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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소프트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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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소프트웨어(id Software)
이드소프트웨어(id Software)

이드소프트웨어(id Software)는 1991년 설립된 컴퓨터게임 회사이다. 소프트 디스크(Softdisc)에서 활동한 직원들이 퇴사 후 설립했다. 2009년 폴아웃 3(Fallout 3)을 개발한 베데스다 소프트웍스(Bethesda Softworks)의 모회사 제니맥스 미디어(ZeniMax Media)에 인수되었지만,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1] 아이디 소프트웨어라고 읽는 경우도 있으나, 정확한 회사명은 '이드소프트웨어'가 맞다. 이드(id)는 세계적 심리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하는 '본능' 또는 '무의식'을 뜻한다. 미국의 텍사스 주 댈러스 매스키트에 위치해 있다.

개요

이드소프트웨어는 미국 텍사스주에 자리 잡고 있는 게임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회사이다. 1991년 4명의 게임 개발자들이 모여 설립한 이드소프트웨어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규모를 유지했으며, 특히 1인칭 슈팅 게임(FPS) 장르를 논할 때 선두에 등장하는 게임 회사이다. 프로그래머존 카맥(John D. Carmack II)과 존 로메로(John Romero)부터 게임 디자이너 톰 홀(Tom Hall), 아트를 담당하는 에이드리안 카멕(Adrian Kamek)까지 네 명의 게임 업계 종사자들이 함께 설립한 이드소프트웨어는 초기에 작은 규모의 소프트 디스크라는 회사에서 미국 회사에 하청을 받아 게임을 제작했다. 그러나 이드소프트웨어의 4인은 단순히 의뢰를 받아 게임을 제작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당시 게임 유통계의 거물이었던 아포지(Apogee)와 협력하여 자체 제작한 게임들을 하나둘 내놓게 된다. 1990년 12월 회사를 세우기 직전에 발매한 커맨더 킨(Commander Keen)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자사의 게임들을 발매하기 시작했고, 섀도우 나이트(Shadow knight), 호버탱크 3D(Hovertank 3D), 카타콤 3D(Catacomb 3D)를 거쳐 1992년에 울펜슈타인 3D(Wolfenstein 3D)를 발매하며 이를 기점으로 1인칭 슈팅 게임 장르를 대표하는 회사로 올라선다. 1993년 12월에는 셰어웨어(Shareware) 방식으로 배포한 1인칭 슈팅 게임 게임인 (Doom)을 발매하여 전 세계의 게이머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2]

역사

회사 초창기에는 소프트 디스크와의 계약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작은 규모의 잡다한 게임들을 제작하였고, 이 과정에서 아포지와 손을 잡고 셰어웨어 방식으로 발매한 커맨더 킨 시리즈가 작은 성공을 거뒀다. 1991년 4월에 발매된 이드소프트웨어의 첫 1인칭 슈팅 게임 호버탱크 3D를 시작으로 3D 게임 제작에 집중했다. 이후 카타콤 3D와 1992년에 발매된 울펜슈타인 3D가 히트를 쳐서 1인칭 슈팅 게임 장르의 선두주자로 우뚝 서게 된다. 이드소프트웨어는 울펜슈타인 3D를 발매 후에 아포지의 터지원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돔의 개발에 착수했다. 개발 도중 기획자인 톰 홀은 창작 견해 충돌로 인해 퇴사했다. 톰 홀은 이후 아포지로 다시 자리를 옮겨 라이즈 오브 더 트라이어드(Rise of the Triad)를 개발했고, 프레이(Frey)의 개발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톰 홀의 부재로 인한 문제없이 돔의 개발은 상당히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1993년 12월에 발매되었다.[3]

돔의 셰어웨어는 1995년까지 1,500만 회 이상 다운로드 되는 흥행을 일으켰으며, 그 중 100만 개 정도가 등록되었다. 그리고 1996년 후속작은 돔 2(Doom 2) 가 셰어웨어 방식이 아닌 패키지로써 발매되어 200만 장이 미국을 중심으로 팔려나갔다. 오리지널 둠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추가해 패키지로 발매된 얼티밋 둠(Ultimate Doom)도 100만 장의 높은 판매량을 올렸다. 이 시기에 존 로메로가 프로듀싱레이븐 소프트웨어(Raven Software)의 헤러틱(Heretic) 및 헥센(Hexene)도 성공하면서 이드소프트웨어는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둠 2 이후 신작인 퀘이크(Quake)를 개발하는데 갈등과 마찰이 지속해서 발생했으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게임으로 기획된 퀘이크는 발매를 6개월 앞두고 개발 방향이 180도 바뀌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 게다가 회사의 중심축이었던 존 로메로는 퀘이크가 발매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근무 태만으로 회사에서 해고당했다. 존 로메로는 앞서 해고된 톰 홀과 함께 이온 스톰(Ion Storm)을 개발한다. 우여곡절 끝에 1996년 6월에 퀘이크가 발매되었다. 퀘이크는 둠과 어깨를 나란히할 정도의 커다란 상업적 성공을 거뒀고, 3D네트워크 게임의 선구자적 게임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았다. 특히 당시 멀티플레이의 인기가 높았기에 인터넷 위주로 인기가 퍼져나갔는데, 최대의 게임 사이트 중 하나였던 게임스파이의 출발지는 퀘이크스파이라는 이름의 퀘이크 관련 커뮤니티였다. 가장 큰 규모의 아이알시(IRC) 채널인 퀘이크넷도 이름 그대로 퀘이크 커뮤니티에서 시작되었다. 퀘에크 2(Quake 2)는 1997년 말에 발매되어 전작의 인기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하지만 케이크 2는 원래 케이크의 후속작으로 기획된 게임이 아니었다. 원래 예정됐던 게임명이 이미 누군가에 의해 상표 등록된 상황이다보니 기존에 명성이 자자했던 퀘이크의 후광을 입을겸 퀘이크 2라는 이름으로 발매한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신작과 달리 외계인이 나오는 게임이 됐다. 비록 전작인 퀘이크만큼 판매되진 못했지만, 퀘이크의 후광 덕분인지 퀘이크 2도 비평과 흥행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이드소프트웨어는 퀘이크 2가 맘에 들어서 이 게임의 세계관을 다음 두 개의 게임에서도 활용했다.[3]

