틈새 시장을 파고든 탓에, 설렁탕은 최초의 국산 패스트푸드이자 짜장면 같은 배달 음식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현재의 설렁탕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뜨끈하게 한 그릇 먹는 나름 점잖은 식사라고 인식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많은 국밥에는 시래기, 우거지, 콩나물 등의 채소, 다양한 종류 및 형태의 고기, 두부, 선지 등이 재료로 들어간다. 이러한 국밥의 재료를 생각해보면, 영양소 측면에서는 생각 외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 3대 영양소와 각종 무기질이 제법 균형있게 들어간 괜찮은 음식이다. 국밥의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지방이 포함된 고기가 제법 들어있고,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니 탄수화물 또한 당연하다. "OO 먹을 돈이면 차라리 뜨끈한 국밥 든든하게 먹고 말지"라는 인터넷 밈이 마냥 농담만은 아닌 셈이다.[2]
매체
-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창작물에서는 으레 나그네가 주막에서 국밥을 먹는 모습이 자주 묘사된다. 이러한 문화는 조선 후기에만 국한된 얘기로, 조선 전기 주막의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
- 검은사막: 아침의 나라 패치와 함께 국밥이 추가되었다. 무들 원조 국밥, 달벌 원조 국밥, 볏골 원조 국밥 총 3종이 존재하며, 안전지대에서 먹으면 앉아서 수저로 밥먹는 전용 모션이 나온다.
- 마리오 시리즈 & 슈퍼 마리오 시리즈: 최종 보스 캐릭터인 쿠파의 이름도 국밥에서 따온 것이다. 2023년 슈퍼 마리오 애니메이션 영화판의 대한민국 개봉을 기념하여 잭 블랙이 한국 팬들에게 직접 홍보를 하는 영상을 촬영하였다. 여기서 자신이 연기했던 메인 빌런 쿠파의 어원이 대한민국의 음식 국밥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 마블 코믹스 - 뉴 에이전트 오브 아틀라스: 대한민국이 무스펠헤임의 침공을 받았을 때 국밥집 아줌마가 무스펠헤임인 두 명이 앉는 자리에 호일을 깔아주며 욕을 하거나, 그 말을 그저 저 아줌마도 뱃속에 불이 있다며 웃어넘기거나, 옆자리에서 국 먹는 걸 보고 몸에 액체를 넣다니 미드가르드인들이 보기보다 용감하다고 놀라기도 하며, 식사를 마친 후에는 평범하게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다 가는 등 이들은 정말 친근하게 잘 지내며 소박하게 관광한다. 이걸 보고 한국에선 그냥 서울 관광 온 대구 사람들 아니냔 드립이 유행했다.
- 메이플스토리: 국밥 드립에 편승한 것인지, 호영의 스토리에서 국밥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16첩짜리 산해진미가 올라온 만찬보다 국밥과 신김치가 더 좋다고. 2019년 추석 기념 일러스트에서도 파라시랑 같이 나와 국밥을 먹는 모습이 나왔다. 호영이 주막의 국밥 단골손님이라 국밥을 먹는 장면이 자주 부각되는 등 국밥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와 국밥충이 아니냐는 말이 있다. 소맥거핀 시리즈에서도 국밥충으로 나왔다.
- 이명박은 배고픕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17대 대선 후보였을 때 국밥을 먹는 광고를 선보였다. 이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다양한 패러디를 낳았다. 다른 정치인도 선거 기간에 재래시장에 들려서 뭔가를 먹지만 이명박이 국밥을 제일 맛있게 먹어서 화제가 된 광고다.[2]
종류
국밥의 종류는 다양하다. 또한 지역마다 기본으로 하는 국밥의 종류가 다르다.
- 따로국밥: 밥을 국에 말지 않고 국과 밥을 서로 다른 그릇에 담아내는 국밥.
- 술국밥/주가탕반(酒家湯飯): 밥을 만 술국.
- 장국밥(醬--)/온반(溫飯)/장탕반(醬湯飯)/탕반(湯飯): 더운 장국에 만 밥.
- 국수장국밥(--醬--)/면장탕반(麵醬湯飯): 국수를 넣어 만든 장국밥.
- 닭고기온반(---溫飯): 삶은 닭고기를 잘게 찢어 양념에 무쳐서 버섯과 함께 밥 위에 얹고 파를 뿌린 다음 뜨거운 닭고기 국물을 붓고, 실고추ㆍ후춧가루ㆍ깻가루를 뿌린 장국밥.
- 대구탕반(大邱湯飯): 대구식(大邱式)으로 끓인 장국밥. 주로 곱창, 곤자소니, 양 따위를 푹 고아 고운 고춧가루를 많이 쳐서 맵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장국밥이라는 표현은 두가지 의미로 사용되는데, 그중 하나는 국밥 가운데 장맛이 나는 국물에 밥을 만 것을 장국밥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장국밥은 전라도 지방에서는 시장에서 판매되는 국밥이라는 의미도 있다.
대체로 김치나 깍두기, 부추무침과 겉절이, 석박지 등 밑반찬을 한개정도 곁들여 먹는다. 야채와 고기 등을 꼬챙이로 꿰어 구운 산적을 고명으로 얹는 경우도 있다.
