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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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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그리스어: Έλληνες), 또는 헬라스 사람은 그리스와 키프로스 및 인접 지역에 뿌리를 둔 민족 및 그 혈통으로, 이들 지역 뿐 아니라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다.. 또 다른 의미로는 그리스의 국민(시민권자)를 말하기도 한다.

주로 그리스어를 사용한다. 헬라인 혹은 헬라족이라고도 부른다. 고대부터 화려한 문명을 꽃피워 왔던 민족이다. 발칸반도 남부를 터전으로 잡고 있으나 고대부터 해외 이주를 많이 한 민족이었기 때문에[8] 그리스 반도 이외의 발칸 지역이나 아나톨리아 반도, 구소련 지역 등지에도 거주한다. 굴곡진 현대사와 20세기 중반까지의 낙후된 경제 때문에 이민이 많았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부유한 북미영국독일호주 등지로 이민 간 그리스인들도 많다. 이후에는 그리스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고 독재 정권도 무너졌기 때문에 그리스인의 해외 이민이 크게 감소했지만 2010년대 와서는 경제난으로 인한 실업 문제로 인해 일자리를 찾으려고 해외로 이민 가는 사람이 크게 늘었다.[10]

기원[편집]

그리스인은 유전적, 언어적으로 아르메니아인과 매우 흡사하다. 유전학, 고고학 연구 결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제일 처음에 그리스를 비롯한 중부 유럽 지역으로 확산된 것은 신석기 시대 아나톨리아 지방의 농경민으로, 이들이 그리스 지역의 맨 처음 주 인종을 차지했다. 그런데 그리스에서는 다른 지역과 다르게 이란의 농경민들과 유사한 코카서스의 수렵 채집인들도 같이 확산되어 융합되는 영상을 보였는데 그 비율은 15-20% 정도로, 주류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이 두 민족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미노스 문명으로, 미노스 문명을 이룬 이들 모두 인도유럽어족과는 상관없는 이들이었다.

그러다 인도유럽어족 민족들의 원형인 우크라이나-캅카스 일대의 유목 민족인 얌나야(yamnaya) 문화의 유목민들이 남하해 선주민들과 융합되었지만 이들의 비중은 10퍼센트 정도로 별로 높지는 않았는데 특이한 것은 얌나야 문화의 유목민들이 이주한 다른 지역과는 달리 얌나야 문화에서도 다양한 계열의 하위 문화 구성원들이 유입되었다는 것으로, 그리스인들이 다른 유럽인들이나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민족들과 다른 양상을 보이는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그 비율은 아르메니아계가 절반을 차지하며 불가리아 지역의 트라키아인이 된 북발칸 민족들이 3분의 1 정도, 나머지는 중부 유럽으로부터 유입된 이들이었다. 비록 이들은 선주민들에 밀려 비율상 다수를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인도유럽어를 전해 주었고 서서히 선주민들을 동화시켜 갔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야만인이라고 여긴 트라키아인들은 문화적으로는 고대 그리스인들과 전혀 딴판이었지만 혈통적으로는 매우 유사했다.

이후 그리스인들이 도시 국가를 세우고 해외에 식민지를 세울 때 그리스인들의 분포 양상은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났는데 시라쿠사 같은 이탈리아 지역이나 이베리아반도의 식민지 도시들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성공했지만 아나톨리아의 식민도시들이나 폰투스 왕국 등의 아나톨리아 이주민들은 역으로 선주민들에게 동화당했다.

이것과는 별개로 폰투스 왕국의 아나톨리아인들은 폰토스 왕국 멸망 이후 로마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시로 쏟아져 들어갔고 기존 로마인들(에트루리아 계통의 비 인도유럽어족 민족들)을 누르고 다수 민족을 차지했다.  로마공화국 시절 다수 로마시 시민들의 인종구성과 로마제국 시절 로마시 시민들의 다수 인종구성이 전혀 다르다. 이 말은 곧, 로마 신화에 아이네이아스가 등장하는 이유는 로마인들이 정통성 때문에 윤색한 것이 아니라 로마 제국 시절 로마로 쏟아진 아나톨리아인들의 영향력으로 아나톨리아 지방의 트로이 출신인 아이네이아스가 시조 신화에 편입되었다는 뜻이 된다.