1998년에는 에픽게임즈(Epic Games), 모노리스(Monolith), 밸브 소프트웨어(Valve Software) 등이 1인칭 슈팅 게임을 발매하면서 시장 판도가 크게 바뀌었고, 특히 밸브가 발매한 하프 라이프(Half-Life)는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1인칭 슈팅 게임 장르의 방향성을 크게 바꿔놓았다. 그러나, 이드소프트웨어는 차기작으로 이들 게임과 전혀 다른 멀티플레이 전용 게임 퀘이크 3(Quake 3)를 발매했다. 흥미롭게도 에픽게임즈도 마찬가지로 멀티플레이 전용 게임인 언리얼 토너먼트를 발표하여 예상치 못한 대결 구도를 형성했고 두 게임은 1999년 말에 이틀의 간격을 두고 발매됐다. 에픽게임즈가 1인칭 슈팅 게임의 첫 작품으로 야심 차게 준비한 언리얼은 멀티플레이가 생각보다 훌륭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매 전 퀘이크 3의 우세가 점쳐졌으나, 게임이 발매된 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언리얼 토너먼트(Unreal Tournament)는 퀘이크 3의 판매량에 약 3배 이상을 기록하면서 퀘이크 3을 압도했고 비평에서도 더욱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래도 게임스팟에서 9.5, 엘지엔(IGN)에서 9.6을 받은 언리얼 토너먼트보다는 낮은 점수지만 게임스팟에서 9.2, 엘지엔에서 9.3이라는 높은 점수를 획득하였고, 이후 10년 가까이 각종 게임 대회에서 롱런하면서 기존의 명성을 이어갔다. 퀘이크 3 이후 리드 프로그래머인 존 카맥은 둠 3(Doom 3) 엔진 제작에 돌입했다. 나머지 인원들은 퀘이크 3 확장팩인 팀 아레나(Team Arena)를 개발하여 2000년 12월에 발매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망했다.[3]

둠 3 개발은 개발 중 상당한 고초를 겪었던 퀘이크 이상으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애당초 차기작은 퀘스트라는 코드네임중세 테마오픈월드가 결환된 멀티플레이 중심의 게임이 될 계획이었으나, 회사 내부에서 둠 3을 제작하자는 목소리가 커져 차기작을 두고 양쪽으로 파가 갈라졌다. 이 갈등 상황에서 한 명이 보복 해고 되기까지 했다. 이드소프트웨어는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Return to Castle Wolfenstein)에 대한 호평을 확인하고 나서야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 2001년 첫 시연을 선보인 둠 3은 일렉트로닉 엔터테인먼트 엑스포(E3) 2002에 등장하여 최고의 쇼로 선정되어 순조롭게 개발되는 듯했으나, 2003년부터 시연 버전이 인터넷에 유출되고 사운드를 담당하던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가 떠나는 등 각종 문제가 연속해서 떠올랐으며, 게임 개발도 계속 지연되어 당초 예상을 한참이나 벗어난 2004년 8월에 발매되었다. 개발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던 둠 3 완성도 있는 작품으로 발매되었지만, 전작과 상이한 플레이 방식으로 인해 원작의 팬들로부터 많은 전작의 명성에는 한참 못 미치는 후속작이 되었다. 또한, 같은 해에 출시된 하프 라이프 2(Half Life 2), 언리얼 토너먼트 2004(Unreal Tournament 2004), 심지어 신작 파 크라이(Far cry), 리딕 연대기(Chronicles of Riddick) 등 강력한 경쟁작들과 비교당하며 비난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판매량으로는 350만 장이 팔리면서 상징적으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외주 개발사에 의해 만들어진 퀘이크 4(Quake 4)와 에너미 테러토리: 퀘이크 워즈(Enemy Territory: QUAKE Wars)가 모두 실패하면서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사이인 액티비전(Activision)과도 멀어지게 된다.[3]

이드소프트웨어는 둠 3 발매 후 인터뷰에서 "신작은 둠 3처럼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며, 2년 후에는 발매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다크니스(Darkness)라는 신작이 개발 중의 개발이 1년 반 정도 진행된 시점에 와서 불길한 예감이 든 것이다. 결국 프로젝트를 뒤엎고, 새로운 프로젝트인 레이지( Rage)의 개발에 착수했다. 비슷한 시기에 이드소프트웨어는 모바일 게이밍에도 진출하여 '둠 알피지(RPG)' 등을 선보였다. 레이지는 2007년 7월에 첫 모습을 드러냈으나,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비슷한 게임 컨셉의 보더랜드(Borderlands)가 공개됐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두 게임 모두 2009년 발매를 목표로 선언하면서 묘한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하지만 두 게임의 대결은 무산됐다. 이드소프트웨어는 이전과 같이 개발을 계속 지연하면서 보더랜드 발매로부터 2년이나 늦은 2011년 10월에 레이지를 발매했다. 제2 개발팀 신설과 함께 2008년 5월에 둠 4(Doom 4) 개발이 시작되었음을 발표했다. 컨셉 작업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개발팀에 좋은 개발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미리 발표했다. 2008년 6월에는 레이지가 기존 게임들을 유통했던 액티비전을 대신하여 일렉트로닉 아츠(EA)를 통해 출시될 것이라 발표하여 사람들을 의아하게 했고, 2008년 연말에는 퀘이크 3의 온라인 버전인 퀘이크 라이브(Quake Live)의 베타 테스트가 시작됐다. 2009년에 본격적으로 둠 4의 개발이 시작되었다.[3]

