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빈성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꽝빈성(베트남어: Tỉnh Quảng Bình)은 베트남 북중부에 위치해 있는 성이다.[1][2][3][4]
개요[편집]
꽝빈성의 면적은 8,051.8㎢이며 인구는 1,055,409명(2024)이다. 성도는 동허이시이다. 북쪽으로는 하띤성, 남쪽으로는 꽝찌성, 서쪽으로는 라오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해안선을 따라 남중국해와 접하고 있다.
꽝빈성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풍부한 역사 유적지로 유명하며,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꽝빈성은 베트남의 전통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지역이다. 꽝빈성의 사람들은 친절하고 따뜻하며,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꽝빈성에서는 매년 다양한 축제가 열리며, 특히 음력 설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방문하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꽝빈성은 풍부한 자연자원과 다양한 산업 분야를 바탕으로 경제가 발전하고 있다. 농업과 수산업은 물론, 광업과 산업, 관광 산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통 인프라의 발달은 지역 경제의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꽝빈성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자연환경[편집]
꽝빈성의 지형은 전반적으로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은 경사를 가지며, 전 지역의 85%는 산지와 언덕이 차지하고 있다. 앙남 산맥은 라오스와 꽝빈성의 자연적인 경계선으로, 산의 높이는 1,000m에서 1,500m 사이로, 그 중 최고봉은 2,017m에 달하는 피코피(Phi Co Pi) 산이다. 동쪽에는 낮은 언덕과 몇 개의 좁은 평야와 하천 삼각지가 있다. 해안선의 모래언덕 벨트는 바다의 조수로부터 육지를 보호하는 자연적인 방벽이다.
대부분의 강은 쯔엉선 산맥(Truong Son Range)에서 발원하여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하천과 개천의 밀도는 1.1 km/km²이다. 또한 160여 개의 자연 및 인공 호수가 있으며, 총 2억 3천4백만 입방미터의 담수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꽝빈성의 바다 영역에는 20,000km²의 대륙붕과 특별경제구역이 포함된다. 바다에는 하온라(Hòn La), 하온지오(Hòn Gió), 하온놈(Hòn Nồm), 하온쭈아(Hòn Chùa) 등의 섬들이 있으며, 총 어획량은 100,000 톤에 달한다. 하온라 만(Hòn La bay)은 4km²의 면적을 가진 해양만으로, 깊이는 15m에 달하며, 주변 육지는 4km²로 심해 항구 및 산업 단지를 개발할 수 있는 적합한 지역이다.
꽝빈성의 토지는 크게 두 가지 주요 시스템으로 나뉜다. 평야 지역은 충적토가 있으며, 언덕과 산지에는 철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산성 토양이 있다. 특히 산지 지역의 붉은 황토가 80% 이상을 차지하며, 사막 지역과 충적토는 각각 5.9%, 2.8%를 차지한다.
꽝빈성은 생물학적 다양성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북부 트루엉선(Khu hệ Trường Sơn)의 생물 다양성 지대에 속한다. 지역은 다양한 동식물과 독특한 생물학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폰냐-케방(Karst Phong Nha - Kẻ Bàng) 지역이 유명하다. 동물에는 493종, 67종의 포유류, 48종의 파충류, 297종의 조류, 61종의 어류 등이 있다. 그 중에서는 하띤 원숭이, 곰, 호랑이, 스타라, 대형 사슴, 흰꼬리칠면조, 검은 머리 칼새 등 희귀한 종도 있다.
꽝빈성은 금, 철, 타이타늄, 황철광, 아연, 납 등의 다양한 광물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대규모 석회석과 고령토 자원은 대형 시멘트 및 건축 자재 산업을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 온천수는 105°C의 온도를 자랑하며, 금 자원은 채굴 및 가공 산업의 발전 가능성이 크다.
꽝빈성은 열대 몬순 기후 지역에 위치하며, 북쪽과 남쪽의 기후 영향을 받는다. 두 개의 뚜렷한 계절이 있다. 비가 오는 시즌은 9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연간 평균 강수량은 약 2,000~2,300mm이며, 가장 많은 비가 내리는 시기는 9월부터 11월까지이다. 건기인 4월에서 8월까지는 비가 적고, 가장 더운 시기는 6월에서 8월까지이다.
역사[편집]
고고학 발굴에 따르면, 꽝빈 지역에는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해왔다. 다양한 도기, 석기 도구 등이 발견되었으며, 1926년 프랑스 고고학자 마들렌 꼴라니(Madeleine Colani)는 이 지역의 동굴에서 호아빈 문화(Hòa Bình culture) 유물을 다수 발굴하였다.