특징[편집]

지중해 해양민족이라 매우 개방적이고 외국인이나 외국 문화도 좋아한다. 섬이 많고 해안선이 복잡해 어부나 선원이 많으며 배를 잘 다루어 지중해 연안 곳곳에 진출하였다. 반면 그리스의 육지는 산지가 많아 지방 간에 교류가 적어서 국민들이 단합이 잘 되지 않고 논쟁을 즐긴다고 한다.

원래부터 그리스 음식이 맵고 기름지며 열량이 높은 올리브유와 고추등 자극적인 향신료를 요리에 즐겨 쓰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유럽에서 위염 및 비만율이 높은 편이다. 고추와 해산물을 잘 먹지 않는 대부분의 서양인들과 달리 그리스인들은 스페인인이탈리아인포르투갈인 등과 더불어 편견 없이 다양한 해산물과 고추를 즐겨 먹는 민족이다. 여러 가지 해산물들이 즐비한 지중해가 지척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서양인들이 꺼리는 오징어나 문어 등도 잘 먹으며 그리스 요리는 해산물을 재료로 한 요리가 발전했다.

그리스인의 성이 '스(-ς)', '오스(-ος)', '우(-ου)'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데 전자는 남성, 후자는 여성이다. 그리스 남성들의 성씨 중 '오글루(-όγλου)'로 끝나는 경우도 꽤 있는데 튀르키예식 작명이다. 튀르키예인의 성씨 중 '오울루(oğlu)' 로 끝나는 것과 똑같은 의미인데 '~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주로 조상이 튀르키예인인 튀르크 혈통의 그리스인이나 20세기 초반에 튀르키예에서 그리스로 넘어온 사람들의 후손들이 많이 쓴다.

문화적으로는 알바니아인 및 튀르키예인과 상당히 유사하다. 복식, 음악, 요리 등 많은 면에서 알바니아 및 튀르키예와 서로 많은 문화적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하플로그룹에서는 주로 중동인들에게서 많이 나타나는 하플로그룹 J가 남부 이탈리아인, 알바니아인과 함께 유럽인들 중에서 가장 많이 발현되는 편이다. 하플로그룹에 따르면 그리스인은 알바니아인, 튀르키예인과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그러나 상염색체상으로 보면 알바니아인과는 가깝지만 튀르키예인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은데 그 차이가 무려 남유럽인과 북유럽인의 사이의 유전적 차이와 유사할 정도로 다르고 그리스인과 가장 유전적으로 가까운 건 의외로 마그나 그라이키아 등 그리스 계열 식민시들이 세워졌던 남부 이탈리아인, 시칠리아인이다.

미인이 많은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미인 대회에서 우승한 그리스인이 많다. 동유럽(러시아, 우크라이나벨라루스), 북유럽(스칸디나비아) 뿐만 아니라 의외로 유럽에서 숨겨진 미인의 혈통이라는 평. 그때문인지 과거 영미권 소설에선 미인을 뜻하는 은유적 표현으로도 쓰기도 했다.

신체[편집]

대부분 남유럽인이 그렇듯 흑발, 흑안을 가지고 있으며 피부는 올리브색이나 테닝한 피부를 가진 사람들도 많다. 머리카락은 대부분 흑발에 반곱슬 머리이며 눈동자색 또한 흑안이 대다수이고 광대가 작은 편이며 단두형 두상이 많고 얼굴 길이가 긴 편이다. 다만 다른 남유럽이나 튀르키예처럼 녹색이나 푸른색 등 벽안의 눈 색깔을 가진 그리스인도 있는 편이다. 키는 대체로 170대 중반이며 체격은 날씬한 체격이 많고 근육이 잘 붙지 않는 체형이며 골밀도가 타 유럽인보다 낮은 편이라 골다공증에 쉽게 걸리는 편이다.