독립 개발사였던 이드소프트웨어는 2009년 6월 제니맥스 미디어에 인수됐다. 인수 배경에는 이드소프트웨어의 존 카맥이 유통사인 액티비전의 불공평한 대우와 기존의 서드파티 외주 정책으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퀄리티의 게임을 선보일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꼽았으며, 더불어 존 카맥은 "베데스다가 폴아웃 3을 세계적인 규모로 히트시킴으로써 한동안 죽어있던 폴아웃 시리즈의 프랜차이즈를 화려하게 부활시키는 것에 감명받았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의 말에 따르면, 2009년 이드소프트웨어 인수의사를 밝힌 퍼블리셔로는 액티비전과 일렉트로닉 아츠가 있었는데, 그들 밑으로 들어간 다른 개발사들이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고,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 시리즈처럼 이미 1인칭 슈팅 액션게임 프랜차이즈를 가진 계열사간의 경쟁과 갈등은 당연하였다. 따라서 1인칭 슈팅 액션게임 프랜차이즈를 시장에 선보여 성공시킨 적이 없는 베데스다 계열사로 들어가는 것이 그런 갈등을 만들지 않으리라 판단했고 베데스다가 제시한 '개발사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조건에 만족하여 제니맥스 미디어를 선택했다고 한다. 제니맥스 미디어의 자본력이 더해진 이드소프트웨어는 공격적인 확장을 거듭했다. 개발자가 인수 시점에 80명 정도밖에 없었지만, 1년 후에는 개발자가 무려 170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170명의 개발자는 5개의 개발 부서로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각개 팀의 크기는 여전히 업계 평균보다 작은 편이었다. 빠르게 불어나는 개발자의 수용이 불가능해지자 2011년 2월에 본사를 텍사스주 댈러스시에서 리처드슨으로 이전했으며, 새로운 본사는 기어박스 소프트웨어(Gearbox Software) 10분 거리에 있었다. 캘리포니아만큼은 아니지만 원래 텍사스 지역에 게임 개발사들이 상당수 있고 상호 교류도 활발한 곳이었다. 비록 앙상블 스튜디오(Ensemble Studios) 등이 문을 닫고 3D 렐름(3D Realms)은 이름만 남은 회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드소프트웨어, 기어박스 소프트웨어, 레트로 스튜디오(Retro Studios) 등 굵진한 개발사들이 남아 있다. 인근 회사들끼리의 관계가 돈독해서 기어박스의 브라더즈인 암즈 런칭 파티에 앙상블과 이드소프트웨어 직원들이 참석한다거나 기어박스가 퀘이크 콘서트의 주요 스폰서로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꽤 볼 수 있다.[3]

2011년 10월에 마침내 7년 만의 신작인 레이지가 발매되었으나, 게임 내·외적 문제로 많은 혼란을 겪었다. 특히 개인용 컴퓨터(PC)에서의 심각한 기술적 문제는 그동안 개인용 플랫폼에서 쌓았던 신뢰를 모두 잃을 정도로 큰 비난을 받았다. 200만 장 내외의 판매량으로 평범한 성적을 거뒀다. 2012년 5월에는 울펜슈타인 3D의 발매 20주년을 기념하여 에피소드 1에서부터 3까지를 공식 홈페이지에 에이치티엠엘5(HTML5) 버전으로 무료 공개하였으며, 존 카맥이 오리지널 디오에스(DOS) 버전을 직접 플레이하며 울펜슈타인 3D의 개발 비화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동영상도 함께 공개됐다. 그리고 둠 3의 리마스터 버전인 비에프지(BFG) 에디션이 2021년 5월 말에 발표된 후 10월에 발매되었으며, 12월에는 레이지의 디엘시(DLC)인 더 스코처(The Scorchers)가 발매되었다. 2008년에 둠 4 개발을 발표했던 이드소프트웨이는 마침내 2016년 5월 13일 둠 시리즈의 신작인 둠 4를 발매했다.[3]

2020년 9월 21일,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가 모회사인 제니맥스 미디어를 75억 달러에 통째로 인수함으로써 이드소프트웨어도 자연스럽게 마이크로소프트 게임 스튜디오의 일원이 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제니맥스의 사무실과 2천300여 명의 직원도 모두 승계했다. 제니맥스 미디어의 자회사로는 이드소프드웨어를 비롯해 베데스다 소프트웍스, 베데스다 게임스튜디오(Bethesda Game Studios), 아케인 스튜디오(Arkane Studios), 머신 게임스(Machine Games), 탱고 게임웍스(Tango Gameworks) 등 여러 게임 개발사들이 존재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거래가 마이크로소프트가 진행한 최대 규모의 게임 관련 인수이자, 중국의 동영상 공유 소셜미디어 틱톡(TikTok) 인수 시도가 무산된 지 1주일 뒤 나온 것이라고 언급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제니맥스 미디어 인수는 비디오게임 시장의 경쟁사인 소니(Sony)와 나란히 차세대 비디오게임 콘솔을 출시하고,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가정용 비디오게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상황에서 이뤄졌다.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인 사티아 나델라(Satya Narayana Nadella)는 "우리 소비자 사업 부문에서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게임은 그 어느 때보다 훨씬 더 큰 시장이다. 10년 후면 비디오게임이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가장 큰 시장이 될 태세다."라고 말했다. 웨드부시 증권의 애널리스트 마이클 패처(Michael Pachter)는 "이번 인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 콘텐츠를 가치 있게 여긴다는 중대한 선언이다."라고 말했다. 이로써 마이크로소프는 30년 전 인수하려던 이드소프트웨어를 드디어 영입한 것이다.[4]

