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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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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구역 위치

대성구역(大城區域)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직할시 동북쪽에 위치한 구역이다.[1][2]

개요

대성구역의 면적은 45.15㎢로서 시 면적의 1.74%를 차지한다. 구역 면적 가운데서 주민지구토지는 37.19%, 농업토지는 21.95%, 특수토지는 15.43%, 산림토지는 11.21%, 수역토지는 9.61%, 산업토지는 4.61%를 차지한다. 인구는 115,739(2008)명이다. 동쪽으로 삼석구역승호구역, 서쪽으로 모란봉구역, 남쪽으로 사동구역, 북쪽으로 룡성구역과 접한다. 대성산이 있는 지역이므로 대성구역이라 하였다.

이 구역에 김일성종합대학이 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언론기관인 조선 중앙방송위원회가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1946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재교육의 핵심이다. 조선 중앙동물원은 얼마 전에 보수공사가 끝나고 평양시 시민들의 휴식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외에 방송탑과 조선 중앙식물원, 안학궁터와 대성산성남문, 주요 거리는 문덕거리와 금성거리가 있다. 고구려의 안학궁과 대성산성 등이 있다.[3]

자연환경

대성구역의 지형은 대체로 해발높이 150m 이하의 언덕 들과 작은 벌로 이루어져 있다. 대성동의 해발높이는 126m 고지에서 청호동의 송산을 련결하는 지역은 낮은 산-언덕지구를 이루고 그밖에는 주로 해발높이 50m 이하의 낮은 언덕과 벌지구로 되여 있다.

구역에서 제일 높은 산은 대성산(270m)이다. 대성산은 북-북서쪽에서 뻗어오는 청룡산줄기의 남쪽끝 부분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산의 기반암은 륙성쇄설암층으로 된 사암, 분사암, 점판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성산은 북쪽에서 로산천, 남쪽에서 합장강에 의하여 독립적으로 드러난 산채이다. 대성산의 북서-남동 사이의 길이는 약 4.5㎞, 북동-남서 사이의 너비는 약 2.5㎞이다.

대성산은 남서 비탈면에서 주작봉을 사이에 두고 두 개 골짜기가 깊숙이 들어박혀 마치 천연적 요새를 방불케 한다. 이와 같은 지형조건을 리용하여 선조들은 고구려 때에 대성산릉선을 따라 약 10㎞의 길이를 가지는 산성을 쌓았다. 오른쪽의 골짜기로 깊이 들어가면 미천호, 동천호를 비롯하여 구룡못, 사슴못, 형제못 등 수많은 인공못들이 있어 경치 또한 아름답다. 왼쪽 골짜기에는 평양동물원이 자리잡고 있다. 주작봉(192m)마루에는 혁명렬사릉이 있다. 대성산의 남부와 동부 기슭에는 잔적-운적층대지가 놓여 있는데 비탈이 느리고 너비가 0.5㎞ 이상이다. 여기 소문봉 남서 기슭에는 평양식물원이 넓게 차지하고 남부 기슭에는 고구려시기 왕궁터인 안학궁터가 있다.

구역의 서부에는 서성구역과의 경계에 아미산(159m)과 해발높이 100m가 좀 넘는 언덕 산이 남동 방향으로 2.5㎞ 구간에 놓여 있다. 이 언덕산의 너비는 0.5㎞ 밖에 안되며 높이도 그리 높지 않으나 주변의 낮은 벌바닥에 솟은 것으로 하여 뚜렷이 드러나 있다. 이 언덕산은 나란히 솟아 있는 서성구역의 감북산과 함께 중생대의 심한 충상단층작용으로 보다 오래된 상부고생대층이 중생대송림산통을 덮씌운 상태에 있으면서 산마루를 이루고 있다. 이 언덕산의 북부비탈면은 남부비탈면에 비하여 경사가 더 급하며 패임골로 되였다. 이 산의 동부기슭은 합장강에 의한 기슭깎임을 받아 급하게 드러나 있다.