튀르키예의 그리스인 (Rum)[편집]

튀르키예에서는 지금도 자기 나라의 소수민족인 그리스계를 Rum, 즉 로마인이라고 부른다.

현재 튀르키예 지역은 역사적으로는 2천 년 가까이 그리스인들의 터전이었던 만큼 1923년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에 이르기까지 이스탄불과 이즈미르 등 아나톨리아 서부 연안 지역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했을 정도로 그리스인들이 존재해 왔다.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1923년의 인구 교환으로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인이 사실상 없어졌으나 튀르키예의 유럽 지역인 이스탄불과 그 주변 섬, 에게해에 있는 보즈자아다(테네도스), 괵체아다(임브로스) 섬은 인구교환 대상 지역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나 튀르키예 민관의 지속적인 탄압으로 (특히 1955년의 반그리스인 폭동) 지금은 수천 명만 남아 명맥을 잇고 있다.

이스탄불 부근 프렌스 군도에 있던 프린키포 정교회 고아원은 1964년에, 할크 정교회 신학교는 1971년에 폐쇄되었지만 1925년 창간되어 튀르키예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신문 'Apoyevmatini'(Απογευματινή: 오후라는 뜻. 2019년 2월 21일자 1면), 1896년 창단된 스포츠 구단 쿠르툴루쉬 S.K.와 1923년 창단된 베요을루스포르, 유럽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성채라는 붉은 건물이 인상적인 파나르 그리스인 중등학교와 조그라페이온 중등학교, 발르클르 그리스인 병원 등 인상적인 그리스계 튀르키예인 단체들이 이스탄불 페네르(Fener) 지구를 중심으로 아직 남아 있지만 그리스계 튀르키예인 공동체 인구가 많이 줄어들었고 그리스계 튀르키예인 공동체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하다. 이스탄불에 위치한 정교회 콘스탄티노폴리스 관구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를 포함한 성직자 다수가 그리스계 튀르키예인이다.

아나톨리아 서부 해안지대 외에도 아나톨리아 동북부에도 상당수의 흑해 그리스인들이 거주하였다. 흑해 그리스인들은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전쟁 과정에서 상당수가 러시아 제국으로 건너가기도 했으나 소련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그리스로 이주한 경우가 많았다. 아나톨리아에 남아있던 흑해 그리스인들도 그리스-튀르키예 인구 교환 와중에 상당수가 그리스로 이주한 것은 물론이다.

물론 그리스인 무슬림들은 튀르키예인으로 분류되어 튀르키예에 남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기리틀리(Giritli)라고 불리는 크레타 출신 그리스인들이다. 기리틀리 중 유명인으로는 튀르키예의 전 부총리인 뷜렌트 아른치(Bülent Arınç)가 있다.

현대 그리스인의 탄생[편집]

오스만제국 시절만 해도 그리스어를 사용하고 정교회를 믿는 오스만 제국에 거주하는 훗날 그리스인으로 불리게 되는 민족들은 모두 로마인이라는 뜻으로 룸(Rum)이라고 불렸다고 앞의 문단에서 밝혔다. 현대 그리스(엘라다 공화국)의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그리스 독립전쟁 당시에도 이들은 룸이라고 불렸는데 룸들은 각자 살던 지방과 마을, 씨족에 따라 나뉘었고 심지어 단순히 정교회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공동의식 이외엔 동족의식조차 없었다.