주요 인물

존 카맥

존 카맥(John D. Carmack II)

존 카맥은 게임 업계에서 천재 중의 천재라 불리는 게임 개발자 중 한 명이다. 존 카맥은 울펜슈타인 3D, 둠, 퀘이크 등 자신이 개발한 게임들의 프로그램 소스를 세상에 무료로 공개하고, 게임엔진인 퀘이크 엔진을 판매했다. 에픽게임즈의 언리얼 엔진 전에 게임엔진의 시초를 꼽는다면 당연히 퀘이크 엔진을 꼽을 수 있다. 1991년 설립된 이드소프트웨어는 사실상 두 명의 '존'에 의해 설립된 후 계속해서 두 명의 '존'이 이끌어 가는 회사였는데, 두 명 중 한 명이 바로 존 카맥이었다. 그는 다소 기행적인 부분들이 많아서 일반적인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소년 시절의 존 카맥은 사제 폭탄으로 인해 소년원 수감생활을 했을 만큼 남다른 행보를 걸었으며, 인재보다는 문제아에 가까운 골칫덩어리였다. 하지만, 결국 게임 산업에 그의 천재성이 발휘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다양한 게임을 개발했다. 회사 설립하자마자 1992년에 울펜슈타인 3D로 엄청난 주목을 받더니 바로 다음 해인 1993년에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명작 둠을 발매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렇게 전 세계가 열광한 게임을 개발한 존 카맥은 20대에 불과한 나이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개발자 중 한 사람으로 각종 상과 기록을 모두 휩쓸었다. 미국예술과학 아카데미(AIAS)가 시상하는 명예의 전당에 2001년 이름을 올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예술과학 아카데미는 1998년부터 매년 1명씩 시상하기 때문에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게임업계 관계자는 굉장히 적다. 존 카맥은 맨 처음 이름을 올린 미야모토 시게루(Miyamoto Shigeru), 시드 마이어(Sid Meier), 사카구치 히로노부(Sakaguchi Hironobu)에 이어 네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앞서 세 명이 평생을 바친 업적을 공로로 인정받았다면, 존 카맥은 2001년 당시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최연소 기록으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으며, 그 최연소 기록은 2018년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사실 그가 만든 게임은 앞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에 비하면 상당히 적다. 커맨더 킨, 호버탱크, 울펜슈타인 3D, 둠, 퀘이크가 사실상 전부이다. 게임만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보다 더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 받는 이유는 게임엔진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최초로 뽑힐 만큼 그 분야에 많은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분야에서 최고로 뽑히는 존 카맥이 만약 아직 애송이였던 시절 존 로메로라는 짝을 못 만났다면 이러한 성공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애플(Apple)과 비교한다면 존 카맥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Gary Woz Wozniak), 존 로메로는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같은 역할이었다. 사업적인 분야보다 기술적인 분야에 천재성을 발휘했던 존 카맥을 이끌어 주고 포장해서 외부에 알리는 역할을 해줄 누군가가 없었다면 단순히 실력 있는 기술자라는 타이틀에 머물렀을 것이다.[5]

존 로메로

존 로메로(John Romero)

이드소프트웨어의 두 명의 존이 있었는데 한 명은 존 카맥이고 또 한 명의 존은 바로 존 로메로이다. 존 카맥과 존 로메로는 회사 설립 때부터 늘 함께했던 사이였고 이 둘이 없었더라면 1인칭 슈팅 게임 장르는 전혀 다른 느낌의 게임이었을지도 모른다. 게임 업계에 큰 공을 세운 둘이지만 결국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이별하게 됐다. 오랜 세월이 지나 잊혀 가는 존재가 되었지만, 단연코 분명한 것은 두 명의 존이 존재했기에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둠이라는 명작 게임이 탄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존 카맥과 존 로메로의 첫 만남은 소프트 디스크라는 회사에 시작됐다. 이 둘은 소프트 디스크를 그만두고 이드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다. 창업 초기엔 존 카맥이 게임 프로그래밍을 전담하여 개발자로서 가능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했지만, 아무리 천재적인 개발자라고 해도 단지 개발만으로는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는데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 어려움을 해결해 준 것이 또 한 명의 존인 존 로메로라는 인물이다. 그 또한 게임 산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게임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일을 했지만, 게임을 단지 개발자의 입장에서만 보지 않고, 다양한 방면에서 게임을 사업적으로 성공시키고자 했다. 이것이 엔지니어 성향이 강한 존 카맥과 다른 점이었다. 존 로메로는 다른 사람과 차이가 있을 때 개발에 대한 지식도 없이 입만 살아서 회사를 휘젓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게임 개발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었다. 존 로메로는 프로그래머로서의 게임 개발자 인생을 울티마(Ultima) 시리즈로 유명한 오리진 시스템즈(Origin Systems)에서 시작했다. 그가 이드소프트웨어에 있으면서 프로그래밍 담당이 자신이 아닌 존 카맥이라고 알린 이유는 본인이 굳이 프로그래밍할 필요 없을뿐더러, 존 카맥이 프로그래밍능력에서 말도 안 되게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그래머 출신이었던 존 로메로는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점점 프로그래밍과 멀어졌다. 이드소프트웨어 설립 후 초반에는 프로그래밍 관련된 분야도 어느 정도 맡았지만, 날이 갈수록 프로그래밍은 존 카맥에 의해 주도됐고, 존 로메로는 레벨 디자인 업무를 맡으면서 게임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레벨 디자이너로서 실력도 상당했기 때문에 이후 개발되는 게임들에서 주로 레벨 디자인에 관한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점점 본업을 멀리하고 근무 태만을 일삼다가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그만뒀다. 존 로메로의 귀책 사유로 인해 그와 존 카맥이 이별했다는 말들이 많지만, 사실 프로그래밍에서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인물이 핵심 역량을 다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점점 자신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회사의 얼굴마담을 자청했을지도 모른다. 이곳저곳 부르는 곳이라면 전부 달려갔고 그러다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천재적인 프로그래밍 실력으로 여러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존 카맥과는 달리, 존 로메로는 실력이 있었지만, 더 뛰어난 후배에게 밀려 업적에 비해 박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적인 게임인 둠이 1인칭 슈팅 게임의 지평을 열었던 것은 단지 프로그래밍 기술의 훌륭함 때문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게임으로서 갖춰야 하는 필요 요소들 역시 뛰어났기 때문에 이드소프트웨어의 성장에 존 로메로가 끼친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6]