구역의 대동강연안을 따라서는 해발높이 50m 이하의 낮은 언덕들이 놓여 있다. 여기에는 룡남산이 있다. 안학동, 삼신동, 청호동, 고산동이 차지하는 구역의 동부에는 매봉산, 고방산, 맹산, 송산과 같이 해발높이 150~100m 되는 언덕산지가 놓여 있다. 이 언덕산지의 면적은 9.0㎢ 정도이며 길이 1.5㎞ 안팎의 여러 갈래의 골들로 패워지고 있다. 이 언덕산지는 상부고생대와 중생대의 륙성쇄설암층인 력암, 사암, 분사암, 탄질편암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언덕산지에는 삼신동을 중심으로 하여 질좋은 무연탄전이 있으며 고산동에는 석회암풍화산물인 붉은점토가 5m 정도의 두께로 덮여 있다. 이 점토는 질좋은 벽돌원료로 리용하고 있다.

합장강과 대동강 연안을 따라서는 벌이 펼쳐지고 있다. 구역 안에서 벌의 면적은 약 10㎢ 정도이며 북서-남동방향의 길이는 약 7.0㎞나 된다. 이 벌의 해발높이는 10~15m 정도이다. 합장강연안은 완성된 제방공사로 하여 큰물피해로부터 영원히 벗어났다.

대성구역의 한해평균기온은 9.5℃이며 기온이 제일 높은 8월 평균기온은 24.4℃, 기온이 제일 낮은 1월 평균기온은 -7.8℃로서 평균기온의 한해변화너비는 32.2℃이다. 한해평균최고기온은 15.4℃이며 8월 평균최고기온은 29.3℃, 1월 평균최고기온은 -2.1℃이다. 한해평균최저기온은 4.5℃이며 8월 평균최저기온은 20.5℃, 1월 평균최저기온은 -13.0℃이다. 하루평균기온이 0℃ 이하로 되는 기간은 99일이며 20℃ 이상 보장되는 날수는 92일이다.

대성구역의 한해평균강수량은 1,010㎜ 정도이며 봄철 강수량은 145㎜로서 한해강수량의 14%, 여름철 강수량은 625㎜로서 한해강수량의 62%, 가을철 강수량은 190㎜로서 한해강수량의 19%, 겨울철 강수량은 50㎜로서 한해강수량의 5%이다.[4]

역사

대성구역은 1958년 6월 당시 평양시 서구역의 대성리, 청암동, 미산동, 와산동, 룡북동, 룡남동, 룡흥동, 흥부동, 전승동과 북구역의 삼신동, 안학동, 고산동, 림흥리로 구성된 구역이다.

대성구역은 일찍부터 선조들이 살아온 주요한 주민지대였다. 대성구역은 강대한 봉건국가였던 고구려의 수도였다. 고구려는 대성산성을 쌓고 그 남쪽기슭에 왕궁인 안학궁을 건설하고 427년에 수도를 대성산 일대로 옮겨 586년까지 160년 동안 수도로 하였다. 대성산성은 소문봉, 장수봉, 북장대, 국사봉, 주작봉 등 산릉선을 따라 이곳에 흔한 사암으로 쌓은 산성으로서 성둘레는 7,076m, 성벽총길이는 9,284m나 되며 청암동토성과 고방산성을 쌓아 수도방위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대성구역에는 대성산성, 왕궁인 안학궁터와 함께 산성동쪽에 개마무덤, 남쪽에 고산동1호무덤, 고산동7호무덤, 고산동9호무덤, 고산동10호무덤, 상오리절터, 미산동무덤, 청암동토성과 이웃인 삼석구역 내리1호무덤, 내리서부무덤, 토포리큰무덤, 남경리1호무덤, 호남리사신무덤, 금사무덤 등이 있다. 고구려의 수많은 유적들은 당시 대성구역 일대가 세계강국이였던 고구려봉건국가의 수도로서 얼마나 번성하였던 대 도시였는가를 보여준다.