하지만 18세기 말부터 그리스인들은 정교회를 믿으며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그리스인으로서의 민족 정체성을 각성하기 시작했다. 점차 그리스인들은 오스만의 지배를 거부하고 그리스인의 독립 국가를 갈망하기 시작했고 결국 1821년 그리스의 독립을 추구하는 비밀 단체인 친우회의 주도 아래 그리스인들은 독립 전쟁을 일으켰다.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시작으로 중부 그리스, 이피로스, 마케도니아, 에게해 제도, 크레타, 키프로스에 이르기까지 오스만의 지배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발칸전쟁 이후 북부 그리스와 에게해 동부의 도서지방을 점령한 그리스 당국도 새로이 그리스로 포함된 영토를 점령지 다스리듯 총독부를 설치해 통치했고 심지어 훗날 튀르키예 독립전쟁 이후 인구교환을 통해 그리스로 추방된 아나톨리아에서 온 그리스인들도 2등 국민 취급했다. 이렇게 지방으로 나뉘어 있던 그리스인들을 통합한 것이 메갈리 이데아(Η μεγάλη ιδέα)와 범그리스주의(Ο Πανελληνισμός, Panhellenism), 에노시스(Η Ένωσις) 운동이다. 메갈리 이데아 자체는 1920년대 초반까지도 팽배해 있었지만 그리스-튀르키예 전쟁에서 그리스가 아타튀르크가 이끄는 튀르키예군에게 패배해 추가적인 영토확장에 실패하고 인구교환으로 튀르키예에 살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 돌아오면서 사상으로써의 영향력은 끝났다.

특히 메탁사스 이후 군사독재정권에서 집권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민족의 침탈을 강조했다. 현재는 많이 덜하지만 당시의 역사 교과서를 보면 튀르키예인알바니아인을 비롯한 주변 민족들을 민족의 적으로 극단적으로 서술했으며 오스만 제국 시기에 서로 주고받은 문화교류나 영향, 평화적인 공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한편 극우 민족주의에 기반한 군사독재 정권 시절 그리스에 남아 있던 알바니아인, 블라키아인, 정교회 튀르키예인, 집시에 대해서도 그리스화를 강요했는데 대표적으로 성명을 그리스화하고 그리스어 예배를 강요하는 일이 있었다.

기타[편집]

그리스가 남유럽에 있고 고대 그리스 문화가 로마와 유사점이 많다는 관점 때문에 그리스인을 라틴족의 한 갈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리스인은 라틴족과는 별개의 민족이다.

고대 이탈리아 반도에 그리스인들이 식민도시를 건설했고, 로마가 그리스와 신화도 공유하고, 자신들을 트로이의 후손라고 주장하며 올림픽을 이어서 개최할 정도로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던 만큼 상호 교류가 잦았고 현대 이탈리아에서도 동화되지 않은 그리스인들이 소수 살고 있다. 그리코인 또는 칼라브리아 지방의 이름을 따서 칼라브리아 그리스인이라고 하며 그리스어의 한 갈래인 그리코어를 사용한다. 현재는 이탈리아인에 많이 동화되었고 종교도 정교회가 아닌 가톨릭을 주로 믿는다.

고대 로마 시대에는 수염으로 라틴인과 그리스인을 구분해 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그리스 남자들은 수염을 풍성하게 기르는게 특징이었는데 라틴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면도를 했다. 그리스 문화에 심취했던 네로가 수염을 길렀던 것도 유명하고 네로 이후에도 로마 황제들은 수염을 기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발칸반도에서 라틴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은 그리스인이 아니라 루마니아인이다.

그리스 신화를 베이스로 한 현대 서방권 국가들에서 제작한 대중매체들이나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만화들에서 등장하는 신화 속 신 캐릭터들의 이미지 때문에에 그리스인들이 북, 서유럽 사람들처럼 금발벽안이 많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리스인들 중 태어날 때부터 금발로 태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2012년 기준으로 그리스인들 중 금발의 비율은 5%가 안 되며 길거리에 보이는 금발은 염색인 경우가 상당수다.

그런데 실제로 일부 그리스 신화 매체에서 금발 묘사가 나오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 제우스와 아프로디테, 아르테미스, 아폴론 등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올림포스의 12신들은 그리스 신화 2차 창작물마다 금발 캐릭터들로 묘사하기도 하고 일리아스에서는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 메넬라오스 등을 금발로 묘사하며 헤시오도스도 아리아드네를 금발로 묘사하였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시대에 그리스인들이 만든 미술 작품에서는 그리스인 자신들의 외모를 대부분 흑발에 암갈색 눈으로 그려 놨다. 초기 그리스인이라면 밝은 계통의 눈과 머리를 한 사람의 비율이 꽤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쯤 되면 거의 나라조차 없던 선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 논외다. 그리스인 자체가 고대부터 비 인도유럽어족계 선주민들부터 도리아인, 아나톨리아계 주민들은 물론,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이집트인이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인해 넘어온 이란계 민족들까지 유입되어 혼혈된 역사가 있다.