게임

게임 분류 작품명 제작연도
초기작 커맨더 킨 시리즈 1990~1991년
쉐도우 나이트 1990년
데인저러스 데이브 인 더 헌티드 맨션 1991년
위험한 데이브 2 1991년
파라곤 1991년
타일즈 오브 더 드래곤 1991년
레스큐 로버 1991년
레스큐 로버 2 1991년
호버탱크 3D 1991년
카타콤 3D 1991년
울펜슈타인 시리즈 울펜슈타인 3D
* 운명의 창
1992년
1992년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2001년
울펜슈타인: 더 뉴 오더 2014년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 2017년
둠 시리즈
* 얼티밋 둠
1993년
1995년
둠 2: 헬 온 어스
* 마스터 레벨 포 둠 2
* 파이널 둠
1994년
1995년
1996년
둠 3
* 둠 3: 악마의 부활
* 둠 3: BFG 에디션
2004년
2005년
2012년
둠(2016) 2016년
둠 VFR 2017년
둠 이터널 2020년
퀘이크 시리즈 퀘이크 1996년
퀘이크 2 1997년
퀘이크 3 아레나
* 확장팩 팀 아레나
1999년
2000년
퀘이크 라이브 2010년
퀘이크 챔피언스 2018년
레이지 시리즈 레이지 2011년
레이지 2 2019년
모바일 개발작 둠 RPG 2005년
오크 앤 엘브즈 2006년
오크 앤 엘브즈 2 2007년
울펜슈타인 RPG 2008년
둠 2 RPG 2009년
둠 리저렉션 2009년
레이지 2010년
퍼블리스, 프로듀스 헤레틱 - 레이븐 소프트웨어 1994년
헥센 - 레이븐 소프트웨어 1995년
헥센 - 레이븐 소프트웨 1995년
퀘이크 - 확장팩
* Scourge of Armagon - 리추얼 엔터테민언트
* Dissolution of Eternity - 로그 엔터테인먼트

1997년
1997년
퀘이크 2 - 확장팩
* 레커닝 - 그레이 메터 인터렉티브
* 그라운드 제로 로그 엔터테인먼트

1998년
1998년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 - 그레이 메터 인터렉티브, 너브 소프트웨어 2001년
울펜슈타인: 에너미 테리토리 - 스플래시 대미지 2003년
둠 3: 악마의 부활 - 너브 소프트웨어 2005년
퀘이크 4 - 레이븐 소프트웨어 2005년
둠 RPG - 파운테인헤드 엔터테인먼트 2005년
오크 & 엘프 - 파운테인헤드 엔터테인먼트 2006년
에너미 테리토리: 퀘이크 워즈 - 스플래시 대미지 2007년
울펜슈타인 RPG - 일렉트로닉 아츠 2008년
둠 레저렉션 - 에스컬레이션 스튜디오 2009년
울펜슈타인 - 레이븐 소프트웨어 2009년

인기 게임

(DOOM)

은 1993년에 등장한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명작 게임이다. 둠이라는 게임이 전 세계에 미친 영향력은 그 시대를 직접 겪어 보지 않았으면 쉽게 와 닿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며, 단순히 글만으로 전달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둠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직장인이 둠을 업무시간에 몰래 하느라 회사에서 강제로 게임을 못하는 방법들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정도였다. 대표적인 예로 21세기 가장 큰 이에스디(ESD) 플랫폼인 스팀(Steam)을 만든 게이브 뉴웰(Gabe Newell)은 1990년대 둠의 성공을 지켜본 후 게임 산업의 성장에 확신이 생겨서 당시 다니던 마이크로소프트를 퇴사하고 회사를 차렸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돔은 게이머들에게 3D 1인칭 슈팅 게임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눈을 번쩍 뜨게 만든 게임이었다. 이전의 울펜슈타인 3D나 비슷한 타 게임들과는 당시에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이고 진보된 3D 그래픽 기술과 빠른 게임의 속도감, 게임 내 등장하는 아이템 같은 요소로 수많은 게이머를 열광시켰으며, 그 인기는 가히 종교적 의식에 가까웠을 정도였다. 둠의 제대로 된 3D 구현은 게이머들에게 멀미 현상을 일으켰다. 게임 화면을 오랜 시간 응시하다가 현실로 눈을 돌리면 2차원 평면에서 구현되는 3차원적인 공간의 불규칙한 움직임에 대한 신체반응이 내이(內耳)의 반고리관의 림프액으로 전달되고, 이러한 비정상적인 진동이 뇌의 구토 중추에 전해져서 멀미 현상을 겪게 된다.[5] 시간이 지나 1994년 둠 2가 발매된 지 1년 후인 1995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케팅에만 수억 원 쏟은 윈도우 95를 발매했다. 하지만 당시 하늘을 찌를 듯한 둠의 인기로 인해 가정 내 컴퓨터에서는 윈도우 95보다 둠이 더 많이 설치되는 등 신기한 상황이 연출됐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치자 빌 게이츠(Bill Gates)는 진지하게 이드소프트웨어를 인수하려는 고민까지 했지만, 아쉽게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둠 프랜차이즈를 이용해 윈도우 플랫폼을 홍보했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윈도우를 홍보할 수 있는 게임은 둠밖에 없었기에 둠의 윈도우 이식은 굉장히 간절한 요소였다. 결국 둠의 윈도우 이식이 성사되고 윈도우 95 홍보영상에 빌 게이츠가 둠을 배경으로 직접 등장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다.[7]

