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인
세르비아인(세르비아어: Срби 스르비[sr̩̂bi], 영어: Serbs)는 주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스릅스카 공화국에 거주하는 남슬라브족 계통 민족이다. 남슬라브족에 속하는 슬로베니아인·크로아티아인·달마티아인과 달리 세르브인은 주로 동방 정교회의 독립교회인 세르비아 정교회를 믿는다.
역사[편집]
7세기부터 발칸반도 중부에 거주했으며 동로마제국의 영향력에서 동방 정교회를 신봉하기 시작했다. 12세기말에 중세 세르비아 왕국을 건설한 세르브인은 비잔티움 제국에서 독립했다. 그리고 세르비아 정교회가 이 때부터 생겨났다. 14세기말에 세르비아 왕국은 황금기를 맞았지만 그 후 급속히 쇠퇴하여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나폴레옹 전쟁 후 빈 체제가 성립하면서 중앙 유럽의 민족주의 운동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 민족주의 운동은 러시아 제국의 후원으로 성공적인 1860년대에 상당한 자치권을 인정 받게 되었다. 1878년 산스테파노 조약과 베를린 조약을 통해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 루마니아와 함께 다시 독립을 쟁취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르비아 왕국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탈취해서, 남슬라브족의 공동 국가인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이후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세르브인 주도로 운영되어, 비세르브인 세력과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따라서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추축국에 점령당했고, 주로 안테 파벨리치의 크로아티아 독립국에 의한 세르브인 집단학살이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티토에 의하여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세르브인은 유고슬라비아의 주된 구성원으로서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보스니아인, 마케도니아인과 협조를 도모해 왔지만, 1980년 지도자 티토가 사망하면서 크로아티아인과의 다시 갈등을 심화했다. 또한 코소보에서 알바니아인과 세르브인과 관계가 험악해져, 1999년 코소보 전쟁이 발발하였다.
1992년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 공화국(FRJ)가 성립하여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와 함께 연방 회원국이 되었다. 그 후 2003년에 유고슬라비아라는 국명은 세르브인으로부터 분리 독립된 몬테네그로인 정체성 확립의 풍조에 따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로 수정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2006년 6월 3일, 이에 앞서 5월 23일에 실시된 국민 투표의 결과를 근거로 하여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6월 5일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완전히 해체되었다. 또한 2008년에는 국제연합(UN) 통치하에 있던 코소보 분리 독립을 선언했지만, 세르비아 정부는 현재까지 승인하고 있지 않다.
분포[편집]
세르비아 내의 세르비아인 인구는 600만여 명이며, 이는 미승인국인 코소보에 사는 15만여 명의 세르비아인들은 제외한 수치이다. 전 세계에 분포한 세르비아인 인구는 약 1000만여 명 내외로 추산되는데 이 중 60%가 세르비아에 거주하는 셈이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는 스릅스카 공화국을 중심으로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 보스니아인 인구 100만여 명이 거주하는데, 이들은 몬테네그로나 세르비아 내 세르비아인들이 무슬림과 사이가 대단히 나쁜 것과 다르게 이웃 보스니아인 무슬림들과 무난한 사이이다. 크로아티아에는 19만여 명, 몬테네그로에는 18만여 명이 거주하는데, 몬테네그로인과 세르비아인 모두 정교회를 믿고 몬테네그로어와 세르비아어는 방언 수준의 차이만 나는 등 실질적인 차이는 별로 크지 않다. 한 때 같은 유고슬라비아에 속했던 북마케도니아와 슬로베니아 내에도 각각 4만여명 이하 수준의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헝가리에 1만여 명 루마니아에도 2만여 명 내외 규모의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세르비아의 경제가 서유럽에 비해 낙후된 영향으로 많은 세르비아인들이 EU 내 선진국들로 이민, 정착했다. 독일에는 70만여 명, 오스트리아에는 30만여 명 정도의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했으며 스웨덴과 프랑스에도 각각 12만여 명 정도의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했다. 이 외에도 EU에는 속하는 국가는 아니지만 스위스에 15만여 명, 영국에 7만여 명 정도 되는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했다.
이외에도 미국에는 20만여 명, 캐나다에는 8만여 명, 호주에는 7만여 명 등의 세르비아인들이 정착했다. 특이하게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민간 세르비아인들도 2만여 명 정도 된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시절에 러시아로 이주한 세르비아인 후손들도 있다.
이들 중에는 세르비아 마피아를 조직해서 범죄를 저질러 세르비아 마피아의 악명이 세계로 퍼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종교[편집]
그리스인, 루마니아인 및 불가리아인과 마찬가지로 정교회를 믿는다. 과거 오스만 제국에서는 정교회를 믿는 여러 피지배 민족들을 한 데 묶어 룸 밀레트라고 관리했으며 당시 세르비아인들은 독자적인 민족 의식이 희박한 편이었다.
오늘날 정교회 내에서 세르비아 정교회 베오그라드 총대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모스크바에 이어 서열 6위에 해당한다.
언어[편집]
세르보크로아트어를 사용하며 대개 키릴 문자를 쓴다. 부크 카라지치에 의해 현대 세르비아 표준어가 확립되었다.
반 튀르키예 감정[편집]
세르비아인들은 우리나라의 혐중 감정이나 혐일 감정을 아득히 넘어서는 반 튀르키예 감정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는 과거에 똑같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그리스, 불가리아 등의 국가들과 달리 튀르키예와 경제적 교류도 많이 없기 때문에 심지어 세르비아 관광청에서 대놓고 “오스만 제국에서는 5백년 가까이 세르비아를 식민 지배하면서 세르비아 엘리트 계층을 뿌리뽑고, 이슬람 국가로서 세르비아인 정교회신도들을 농노로 다루고 모욕하며 착취했다.”라는 다소 격앙된 말투로 튀르키예를 디스하는 내용도 올려놓았다.
오스만 제국 시절 발칸반도가 관료주의 및 종교적 제약으로 인한 인쇄술과 과학지식의 확산 제약, 마케도니아 일대의 정치투쟁, 정비되지 않은 도로 때문에 산업화와 기업농의 발달이 저해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굳이 기독교인외에 아랍인들도 견제 차원에서 잔혹하게 탄압했으며, 오히려 기독교도들은 발칸반도가 오스만의 핵심지역, 발칸 반도가 과거 동로마 제국의 땅, 무엇보다도 세금을 비무슬림들에게서 걷는 오스만 제국의 제도로 인하여 차별은 있을지었지만 어느 정도 종교의 자유는 보장 받을 수 있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란의 카자르 왕조처럼 농민들을 굶기고 억압하던 나라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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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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