그리스인은 어두운 색깔의 머리카락과 곱슬머리가 많으나 동유럽 사람처럼 생긴 금발벽안 그리스인, 서구적인 외모를 가진 그리스인도 있고 라틴인이나 튀르키예인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도 있는 등 그리스인들의 외모는 다양하다. 지중해 연안 민족인 만큼 아무래도 후자가 좀 더 많긴 하지만 발칸반도에 있는 그리스가 지리적으로 중동과 가깝고 쿠르드족과 아랍계 튀르키예인이 있는 튀르키예보다는 서구적인 외모가 더 많이 보이는 편이다.

현대 그리스인들은 발칸 반도의 남슬라브인과 알바니아인튀르키예인의 혈통이 섞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과는 아예 민족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세 이후 슬라브, 알바니아, 튀르키예인 혈통이 일부 섞인 것과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그 이전 시대의 토착 신앙이 단절된 건 사실이지만 '고대 그리스인의 후손'이란 혈통적 본질과 정체성 자체는 없어지지 않고 현대까지 그대로 내려왔다.

사실 이런 주장들의 내막에는 18세기에 들어서부터 생긴 그리스인들에 대한 음해와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 동로마 제국 시절에 서유럽인들이 그리스인들을 고대 문명인의 후예로 찬양했던 것과 대조되는데 대표적으로 고대 그리스를 찬양하며 현대 그리스인과 고대 그리스인은 다르다는 이론을 내세웠던 오스트리아의 그리스 연구가인 야코프 필리프 팔머라이어(Jakob Philipp Fallmerayer)의 주장은 지금까지 두고두고 비판받고 있다.

팔머라이어의 입장을 요약하면 순수학문적 입장이라기보다는 오스만이 쇠락해가는 발칸반도에서 6~7C 슬라브 대이동 이래 1000년 넘게 뿌리를 박고 살았던 남슬라브인들을 빌미로 범슬라브주의를 내세워 뻗어오는 러시아에 대응해야 하는 자국 오스트리아의 국제정치적인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독일인들의 이런 그리스인들에 대한 음해는 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인데 2015년 앙겔라 메르켈의 기민당에 가까운 보수 일간지 Die Welt에서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추방하라고 주장하면서 "현대 그리스인들은 자랑스러운 고대 그리스인의 후손이 아니라 슬라브인, 비잔티움인, 알바니아인, 터키인의 잡종들"이라고 현대 그리스인들을 모욕하는 기사를 내보내 그리스인들이 반발한 적도 있다. 

우생학이 발전된 시기인 18세기 당시 현대 그리스인은 고대 그리스인보다 슬라브에 더 가깝다는 학설이 한때 서구권에서 유행한 적이 있으나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이미 파기된 지 오래다. 그리스인이 슬라브에 더 가깝다는 학설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추축국이 그리스를 점령한 나치 선전의 일부로 인기가 있었다. 때문에 나치 독일 정부는 현대 그리스인들은 러시아와 같은 혈통이라며 그리스인들을 마구 학살했다. 당시 전통적으로 교육받은 나치 장교들은 그것을 그리스 국민들에게 수많은 만행을 저지르는 구실로 사용했는데 나치 독일의 만행을 반성한다는 현대 독일마저 그리스가 경제 위기로 유로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이런 인종차별적인 언사를 대놓고 일간지에 사용했다.