둠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죽음, 혹은 피할 수 없는 비운을 뜻하는데 사실 게임명이 둠이라고 정해진 이유는 따로 존재한다. 둠 시리즈의 디렉터 존 카맥의 인터뷰에 따르면 "둠이라는 게임의 제목은 원래 'Attack of the Attackers'라는 제목으로 출시하려 했으나, 'THE COLOR OF MONEY'라는 영화에서 자신의 큐대를 꺼내며 둠이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에 영감을 받았다. 이후 원래의 제목이 게임의 제목으로 유치하고 바보 같아서 게임의 제목을 둠으로 확정 지었다."라고 말했다. 둠 시리즈 하면 시원한 타격감과 잔혹함이 떠오르는 동시에 음악이 바로 떠오른다. 둠의 시원시원한 게임 플레이와 타격감을 배로 증가시켜주는 헤비메탈 사운드 트랙들은 사실 둠의 개발자 존 로메로가 헤비메탈 광팬이었기 때문에 수립되었다. 그는 둠 제작 당시 로버트 프린스(Robert Prince)라는 작곡가에게 여러 개의 메탈 음악 테이프를 묶어서 건네주며 비슷한 분위기로 사운드 트랙을 만들어달라 부탁했는데 작곡가가 당시 유명한 메탈 밴드들의 음악을 표절하다시피 너무 비슷하게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둠이 정말 대단한 것은 이렇게 비슷한 사운드 트랙임에도 불구하고 작곡가인 로버트 프린스가 법적으로 표절되지 않는 기준을 엄격하게 지켜서 표절 소송을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7] 둠이 출시된 이후에 나온 퀘이크나 하프라이프 등의 게임은 둠 같은 게임(DOOM Type)으로 불렸다. 둠이 세상에 등장한 이후 1인칭 슈팅 게임이라는 단어가 정립되기 전까지는 이런 장르의 게임들이 모두 '둠 같은 게임'으로 불렸다. 이처럼 세상에 1인칭 슈팅 게임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시절에 혜성같이 등장한 둠은 게임 역사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게임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다.[5]

영향력

두 명의 존인 존 카맥과 존 로메로가 세운 이드소프트웨어는 서양 게이머들이 성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현대 1인칭 슈팅게임의 뼈대를 세웠을 뿐 아니라, 게임 업계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특히 '게임은 최신 기술을 최대한 빠르고 대중적으로 적용한 콘텐츠여야 한다'는 개발 철학을 둠을 통해 전달하였고, 이후 게임 업계가 서로 협경하고, 함께 성장하는 데 토대가 되는 정신이 된다. 울펜슈타인 3D의 성공으로 1인칭 슈팅게임의 기초를 탄탄히 다진 이드소프트웨어는 과학오컬트가 합쳐진 독특한 게임을 세상에 또다시 선보일 계획을 짜기시작했다. 이 계획의 결과가 바로 1993년 둠이라는 1인칭 슈팅게임이었다. 이후 이 게임은 전통적인 판매방식이 아닌 디지털 판매 방식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할만한 혁명을 시작하게 된다. 둠은 일부 개인용 컴퓨터 마니아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고, 이후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함께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다. 컴퓨터 통신과 초기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 방식으로 판매되던 둠은 이미 대단한 판매량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시나리오가 첨부된 패키지 게임도 200만 장의 판매량을 올리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당시로써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판매량이었다. 둠의 엄청난 성공은 어드벤처 장르를 주력으로 삼던 북미유럽 게임 업계게에 상당한 자극을 줬고, 이후 둠을 벤치마킹한 작품이 쏟아지는 계기로 발전한다.[8] 이드소프트웨어는 이후 자체적으로 개발한 엔진을 통해 3D 1인칭 슈팅게임에 최적화된 게임성을 보여주며 둠 시리즈에 이어 퀘이크 시리즈의 잇따른 성공과 거대한 수익을 낸다. 1996년 6월 처음 등장한 퀘이크 시리즈는 온라인에 특화된 게임성, 뛰어난 사운드, 완벽에 가까운 3D 연출 등이 더해지면서 전 세계 평론가들의 극찬과 돌풍을 끌어냈다. 이 게임의 인기에 온라인 모드의 도입이 큰 역할을 했다. 다수의 이용자가 실력을 겨루는 모드인 데스매치방식을 도입하면서 이 안에 기존 게임에서는 절대 볼 수 없던 요소들을 대량 도입했다. 이는 향후 1인칭 슈팅게임 온라인 모드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했다.[9]