리조시기 대성구역은 평안남도 평양부 림원면 미산동, 청암동, 토성동, 송암동, 룡흥동, 청호동, 고산동, 남4동, 북4동에 속해 있다가 1913년에 일제는 조선을 강점하고 식민지통치에 유리하게 평양부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다. 그리하여 대성구역은 평안남도 대동군 림원면에 편입되였으며 동은 리로 개편되였다. 해방 직전에 룡흥리, 미산리, 청암리 등은 대동군 림원면으로부터 평양부에 편입되게 되였다.

해방 후 대성구역이 나오기까지 대성구역은 1946년 9월 평양특별시 서구에 속하여 있다가 1952년 12월 평양시 서구역으로 개편되였다. 대성구역은 1958년 6월 당시 평양시 서구역의 9개 동과 북구역의 4개 동으로 구성되였다. 구역 이름은 여기에 있는 산이름 《대성산》에서 딴 것인데 대성산의 《대성》은 큰 성이라는 뜻이다. 이 산은 평양시 중심부에서 높은 산의 하나(270m)로서 고구려때 큰 산성을 쌓았으므로 《대성》이라는 이름을 붙이였다.

대성구역의 행정구역개편 과정을 보면 크게 두 개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해방 전 평안남도 대동군 림원면에 속해 있다가 해방 후 1946년 9월 평양특별시 북구, 1952년 12월 평양시 북구역, 1958년 6월 평양시 대성구역에 편입된 안학동, 삼신동, 림흥동, 고산동, 청호동(1967년 10월)들과 다른 하나는 해방 전 평안남도 평양부에 속했다가 해방 후 평양특별시 서구, 평양시 서구역에 속했다가 1958년에 대성구역에 편입된 룡남동, 청암동, 미산1동, 미산2동, 미암동을 들 수 있다.

룡흥1동, 룡흥2동, 룡승3동은 해방 전에 평양부, 해방 후 평양특별시 서구, 평양시 서구역, 대성구역에 속했다가 1960년 10월 서성구역에 넘어가고 1965년 1월 다시 대성구역에 넘어왔다. 룡북동은 1955년 룡흥동 일부로 신설되였고 1972년 대성구역에 편입되였다. 대성동은 해방 전에 대동군, 해방후 평양특별시 서구, 평양시 서구역, 1958년 대성구역에 편입되였다.

해방 전 고산리를 1952년 림흥리로 고치고 1955년 림흥리 일부로 고산동을 새로 내왔으며 해방 전 청호리를 1955년 림흥리에 편입시켰다가 1967년 고산동, 림흥동 일부로 청호동을 새로 내왔다. 미산동은 1963년 미산1동과 미산2동으로, 룡흥동은 룡흥1동, 룡흥2동으로 갈라졌으며 룡흥3동은 1972년에 룡흥1동 일부와 룡흥2동 일부로 신설되였다.

대성구역은 1989년 말 현재 15개 동(대성동, 안학동, 삼신동, 림흥동, 고산동, 룡남동, 청암동, 미산1동, 미산2동, 미암동, 룡북동, 룡흥1동, 룡흥2동, 룡흥3동, 청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업

해방 전 오늘의 대성구역 지역은 공업이란 삼신탄광 하나밖에 없었고 뒤떨어진 농업지역이였다. 해방 후 구역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대성구역 경제는 인쇄 및 출판공업과 일용품공업을 위주로 하는 중앙 및 지방 공업과 수도시민들을 위한 부식물생산기지로서의 농업이 균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자그마한 공장 하나 없던 지역이 해방 후 오늘까지 중앙공업과 지방공업공장들이 수많이 배치되여 다양한 공업부문을 가진 구역으로 전변되였다. 1986년 평양시 공업생산액에서 대성구역은 3.02%를 차지하였다.

해방 직후 새조국건설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석탄에 대한 수요를 해결하며 기술인재양성사업에 필요한 출판물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미 있던 삼신탄광이 개건확장되고 김일성종합대학 안에 인쇄공장과 광학실험기구공장이 배치되였다.

6·25전쟁이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는 영예군인원주필공장(당시 영예군인공장)이 배치되였으며 전후복구건설시기에는 서구공공건설사업소, 대성요업공장, 전기일용품공장, 대성제약공장, 삼신지질탐사대, 대성김치공장(당시 3.8식료공장), 평양시계공장(당시 시계부속품생산협동조합)이 배치되였다.