현대 그리스인이 슬라브에 가깝다는 학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80년대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다가 파기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연합국측의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D. 루스벨트와 아이젠하워 연합군 사령관은 추축국 나치 독일을 피해 미국이나 영국 등지로 피난을 간 그리스인들을 슬라브 이민자들이라고 불렀고 1970~1980년대 사회과 부도 교과서에서도 그리스인을 슬라브 문화권에 포함시켰지만 현대 그리스인의 혈통에 고대 그리스인보다 슬라브의 혈통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는 것은 6~7세기 발칸반도 슬라브족들이 그리스로 남하하는 과정에서 그리스인과 슬라브인들 간의 통혼이 있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뿐이며 애초에 온갖 민족의 잡탕인 유럽에서 어느 한 종족이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순수한 혈통을 유지했다는 망상은 아리아인의 순수혈통을 외쳤던 나치나 할 발상에 불과하다. 그리스인을 슬라브의 잡종이라고 비하하는 독일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프로이센 왕국마저도 반쯤은 슬라브인이라는 식으로 모욕을 당한 바가 있었으며 애초에 현대의 독일 동부에는 슬라브족들이 정착했기 때문에 독일인의 혈통에도 슬라브인의 혈통이 어느 정도 흐르는 것은 위에서도 보이듯이 그리스인과 매한가지다.

문제는 위와 같은 이유로 몇몇 백인 우월주의자나 그리스 공산당측은 현대 그리스인들은 고대 그리스인들보다 슬라브에 더 가깝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부 독일인들 같은 인종차별주의자는 물론이고 그리스 공산당의 주장은 과거 동유럽 공산권의 맹주였던 소련(러시아)에 아첨하기 위한 주장이며 대부분의 현대 그리스인들이 본인들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후손이 아니라고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오늘날 서구권에서 그리스인의 정체성을 이렇게 위협하는 주장은 네오나치나 하는 주장 취급받는다.

이 어이없는 주장이 힘을 얻은 또 다른 이유는 위에서 언급된 금발벽안 오해 때문이기도 한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대부분 금발벽안 외모였는데 튀르크인 등 이슬람 계열 민족들이 그리스를 침략해오는 바람에 현대 그리스인들이 지금처럼 흑발이 많은 외모가 됐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국가적 정체성의 문제는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의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도 굉장한 고민거리이자 담론이였다. 오늘날에는 동로마 제국 시절의 중세 그리스 역시 그리스의 자랑스러운 역사라는 데 그 누구도 이견이 없겠으나 그리스가 독립하던 19세기에는 사정이 전혀 달랐다. 당시엔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고전 그리스 철학에 대한 서양인들의 소위 '뽕'은 최고조로 오른 반면 고전 철학과 다른 옛 전통은 저열한 변질로 취급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인들에게 헬레니즘 철학은 고전 철학의 퇴보였고 로마의 그리스도교 개종은 암흑시대의 오프닝이였으며 진짜 로마 제국이었던 동로마 제국은 차마 로마라고도 할 수 없는 삼류국가였다. 따라서 19세기 그리스인들에게 고전 시대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중세 시대 로마 제국의 기억이 생생한 건 국제 사회의 시선에서 볼 때는 참으로 '뽕맛'이 떨어지는 짓이었다. 21세기의 시선에서 보자면 말도 안 되는 음해지만 19세기엔 정말 이랬다(...). 그러다보니 "자기들을 로마인이라 부르고, 고대 그리스 종교는 안 믿는 이 사람들이 왜 그리스인이냐" 같은 이상한 소리까지 나온 것이다.

물론 19세기 이후에 유럽 열강들에 의해 독립한 그리스 왕국의 왕실(비텔스바흐 왕조글뤽스부르크 왕조)은 진짜 고대 그리스인의 후예가 아니다. 두 왕조 모두 독일/덴마크 출신으로 게르만족 혈통이다. 옛 그리스 왕실에서 진짜 그리스인과 결혼한 사람은 단 두 명, 알렉산드로스 국왕과 미하일 왕자(요르요스 1세의 5남 크리스토포로스 왕자의 외아들)뿐이고 두 사람 다 딸만 두었다.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로는 고대 로마인의 후손이 아닌 슬라브인 혼혈 이라고 비하당하는 루마니아인, 각각 고대 이집트인과 메소포타미아인의 후손이 아니라고 부정당하는 이집트인과 이라크인 등이 있다.

지도[편집]

참고자료[편집]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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