존 카맥은 둠의 핵심 개발자이자 총괄을 담당했는데, 그는 이 게임을 통해 평소 자신의 개발 철학이었던 '해커 정신'을 대중에게 알렸다. 존 카맥의 해커 정신은 개개인이 보유한 컴퓨터 기술이 모두 함께 공유될 때 더 빠른 성장이 가능하다는 '해커 윤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즉, 해커정부나 기업의 비밀을 취득해 공공의 목적을 위해 공개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기본개념에서부터 현대의 해커와 많은 차이점이 있는 이상적인 가치관이다. 존 카맥의 '해커 정신' 덕분에 1990년대 중반 당시 최고 기술력으로 개발된 둠의 아류작이 쏟아질 수 있었다. 그는 기술의 발전을 위해 최고 기밀이었던 3D 물리 엔진 둠엔진을 저가에 판매하고, 관련 기술을 주저 없이 공개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당시 둠엔진은 현대에 와서 테크1(Tech1) 엔진으로 명칭을 바꿔 계속 사용되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의 경우 개발자의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 코드는 주요 지식재산권 보호 대상이자 이후 개발자의 역량을 판가름하는 중요 기술로 여겨지는 만큼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 존 카맥은 회사의 최고 기밀 사항인 게임 코드 역시 게임 출시 몇 년 뒤에 오픈 소스 형식으로 인터넷에 공개하는 등 게임 업계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공헌했다. 이런 공헌 활동 중에는 게이머가 직접 게임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드 방식도 포함된다. 모드(Game Modification)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게임에 사용되는 몇 가지 핵심 명령어를 활용하여 사용자가 직접 게임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게임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이다. 존 카맥은 개인용 컴퓨터의 특징 중 하나인 접근성에도 주목하여 여러 가지 개발 언어와 접근 통로를 개발해 사용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했다. 이후 열성 팬들의 노력과 초기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한 공유 활동이 겹쳐지면서 둠 사용자가 만든 시나리오와 맵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결국, 모드라는 방식으로 인해 기존에 게임 개발을 불가능한 것이라 여겼던 사용자들이 게임 개발에 친숙해지면서 직접 게임을 만드는데 도전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존 카맥의 '해커 정신'을 바탕으로 한 활동은 현대 게임 시장의 근간을 이루는 업체들을 등장시키는 계기일 뿐 아니라, 게임 기술 발전에 엄청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8]

논란

폭력성

1993년 발매 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둠은 '폭력'이라는 키워드로 세상을 움직였다. 이 게임이 가진 과도한 폭력성은 게임의 화제는 물론이고 게임의 등급, 심의가 필요하다는 정치권의 목소리까지 꺼내며 수많은 논쟁을 야기했다. 둠의 초기 콘셉트는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였다. 하지만 존 카맥은 영화사와 판권을 협의할 경우 자신들의 원하는 게임 개발이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 계약 직전에 포기했다. 에일리언을 지옥에서 온 악마로 대신하고 영화 이블 데드 시리즈의 특징을 결합한 게임을 내놓자는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존 카맥은 이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반영함과 동시에 컬러 오브 머니라는 또 다른 영화의 대사를 이용해 둠이라는 제목을 정하면서 게임이 등장하게 된다. 1990년대 초반 당시 게임들은 일종의 제한이 풀린 형태로 확장되는 시기였다. 논란의 모탈 컴뱃(Mortal Kombat), 스플래터 하우스(Splatter House) 등 각종 폭력성을 지닌 아케이드 게임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중에서 단연 둠은 최고 수준의 잔혹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둠이 출시되던 시점에 각종 폭력성 게임 때문에 미국 의회에서 청문회가 벌어졌다. 둠은 매일 뉴스에 이름을 올렸고 많은 정치인과 학회, 단체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21세기라면 협회 등을 통해 반발 및 규제, 자제 등의 목소리를 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국 1994년 오락소프트웨어등급위원회(ESRB)라는 게임 심의 기구가 등장하게 된다. 이후 둠의 화제성은 다소 줄었지만, 1999년 4월 20일 발생한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으로 인해 다시 언론의 입에 오르게 된다. 총기 난사를 저지른 범인들이 에릭 해리스(Eric Harris)와 딜런 클리볼드(Dylan Klebold)가 둠의 광팬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게임 규제의 요구가 다시 한번 커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드소프트웨어는 총기 난사 사건 피해자 유족들에게 피해 보상 소송을 겪기도 했다. 사실 폭력으로 많은 논란이 일어났지만 게임 내부 개발자들 사이에선 '너무 잔혹하다'는 이유로 여러 개의 데드 신을 제외했다. 둠 가이의 목이 잘리거나 허리가 잘려 상체가 날아가는 신 등이 있었지만 출시 전 과도한 표현이라고 삭제한 것이었다.[10]