지역별 국밥의 종류
국밥의 명칭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
- 서울 및 경기도: 서울특별시, 경기도는 국밥이라고 주문을 하면 주로 양평식 해장국밥 혹은 순대국밥이나 소머리국밥을 내놓는다. 국밥으로 분류를 잘 하지는 않지만, 설렁탕도 유명하다.
- 제주도: 제주도는 반드시 국밥을 주문하면 순대국밥만 나오며, 서울과 경기도 지방과 다르게 콩나물 등의 야채도 듬뿍 올라간다. 국밥과는 다르게 제주도는 매콤한 빨간 국물에 소고기 육수나 소고기 내장으로 만든 내장탕이나 해장국에 원하는 만큼 계란을 풀어 밥을 말아먹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 경상남도 및 부산: 경상남도 지방에서는 일반적으로 국밥을 이야기 하면, 돼지국밥을 내놓는다.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에 의한 차이도 약간씩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돼지국밥은 밀양쪽 방식이다. 또한 경상남도식 순대국밥은 야채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곁들일 야채로 부추무침이 반드시 나오고, 곁들이는 야채로 마늘, 생양파, 고추 등이 나온다. 간혹 김치국밥도 내놓는 가게가 있으나, 최근 가게들은 대부분 김치말이밥으로 이름을 변경하여 오래된 식당이 아니고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해운대 지방에는 해운대 터미널 쪽에 소고기국밥으로 유명한 가게들이 즐비해 있어서 이곳만 유난히 국밥을 주문 시 소고기국밥을 내준다.
- 경상북도 및 대구: 경상북도의 국밥은 파를 가득넣은 소고기나 선지를 사용한 소고기 국밥이 일반적이다. 특히 다른 지방과 달리, 대파를 듬뿍 넣어주는 스타일로 유명하여, 국물이 살짝 달큰한게 특징이다.
- 전북특별자치도 및 전주: 전북특별자치도 지방에서는 콩나물 국밥이 일반적이다. 석회질로 인해 수질이 좋지 않은 지역이라 콩나물 요리가 발달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내에서도 국밥 종류는 두가지로 나뉘며, 일반적으로 끓이지 않는 전주남부시장식 방법이라 불리는 전주남부시장국밥이 보편적이다. 해산물이나, 말린복어, 오징어 등을 이용하여 국물을 내는 방식이 많다. 간은 새우젓으로 하며, 같이 딸려나오는 수란은 위의 부담을 덜어주는데 효능이 있다. 그 만큼 부담이 적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전주 콩나물 국밥 맛은 얼큰한 맛과 시원한 맛이 유명하다.
- 전라남도 및 광주: 전라남도는 위치상 식자재가 풍부하여 음식이 발달했으며 강진 함평 나주를 중심으로 육고기가 발달하였기에 고기 육수로 만든 국밥이 대부분이다. 돼지의 뼈, 내장과 순대 그리고 새끼보 (돼지자궁)을 우려낸 국밥과 소의 뼈와 머리고기로 우려낸 국밥 등이 있고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담양 창평식의 국밥에는 청양고추와 부추가 들어가고 국물이 맑아 그릇의 바닥이 보인다. 과거 광주공원을 중심으로 발전한 내장국밥은 들깨가루 가득 불투명하며 희고 뽀얀 국물에 다대기가 한가득 들어가있다. 나주국밥은 소고기를 우려서 투명한 국물을 내고 그 위에 화려한 색을 지닌 오색 고명과 소머리고기가 들어간다. 전라남도식 국밥의 큰 특징은 보통 국안에 들어있는 고기를 초장에 찍어 먹으면서 반주를 하며 이후에 밥을 말아 먹는 방식을 취한다. 매우 특이한 것은 새끼보 국밥인데 돼지의 자궁을 먹기 편한 크기로 잘라서 국밥을 끓이며 보통의 돼지 내장국밥과 맛이 비슷하지만 쫄깃하여 식감이 다르다. 가게에 따라 국밥이 나오기 전 대기 시간에 약간의 순대나 선짓국을 내놓는다.
- 평안도 및 진주: 평안도는 고기국물에 녹두전과 두부전을 올린 온반이 유명하다. 진주에서는 진주냉면과 비슷하게 고기산적이 올라가는 온반도 유명하다. 그 밖에 콩나물과 북어를 넣고 시원하게 끓인 북어 국밥(또는 복어국)도 있으며, 중국에서 주로 먹는 계란 등을 넣은 깔끔한 국에 밥을 곁들인 계란국밥, 국물에 갈비가 들어간 갈비탕, 계장, 굴국밥, 육개장 등도 밥을 말아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국밥과 비슷한 음식이다.[1]
이형
국밥은 본래 국에 밥을 말아(토렴-식은 밥에 국물을 담고, 비우며 데우는 방식)나오는 것을 먹는데 일부(양반)에서 국과 밥을 한데 먹는 것을 상스럽다하여 국과 밥을 따로 내어 먹도록 한 것이 따로국밥이란 형태로 생겨난 것이다. (경상도, 대구 지역)[1]
동영상
각주
참고자료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