특히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1958년 6월전원회의 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이 힘있게 벌어지던 시기에 도시경영기계화사업소를 비롯한 룡북식료공장, 대성도자기공장, 대성독공장, 사회보장경로동직장, 전자계산기공장(당시 타자기공장) 등이 배치되였다.

1961년-1970년 사이에는 대성농기계작업소, 대성광산(당시 고질점토광산), 김일성종합대학화학실험중간공장, 도시시설사업소, 평양지질탐사대, 평양고등교육도서인쇄공장 등이 배치되였다.

1971-1980년 사이에는 이미 창설된 공업의 기술장비를 강화하고 생산을 정상화하며 그 관리운영수준을 높이는 한편 지방의 유휴로력과 예비를 최대한으로 동원하여 삼신영예탄부공장, 8월7일공장, 청호제약공장, 대성피복공장 등 10여 개의 공장들이 배치됨으로써 공업부문구조가 보다 다양해졌다.

1980년대에는 대성구역도시건설대, 대성구역가내생산협동조합, 미림갑문사업소, 미림갑문발전소 등 여러 개의 공장, 기업소들이 배치됨으로써 지방공업의 토대가 더욱 보강 확대되였다. 구역에 많이 배치되였던 공장기업소들가운데서 1980년대를 전후하여 수도의 공기오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공장은 적지 않게 없어졌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설되였다. 이와 같이 수십 개의 공장기업소들이 창설되고 정비보강됨으로써 공업생산은 비약적으로 발전되였다.[5]

교통

평양~원산 간 1급 도로]가 통과하고 있으며 구역 내 교통의 기본골격을 이루고 있다. 시내교통으로는 지하철 1호선과 2호선이 통과하고 있으며 1호선에 삼흥역 · 광명역이, 2호선에 붉은별역이 설치되어 있다. 시내 교통으로는 강동~대성산, 대성산~삼석, 기념궁전~문수, 대성산~팔골 간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6]

명승지와 유원지

대성구역에는 명승지로서 대성산, 유원지로서 대성산유원지가 있다. 대성산은 평양시 대성구역과 삼석구역 사이에 있다. 대성산의 해발높이는 270m이다. 산릉선들에는 소문봉, 을지봉, 장수봉, 북장대, 국사봉, 주작봉들이 병풍을 친듯 잇닿아 있다. 대성산에는 미천호와 동천호를 비롯한 인공호수들과 장수못, 잉어못, 형제못 등이 있어 풍치를 더 돋구어 준다.

대성산은 지금으로부터 1500여년 전 고구려가 평양에 도읍을 정한 다음부터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고구려는 이 산기슭에 왕궁을 건설하였고 대성산에는 웅대한 성을 쌓아 나라의 위력과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였다. 그러므로 대성산에는 산성을 비롯하여 성문터, 못자리와 물주머니, 식량창고터, 고구려옛무덤떼, 안학궁터를 비롯한 고구려의 문화유적들이 많다.

대성산은 산의 생김새가 매우 아름답고 전망이 좋아 예로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꼽혀왔다. 오늘 대성산은 주체시대의 대기념물들을 가진 문화유원지로 꾸려졌다. 대성산에는 대성산유원지와 대성산유희장 그리고 대성산유원지입구 좌우에는 중앙동물원과 중앙식물원이 있다.[7]

지도

동영상

각주

  1. 대성구역〉, 《위키백과》
  2. 대성구역〉, 《나무위키》
  3.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대성구역의 지리적 위치와 령역 및 행정구역〉, 《네이버 지식백과》
  4.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대성구역의 자연〉, 《네이버 지식백과》
  5.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대성구역의 경제〉, 《네이버 지식백과》
  6. 조선향토대백과 평양시 대성구역 교통〉, 《네이버 지식백과》
  7. 북한지리정보: 평양시 대성구역의 명승지와 유원지〉,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자료

같이 보기

동아시아 같이 보기

동아시아 국가
동아시아 도시
동아시아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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