고대에는 현재의 꽝빈 지역이 상림군(Tượng Lâm) 또는 일본군(Nhật Nam)에 속했던 시기가 있었으며, 서기 192년에는 임읍국(Lâm Ấp)의 영토에 포함되었다. 이후 758년, 임읍은 국명을 참성(Chiêm Thành)으로 변경하였고, 이 시기 꽝빈 지역은 보정주(Châu Bố Chính)와 지리주(Châu Địa Lý)에 속하였다. 1069년 베트남-참파 전쟁 이후, 이 지역은 대월(Đại Việt)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이상계(Lý Thường Kiệt) 장군이 이 지역을 대월의 영토로 명확히 확립하였다. 1069년, 리 성종(Lý Thánh Tông)은 참파를 정벌하여 왕을 생포, 그 대가로 Địa Lý, Bố Chính, Ma Linh 지역을 할양받았고, 이로써 오늘날의 꽝빈성과 꽝찌성 북부(빈링, 지오링, 깜로, 흐엉화 북부 포함)가 대월의 영토가 되었다. 꽝빈성은 원래 레 트룽훙(Trung Hưng) 왕조 하의 티엔빈(시) 지역이었다가 1604년에 꽝빈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늘날 꽝빈성 지역은 참파와 안남 간의 전투가 있었던 지역으로, 후속 왕조들에 의해 베트남의 영토가 남쪽으로 확장되면서 중요성이 커졌다. 꽝빈성의 중요성은 후에 후손의 왕이었던 응우옌 호앙이 남쪽으로 파견되면서 더욱 강화되었고, 그는 자신의 영지를 건설하고 이를 꽝남 지역으로 개편하였다. 꽝빈성은 다앙 트롱(Đàng Trong)을 방어하는 중요한 전선이 되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이 지역은 안남의 일부였다. 베트남 전쟁 중에는 북베트남(민주공화국)의 일부로, DMZ에서 20km 떨어진 곳이었다. 이 지역은 미군의 B-52 폭격으로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꽝빈성은 세계유산인 퐁냐케방(Phong Nha-Kẻ Bàng) 국립공원이 위치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지역은 또한 많은 유명한 베트남 인물들의 고향으로, 고명한 군사 지도자 보 응우옌 잡(General Võ Nguyên Giáp), 시인 한 막 투(Hàn Mặc Tử), 작가 바오닌(Bảo Ninh), 전 남베트남 대통령 응오 딘 디엠(Ngô Đình Diệm) 등의 출생지로 알려져 있다.
정-응우옌(Trịnh-Nguyễn) 분쟁 시기에는 국토가 꽝빈 북쪽의 장강(Gianh) 강을 경계로 분단되었으며, 동허이(Đồng Hới)는 응우옌 주의 전초기지로 요새와 성이 건설되었다. 1975년 9월 20일부터 1989년 6월 30일까지, 꽝빈성은 꽝찌성(Quảng Trị), 트어티엔후에성(Thừa Thiên Huế)과 함께 빈찌티엔성(Bình Trị Thiên)으로 통합되었다가 1989년 6월 30일 국회 결의로 다시 분리되어 오늘날의 꽝빈성(Quảng Bình)으로 회복되었다.
산업[편집]
꽝빈성의 산업 부문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주요 산업으로는 석유화학, 제철, 건설, 전자 제품 및 기계 제조업이 있다. 이 지역은 광물 자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제조업을 발전시켜 왔으며, 특히 석회석과 석탄을 이용한 산업 활동이 활발하다. 이 지역의 산업 발전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으며, 지역 경제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꽝빈성에서 농업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이 지역의 농업은 주로 쌀, 고구마, 감자, 콩, 깨, 참깨, 고추 등 다양한 농작물을 포함한다. 또한, 이 지역의 농업은 축산업과 함께 발전하고 있으며, 돼지, 소, 닭 등 다양한 가축을 사육한다. 특히, 이 지역은 쌀 생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며, 주요 쌀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꽝빈성은 해안선 길이가 길고 바다 자원이 풍부하여 수산업도 중요한 산업 중 하나이다. 이 지역의 수산업은 어업, 양식업 및 수산물 가공업으로 구성된다. 특히, 바다와 인접한 지역에서 어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며, 다양한 종류의 어패류와 해양 자원을 채취하고 있다. 또한, 수산물 가공업은 지역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꽝빈성은 광물 자원도 풍부하다. 이 지역에는 석탄, 석회석, 철광석, 구리광석, 아연광석 등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으며, 이들 자원은 베트남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 특히, 석회석과 석탄은 지역 내 주요 산업의 원료로 사용되며, 광업은 지역의 주요 경제 산업 중 하나이다.