사운드 트랙

둠 이터널의 사운드 트랙(OST) 제작을 맡은 믹 고든(Mick Gordon)이 제작 중 여러 가지 이유를 들먹이며 이드소프트웨어를 비난하였는데 이에 대한 이드소프트웨어의 답변에서 모든 사실이 드러나 네티즌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따라 사운드 트랙 출시에 대한 논란이 붉어졌다. 둠 이터널의 총괄 제작자인 마티 스트래튼(Marty Stratton)이 둠 서브레딧에 올라온 긴 성명문에서 사운드 트랙 출시에 대한 논란에 답했다. "일각에서는 저희가 둠 이터널의 음악을 가볍게 여기거나 존중하지 않았다고 하는 한편, 양질의 작품을 만들 시간과 창조적 자유를 고든에게 주지 않았다는 추측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게임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자사의 선임 음향 디자이너에게 날아왔던 인신공격을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생긴 오명이 게임을 만들어 계속해서 지원하는 여러 유능한 인재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마티 스트래튼은 믹 고든의 능력을 인정하긴 했지만, 개발 과정에서 제작에 관련된 사정을 잘 조율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또한, "이로 인해 소통 과정에서 신뢰를 잃었고, 이드소프트웨어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프로젝트의 불확실성과 위험을 떠안게 되었다."라고 답했다. 성명문의 나머지 내용에는 최소 12트랙을 작업하기로 계약한 이드소프트웨어와 믹 고든 사이의 합의 내용에 대한 모든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드소프트웨어가 믹 고든의 요청을 받아들여 작업 기한을 6주 연장해 주었다는 사실도 포함되었다. 하지만, 마티 스트래튼은 제출 기한이 다가오면서 믹 고든이 사운드 트랙을 기한 내에 작업할지 매우 걱정되어 만일을 대비하여 이드소프트웨어의 선임 음향 디자이너에게 트랙을 믹싱하라고 지시했다. 마티 스트래튼은 해당 믹스가 믹 고든이 게임 내에 적용하기 위해 미리 압축했던 작업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음을 분명히 했고, 게임 제작사가 작곡자의 원본 작업물을 건드릴 일은 없다고 밝혔다. 믹 고든은 작업 막바지의 지연을 거친 후 결국 12곡 중 9곡을 제출했으며, '나머지 곡을 최대한 빨리 작업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티 스트래튼은 대부분의 곡이 사실상 엠비언트에 가깝고, 대중들이 바라는 격렬한 전투용 음악은 한 곡에 불과했기 때문에 불만족했다. 이는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믹 고든의 트랙과 이드소프트웨어의 내부 작업물을 합치게 되고, 그 직후 작업이 끝난 곡을 모은 사운드 트랙이 출시됐다. 마티 스트래튼은 "이드소프트웨어는 사운드 트랙에 대한 비판 여론과 이드소프트웨어와의 향후 관계에 대한 믹 고든의 발언을 접하고 어떤 연유로 온라인에 글을 올렸는지 알기 위해 믹 고든에게 연락했다."라고 말했다. 믹 고든은 일부 트랙의 수정 사항, 이드소프트웨어가 단편적으로 사용한 음악의 특징, 공동 작곡자 저작권에 대한 문제를 비롯한 불만 사항을 간략하게 제시했다. 마티 스트래튼은 "고든이 발언을 한 시점에 이드소프트웨어는 고든 과의 작업을 끝낸다고 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이제 이드소프트웨어는 고든 과의 연락 이후로 관계를 철회하고 현재 제작하고 있는 디엘시(DLC)에서 고든과 협업하지 않겠다."라고 발표했다.[11]

존 카맥과 이드소프트웨어 결별

이드소프트웨어 공동설립자이자 둠, 퀘이크 등의 개발을 주도하였으며, 게임계 천재 개발자로 불렸던 존 카맥이 이드소프트웨어를 완전히 퇴사했다. 2013년 11월 23일 주요 외신은 이드소프트웨어와 베데스다 소프트웍스가 각 해외 언론에 보낸 성명을 통해 존카맥이 2013년 초 취임한 오큘러스 브이알(Oculus VR) 최고 기술 책임자 역할에 집중하고자 이드소프트웨어와 결별했다고 보도했다. 존 카맥은 자신의 트위터(Twitter)에 "id의 고문으로 남고 있었지만 잘 이뤄지지 않았다. 각자의 길에 도전해 나가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존 카맥이 옮겨간 오큘러스 브이알은 머리에 끈을 묶어 착용하는 방식의 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HMD) 오큘러스 리프트(‎Oculus Rift)를 개발하는 회사다. 이 제품은 헤드 트랙킹 센서와 스테레오스코픽 3D를 통해 시야각 110도에 이르는 넓은 시야 각도와 머리의 움직임을 지연 없이 감지하고, 물체의 원근감을 정확히 표시할 수 있다. 1995년 이드소프트웨어에 입사한 팀 윌리츠(Tim Willits) 디렉터는 존 카맥의 퇴사 소식에 "존 카맥은 이드소프트웨어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것 이외의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었다. 이드소프트웨어 테크5 개발 작업에서 존의 일은 완수가 됐기 때문에 그와의 결별이 현재의 프로젝트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라고 설명했으며, 그는 이어서 "우리는 다행히 이드소프트웨어에서 존과 함께 일해 왔던 재능 있는 프로그래머들을 보유하고 있다. 최첨단 기술로 좋은 게임을 만들어 낸다는 이드소프트웨어의 신념은 계속될 것이고 존과 오랫동안 일해 왔던 동료로서 그가 잘되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12]

동영상

각주

  1. 이드_소프트웨어〉, 《위키백과》
  2. FPS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임 회사, 이드 소프트웨어〉, 《네이버 블로그》, 2019-03-19
  3. 3.0 3.1 3.2 3.3 3.4 3.5 3.6 이드 소프트웨어〉, 《나무위키》
  4. 정성호 특파원, 〈틱톡 놓친 MS, 인기게임 '둠' 보유 제니맥스 8조7천억 원에 인수〉, 《연합뉴스》, 2020-09-22
  5. 5.0 5.1 5.2 김대홍, 〈(게임별곡) 최연소 명예의전당, 천재개발자 존 카멕〉, 《게임톡》, 2018-05-17
  6. 김대홍, 〈(게임별곡) ‘둠’ 성공을 이끈 두 명의 ‘존’〉, 《게임톡》, 2018-05-21
  7. 7.0 7.1 게임러, 〈당신이 몰랐던 둠에 관한 9가지 사실들〉, 《네이버 포스트》, 2019-09-15
  8. 8.0 8.1 서삼광, 〈(게임의전설) FPS 장르를 완성한 '둠'(1)〉, 《데일리게임》, 2013-05-15
  9. 김동현 기자, 〈FPS ‘둠’ 신화 쓴 ‘Id’…20주년 발자취〉, 《지디넷코리아》, 2011-08-15
  10. 임기영, 〈폭력과 잔혹성이 만든 예상외 성공 둠(DOOM)〉, 《브런치》, 2018-11-13
  11. 이드니스, 〈이드소프트웨어, 믹 고든과 결별하다.〉, 《콘솔러》, 2020-05-05
  12. 백봉삼 기자, 〈존카맥, id소프트웨어와 완전 결별 왜?〉, 《지디넷코리아》, 2013-11-24

참고자료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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