꽝빈성은 자연경관과 역사적 유산이 풍부하여 관광 산업에서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퐁냐케방(Phong Nha-Kẻ Bàng) 국립공원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지역으로, 동굴과 석회암 산지, 다양한 동식물 자원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의 관광 자원은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지역 경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사회[편집]
정부가 독재 공산당이다 보니 오히려 정치가 안정적이라 동남아시아에서는 그나마 치안이 괜찮은 나라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포르, 브루나이와 함께 전 국토에 여행경보가 발령되지 않은 국가였다. 그만큼 중범죄 및 총기/테러 사건이 드물며, 타 동남아 국가에 흔한 종교분쟁도 없다. 중범죄는 흔치 않지만, 경범죄는 어느 정도 주의해야 하는데, 한국인들을 타겟으로 한 각종 덤탱이 사기, 소매치기, 날치기가 많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인구가 많고 복잡한 호치민, 하노이에 여행 계획이 있다면 물건 간수를 꼭꼭 잘하자. 궁금한 사람은 구글이나 네이버에 베트남 날치기나 베트남 소매치기 정도만 검색해 봐도 우수수 쏟아져 나올 정도로 사례가 많다. 어께에 매는 가방(특히 여자들 핸드백)을 매거나 뒷주머니에 물건을 넣는다면 소매치기에게 가져가 달라고 광고하는 꼴이니 백팩을 매고 다니자. 백팩도 가급적이면 앞으로 매는 것이 좋으며, 크로스백도 강한 충격으로 절단되어 절도되는 피해사례가 많으니 주의가 필요하며, 사실 상 힙색이 가장 안전하다.[5][6]
문화[편집]
중국 남부 지방과의 오랜 교류로 인하여, 베트남 문화를 특징짓는 한 가지 요소는 재정적 책임이다. 베트남에서 교육과 자수성가는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과거 시험을 통과하는 것만이 베트남 사람이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유일한 것이었다. 베트남이 오늘날의 영역으로 통합된 것은 근대의 일로, 그 전에는 유교 및 한(漢)문화의 영향을 받은 북부와 베트남의 주 종족인 킨 족외에 인종적으로 말레이계에 속하는 참파인의 국가였던 참파가 있었던 중부문화권, 그리고 크메르 제국의 영역에 속했던 남부 등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북부, 중부, 남부의 차이는 언어 및 풍속,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존재한다. 중국의 유교 영향을 많이 받았음에도, 베트남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는 상하 개념은 없고, 서로 스스럼없이 대한다.
공산주의 시대에 베트남의 문화적 삶은 정부가 통제하는 미디어와 공산주의적 프로그램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수십 년 동안 외국 문화의 영향은 차단되고 소련, 중화인민공화국, 북한 등 공산주의 국가의 문화를 음미하고 공유하는 것이 강조되었었다. 1990년대 이래로, 베트남은 일본, 유럽, 미국의 문화와 미디어에 대폭적으로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베트남에는 1945년 9월 2일에 하노이에서 설립된 국영방송국인 베트남의 소리가 있다.
베트남의 민속 의상 중 가장 대중적인 것은 여성들이 입는 아오자이이다. 아오자이는 현재에는 명절이나 결혼 등 행사, 일상의상 등으로 입는다. 흰색 아오자이는 베트남 전역에서 여학생의 교복으로 지정된 경우가 많고 학생 이외에는 다양한 색상의 원단으로 아오 자이를 만들어 입는다. 예전에는 성별 구분 없이 아오자이를 입었으나 현재에는 여성용 의복으로 한정된다. 단, 전통 문화 행사에서는 남성이 입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은 인구가 많지만, 대중문화 자생력은 상당히 뒤떨어진다는 평이다, 대한민국, 중국, 일본, 태국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인도와 튀르키예 드라마들도 어느정도 수입된다. 특히 1990년대 말 이래로 한국 드라마가 많이 수입되는 상태이며 중국 드라마도 사극이나 통속극을 중심으로 많이 방송되고, 일본 애니메이션도 1990년대 이래로 수입되어 방송되고있다. 그래서 장노년층들도 한국 인기 드라마 줄거리와 OST 정도는 아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 대중가요도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널리 수용되어 중년층 이하는 한국 웹툰과 K POP에도 익숙하며, 베트남 대중가요도 한국 대중가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교통[편집]
꽝빈성은 잘 발달된 교통 인프라를 가지고 있다. Dong Hoi 공항은 베트남의 주요 도시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국제선도 운항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에는 국철과 도로망이 잘 연결되어 있어, 물류와 상업적 교류에 큰 장점을 제공한다.
꽝빈성은 동서경제회랑(EWEC)의 중요한 중심지로서, 국제 상업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지역의 교통 인프라는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혼라 심해항구는 30,000~50,000톤급 선박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국제 무역과 경제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도[편집]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 지도 위 글자를 클릭하면 해당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동영상[편집]
각주[편집]
참고자료[편집]
- 〈꽝빈성〉, 《위키백과》
- 〈꽝빈성〉, 《나무위키》
- "Quảng Bình", Wikipedia
- "Quảng Bình province", Wikipedia
- 〈베트남〉, 《나무위키》
- 〈베트남〉, 《위키백과》
같이 보기[편집]
동남아시아 같이 보기[편집]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